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방방(2)
방방.
당시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고급스러운 스포츠였다. 놀이터의 놀이기구는 당연히 무료였고 그 놀이기구조차 아이들보다 턱없이 부족해 순서를 기다려 가며 타기 일쑤였다.
놀이터의 정글짐 따위도 예약제가 되는 마당에 돈까지 내라니?
그러나 아이들은 기꺼이 코 묻은 돈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방방장은 그런 곳이다.
그리고 이런 방방장에서 소위 말하는 프로가 되기 위해선 3가지가 필요했다.
앞 돌기, 뒤돌기, 그리고 방방대결.
앞 돌기와 뒤 돌기는 노력의 영역이다.
구석에서 혼자 연습하다 보면 어지간히 둔한 아이가 아니고서는 곧잘 성공하는 일종의 라이센스다.
‘너 뒤 돌기 할 줄 알아? ’라고 물었을 때 당당히 그렇다고 대답하는 고수가 되기 위한 수련은 그리 힘든 노력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방방대결은 다른 영역이다.
프로들의 경기.
이 경기에 어설프게 끼였다간 일어서지도 못하고 바닥을 꼴사납게 뒹구는 굴욕을 당한 채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고 만다.
“룰은 간단해. 몸이 안 닿고 상대방을 쓰러뜨리면 되는 거야.”
“알겠어.”
“바로 이해했스므니다!”
“시작!”
띠용. 띠용.
우리 4명은 각 모서리에서 천천히 점프를 하며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3:1이라는 불리한 조건이지만 그간의 무수한 승부로 내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나부터 간다!”
선공 필승.
나는 우선 가장 가까이 있는 상진이를 공략했다.
쑤욱.
“윽.”
“상진아 조심해!”
내가 상진이의 곁으로 빠르게 다가와 크게 뛰어오르자, 상진이는 비틀거리며 겨우겨우 내 곁에서 벗어났다.
“방방은 신사의 스포츠가 아니야. 몸만 안 닿으면 된다고.”
방방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패기다.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을 풍기는 것과 반대로 언제라도 내가 디딜 땅을 움푹 꺼트릴 준비가 되어있다는 패기. 특히 지금처럼 1:3의 불리한 싸움에서는 그 패기가 더욱이 필요한 순간이다.
방금의 공격으로 세 녀석은 기세를 잃었다.
옹기종기 모여 기회를 엿보는 듯했지만, 눈에는 이미 두려움이 가득했다.
“난 알 것 같아. 타이밍이야.”
“타이밍?”
“우리가 착지할 때 바닥에 탄성이 달라지면 넘어지는 거야.”
“그렇스므니다. 몸이 예상보다 덜 뛰므니다.”
“그런데 무슨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는 거야?”
“우리가 착지할 때 공격하는 사람은 바닥을 엇박자로 눌러 놔야 해.”
“아!”
정답이다.
방금의 공격으로 상진이는 이 방방대결의 원리를 간파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과한 탄성으로 몸이 뜨는 이 방방도 결국 몇 번 뛰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자신을 패배자로 만들 수 있는 족쇄가 되어버린다.
무의식중에 같은 자세로 뛰기 위한 무릎의 각도와 근육, 자세를 맞추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땅이 꺼지면서 예상했던 반동이 나오지 않는다면?
대비를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어찌 되었든 가만히 서 있으면 몸이 뜨지 않으니 착지하는 순간에 최대한 반동을 일으키는 동작을 취해야 하고 그 동작은 쓰러지지 않으려 몸을 안정화하는 자세와 큰 괴리감이 있으니까.
“그러면 내가 먼저 가보겠스므니다!”
“오호.”
지환가 답지 않게 가장 먼저 선봉에 나섰다.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이제 막 방방에 익숙해진 녀석들이다. 머리가 똑똑했기에 방방대결이 어떻게 승부가 나는지 간파했을 수는 있으나 실전경험은 전무 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흐압!”
지환이는 힘껏 뛰어올라 무릎을 가슴에 닿을 정도로 당겼다. 그리고 지면에 닿기 직전 당겼던 다리를 빠르게 펼쳤다.
괜찮은 전략이다. 어차피 탄성과 높게 뛸 수 있는 한계치가 정해져 있다면 근력을 동반해 속력을 올리면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
하지만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른다.
“시도는 좋았어.”
나는 다리에 힘을 풀고 지환이의 발이 지면 깊숙하게 가라앉길 기다렸다.
그리고 날아올랐다.
“으악!”
지환이는 높게 날아오르는 나와 상반되는 최후를 맞이했다. 자신의 힘을 주최하지 못해 그대로 주저앉은 것이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나도 모르겠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모두 영문을 모르는 듯했다.
“모르면 당해야지!”
나는 높게 뛰어오른 힘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전에 철진이와 상진이가 있는 곳으로 단번에 쏘아 들어갔다.
“피해!”
“헉헉. 어떻게 된 거야! 왜 넘어진 건데!”
“나도 모르겠스므니다. 그냥 갑자기 땅이 딱딱하게 굳었으므니다.”
“땅이 굳었다고? 그게 무슨....”
내 공격을 겨우 피한 두 사람이 넘어져 방방 밖으로 나간 지환이에게 다급히 물었지만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뒤가 없는 공격이라 그래. 나한테 힘을 다 넘겨주고 자긴 못 뛰어오른 거지.”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다.
내려간 힘이 있다면 당연히 그 힘만큼 튀어 올라와야 한다. 내려찍은 사람은 지환이였지만, 그 힘을 이용해 튀어 올라온 사람이 나였을 뿐이다.
다리를 뻗는 공격에 온 힘을 쏟은 지환이는 그렇게 에너지를 잃고 자세가 흐트러진 것이다.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규칙을 벗어난 공격이기에 당연한 결과다. 자신이 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공격에 정신이 팔린 아이들이 종종 당하는 수법이었다.
“형! 크게 뛰어봐!”
“왜? 갑자기?”
“빨리!”
상진이의 다그침에 철진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일단 크게 뛰기 시작했다.
“이얏!”
철진이의 육중한 힘을 더한 상진이가 크게 날아올랐다. 천장의 닿을 듯한 높이. 분명 저대로 떨어지면 나조차 몸을 가누기 어려울 공격이다. 내가 지환이의 공격을 역이용한
한번 봤을 뿐인데 이렇게 완벽하게 카피하다니.
“천무...지체?”
천무지체(天武肢體).
음과 양, 그리고 온갖 기운이 가득한 신체로 모든 무공을 배울 수 있으며 무공의 형을 기억해서 따라 할 수 있는 전설의 신체. 실로 놀라운 자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근골은 뭇 여인들이 보기엔 군더더기 없이 슬림한 몸이나 무공을 익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필시 단전에 들어찬 내공 또한 볼품없으리라.
조금만 시간이 있었다면 박빙의 승부를 겨룰지도 모른다. 그러나 패자에게 다음은 없다.
“지뢰진!”
“뭐, 뭐야?”
쿠구구구구.
천지가 진동한다.
내가 만들어내는 진동은 상진이를 띄워주었던 철진이에게도 닿을 만큼 강력했다.
점프를 포기하고 지면에 상체를 고정한 채, 빠르게 무릎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는 지뢰진은 일종의 디버프 기술이다. 흡사 손바닥으로 바닥을 여러 번 쾅쾅 치는 것과 같다. 시전하는 모습은 괴이하기 짝이 없으나 점프해서 내려오는 타이밍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방방의 세계에서는 제법 유용한 기술이었다.
땅이 불안정하게 떨리니 아무리 점프를 해도 원하는 높이만큼 올라갈 수 없고 마치 손에 들린 닭에 머리가 고정되듯 상체가 고정되어 큰 공격을 해도 안정적으로 버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효과는 상대방의 힘을 반감시킨다는 것이다.
“안돼!”
늦었다.
철진이의 다급한 외침에도 상진이에게 지뢰진을 대비를 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어어어...!”
상진이의 신형이 힘없이 무너졌다.
딴에는 버텨보려 손을 허우적거렸지만, 이미 균형이 흐트러진 몸을 다시 세우기엔 지면의 진동이 너무나 강력했다.
“자, 이제 1:1이네?”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나 만만치 않은 상대다.
보통 이런 경기를 하면 철진이가 가장 먼저 패하게 되지만 방방은 다르다. 오랜 경험과 기술, 그리고 타고난 자질은 결국 체급에 비할 바가 아니니까.
철진이의 육중한 몸은 그냥 서서 뛰기만 해도 치명적인 공격이 된다. 발에 파고드는 깊이가 다르고 안정성도 뛰어나다.
행여나 방방대결이 아니라도 대형 방방에 국민학교 5~6학년의 아이들과 저학년, 혹은 5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섞이면 으레 넘어지고 뒹구는 쪽은 당연히 후자였다.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아도 체급이 낮은 쪽에겐 치명상이 되는 것이다.
방방의 세계도 결국 레슬링이나 유도처럼 체급이 중요한 리그다. 그 때문에 철진이는 비록 처음 경기에 나왔을지는 모르나 여느 프로선수 못지않은 조건을 갖춘 셈이다.
“에라이, 모르겠다!”
내 허세에 기가 죽어있던 철진이 참지 못하고 뛰어올랐다.
쑤욱.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깊이로 파인 지면은 나조차 제대로 서 있기 힘들 정도였다.
“형! 민호 형 도망간다! 할 수 있어!”
“기세를 늦추면 안되므니다!”
“나도 알고 있어!”
쳇, 끈덕지게 따라오는 철진이를 떼어내려 연신 속도를 올려 달아났지만, 번번이 철진이가 막아섰다. 당연했다. 케이지 매치에 도망갈 곳 따위는 없으니까.
“흥, 언제까지 도망만 다니려고?”
“잡고 나서나 말해.”
곰 같은 덩치가 꽁무니를 쫓아오는 상황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조금만 속력을 떨어뜨려도 금방 따라잡혀 저 커다란 크레이터에 빠질 것만 같았다.
“놓치면 안 돼!”
“알고 있다니까!”
그때였다.
점점 속도를 올리던 내가 과하게 방향을 틀었다.
우당탕.
철진이는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벽에 그대로 처박혔다.
“왜 철진 상은 넘어진 것이므니까?”
마법 같은 일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움직임의 차이는 없었다. 철진이의 느린 몸은 과하게 뛰어오르는 힘으로 어느 정도 상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같은 지점에서 나는 방향을 꺾었고 철진이는 그러지 못했다.
“이거야.”
나는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백만 개쯤 띄운 녀석들에게 한쪽 발을 들어 보였다.
우둘투둘한 미끄럼 방지 코팅이 된 스포츠 양발이다.
철진이의 얇은 발목 양말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다.
그 마찰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의식중에 같은 동작을 해도 나처럼 넘어지지 않으리라는 짐작으로 따라붙은 결과였다.
“치사하게 혼자 그런 걸 신어?”
“3:1로 공격한 주제에 치사함을 논하다니. 길바닥 승부에 치사하다는 말만큼 공허한 투정도 없단다. 나는 섞어국밥 특으로 먹을 거다.”
허무하리만치 금방 끝난 승부.
억울함을 토로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비록 나는 방방이 완성되기 전부터 타기 위해 만만의 준비를 해왔으나 그럼에도 불리한 쪽은 나였으니까.
승리의 트로피는 든든한 국밥이다.
“어? 오빠? 이거 뭐야?”
한창 땀을 흘리고 이제 밖으로 나서려는 찰나 설란이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와 물었다.
“어서 와.”
“와 방방이네? 진짜 오랜만에 본다.”
“올라오세요. 재미있어요!”
“나도 타도 돼?”
“그럼, 당연하지.”
어른 다섯이 방방을 탄다고 해서 나잇값을 못 한다 손가락질을 할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다.
“와서 형이랑 붙어봐요. 국밥 내기했어요! 우린 이제 더워서 방에 들어가 있을게요.”
“왜? 난 괜찮은데?”
“바가 철친 상! 빨리 따라오므니다!”
패배자인 세 녀석이 밖으로 나가고 다음은 설란의 차례가 되었다. 일부러 크게 만들어서 다섯이 뛰어도 충분한 넓이였지만 밖이 덥기는 더웠다.
나는 설란이가 올라오기 쉽도록 손을 내밀었다.
“잠깐만.”
방방에 올라오기 위해 내 손을 잡으려던 설란이는 무언가 생각난 듯, 잠깐 기다려달라 하고는 양말을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설란, 예의상 승부가 안된다며 겸양을 떨지 않고 양말을 벗었단 말이더냐?
감히 내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