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122화 (122/151)

#122. 황혼의 듀얼리스트(4)

장사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아니, 끝낼 수 있었다.

쉴 새 없이 밀려오는 손님들을 쳐내느라 얼마나 바빴는지 저녁도 먹지 못했다.

“형, 이제 끝났어요?”

“어. 마을회관도 10시면 닫으니까. 후. 장사하기 힘드네.”

나는 방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두 발을 문방구에 내놓고 벌렁 드러누웠다.

“오늘 그럼 돈 대박 많이 번 거 아니야?”

“한 50만 원어치 팔았을 거야.”

대략적인 금액이지만 오차율은 거의 없었다. 손님들 대부분은 우희왕 카드만 사갔고 그 외에는 무더운 날씨 덕분에 아이스크림이나 몇 개 팔려나간 게 전부니까.

“그럼 순익은 얼마예요?”

“한, 20만 원?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네. 발주서 봐야 해,”

“거짓말! 그렇게 많이 팔았는데 그거밖에 못 벌었스므니까?”

“이 자식아, 서민들은 다 이렇게 힘들게 벌어!”

적은 돈이 아니다.

직장인 커뮤니티와 어느 뉴스를 봐도 연봉 1억에 월 400~500씩 척척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평균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연봉을 받는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10명 중 한 명. 10%가 겨우 넘는다.

나머지 사람들은 말 그대로 쥐꼬리만 한 월급에 그마저도 포괄임금으로 야근수당과 주말출근 수당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한다.

나나 그들에게 하루를 일해서 번 20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물론 연봉을 물어봤자 나만 배가 아플 것 같아 그냥 많이 벌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막상 ‘그거밖에’라는 말을 들으니 조금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내일도 이렇게 팔아야 하지 않아요?”

“그러게. 뭐 못 할 건 아닌데 말이야…….”

나는 선뜻 그냥 하면 되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힘든 건 둘째치고 직장에서도 반나절 만에 도망 나오는 주제에 본업도 아닌 부업에 이렇게 열을 올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냥 안 팔면 안 돼?”

“야, 그래도 명색이 문방구인데 우희왕 카드를 안 파는 게 말이 되냐?”

우희왕 카드는 문방구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기념비적인 물건이다. 우희왕을 끝으로 아이들은 더 이상 문방구에서 장난감을 사지 않았다. 대형 쇼핑센터나 온라인 마켓에서 손쉽게 구매해 집 앞까지 배달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허름한 학교 앞 문방구에서 몇 종류 없는 장난감들을 비싼 가격에 구매할 이유는 오직 그 시절의 감성뿐이다. 그 감성마저 포기한다면 할아버지의 문방구를 지킬 이유가 없다.

“직원을 뽑는 건 어때요?”

“언제까지 팔릴지도 모르는데 직원은 무슨…….”

아니다.

상진이의 제안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혼자서 하지 못할 일이라면 둘이서 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이 일에 아주 적성이 맞는 사람을 한 분 알고 있다.

* * *

“카드 사러 온겨?”

“아, 네.”

“이이. 우희왕 카드는 여짝 마을회관에서 팔고 있응께 여서 사드라고.”

“5개 주세요.”

“어디 보자. 2500원!”

“감사합니다.”

“근디 듀얼은 좀 해봤는가?”

“네?”

“아니, 나가말여. 인자 이장된 책무로다가 마을의 부흥을 위해 여서 이렇게 총괄 관리를 하고 있는디 그 듀얼이라는 게 말여,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더라 이 말이여. 화투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고서리 이 내 손에 든 카드가 안 좋으믄 말짱 꽝이제. 근디 5장 가지고 그 좋은 카드가 들어 있을까 싶은디. 난중에 또 살라믄 흐름도 끊기고 더운디 또 나와야 하니께 여간…….”

“그, 그럼 5개 더 주세요.”

“이이, 그려! 이 잔돈도 딱 맞게 계산도 되고 얼매나 좋은 겨. 쓰레기는 여짝에 버리고 들어가서 빈자리에서 치면 되야.”

내 앞에 선 손님은 이장님의 영원할 것만 같은 대화의 끝을 결국 돈으로 사버렸다.

“이장님, 할 만하세요?”

“호야 왔는가? 아, 그럼! 이 사람들이 말여. 요사시런 카드를 산다 하니께 나가 처음에는 못마땅했는데 말여. 천성이 순박한 사람들인 겨. 젊은 청년들이 예의도 바르고 말여.”

커다란 그늘막과 단출한 부스, 그리고 업소용 냉풍기까지.

이장님이 앉아계신 마을회관 앞은 제법 장사가 잘되는 노점이 차려져 있었다.

내가 힘겨운 노동에 못 이겨 고안한 묘수는 바로 직원으로 고용한 이장님이었다.

이장님의 형편은 그리 좋지 못하셨다. 마을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시는 것도 모자라 큰일이 있을 때마다 주머니를 털어 해결하셨기에 그렇다.

20가구가 겨우 넘는 외진 시골 마을.

사는 사람은 적어도 필요한 것은 어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오래된 수도는 자주 터져나갔고 세월을 견디지 못한 도로 역시 여기저기 이가 나가 차가 들어오기 힘들어지면 응당 조치를 받아야 했으나 지원은 초라했다.

마을 사람들이 따로 돈을 모아 이런 일에 쓰라 했지만, 이장님의 고집은 아무도 꺾지 못했다.

그냥 철물점에서 내 공구 사는 김에, 내가 다 할 줄 아는데 굳이 사람을 부를 필요가 있나? 라는 말로 얼버무리고는 시멘트 포대를 사와 손수 도로를 메우셨고 터진 수도도 직접 교체하셨다.

파종기와 수확기에 쓰일 농기계들도 모두 이장님이 도맡아 관리하신다.

시골의 벌이가 어디 그리 풍족하던가? 기껏해야 한해 농사가 전부다. 그마저도 시세가 좋지 않으면 애써 키운 농작물을 갈아엎어야 했다.

우희왕 카드 판매는 이런 이장님께 드리는 내 작은 선물이다.

서류상으로는 4대 보험이 들어가는 직원이나 실상은 총판매액에서 수익금을 전부 이장님께 드린다. 어차피 이장님께서는 그렇게 번 돈을 또 마을을 위해 쓰시겠지만.

물건은 어차피 때가 되면 회장님이 창고에 채워주셨고 판매 부스와 냉풍기는 철진이 사무실에서 남는 행사용을 비품을 빌린 것이다.

내 돈은 거의 들어가지 않고 앓던 이도 뺀 격이다.

수익이 줄어든 건 아쉽지만 애초에 큰돈을 벌자고 열었던 문방구가 아니니 욕심은 생기지 않았다.

유행이다.

흥미는 관심이 되고 그 관심은 결국 유한하다.

나는 이 일에 더 이상 마음을 두지 않기로 했다. 몇 달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한 마을로 돌아갈 것이 분명했기에.

“그럼 저는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이이.”

무더운 여름날의 더위로 혹시나 이장님께서 무리는 하지 않을까 걱정해서 나와봤지만 삼정그룹에서 쓰던 냉풍기의 성능은 실로 막강했다. 근처에서 이야기만 잠깐 했을 뿐인데 서늘한 바람에 닭살이 돋을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걱정을 한시름 덜어낸 가벼운 기분으로 문방구에 돌아온 나는 모처럼의 여유를 즐길 생각에 콧노래까지 절로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그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형, 우리는?”

“뭐?”

“아니. 이제 우리도 살 수 있잖아.”

“가서 사면 되잖아.”

“싫스무니다!”

“손님 많을 때 가면 그렇게 길게 말씀 안 하실 거야.”

“방금 못 봤스무니까? 아까 저 손님 아직도 마을회관에 못 들어가고 잡혀 있으므니다! 민호 상이 갔을 때부터 있던 손님이므니다!”

창문으로 슬쩍 바라보니 정말 아까 내 앞에 서 있던 손님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이장님의 토크 트리거를 또 건든 모양이다.

“알았어. 기다려봐, 창고에서 꺼내줄게.”

단골들의 주문에 원칙을 적용할 순 없지. 덕분에 나는 에어컨 바람을 얼마 쐬지도 못하고 다시 창고로 행을 당했다.

끼이이익.

경첩이 거의 마모되어 제 기능을 상실한 문이 끌리다시피 열렸다.

“어디 보자~ 카드가~ 어디 있으려나~ 아.”

무심결에 부르던 정체불명의 노래가 창고에 메아리치는 걸 들은 나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아저씨의 특징 중에 물건을 찾을 때 노래를 부른다는 내용이 떠오른 탓이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차곡차곡 아저씨 인증마크를 쌓아가는 처지라니.

그렇게 조금 침울한 기분으로 상자들을 뒤적여 우희왕 카드가 들어간 상자 몇 개를 찾아 문방구로 가져왔다.

“40장에서 50장이니까 중복 카드까지 생각하면 한 15봉지는 사야 하네?”

“그렇스므니다. 또 원하는 세팅을 하려면 더 필요할 수도 있으므니다.”

의외로 제법 큰돈이 들어간다.

그동안 카드를 못 사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기에 총알은 충분했다. 하지만 막상 이 돈을 주고 카드를 전부 사려니 선뜻 손이 안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건 또 변하질 않네.”

“뭐가?”

“어릴 때 막상 별로 안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애들이 하자고 조르면 해야 했거든.”

저마다 성격도 나이도 다른 아이들이다. 게다가 아이들의 변덕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그런 아이들이 한데 모여 같은 놀이를 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구는 술래잡기가, 누구는 총싸움이, 또 누구는 딱지치기가 하고 싶었다. 타협하지 않는다면 이 주제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렇게 배려를 배운다.

철이 일찍 든 아이는 하기 싫은 놀이에 내색하지 않는 법과 그런 친구에게 감사함을 표하는 법을 깨우친다.

나이가 들어도 골목대장인 내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형과 같이 해줬으면 하는 놀이에 응해야 한다.

찍.

나는 첫 번째 봉투를 찢었다.

봉투 하나에 든 카드는 5장.

“어?”

심상치 않은 카드가 나왔다. 언뜻 보면 일반 카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보면 확연한 차이가 드러났다.

이름이 금색으로 칠해져 있고 칙칙한 칼라 대신 일러스트에 따로 코팅되어 있어 무지갯빛으로 광택이 났다.

“뭔데 그래요?”

“울트라레어 카드야…….”

울트라레어.

우희왕 카드뿐만 아니라 이렇게 렌덤하게 동봉된 카드들은 모두 일정한 비율로 희귀한 카드가 존재한다.

속칭 레어카드라 불리는 이 희귀한 카드는 일반 카드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훨씬 고급스러운 퀄러티로 제작되었다.

당연히 구하기 어렵고 아무리 많은 봉투를 뜯어도 원하는 카드가 레어로 나올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그리고 그 위에 한 단계 더 높은 카드가 바로 울트라레어 카드다.

“울트라레어는 일판으로 백만 원도 넘스므니다!”

“그 정도야?”

콜렉터의 수집욕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카드 한 장에 백만 원이라니! 하지만 놀라기는 아직 일렀다.

“민호 상…….”

“왜?”

“이거 붉은 눈의 백룡이므니다…….”

“그래. 그게 왜?”

“바가, 민호 상! 이건 돈 주고도 못 구하는 카드란 말이므니다! 나도 어릴 때 2장밖에 못 구했스므니다!”

지환이의 호들갑을 보니 비로소 정말 귀한 카드라는 게 실감이 났다.

“야, 그런데 이거 똑같은 거 3개가 나왔는데?”

15개의 봉투 속에서 나온 카드 중 붉은 눈의 백룡이 무려 3장이다. 그것도 울트라레어로.

하지만 딱히 기쁘진 않았다. 원래 우희왕에 그리 취미가 있던 것도 아니고 만화는커녕 윗집 할머니께 알려드리려고 너튜브 영상을 몇 번 본 게 끝이다. 게다가 좋은 카드가 나왔다고 해서 뛸 듯이 기뻐할 나이는 한참이나 지났다.

“울트라레어는 처음 봐.”

“이거 한 박스를 다 뜯어도 한 개가 나올까 말까이므니다.”

“그냥 레어카드랑 확실히 다르네요.”

내 카드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세 녀석을 보자니 혼자 좋은 카드를 뽑은 게 괜히 미안해졌다. 그러나 할 일은 해야 한다.

나는 장롱에서 꽃무늬 이불을 꺼내 망토처럼 질끈 묶었다.

팍.

왼손을 펼치자 망토가 펄럭인다.

“머리를 조아려라! 울트라레어 카드도 없는 천박한 듀얼리스트들 같으니!”

뽑기에 성공해서 실패한 사람들을 놀리는 건 승자의 권한이자 의무. 빼먹을 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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