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102화 (102/151)

#102. 청년탐정 김민호(2)

우리는 방에 둘러앉아 서로를 바라봤다.

이 중에 범인이 있다.

“사건 발생 시각은 어제 오후 13시에서 오늘 오후 13시 사이야. 내가 그때 마지막으로 오락기를 청소했으니까.”

“배고픈데 밥부터 먹고 하면 안 돼?”

“안 돼. 한 놈은 지옥에서 먹어야 하니까.”

원래는 아침 출근 전에 전부 끝내놓고 가지만 요즘 새벽잠을 설치는 바람에 퇴근을 하고서야 청소를 했다.

그래서 사건 발생 시간은 지금부터 약 하루 전 사이다.

“다른 사람은 못 봤어?”

“글쎄, 내가 왔을 때는 아무도 없었어.”

“두 번째로 온 건 철진이랑 상진이라고 했지?”

“그럼 설란이 누나네! 그때 혼자 있었잖아!”

“뭐? 나 아니야!”

철진이의 단순한 추리는 의외로 허점이 없었다. 짐작과 추측성 추리는 단순명료할수록 좋다.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그만큼 올라가니까.

그러나 철진이의 말에도 한 가지 맹점이 존재했다.

“설란이는 아닐 가능성이 커. 원 코인으로 히든스테이지까지 다 열거든. 1시간에 이렇게 코인을 많이 쓸 수 없어.”

“아!”

설란이가 온 시간은 10시, 그리고 두 형제가 온 시간은 11시경. 그 짧은 시간에 공짜로 코인을 올린다 해도 한 판에 20분 가까이 쓰는 게임에서 티가 날 정도로 괴돌이를 소모시키진 못한다.

설란이는 용의선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이다.

“그런데 게임 할 때는 다 지켜보고 있었어?”

“아뇨, 날이 너무 더워서 그냥 방에 들어가 있죠.”

“맞아. 나도 얘네들 오고 문방구 안에 구경했어.”

7월이 다가오는 중이다.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버틸 만하다지만 오후의 뜨거운 햇살을 버티면서 밖에 서 있을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지금 설치된 게임은 걸스 패닉이 아니다.

설란이가 오고 나서 민망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눈치를 보면서 게임을 한다는 걸 깨달은 뒤에 멀티플레이가 재미있는 던전드래곤으로 게임을 잠시 바꾸었다. 그 때문에 볼거리(?)가 상대적으로 적은 게임이라 뒤에서 지켜보는 상황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우리 중에 알리바이를 입증할 사람은 아무도 없네요?”

게임이 끝나면 방으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을 쐬며 비디오를 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상진이의 말이 맞았다. 게임기에는 기껏해야 1~2명이 붙어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었으니 범행을 저지르기도 좋다.

“어제일 수도 있잖아. 오빠가 어제 오후 1시부터라며?”

“내가 있는데 그런 간 큰 짓을 저지를 사람은 잘 없지. 확률은 있지만 희박하다고나 할까?”

“그건 그러네요.”

물론 용의자가 이 4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제만 해도 마을에 할머니를 보기 위해 놀러 온 가족이 아이스크림과 이런저런 장난감을 사 갔다.

가능성만 놓고 본다면 용의자는 훨씬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어림짐작으로 넘겨짚는다면 결국 범인에게 도망갈 기회만 주는 꼴이다. 부인할 수 없는 진실과 논리로 빈틈없이 옥죄어야 비로소 자백을 받아낼 수 있다.

“그럼 둘이 같이 한 사람은 누구누구야?”

“처음엔 설란이 누나 혼자 했고 그다음은 나랑 지환이, 그리고 그다음은 상진이랑 지환이 이렇게 했던가? 아, 후레시드맨 마지막 편 할 때는 다 모여서 그거 봤네.”

“아니므니다. 세 번째부터는 다시 철진 상과 내가 했으므니다.”

“야, 아니야. 세 번째는 상진이 혼자였지.”

“그랬던가? 나랑 형이랑 한 번 더 한 적은 있었어.”

모두의 진술을 들은 나는 사건 현장으로 다시 나왔다. 단서를 찾기 위해서다. 범행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분명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을 터.

“범인은 PVC끌게를 사용했어.”

“그걸 어떻게 알아?”

“잘 봐. 랭킹에 B.S.L.만 가득 있지? 이건 설란이가 게임을 했을 시점부터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는 뜻이야. 딱딱이를 사용하면 오락기가 자주 꺼지거든.”

딱딱이.

별칭이지만 어느 마을에서도 비슷하게 불리던 녀석이다.

문방구에서도 남을 놀려먹길 좋아하는 아이들의 기호에 맞춰 몇 가지 장난감이 꾸준하게 팔리고 있었다.

껌 모양으로 되어서 뽑으면 바퀴벌레가 튀어나오는 장난감, 방구탄, 그리고 이 딱딱이.

딱딱이의 버튼을 누르면 압전기가 발생해 작은 스파크가 튄다. 이 딱딱이로 만드는 순간 전압은 무려 10,000V. 믿기 힘들지만, 그 짧은 순간에 발생하는 전압은 상상을 초월한다.

원래는 아이들의 살에 몰래 대고 놀라게 하는 용도로 사용했지만, 곧 그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사장되었다.

이 딱딱이를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고물상 근처를 돌아다니며 가스레인지에 붙은 이 딱딱이를 뜯으려 무던히도 애를 쓰곤 했었다.

하지만 이 딱딱이는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바로 오락기에 큰 무리를 준다는 점이었다. 기판에도 강한 전압이 순간적으로 들어가면서 무리를 주고 오동작도 자주 일으킨다.

만약 딱딱이를 이렇게 자주 사용했다면 분명 한 번 정도는 꺼졌어야 하는데 점수가 그대로 유지될 리가 없다.

“낚싯대도 아니야.”

“낚싯대? 그건 뭐예요?”

“동전에 구멍을 뚫은 다음, 그 사이에 낚싯줄을 연결해서 다시 빼내는 방법이야.”

딱딱이의 시대는 금방 저물었다.

오락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기에 판매업체나 문방구, 오락실 주인들도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코인이 들어가는 부품은 모두 절연 소재로 바뀌었고 딱딱이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천하 삼분지계가 무너졌다 하여 통일이 이뤄지진 않았다.

끌게와 낚싯대가 다시 천하를 양분했고 낚싯대는 지금껏 수많은 경험담을 낳은 백전노장이었다.

화폐 훼손죄를 알 리 없는 아이들이 바닥에 동전을 대고 송곳으로 좌우로 조금씩 비벼가며 가운데를 뚫어내면 완성되는 비교적 간단한 제작 방법과 일단 동전이 들어간다는 행위 자체가 어느 정도 스킬을 보정 해 주었기에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 방법도 큰 부작용이 있었다.

“다들 손 내밀어봐. 잘 봐, 검지에 줄에 눌린 자국이 없지? 낚싯대를 쓰면 무조건 여기 빨갛게 줄이 나 있어야 해.”

그냥 넣었다 당기면 되는 게 아니다. 걸쇠를 넘어 나와야 하기에 어느 정도 힘을 주어 당겨야 했고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면 검지에 훈장처럼 빨간 줄이 생기게 된다. 중의적인 표현이 아닌 진짜 빨간 줄이.

“그럼 남은 건…….”

“그래. 끌게야. 문제는 누가 만들었냐인데…….”

쉽게 설명했으나 만드는 방법은 꽤 까다롭다. 끌게는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었다. 일단 재료부터가 문제다.

부드럽게 잘 휘면서 오락기 내부의 걸쇠를 건드려 코인을 올릴 만한 탄성과 적당한 강성을 지녀야 했다. 물론 가공도 쉬워야 했고.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재료는 다름 아닌 초록색 PVC 대빗자루였다.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있다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싸리나무로 만든 빗자루가 대부분이었다. 초록색 PVC 빗자루는 귀하다 못해 시골 마을에서는 없는 물건인 것처럼 취급당했으니까.

운 좋게 발견한다 해도 그 한 줄을 잘라내는 행위조차 절도에 가까웠다. 오락실에서 공짜로 게임을 하려는 마당에 무슨 대수겠냐만은 의외로 본격적인 절도는 그 허들이 높아 순진한 아이들이 선뜻 도전하기 힘들다.

결국, 무난하게 구하는 방법은 우연히 길바닥에 버려진 빗자루를 발견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빗자루 살 하나는 얇게 갈아내서 코인이 들어갈 두께로 만든 다음 끝을 조금 꺾어 라이터로 지지면 완성이다.

절묘한 굵기와 꺾인 각도를 찾아야 하는 금단의 기술. 누가 이 기술을 사용했단 말인가?

사건은 점점 깊은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하지만 힌트는 모두 나왔다. 범행 시간과 방법, 그리고 동기까지도…….

나는 옷걸이에 걸려 있던 고무줄 총을 꺼내 들었다.

“누군지 알아냈어.”

“누구야?”

“누군데요?”

딱.

“으악!”

팽팽하게 장전된 고무줄이 철진이의 팔뚝을 때렸다.

“잡아.”

* * *

낡고 좁은 방에 티비를 끄고 백열등을 켜자 금방 취조실로 바뀌었다. 상진이와 지환이는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도록 장전된 비비탄 총과 고무줄 총으로 철진이를 겨누고 있었다.

“본격적인 신문에 앞서 변명을 들어보도록 하지.”

“나 정말 아니야! 억울하다고!”

“그런데 왜 철진이 형이에요?”

“나도 궁금하므니다.”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어젯밤에는 내가 있었으니 범행을 저지르기 어려웠을 거야. 그렇다면 오늘 오전 9시부터 13시까지가 진짜 범행 시간이 되겠지.”

“이 중에 제일 먼저 도착한 설란이는 앞서 설명한 대로 끌게를 쓸 필요가 없어. 안 써도 충분히 게임을 오랫동안 할 수 있으니까. 같은 이유로 지환이도 마찬가지야.”

지환이의 게임 실력은 설란이 바로 아래였다. 마찬가지로 용의선상에서 멀어진다.

“사, 상진이는! 상진이도 나랑 같이 왔잖아!”

“여기서 모순을 찾아냈어.”

“모순?”

“진술이 엇갈리는 와중에 철진이 너만은 정확한 순서와 상황을 설명했어. 상진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걸 말이야.”

우리의 기억력은 그다지 좋지 못하다.

무언가 신경 써서 기억하려 들지 않는다면 눈과 귀, 피부로 들어오는 엄청난 정보량을 모두 담아두지 않는다.

그 때문에 머리가 좋은 편인 상진이도 차례를 헷갈렸던 것이다. 그런데 평소 무덤덤하기 이를 데 없는 철진이가 그 순서를 모조리 기억했다. 그것도 상진이를 지적하면서.

“다 기억할 수밖에 없는 거야. 범행을 저지를 타이밍을 계속 노리고 있었으니.”

“난 그 끌겐지 뭔지 만드는 방법도 모른다고!”

“아니, 넌 몰라도 돼. 너랑 같이 다니던 그 임 차장님이 알고 있으니까.”

“아! 전에 고무줄 총도 그랬어요!”

그렇다.

철진이의 최측근인 임 차장님도 소싯적에 골목 좀 누벼봤던 짬이 있는 분이셨다. 그래서 고무줄 총도 무려 5연발을 쏘는 신기술을 전파해 주셨다. 끌게를 만들 기술력은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이 중에 이렇게 빠르게 게임 오버를 당해서 코인을 쓸 만한 실력은 너뿐이야. 그리고 그 괴돌이를 남김없이 전부 먹을 사람도.”

괴돌이가 무려 반 통이 없어졌다. 사람인 이상 이 많은 괴돌이를 혼자 먹긴 힘들다. 철진이를 제외하고는.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아, 아니야! 아니라고!”

“처벌은 고무줄 10대와 -3,000원. 형을 집행해.”

나는 안전 고글을 철진이에게 씌우며 나지막이 말했다.

딱딱딱딱.

“으악!”

그래도 한때 아꼈던 동생이다. 그런 동생의 최후를 차마 지켜볼 수 없었던 나는 아풀러 한 개를 입에 물고 쓸쓸히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문방구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때였다.

‘배고픈데 밥부터 먹고 하면 안 돼?’

문득 철진이의 한마디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배가 고파? 그렇게 괴돌이를 먹고?

범인은 철진이 혼자가 아니었다.

아직 이 중에 공범이 있다. 철진이의 그림자에 숨은 공범이.

용의자 리스트.

조철진(30): 처벌완료

조상진(29)

이지환(29)

박설란(31)

누렁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