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118화 (118/151)

#118. 자승자박(3)

“여기가 최근에 나온 땅인데 요 앞에 우체국, 그리고 저 바로 뒤에 농꾼마트. 아주 입지가 좋습니다.”

바로 뒤라고 말한 농꾼마트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정인성 부회장과 정현석 이사는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좋은 땅과 건물이라고 보여주는 것들이 다 왜 이래?’

특히 부동산에 문외한인 정인성 부회장의 안목으로 보더라도 소개해 주는 매물들은 무엇 하나 정상적인 것들이 없었다. 게다가 원래 목표했던 폐교 근처와는 지도상으로도 전혀 가깝지 않았다.

“거, 자꾸 둘러가지 말고 우리는 따로 볼 땅이 있으니까 거기로 갑시다.”

“어디 말씀이신지……?”

‘이 땅도 아니다. 저 땅도 아니다. 뭘 속 시원히 말을 해줘야 알지!’

정작 운전하며 안내를 해주는 부동산 중개업자는 속이 답답해 욕지거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분명 그냥 구경이나 한번 하자고 여기까지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무리 경우 없는 사람이 많기로서니 꼭두새벽부터 사람을 깨워 불렀으면 응당 그만한 자격(?)이 되는 손님이란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장에 땅을 살 것처럼 엉덩이가 들썩들썩해 여기까지 데려왔더니 정작 볼 땅이 있단다.

넘겨짚기가 계속 실패하자 중개업자는 결국 백기를 들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어느 땅인지 물었다.

“거, 다 알고 왔다니까 그러네. 그 폐교 앞쪽 매물로 보여줘.”

참다못한 정인성 부회장은 담배를 물고 반말을 찍 내뱉었다.

“아! 저 윗동네 말씀이시죠? 참, 진짜 알고 오셨네. 내 아끼려고 그냥 넘겼더니. 허허. 그럼 그쪽으로 바로 가겠습니다.”

‘윗마을 폐교? 하, 이놈들 무슨 소리를 듣고 왔는지 이제야 알겠네. 이놈들아, 그 땅은 삼정그룹도 포기한 땅인데 너희라고 별수 있을까 싶더냐?’

물론 타지 사람치고는 조금 빠른 소문이었다.

삼정그룹이 기념관을 짓겠다 한 지가 벌써 몇 년 전이던가?

주차장을 크게 낼 자리에 문방구가 자리 잡고 있어 그 땅으로 실랑이를 한참 하다가 주인이 죽는 바람에 이제 진짜 팔리나 하고 말이 나왔었다.

물론 팔리는 땅은 그 낡은 문방구가 끝이다.

대대적인 규모로 매입을 진행했었지만,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아무리 나고 자란 땅이라지만 비싸게 쳐줄 테니 내놓으라 한다면 누구라도 혹할 만한 제안일 터였다.

그러나 당산마을은 조금 달랐다.

“자, 도착했습니다. 저쪽이 폐교. 그 앞이 당산마을입니다.”

“오호.”

“마을은 몇 가구나 있습니까?”

“남아 있는 사람은 20명 정도고 나머지 서른 채는 빈집입니다. 다 노인들이라 이제 하나둘 요양원에 들어가면 관리도 안 되고 그냥 전기, 수도, 가스 잠그고 빈집으로 놔둡니다.”

“우리 말고 여길 보러 온 사람들이 많습니까?”

두 사람은 잠시 눈에 이채가 서렸으나 이내 기색을 감추고 다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손님들께만 말씀드리는데 은밀하게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퍼지진 않았습니다만 매물도 다 손에 쥐고 내놓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놔두면 오르는 땅이니.”

세 사람의 대화에 진실은 단 하나도 있지 않았다.

매물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시골 폐가.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놔두면 오르긴 뭐가 오른단 말인가?

단지 덤터기를 씌워 팔 생각인 부동산 중개업자의 듣기 좋은 거짓말과 그 거짓말에 제대로 홀려버린 두 호구가 제멋대로 읖어대는 말들이 오갈 뿐이었다.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 드리죠.”

“아이고, 천천히 생각하고 연락 주세요. 참. 그때 남아 있는 매물이 있는지는 모르니까. 서두르셔야 하나? 허허.”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이미 알음알음 현지인들에게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더 이상 이 촌구석에 소똥 냄새를 맡으며 서 있을 필요가 없었다.

두 형제는 다시 부동산으로 돌아와 근방에 있던 오래된 다방에 들어갔다. 평소라면 거들떠도 안 볼 곳이지만 마땅히 이야기할 만한 카페를 찾지 못했던 까닭이다.

“커피 나왔습니다.”

과하게 뽀글거리는 머리에 화장이 진한 중년의 여사장님이 과한 콧소리를 내며 냉커피 두 잔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어때?”

“뭐가?”

“저 매물들.”

“거짓말인지는 모르지. 땅장사는 반이 구라고 반이 헛소문이거든.”

미묘하게 에어컨이 약한 탓에 냉커피를 벌컥벌컥 들이킨 정현석 이사는 확답을 피했다.

“이 새끼, 이제 와서 그냥 정보만 듣고 빠지겠다고?”

“아니, 진짜라니까. 그리고 애초에 매물을 구하더라도 내가 반 넘기기로 이미 사인까지 했잖아. 형이 부동산 업자 같으면 그런 알짜 정보를 듣고 그냥 그 땅을 소개해 주겠어? 죄다 틀어쥐고 지가 묵혀두지.”

“…….”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자신도 혼자 안고 답이 나오지 않아 동생을 끌어들였다. 만약 여분의 돈과 답이 명확히 보이는 상황이었다면 결코 정보를 나누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호텔을 짓는 건 확실한 것 같아. 자리가 좋아.”

“그래. 마을을 밀고 나면 뒤쪽에 골프장까지 널널하게 나오겠더군. 똑똑한 놈들이야.”

분하지만 이미 적지 않은 땅들이 삼정그룹의 후계자들에게 넘어간 상황이리라.

“그런데 이젠 어떻게 할 거야?”

“노인네가 호텔에 깊게 관여되어 있다면 우리는 오히려 쉽게 풀리지. 그냥 그 집들을 사고 안 놓으면 돼.”

지금 아버지가 꾸미는 일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방해를 하고 다음 행보를 지켜보면 된다.

‘인정하긴 싫지만,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힌단 말이야.’

정현석 이사의 대답에 하마터면 무릎을 탁 하고 칠뻔했다.

일찍이 후계구도에서 밀리고 자금을 모아 부동산업에 뛰어든 녀석이다. 당장에 뒷주머니에 얼마나 많은 돈을 챙겨놨는지 짐작조차 되질 않았다. 그 수완은 전부 저 비상한 머리에서 나왔음이 분명했다.

“그럼 내가 매물을 전부 사고 반을 나눌게. 돈은 천천히 갚아.”

거래 조건이 그러했다.

정보를 풀고 돈을 빌리는 대가로 원래 모두 자신이 샀어야 할 매물의 절반을 고스란히 동생의 몫으로 넘겨야 했다. 뒷맛이 씁쓸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 * *

“네? 전부요?”

“이이! 여 강씨네 집부터 저짝 김씨 집까지 싹 산다니께 나한티 연락처를 다 받아갔제.”

기분 좋게 테스트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이장님께 들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저 버려진 폐가를 전부 산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 복덕방 하는 아가 아무한티도 말하지 말라고 아주 신신당부를 하는 거여. 나가 이 이장 된 책무로다가 마을의 빈집들도 다 관리를 하고 있었기에망정이지 안 그랬으믄 저 아까운 집들 다 못 넘길 뻔했다는 거 아녀.”

하필 비밀이랍시고 당부를 한 게 우리 마을에서 가장 입이 가벼운 이장님이라니. 그 복덕방 사람도 참 불쌍하게 되었다. 이제 지나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붙잡고 또 얼마나 자랑을 하실지 굳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훤히 그려졌다.

그나저나 빈집들이 팔린다는 소식은 우리 마을에 좋은 소식이다.

“그른디 그 집들을 사서 다 이사를 올라는 모양인가베. 흐미. 사람이 또 늘겠구먼.”

“직접 이사 오려고 사는 건 아닐 겁니다. 뭐 로컬스테이 같은 것 아닐까요?”

“로카 뭐시기?”

“아, 시골에 놀러 오는 관광객들이 자는 곳이요.”

“이이. 뭐 여인숙 같은 걸 할라는가 보구먼.”

한참이나 다른 이야기를 하고 계셨으나 차마 그런 이장님께 로컬스테이를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어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이 길어지기 전에 얼른 문방구로 돌아왔다.

“형, 늦었네?”

“마누라냐?”

문을 열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인사를 건넨 사람은 달고나를 만들기 위해 국자를 들고 있던 철진이였다.

내 집에서 외간 남자가 앞치마를 입고 국자를 든 채 나를 반기는 장면은 썩 유쾌하지 못했다. 이놈들 전기세라도 받아야 하나?

“두 사람은? 아, 상진이는 출장이라고 했지?”

“엉. 지환이는 오늘 바쁘대.”

“넌 왜 안 바쁜데?”

“난 올해 실적 다 채웠다니까.”

“야, 그럼 하나뿐인 동생 도와주러 가야지. 건설 쪽은 원래 네가 했던 일이라며.”

“…….”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자 철진이는 달고나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척했다. 그 모습에 짜증이 비죽 솟아 뭐라 더 말을 하려는 찰나 밖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호야 있는가?”

“네! 할머니!”

“안녕하세요!”

“이이. 철진이도 있었구먼. 요새 통 안 보이니께 뭐 하능가 싶어서. 자, 여 밭에서 방금 딴 거니께 빨리 냉장고에 넣드라고.”

“잘 먹겠습니다.”

할머니께서 주신 봉투에는 어른 팔뚝만 한 오이가 한 가득 들어 있었다.

날씨가 더웠다.

전에는 종종 오락기 앞에 앉아 있다가 윗집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는데 요즘엔 무더위에 통 밖에 나와 있지 않으니 할머니께서도 내 안부가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뭔데? 고구마야?”

“오이야. 이거 냉장고에 넣어놓고 안에 있는 빅카스 좀 꺼내와. 초록색 뚜껑으로.”

어르신께 드리는 음료수는 카페인이 빠진 빅카스가 단연 최고다.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분들이라 카페인이 없는 달달한 음료는 어르신들도 곧잘 드시곤 했다. 물론 직접 돈을 주고 사실 일은 없기에 아마 내가 드리는 것 말고는 드실 기회가 많이 없겠지만.

까드득.

철진이의 우악스러운 손으로 뚜껑이 뜯길 듯이 따인 빅카스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으로 전해졌다.

할머니께서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썩 마음에 드셨는지 빅카스병을 들고 문방구 이곳저곳을 둘러보셨다.

“요즘도 마을회관에서 화투 치세요?”

“이? 아녀. 요새 옥자도 통 재미없다 그래서 그냥 테레비만 본당께.”

할머니의 유독 처진 어깨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밭일이 끝나면 곧장 마을회관에서 해가 질 때까지 나오지 않으셨을 텐데 이렇게 빨리 돌아오시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지겨우실 만했다. 아니, 세 녀석이었다면 한 달도 못 가 흥미를 잃고 어디 서랍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을 터였다. 그런 화투를 수십 년 동안 치셨으니…….

“참. 이거 가져가시겠어요? 화투랑 비슷한 건데 재미있어요.”

“화투랑 비슷하다고라?”

나는 마침 눈에 보이던 작은 봉투들을 몇 개 집어 할머니께 드렸다.

“안에 뜯어보시면 카드가 있어요. 요즘 애들도 이거 많이 하더라고요.”

내가 드린 건 우희왕이라는 카드 뭉치였다.

화투에 비견될 만한 박진감 넘치는 재미와 직관적인 룰. 어르신들이 하시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액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고.

“안으로 들어오세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나중에 손자분들과 해도 재미있을 거예요.”

“하이고. 나가 번거롭게 할까 봐 그라제.”

그렇게 나는 봉지를 한참 조물거리시는 할머니를 모시고 방으로 들어왔다. 손자와 함께할 수 있다는 말에 예의상 하시려던 거절도 손사래 한 번으로 그치셨다.

노인들이 새로운 걸 싫어한다는 말은 그저 편하게 해석한 섣부른 판단이다. 그네들도 나물 반찬 대신 파스타를 가끔 드시고 싶어하신다. 늘 효도 삼아 모시고 가던 어느 절보다 놀이공원의 화려함도 좋아하신다.

나이가 든 것은 몸이지 마음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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