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103화 (103/151)

#103. 청년탐정 김민호(3)

추리는 완벽했다. 공범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는.

철진이는 공범을 밝히면 자신의 죄가 가벼워질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실토하지 않았다.

누가 철진이의 입을 이토록 단단하게 막았단 말인가? 어떤 거래가 있었고, 그 거래에서 철진이가 얻을 것은 무엇인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 그런 게임을 곧잘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최종 보스를 힘겹게 쓰러뜨렸더니 갑자기 진짜 보스가 나타나는 흔한 클리셰다.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가 이 무거운 소식을 모두에게 알렸다.

“범인은 철진이 혼자가 아니야…….”

“네?”

“공범이 있단 말이므니까?”

“아니, 나도 범인이 아니라니까!”

“아까 철진 상이랑 같이했던 상진 상 아니므니까?”

“난 아니야! 너야말로 요즘 덥다고 빠빠우 자주 사 먹어서 돈 부족한 거 아냐? 무슨 돈으로 한 거야?”

철진이를 겨누던 총이 서로를 향했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은 금방이라도 쏠듯이 밀착되어 있었다.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다. 의심이란 놈은 한번 들기 시작하면 종이에 스며든 잉크처럼 번져갈 뿐 사라지지 않으니까.

이 사건의 흑막을 빨리 밝혀내지 못하면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세 사람 중 하나다. 머리가 다시 바삐 돌아갔다.

긴장 속에 틀어두었던 비디오가 끝나고 치직거리는 잡음이 날 무렵.

“호야 있능가?”

“네, 할머니!”

“이이. 아침에 보니께 괭이가 나와서 저짝 기계를 다 헤집어놨디야. 밑에 과자뽀시래기가 막 쏟아지는디 복지관 얼라들 또 주워 먹을까배 내가 다 치웠다니께. 괭이 못 나오게 문단속 단댕이 햐.”

“네, 감사합니다…….”

누렁이가 밖으로 나왔다고?

우리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누렁이의 발을 살폈다. 양말을 신은 것처럼 하얀 발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킁킁.”

그리고 진한 괴돌이의 향까지.

“누렁이가 범인이었다고?”

“야옹!”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발 검사를 받게 된 누렁이가 언짢은 표정으로 불만을 표했다.

“아니, 그런데 누렁이가 밖으로 나와서 저 오락기에 손을 넣을 이유가 없잖아요.”

“맞아. 괴돌이를 먹을 것도 아닌데.”

“아!”

나는 번뜩 떠오른 생각에 창고에 넣어두었던 자동급식기를 꺼내 사료를 채웠다.

탁탁.

“예상대로야…….”

누렁이는 급식기에 앞발을 넣고 화려한 스냅으로 사료를 꺼내고 있었다.

한 스냅에 한 알, 내지는 다섯 알의 사료가 나오니 감질나서 그만둘 법도 했지만, 히딩크처럼 늘 배고픈 누렁이에게는 멈출 수 없는 도전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다이어트를 하느라 정량배식으로 밥을 먹던 누렁이가 허기를 참지 못하고 아침에 문을 열고 나와 어슬렁거리다 저 오락기를 발견한 것이다.

자동급식기와 비슷한 구멍을 발견하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안에 쌓여 있는 괴돌이를 파냈다.

무언가 사료와 비슷한 게 떨어지긴 하지만 정작 노렸던 사료가 나오진 않았기에 힘이 다할 때까지 그렇게 괴돌이를 파냈고, 윗집 할머니께서 바닥에 잔뜩 떨어진 잔해를 치우셨다.

내가 9시에 출근을 하면서 밖으로 내놨으니 불과 1시간 만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누렁이는 밖으로 어떻게 나간 거죠?”

“문을 고쳤어. 이대로 뒀다간 철진이가 다 박살 낼 것 같아서.”

문방구 문을 검지로 살짝 밀자 빙판에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열렸다.

스르륵.

고작 손가락 하나로도 밀릴 문이니 누렁이의 앞발로 충분히 열 수 있었다. 요즘 아침에 잠이 부족해 매번 허둥지둥 준비하다 보니 문을 잠그는 걸 잊었던 모양이다.

나는 마지막 확인차 누렁이를 안고 밖으로 나와 오락기 앞에 내려두었다.

탁탁.

누렁이의 스냅에 여지없이 괴돌이가 떨어졌다. 우리는 허망한 표정으로 괴돌이를 뽑고 있는 누렁이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나 왜 맞은 거야?”

철진이의 질문에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공명정대한 사회를 지향하지만, 돈과 지위, 혹은 납득할 수 없는 억울함으로 가득 찬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모두, 각자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자들의 운명일까? 바라보는 곳이 다르니 갈등과 반목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이 삶이다. 세상이 부조리하다 하여 주저앉고 포기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극복하고 때로는 감내해야 한다.

“밥 먹으러 갈까? 국밥 어때?”

“좋아요.”

“좋스므니다.”

“아니, 누가 말 좀 해봐. 나 왜 맞았냐고!”

* * *

야심한 밤.

시계는 벌써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슬슬 나가볼까?

낡은 미니카 트랙이야 밖에 종일 내놔도 별 상관이 없지만 오락기는 달랐다. 아무도 오지 않을 새벽까지 켜 놓고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곳이 아니다.

저녁이 되면 오락기를 끄고 안으로 들여다 놔야 했다.

나도 가끔 밖으로 밤 산책을 가거나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러 갈 때가 있어 좁은 문방구 문을 가릴 오락기를 바로 들여놓지는 못하니, 이렇게 잘 밤이 되어서야 오락기는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곧장 들어오진 못한다.

딸칵.

오락기에 잠겨 있던 자물쇠를 연 나는 게임팩을 바꿔 끼우고는 손을 깊숙이 넣어 더듬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이윽고 손에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찾았다.

나는 검지에 닿은 작은 걸쇠를 가볍게 튕겼다.

틱틱틱틱.

띠링띠링띠링띠링.

손가락을 튕기는 횟수만큼 오락기의 코인이 올라간다.

“자, 시작해 볼까?”

모두가 떠난 야심한 밤에 즐기는 은밀한 취미였다.

처음엔 스틱이 뻑뻑하다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윤활유나 조금 뿌려놓으려 기판을 열었었다. 수리가 끝났으면 당연히 테스트를 해봐야 할 것 아닌가?

그게 시작이었다.

나는 이 오락기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오락기가 제대로 동작하는지 점검하는 의무에 충실하기로 했다.

겸사겸사 설란이를 꺾을 실력을 쌓고 말이다.

“그래. 이건 테스트야. 조금 철저한 테스트.”

그렇게 내 작은 구슬은 조금씩 검은 화면을 지워갔다.

「100%!」

구슬을 바쁘게 움직인 보람을 느낄 순간이다.

완벽하게 보스를 가둬두고 화면을 밝힌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이 순간을 음미했다. 100%를 달성해야지만 볼 수 있는 히든 영상은 새벽잠을 포기할 값어치가 충분했다.

진실은 늘 밝혀지지 않는다.

때로는 저 너머에 숨어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나는 범인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건 테스트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에게도, 철진이에게도 좋을 것이다.

용의자 리스트.

조철진(30): 처벌 완료

조상진(29)

이지환(29)

박설란(31)

누렁이(?): 처벌 불가

* * *

늦은 밤, 구슬을 움직이는 사람은 민호 혼자만이 아니었다.

딱.

골프공이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른다.

“나이스 샷.”

“나이스 샷은 무슨, 어두워서 공도 잘 안 보이는구먼. 웬일로 라운딩비를 낸다길래 신나게 따라왔더니.”

“만다꼬 햇빛 따갑구로 낮에 치노? 이래 밤에 나오면 시원하이 을매나 좋노? 앞뒤로 밀고 땡기는 사람도 읍꼬.”

“좋기는.”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그 말이 나온 입의 주인이 문제였다. 분명 가장 저렴한 시간대로 예약을 잡아놨으리라 짐작했다. 주말도 아닌 평일 늦은 새벽에 골프를 친 다음 날, 피곤한 모습을 하고 있어도 눈치를 보지 않을 사람은 드물 테니.

“참, 내 MM 지분 좀 잘라가 넘기뿟다.”

“대들보한테 줬다고?”

“어.”

골프티를 대충 후벼 꽃은 조동욱 회장은 이리저리 발 위치를 바꿔가며 무심한 듯이 대답했다.

“왜?”

“뭐 이유가 필요하나? 고마 재미없을 것 같아가 싸게 넘개뿌찌. 흡!”

딱.

후련한 마음을 담아서일까? 조동욱 회장의 공이 경쾌한 타격음을 내며 날아간다.

분명 정진수 회장이 칠 때보다 훨씬 멀리 날아간 코스였으나 이번에는 나이스샷 대신 질문이 돌아왔다.

“영문을 모르겠군. 아무리 휴지 조각 같은 지분이라지만 대들보가 완구 사업을 해서 매출이 오르면 꽤 벌 텐데?”

“글마 그거 헛똑똑이다! 가마 놔두모 지 꺼 다 내주뿌고 도인처럼 살 끼라.”

“또 앞뒤 다 잘라먹고 이야기한다. 그 버릇 좀 고치라니까. 박 상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어.”

골프 카트를 몰기 위해 운전석에 오르려던 박 상무가 정진수 회장의 말에 빙그레 웃었다. 부인하지 않음은 곧 긍정이었다.

“크흠. 글마가 회삿돈이 부족담서 지 모은 돈을 들고왔다 카이! 자선사업가가 따로 없는기라! 내사마 그런 아가 운영하는 회사에 발 크게 담고 싶은 생각 읍다.”

“얼마나 줬는데?”

“24%. 인자 거의 마무리됐을 끼라.”

‘조 회장이 지분을 넘겼다고? 24%나?’

젊은 구단주의 수완은 이미 검증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작 미니카 대회다. 잘못하다간 그냥 지역신문의 저 뒷장에나 날 법한 가십거리로 끝나버릴 이벤트에 재계 서열 1, 2위에 있는 두 그룹의 총수를 관객이자 광고판으로 앉혀놓는 배짱과, 진짜 우승까지 해버리는 실력은 자신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라운 수완이었다.

그뿐이랴? 같이 붙어 다니는 삼정그룹의 후계자들 또한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성과를 내고 있었다.

MM 프로팀의 가치는 제로에 가깝다.

명목상 삼정그룹과 대현그룹이 지분을 들고 있다지만 기껏해야 공장을 리모델링한 건물이 전부. 가치를 매기자면 순 자산은 일개 중소기업보다 못한 수준이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수완 좋은 구단주가 추진하는 사업은 곧 궤도에 오를 터. 그저 달라는 돈만 꼬박꼬박 보내면 광고 효과는 물론, 꽤 괜찮은 수익이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돈은 돈대로 내고 지분을 양도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십 원 한 장 쓰기 싫어하는 조동욱 회장이 말이다.

‘광고 효과만 보고 먼저 발을 빼겠다는 건가? 아니면 인제 와서 구단주의 능력을 의심하는 건가?’

도무지 그 속뜻을 알 수 없어 답답해하던 찰나에 조동욱 회장이 씩 웃으며 정답을 말했다.

“인자 니가 대주주제? 알아서 잘 챙기라.”

“뭘? 아!”

‘당했다!’

표면적으로는 지분 50%를 들고 있는 대현 그룹이 지주회사가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돈이 오가는 사업이 시작되면 복잡한 재무 흐름과 세금, 그리고 제조, 유통에 관련된 지원까지 해야 한다.

그렇다고 MM 프로팀이 수중에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삼정그룹과 구단주의 지분을 합하면 정확하게 50%가 되니까 말이다. 귀찮은 일은 도맡아 하고 행여나 입김을 좀 불려 하면 득달같이 막아낼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 2대주주는 삼정그룹이다. 단 1%의 차이로.

지분 차이가 훨씬 많이 남에도 감 놔라 배 놔라 할 힘은 충분했다.

“끌끌끌. 공 안 치고 뭐 하노? 비싼 골프 치는데 언능 치그라.”

“에라이!”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던 정진수 회장이다. 하지만 고작 몇십만 원이나 할까 싶은 이 라운딩에 골치 아픈 짐을 떠안았다 생각하니 울화통이 터져 나왔다.

잠도 못 자고 끌려 나와 비싼 골프를 치게 된 정진수 회장은 분풀이 삼아 힘껏 스윙을 갈겼다.

“악!”

“뭐, 뭐꼬! 와 이라노? 여여, 119 불러라! 빨리!”

갑자기 허리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정진수 회장의 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공짜 점심은 없다. 특히 한국 제일의 수전노에게 얻어먹을 공짜 점심은 더욱이 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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