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온 세상이 우주다
「우주팬클럽 남양주 방문 관련 공지
안녕하세요. 우주팬클럽 밀키웨이 운영진입니다.
이번 뉴스 기사로 인해 남양주의 당산마을에 방문하는 회원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혹시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우려되어 이렇게 공지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당산마을은 현재 수확기가 끝나 더이상 봉사활동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점 방문 시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아울러 우주 님이 사진을 찍히셨던 밭은 주인분이 마음대로 들어가도 된다 허락을 해주셨으니 자유롭게 기념사진을 찍으셔도 됩니다. 다만 컨셉 사진을 위해 당산마을 측에서 구비해 주신 배추는 꼭 제자리에 정리해 주시길 바랍니다.
우주 님이 자주 들르는 민호문방구의 영업 시간은 오후 1시부터 오후 7시까지입니다. 문방구에 우주 관련 상품은 모두 저희 밀키웨이 운영진이 직접 확인했습니다. 가격은 우주 님이 사기 전과 모두 동일합니다.
아울러 당산마을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사는 마을입니다. 지나친 소란과 쓰레기 투기와 같은 비도덕적인 행동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까칠먹구름: 여기가 당산마을이야? 대박ㅋㅋㅋ 선발대 후기 없음?
└ 장곰: 나. 진짜 그냥 시골마을임. 우주가 사진 찍힌 곳은 마을에서 푯말 따라가면 쉽게 갈 수 있어. 어차피 밭에 배추가 쌓인 곳은 거기뿐이라 금방 찾음. 교통이 불편해서 차 없으면 택시 타는 게 훨씬 낫다. 저녁에 가면 어차피 물건 거의 없으니까 1시 오픈런이 속 편하고.
└ 모아두삼: 문방구는 어때?
└ 개구리줌마: 그냥 진짜 시골문방구. 아들넴이랑 갔는데 아들넴이 더 좋아했음ㅋㅋ 트램펄린도 있고 가격도 그냥 평범한 문방구 가격. 우주가 샀던 것들은 다 우주 뭐뭐라고 붙어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어. 문방구 주인도 잘생김. 우주만큼은 아니지만ㅋㅋ
└ 장곰: ㅇㅇ. 전부 사봤자 5만 원도 안 함.
└ gon8911: 저도 이번 주말에 가려고요!
* * *
우리 마을에 손님이 많아진 날은 이전에도 많았다. 아니, 정확히는 내 문방구에 손님이 많아진 날이라고 해야겠지.
처음은 MM 프로팀이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하고서다. 시골의 오래된 문방구 소문을 듣고 드문드문 찾아오기 시작한 손님들은 당시에도 제법 큰 매출을 올려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희왕 대회였다. 지금이야 수확기라 할머니들이 바쁘셔서 조금 뜸하지만, 마을회관에 마련된 작은 카드팩 판매 부스는 성황리에 영업이 되었고 일종의 낙수효과인지 문방구 역시 손님이 제법 많이 왔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옛 추억이 떠올라 방문한 사람들이다.
기껏해야 다른 곳에서 팔지 않는 아이스크림, 장난감을 한두 개 고르는 것이 전부였다. 매출로 치자면 나쁘지 않지만, 아무래도 순수익은 직장인의 월급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47,000원입니다.”
“우주 미니카는 다 나갔나요?”
“아, 다음 주 중에 들어옵니다.”
“아아.”
내 이야기를 들은 손님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탄식을 자아냈다.
“아직 우주 딱지는 많이 남아 있습니다. 꺼내드릴까요?”
“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창고로 들어가 딱지가 들어 있는 박스를 양손 가득 꺼내왔다.
“줄을 서주세요! 딱지는 많습니다!”
행여나 우주 딱지도 다 팔릴까 싶어 몰려든 손님들에게 나는 박스 안에 딱지들을 들어 보이며 흥분을 가라앉혀 달라 소리쳤다.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몰려든 손님들을 모두 보내고서야 나는 처음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아이고, 죽겠다.”
“형, 갔어요?”
“그래. 보통 3시쯤 되면 안 오시더라고.”
문지방에 앉아 고개를 뒤로 축 늘어뜨리고 오늘도 힘든 하루였음을 호들갑스럽게 표현했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한 상태다.
“얼마나 팔았스므니까?”
“정산 페이지 들어갈 힘도 없네. 한 100만 원은 넘을걸? 신기록이야.”
“우주한테 리베이트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므니까?”
“아니에요. 따로 홍보사진을 찍어드린 것도 아닌데요, 뭘.”
“야, 봤냐? 이게 바로 대스타의 배포라는 거야. 그런데 진짜 우주 팬들이 대단하네.”
“그러게 말이므니다. 이젠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므니다.”
손님들이 연신 들이닥치는 바람에 졸지에 방에 감금이 된 녀석들이 블루마블을 하는 와중에도 작은 불만을 토로했다.
이 사달이 나기 시작한 시점은 대략 2주 전에 한 기사가 올라가고부터였다.
우주가 나와 같이 밭에서 배추를 옮기는 사진과 함께 휴식기에 농촌 봉사활동을 한다는 기사가 뒤늦게 팬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우리 마을이 관광명소 아닌 관광명소가 된 것이다.
당연히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은 나였다.
우주가 직접 우리 문방구에서 산 장난감들을 SNS에 올리면서 그야말로 문방구의 물건들이 날개 돋힌 듯 팔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주가 샀던 미니카, 우주가 샀던 딱지, 오락기, 슬러시에 각종 불량식품까지. 우주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제품들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말 그대로 온 세상이 우주다.
“어? 우주, 블루마블 하네? 그것도 내일부터 우주블루마블이다.”
“민호 상, 지독하므니다.”
“얌마, 지독하기는! 너희들은 해달라는 것만 많고 매출에는 도움이 전혀 안 돼. 천 원짜리 손님들 주제에 누가 누굴 보고 지독하다는 거야.”
“그건 민호 형이 천 원밖에 못 쓰게 한 거잖아요! 이월도 와서 직접 적어야 하니까 저는 거의 모으지도 못했다고요.”
“사우디에서 잘 벌잖아.”
“아니, 그건 그거고요.”
오랜만에 문방구에 놀러 온 상진이는 우주와 어색한 인사를 한 뒤에 그간 있었던 일들을 지환이에게서 들어야 했다.
부쩍 해외 출장이 많아져서 근래에 바빠진 것뿐인데 문방구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이 워낙 시시콜콜하게 자주 일어나다 보니 몇 달이 지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 우주가 있는 걸 알면 팬들이 억울해하지 않겠스므니까?”
“우주만 그럴까?”
“하하…….”
방에 모여 있는 맴버는 하나같이 유명세가 있는 사람들이다. 상진이와 지환이 역시 메스컴에 잘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차기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를 인물들이고 아직 퇴근 시간이 안 돼서 오지 못하고 있는 철진이 역시 삼정그룹의 장남이다.
물론 그중에 매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녀석은 우주뿐이지만.
“그래도 우주 팬들이 대단하네.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도 다들 조용히 장난감이랑 과자만 사 가고 말이야.”
“팬클럽에 운영진이 공지로 올려놔서 그럴 거예요. 저는 딱히 한 게 없죠.”
손님으로 족히 30명은 넘게 문방구에 들렀다. 그런데도 이따금 아이들의 웃음소리 말고는 큰 소란 한 번 일어난 적이 없다. 오죽했으면 저번처럼 사람이 몰릴까 염려하셨던 이장님이 경광봉을 들고 마을 입구에 나오셨다가 풀이 죽어 들어가셨을까?
특히 발라드를 부르는 우주의 팬층은 연령대가 조금 높은 경우가 많아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답답하겠지만 오늘은 조금 참아. 이따가 손님 뜸해지면 말해줄게.”
“그래도 저번처럼 한차례 지나가면 또 잠잠해지지 않을까요?”
“그렇스므니다. 길어야 한 달이므니다.”
“아닐걸?”
“네?”
마중물이었다.
일단 문방구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서 손님들의 방문이 늘어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처음은 미니카 대회였고 지금 우주까지.
3~4일에 한 명 꼴로 오는 손님은 그 반짝하는 화제성이 사그라들더라도 꾸준히 늘었다. 경기도라고는 하나 서울에서 굳이 나들이를 오자면 오지 못할 거리도 아니다. 분명 이번 우주의 팬들이 모두 떠나더라도 적지 않은 손님이 고정적으로 올 것이 분명하다.
“그럼 우린 어떡해?”
“왔어?”
“손님이 그렇게 많이 오면 우린 어디서 놀아?”
인사도 잊은 채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걱정스럽게 묻는 철진이의 질문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한다?
사실 손님을 받자고 여는 문방구가 아니었다.
돈을 벌면 당연히 기분은 좋지만 이미 나는 꽤 괜찮은 직장이 있었고 문방구를 운영하는 건 일종의 사명감에 지나지 않았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함은 장사의 기본이라 우주의 이름을 팔아 큰 매출을 올리는 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때다.
“지환아, 거기 지난 달 달력 좀 찢어와 봐.”
“이거 말이므니까?”
“아니, 그건 너희들 용돈 적어야지. 저 티비 뒤에 큰 달력.”
나는 지환이가 가져온 달력에 큼지막한 도면을 그렸다.
창고와 문방구, 그리고 방방.
바로 우리 문방구의 도면이었다.
나는 그중에 창고에 크게 동그라미를 쳤다.
“여기가 왜?”
“창고에서 놀자 그 말이므니까? 상진 상이 싫어하므니다.”
“아니야. 여길 허물고 2층짜리 건물을 지을 거야.”
내 말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형이 돈이 어디 있어서?”
“맞아요. 이번에 애니메이션 제작할 때 다 쓰셨잖아요.”
“아니야. 조금 남았어.”
당시 필요한 자금을 위한 주식은 조동욱 회장님께 모두 팔았었다. 그리고 그 자금으로 부족한 애니메이션 제작 비용을 충당했고. 여기까지는 녀석들이 알고 있는 그리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하지만 남았다. 그것도 꽤 많은 금액이.
반즈 측에서 애초에 필요하다는 제작 비용을 빼고서도 여유자금으로 따로 빼두었던 돈이 있었다. 분명 애상하지 못한 지출이 있으리라 판단해서 챙겨둔 돈이었으나 차재훈 부장의 철두철미한 계획으로 예상지출에서 발생하는 오차는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대량생산까지 진행되는 와중에 굳이 없어도 될 여유자금이 남아버린 것이다.
여윳돈은 당연히 많을수록 좋기에 그냥 남겨둘 생각이었으나 오늘 그 마음이 바뀌었다.
“창고는 지하로 보내고 2층에 다락방을 만들려고. 그 왜 있잖아. 지붕 바로 밑에 뾰족하게 있는 방.”
다락방은 수컷의 영역이다.
수컷의 야성미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 끝내 길들이길 실패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비밀기지를 만들고 그마저도 힘들다면 굳이 의자를 빼고 책상 위에 이불을 덮어 나만의 공간을 확보한다. 멀쩡한 집과 방을 놔두고 왜 그런 짓을 하느냐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어가면서.
이유는 간단했다.
사냥감을 쫓던 선사시대의 본능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안락한 동굴 밖을 나서 사냥을 하다 해가 지면 몸을 숨길 공간을 찾아 나서는 본능 말이다.
건물을 새로 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수가 있어 보였지만, 어차피 창고는 너무 낡아 새로 짓기는 해야 했다. 이미 천장도 여기저기 물이 새는 곳이 많기도 했고.
어차피 멀쩡히 다니던 직장도 때려치우고 나온 마당에 결혼도 포기했다. 로망을 실현하는 데 거리낄 것이 무어가 있겠는가? 고민은 짧았고 결심은 확고했다.
“그럼, 거기 비디오게임기도 가져다 둘까?”
“미니카 트랙도 조금 큰 걸로 넣어두면 좋겠스므니다!”
“어? 그런데 1층은 뭐 하려고?”
각자 다락방에 채울 물건들을 생각하다 감이 좋은 철진이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1층엔 분식집이 들어갈 거야.”
“분식집?”
“그래. 민호 분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