#101. 청년탐정 김민호(1)
“동욱아… 쿨럭! 동욱이 있나?”
병실의 한편에 노인이 힘겹게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산소 호흡기로 막혀 잘 나오지 않는 말을 억지로 하는 바람에 연신 기침을 해댔다.
“네, 아버지. 여기 있습니다.”
동욱이라 불린 청년이 애처롭게 손을 허우적대며 자신을 찾던 손을 맞잡았다. 깡마른 노인의 손은 여기저기 생채기가 생기고 아물기를 반복했는지 흉터가 가득했고 손가락마저 온전히 다 달려 있지 않았다.
“미안테이. 이래 살아가 미안테이. 니는 이래 살지 말그라. 알겠나? 빚이고 나발이고 다 내던지고 고마 이 돈으로 미국 가서 살그라.”
노인이 머리맡에서 꺼낸 돈은 꼬깃꼬깃한 지폐 3장이었다. 어느 식당에 가서 국수 한 그릇이나 겨우 먹을 돈을 내밀며 미국에 가라 했다. 사경을 헤매는 동안에 흐려진 이지는 그 돈의 가치마저 잊게 만들었다.
“미안테이……. 인자 니 어매한테 사과하러 가야겠다… 동욱아, 미안테이…….”
“아버지! 아버지!”
노인은 그렇게 마지막 말을 아들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숨을 이내 다시 내뱉지 못했다.
‘아버지처럼 살겠습니다. 그렇게 살아서 저들에게 보여주겠습니다. 아버지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요.’
아들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사업을 한답시고 빚만 남긴 부모에 대한 원망이 담겨서가 아니었다. 너무 큰 상실감이기에 슬픔이 미처 실감 나지 않음은 더더욱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숨이 끊어진 아버지를 대신해.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아 슬퍼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회장님, 도착했습니다.”
“어?”
병원이 아니었다.
방금 깊은 잠에서 깨어나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조동욱 회장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늘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시장기가 과하게 도는 걸로 보아 차 안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보냈으리라 짐작했다.
“아이고마, 진짜 잠들어뿟네. 박 상무 니 마이 기다릿나?”
“아닙니다. 차 안에서 이렇게 주무시는 걸 본 게 처음이라 저도 눈 좀 붙였습니다.”
“늙었는 갑다. 이래 꿈까지 꿔뿟네. 끌끌.”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데. 늦었다. 집에 댈따주고 니도 빨리 퇴근하그라.”
백반집을 눈앞에 두고 한참을 서 있던 차는 원래의 목적을 잊고 그렇게 다시 천천히 움직였다.
* * *
MM 프로팀의 사무실에는 오랜만에 긴장감이 담긴 공기가 고요한 정적을 만들고 있었다.
삼정 그룹에서 갑자기 찾아온 손님 때문이다.
재무팀의 방문.
감사팀만큼은 아니지만, 달갑지 않은 사람들일 것이다. 같은 회사의 직원을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나눌 크기의 회사가 아니다. 같은 층에 있어도 부서와 사무실이 다르면 밖에서 만나 어색한 눈인사나 나눌 법한 사이로 지내는데, 하물며 큰 문제가 있을 때만 오는 재무팀이라니.
내가 팀원들이라도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살필 것 같았다. 사전에 팀원들에게 언질을 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심각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이제 다 끝난 건가요?”
나는 마지막 문서의 서명란에 이젠 잘 나오지도 않는 펜으로 서명을 마쳤다.
꽤 긴 싸움이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사인을 하기 전 검토해야 할 부분도 많았다. 이미 정해진 사안이라 협의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잘못하면 해를 넘겨 일을 처리할 뻔했다.
“네, 후에 한 번 더 서류 확인차 방문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삼정그룹 본사 재무팀에서 나온 직원들이 커다란 007가방을 가져올 때만 해도 20억짜리 서류니 만반의 준비를 하는구나 싶었으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전문 법률사무원까지 동원된 재무팀에서 내민 서류는 놀랍게도 주식의 매입 조건으로 당월 최고가의 금액에 더해 MM 프로팀의 지분율 24%를 제시했다.
무성의한 문자 한 통과 함께.
「이거 안 바ㄷ으모 앞으로 내 볼 생각 하지 말그라.」
어떤 타협도 거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회장님의 문자였다. 답장은 할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 답이 필요한 말씀을 하려 하셨다면 힘들게 오타를 내며 쓴 문자가 아닌 통화를 하셨을 테니까.
그렇게 선택의 여지도 없이 MM 프로팀의 지분 24%가 내 손에 들어왔다.
주식이 상장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가치를 책정할 만한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직원들이 쓰는 컴퓨터와 사무용품은 모두 삼정과 대현에서 쓰던 그대로 가져온 것들이고 깔끔하게 리모델링 되어 냉난방이 빵빵한 창고와 미니카 트랙들이 그나마 돈이 될 만한 물건이다.
투자한 돈이 수익이 되어 돌아오리라 생각하고 그 많은 돈과 인력을 부은 게 아니다. 미니카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통해 광고효과를 노릴 수 있는 팀에 구실 좋은 핑계를 붙여 없어도 그만인 인력을 붙여주었다.
그저 조금 효율성이 좋은 광고수단일 뿐이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이제 막 완구제조업에 뛰어드는 우리는 지금까지 적지 않은 돈을 써왔다. 삼정그룹과 대현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매달 억 단위의 지출을 한다. 그리고 이제 1년만 더 있으면 사업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게 된다.
1년.
이 1년이 남은 시점에 나에게 주식값에 더해 쥐여주신 지분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성공한다면 다 가져가고 실패한다면 알아서 해라.’
사업이 실패한다면 두 번째 기회는 없다.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달리는 오뚜기 같은 사업가는 그만큼 드물기에 전설이 되어 매스컴에 나오는 것이다.
두 회사는 지분을 빼고 투입된 인력을 다시 가져가면 그만이지만 막대한 MM 프로팀이 진 채무의 24%를 떠안은 나는 평생 일해도 갚지 못하는 빚으로 재기불능의 상태가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범인에게는 이 기회조차 쉽게 오지 않는다.
노력은 했으나 밤잠을 쪼개가며 힘들게 모은 돈을 모두 쏟아붓는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꽃밭을 걸은 셈이다.
단 한 번의 기회.
그리고 이 기회에는 우리 팀의 명운이 걸려 있다.
당장에 21명의 앞날이 걸려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사업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철야를 해도 모자라다. 검토하고 또 검토해 리스크를 줄이고 새로운 판매 루트를 공략해도 모자랄 시간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저는 가보겠습니다. 다들 적당히 하다가 퇴근하세요~”
이미 서로의 역할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다 했던가? 뛰고 있으면 걷고 싶고 걷고 있으면 서고 싶으며 그렇게 누워 자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 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반대다.
매주마다 올라오는 회의록과 주간보고서는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처럼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차재훈 부장과 하시모토 부장이 일정을 연기하라 지시하고 직접 진척도를 수정할 지경이니 말이다.
1년을 기약하는 장기전이다. 의욕과 열정을 꺼트리게 할 순 없으나 비축하게 도와주어야 했다. 반나절의 출근은 그렇게 계속 지켜지고 있었다.
일전에 농땡이를 피우려던 핑계가 이제는 정말 핑계가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빠르게 갈 필요는 없다. 우리가 급하다 해서 일을 맡긴 다른 업체들의 업무가 빨리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에.
* * *
끼익.
(한 번만 발라도 얼굴에 광채가! 이젠 한 번만 바르세요…….)
“지독하네! 진짜! 진짜 할인만 하면 프리미엄을 구독하든지 해야지.”
도착하기 전까지 노래나 몇 곡 들으려고 틀어놓은 너튜브에서 광고만 종일 흘러나왔다.
신호등도 없는 시골길이라 중간에 넘기기 버튼도 누르지 못한 채 결국 문방구에 도착해 버렸다. 도착한 문방구는 이미 입구부터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그 입구의 손님들이 오늘 올 손님의 전부라는 것이 문제지만.
“언제부터 왔어?”
“우리? 나랑 지환이는 아까 11시쯤? 상진이는 방금 왔어. 설란이 누나는 10시에 왔대.”
“오늘 월요일인가?”
“응. 병원 쉬는 날. 저거 먹어야 해! 빨간 파워!”
지난번에 같이 걸스 패닉을 한 뒤로 설란이의 방문도 잦아졌다. 처음엔 설란이가 게임을 차지하면 다들 딴청을 피우며 애꿎은 미니카나 만지거나 방에 들어와 비디오를 봤지만 결국 게임의 유혹을 뿌리치진 못했다.
매출에 별반 도움도 안 되는 100원짜리 오락기는 그렇게 오늘도 열띤 성원에 힘입어 모니터 위에 예약 동전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일단 이 판 끝나고 좀 나와봐. 안에 청소 좀 하게.”
표면적으로는 오락기지만 엄연히 분류는 과자 자판기로 되어 있는 녀석이다. 왜 오락기에 과자가 나오느냐고? 여기는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는데 가뜩이나 오락이 죄악으로 여겨지던 시절에 아이들이 집에도 오지 않고 문방구에 앉아 오락하는 꼴을 교육열에 민감한 정부에서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렇게 빠른 규제로 문방구에 오락기의 개수는 2대로 제한이 걸렸다. 하지만 급하게 만든 법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고 오락기 판매업체와 문방구는 그 허점을 이용해 오락기를 과자 자판기로 둔갑시켜 버렸다.
동전을 넣고 과자를 먹으면서 겸사겸사 오락 기능까지 있는 이 과자 자판기가 생겨난 히스토리다. 물론 이마저도 후에 생긴 각종 법안으로 관리가 어려워지고 문방구가 쇠퇴하면서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 때문에 이 오락기는 명목상 과자 자판기다.
매일 통을 씻고 닦아야 하고 과자 통과 출구는 행여나 있을 벌레의 침입을 막기 위해 따로 실리콘 작업에 자외선 살균기까지 넣어두었다.
추억을 지키는 대가는 다소 거추장스럽지만 그래도 오락기에는 괴돌이가 나와야 한다. 최소한 내가 어릴 때는 그게 당연했다.
“잠깐.”
“왜? 빨리 끝내. 우리 게임 해야 해.”
“돈이 비어.”
“뭐?”
돈이 빈다.
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매일 청소하며 채우는 괴돌이의 양과 돈 통에 들어 있는 동전들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괴돌이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는데 반해, 동전은 2천 원 남짓이 들어 있다. 이건 누군가 동전을 넣지 않고 게임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손님 중에 동전을 안 넣고 게임을 하는 도둑놈이 있어. 언제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그게 가능해요?”
“가능해.”
아이들은 순수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천사처럼 착하진 않다. 당장에 돈은 없고 게임은 하고 싶은 아이들은 금단의 영역에 발을 들이곤 했다.
딱딱이와 끌게, 그리고 낚싯대가 바로 그 금단의 영역이었다.
동전을 넣지 않고도 코인을 올리는 기발하고도 비겁한 술수. 금단의 지식으로 은밀히 전수되는 이 기술들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물론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이다. 기껏해야 백 원짜리 게임 한 번 공짜로 해보겠다고 아둥바둥거리는 모습이 요즘 나오는 흉악범죄에 비하면 차라리 귀여운 수준이었다. 당시에도 걸린다 한들 꿀밤이나 몇 대 맞고 넘어가기 일쑤였으나 지금은 현행범으로 잡히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믿고 따랐던 사람 중에 그런 범죄자가 있음이 가슴 아팠지만, 제대로 밝혀내지 않는다면 억울한 피해자만 늘어갈 뿐이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한정된 정보로 사건을 추리해야 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이 사건은 내가 해결하겠어.”
용의자 리스트.
조철진(30), 조상진(29), 이지환(29), 박설란(31), 누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