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144화 (144/151)

#144. 신입사원(3)

나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철진을 일단 회의실 의자에 앉히고 커피를 손수 타줬다.

사무실에 온 손님에게 당연히 대접해야 할 기본이지만 그 대상이 철진이었기에 나로서는 최대한의 극진한 접대였다.

와작. 와작.

이놈은 먹어봐라 말도 하지 않았는데 직원들에게 나눠줄 말린 코코넛을 커피를 타오는 그 짧은 순간에 몇 봉지나 까먹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 경우 없이 찾아온 철진이를 차분하게 타일렀다.

“야, 우리도 엄연히 회사고 절차와 규정이 있는데…….”

“MM 프로팀 내가 하자고 해서 한 거잖아. 그래도 개국공신인데 이렇게 내칠 거야?”

“막말로 너 멀쩡히 다니던 직장 관두고 나온 거잖아! 그냥 편하게 살면 되는데 왜 하필 여기에서 일하겠다는 거야!”

“형이 하고 싶은 거 하라며! 그리고 우리 회사 직원이라고 소개했으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쌍팔년도 음식점에 수제자로 받아달라 떼쓰는 열혈청년도 아니고 정말 입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평소 잘 입지도 않는 양복에 상의 단추까지 단정하게 잠그고 앉아 있는 꼴에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게다가 미묘하게 내가 선뜻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반박하기 난감한 대답으로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했다.

“저, 구단주님. 안 그래도 의자랑 책상이 하나씩 빕니다. 하시모토 부장에게 지원을 나간 직원도 있어서 업무도 조금 몰렸습니다.”

“그 자리는 이미 올 사람이 정해져 있습니다.”

“네? 조철진 전무가 아니라요?”

“휴우.”

그 빈 책상 역시 내가 가져다 놓으라 지시했었다. 눈치가 빠른 차재훈 부장은 당연히 철진이가 왔으니 그 자리의 주인이겠거니 하고 넘겨짚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차재훈 부장이 틀렸다.

“뭐? 나 말고 또 누가 오는데? 그럼 동기겠네?”

“동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소리를 질러도 철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정말 우리 회사에 들어와 당장 오늘부터 일할 작정으로 온 눈이다. 이게 요즘 자주 나오는 맑은 눈의 광인 같은 건가?

“부장님, 우리가 애초에 TO 개념이 있긴 합니까? 제가 무심해서 이제야 물어보네요.”

“있기야 합니다만…….”

차재훈 부장은 말끝을 흐렸다.

TO. 회사에서 조직구성표를 지칭하는 용어다.

보통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회사 이력 옆에 단골 주제로 보이는 바로 그 조직 구성도다.

아무리 인원이 적은 중소기업이라 할지라도 이 TO만큼은 여느 대기업 못지않게 꾸며 놓는다. 실상은 혼자서 많게는 4~5개 부서를 담당하지만 말이다.

조금 가슴 아픈 말이지만 우리 MM 프로팀 역시 그런 중소기업들과 다르지 않다. 기껏해야 직원은 스무 명 내외. 그중에 10명은 정식 직원이 아닌 미니카 프로선수 출신이다. 체계화된 업무 분할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뭐든 할게!”

“‘하겠습니다’, 인마!”

철진이의 막무가내식 입사 지원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분하지만 철진이의 말은 사실이었다.

MM 프로팀은 철진이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나오지도 못했을 회사다. 지환이와 나를 꼬드겨 그 괴상망측한 옷을 입고 미니카 대회에 나간 것이 시초였으니까. 그리고 회사의 자금을 끌어모아 대현그룹과 프로팀을 창단한 것도 철진이의 검은 속내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본인은 그렇게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 한 번 얻지 못하고 입맛만 다셔야 했지만 말이다.

수긍하긴 싫으나 철진이 MM 프로팀에 기여한 부분은 결코 적지 않았다. 입사를 거부할 명분은 너무나 부족했다.

“전무로 오진 못해. 호봉은 쳐주겠지만 연차로 계산하면 아마 대리급일 거야. 급여도 그렇게 나갈 거고.”

“상관없어!”

“‘상관없습니다’, 자식아.”

당연히 상관없을 거다. 구태여 캐묻진 않았으나 우리가 평생 쓰고도 남을 재산을 쌓아놓고 있을 테니. 하는 짓은 낭창해 보여도 재벌가 사람이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또 불쑥 화가 치밀어올랐다. 재벌들이 취미 삼아 하는 일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지 않은가?

“부장님, 조 대리 입사에 관련된 절차 좀 부탁드립니다.”

“앗싸!”

“넌 나가서 사람들이랑 인사하고 와. 아마 업무는 알아서 배정해 주실 거야.”

나는 어느 업무에 사람이 필요한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각자 스스로 판단해 일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지금껏 회사를 꾸려왔기에 그렇다. 부장급 인원과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들, 그리고 생뚱맞은 미니카 프로선수까지. 정상적인 업무 분장을 요구하기엔 무리가 있는 구성이다. 그 때문에 알아서 밥값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히 철진이는 실무는 어떨지 모르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겉돌 성격도 아니고 말이다.

“구단주님, 그런데 누가 또 오기로 했습니까?”

밖에서 씩씩하게 인사를 하는 철진이를 멍하니 바라보던 차재훈 부장이 내가 했던 말을 뒤늦게 되짚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 차재훈 부장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언제 올진 모르겠지만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책상을 하나 더 준비해야겠네요.”

* * *

“궁금한 건 다 풀렸나?”

“지금 당장은 그렇습니다.”

삼정그룹의 비서실에 마련된 작은 방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들과 서류뭉치들이 난잡하게 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산처럼 쌓인 서류를 빠르게 넘겨보던 장설우 과장은 박 상무의 질문에 그럴 여유조차 없다는 듯이 얼굴도 바라보지 않고 짧게 대답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래도 대현그룹에 난다 긴다 하는 비서실 실세라 그런지 배우는 게 빨라.”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니야. 이쪽에 오래 있어봐서 알겠지만 알려준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자네나 나나 삐끗하면 비참할 정도로 나락에 빠지는 신세 아닌가. 이리 살길 찾아서 온 것만 해도 보통 이상이지.”

회사의 내부 사정과 극비 정보를 다루고 뒤가 구린 일을 도맡아 하는 처지다. 회사는 당연히 이런 인력에게 일반 호봉으로는 받을 수 없는 연봉과 성과급을 보장한다. 감히 배신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의 금액으로.

퇴사도 마찬가지다. 그냥 출퇴근 카드만 찍으면 알아서 돈이 들어오는 하청업체 고문 자리에 들어가 정년을 보장받는다. 나이가 젊다면 대출 없이 가게 하나 정도는 차릴 금액을 넉넉하게 받아 나오니.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도 상관없는 미래가 보장된 부서.

장설우 과장도 조금 이른 나이에 퇴직이 예정되어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또래의 다른 동기들이 정년까지 모아도 손에 쥐기 힘든 돈을 벌었고 조금 이른 나이에 회사에서 나오는 것뿐이다.

그런데 상황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대기발령 상태로 사무실이 아닌 감사팀으로 출퇴근을 하다시피 불려갔고 지시받았던 대외비 업무를 들추며 정인성 부회장과의 연결고리를 실토하라 요구했다. 싸구려 협박과 지켜지지 않을 달콤한 약속을 번갈아 내밀며.

외통수에 걸린 것이다.

죄가 있다면 시킨 일을 남들보다 깔끔하게 처리했고 그렇게 정인성 부회장의 눈에 든 게 전부였다.

하지만 회사는 냉혹했다. 끈 떨어진 연에 전관예우 따위를 신경 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감사팀의 타깃이 되어 물어뜯길 날만 기다리던 자신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살 방도를 알려주겠다면서 말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렇게 전화를 한 상대방 또한 거절할 수 없는 약점을 쥐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분은 도대체 정체가 뭡니까?”

“민호 군을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정인성 부회장의 일을 모두 뒤집어쓰고 학교나 가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팀에서 이렇게 하루아침에 깔끔하게 저를 놓아주고 지금 삼정그룹의 비서실에 앉아 있습니다.”

“말은 정확하게 하지. 자넨 우리 소속이 아니야.”

“네. 알고 있습니다.”

“사실 나도 모르겠네.”

“네?”

“자네를 빼 온 민호 군은 우리 회장님과 대현그룹 정진수 회장과도 격 없이 지내는 사이지.”

‘그게 말이 돼? 기껏해야 마흔도 안 된 나이에 직장도 변변치 않았고, 기껏해야 시골에 문구점이나 운영하는 사내가 대한민국 재계 서열 1, 2위에 있는 회장들과 막역한 사이라니?’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군.”

“저도 나름 뒷조사를 했었습니다. 솔직히 믿기 힘든 말입니다.”

“우리 같은 부류가 가장 대하기 껄끄러운 사람이 아닐까 싶네. 어떻게든 회장님과 인연을 만들어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먹을까 싶어 접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래서 저희가 밥을 먹고 살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렇지. 그런 놈들을 걸러내는 게 우리 일이니.”

이유 없는 호의는 없었다.

좋은 조건의 거래는 늘 이면에 다른 속셈이 있었고, 한 번의 선택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걸려 있는 그룹 일에 임원들은 이 속셈을 알고 싶어 했다. 그것이 지금껏 두 사람이 회사에서 했던 일이다.

의심과 의문은 일종의 직업병과도 같았다.

“그런데 민호 군은 달라.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면서도 그 행동에 악의가 없어. 뭐랄까… 사람이 크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우리 깜냥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람이야. 그래서 두 회장님도 좋아하시는 거고. 뭐 겪어보면 알겠지. 그럼 수고하게. 하산할 때가 되면 알아서 나가고.”

“무책임한 스승님이군요.”

“이 바닥은 독고다이인데 스승은 무슨.”

박 상무는 답지 않게 말을 많이 했다는 생각에 머쓱한 얼굴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 사람이라고?’

의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자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살아남으려면 그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처지니까.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차라리 이렇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비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면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테니까.

최소한 벌거벗겨지다시피 지분을 내어놓고 떠난 부회장보다는 MM 프로팀의 구단주가 훨씬 나은 주인임이 분명했다.

* * *

똑똑.

“회장님, 접니다.”

“들어온나.”

회장실 안에서 들리는 조동욱 회장의 호쾌한 대답에 박 상무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래, 가는 언제 갈 거 같드노?”

“머리가 좋은 친굽니다. 아마 다음 달 정도 되면 민호 군에게 보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빨리?”

“원래 이쪽에 오래 있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조철진 상무도 오늘 MM 프로팀으로 출근을 했다고 합니다.”

“몬난 자슥. 그래도 지 앞가림은 하는 모양이구마.”

“이렇게 되실 줄 알고 계셨습니까?”

“끌끌. 니가 모르는 걸 내가 우에 알겠노? 그나마 잘 풀맀으이 그런 갑다 하는 기지.”

조동욱 회장은 오랜만에 들려온 기분 좋은 소식에 굳었던 얼굴을 풀고 구부정한 허리를 두들기며 창가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걷었다.

그렇게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 사라진 창문으로 바라본 방향은 까마득히 멀어 절대 보일 리가 없는 남양주의 MM 프로팀이 있는 곳이었다.

“계열사로 간 것도 아이고 지 수족들 다 넘가줬으이 갈팡질팡하는 임원들도 인제 확실히 줄을 댈끼라. 반으로 쪼개지가 즈그들끼리 피 안 흘려도 되고 깔끔하고마. 참, 문방구 그거 요새 연락이 없네. 밥 한번 무로 가야 하는데 말이다.”

“평소처럼 문자 하나 보내시고 출발하시지요.”

“끌끌. 그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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