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대업(大業)(1)
“오늘 떡볶이 먹으러 갈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나 갈래!”
“나도!”
한 아이가 엄지를 치켜들며 소리치자 곧장 다른 아이들이 그 엄지를 잡고 다시 엄지를 올리길 반복했다.
그렇게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은 겹겹이 이어져 긴 밧줄이 되었다.
“녀석들, 또 아랫동네 가는구나! 늦지 말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 차 조심하고!”
종례 시간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이 나가지도 않은 짧은 찰나에 아이들이 멋대로 정해버린 방과 후 일정에, 학교의 유일한 선생님이 짐짓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네. 조심해서 다녀올게요.”
“그래. 민호가 가니까 선생님이 한결 마음이 편하구나.”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거라.”
학교를 제집처럼 여기는 아이들의 이상한 인사를 선생님은 더 이상 교정해 주지 않았다. 다시 오겠다는 말은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드는 인사말이기도 했고 이따금 진짜 숙직실로 아이들이 들이닥치겠노라 하는 예고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컵떡볶이 먹을래!”
“나는 떡꼬치!”
“컵순대랑 반반 먹을 사람?”
분식집이 있는 아랫마을까지는 볼거리 하나 없는 긴 논밭을 지나야 하는 지루한 여정임에도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저마다 손에 꼭 쥔 동전을 행여나 잃어버릴까 싶어 그렇게 손을 잡고 걷길 좋아하는 여자아이들도 이날만큼은 그러질 않았다. 남은 손으로 두 명씩 짝지어 손을 맞잡는다는 선택지는 단짝친구 개념이 없는 아이들에게 올바른 정답이 아니었다.
“민호 형은 뭐 먹을 거야?”
“흐음. 글쎄. 가서 선택하려고.”
뭐든 따라 하기 좋아하는 나이다. 나는 행여나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내가 고른 메뉴로 따라 먹을까 싶어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아줌마가 떡꼬치에 소스 많이 발라줬으면 좋겠다.”
“맞아! 뚝뚝 떨어질 정도로!”
“그럼 병식이 만들어 주시는 거 보고 나도 떡꼬치 먹어야지.”
“치사하잖아! 너는 떡볶이 먹는다며!”
“얘들아, 싸우지 마. 은지 너도 병식이 따라 먹지 말고 원래 먹으려던 거 먹어.”
“웅…….”
내 말에 은지는 조금 시무룩해졌지만 골목대장으로서 합리적인 판결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의 다툼에는 꼭 잘잘못을 따져야 했다. 둘 다 잘못했으니 같이 화해하라는 말은 하찮은 이유로 싸웠으니 그냥 참고 넘기라는 어른들의 무책임한 판단일 뿐이다.
다툼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경솔한 행동, 혹은 오해가 동반된다. 그 부분을 짚어주지 않는다면 아이들 가슴속의 응어리는 서로를 미워하는 감정으로 변하게 된다.
“형은 그럼 컵떡볶이 먹어야겠다. 그냥 안 먹고 들고 와서 문방구 앞에서 먹을 거다?”
“나도! 나도 그냥 들고 올래!”
내 사소한 계획으로 병식이와 은지가 싸우는 바람에 서먹해진 분위기가 다시 풀렸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분식집은 이미 아랫마을 학교에서 아이들이 한차례 쓸고 간 뒤였다.
“안녕하세요!”
“그래, 윗동네 애들이구나. 뭐 줄까?”
하교 시간에 맞춰 만들어진 떡볶이는 이미 팅팅 불어 그 크기가 족히 두 배는 되어 보였고 튀김과 순대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실망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분식집 음식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딴에는 큰 결심을 하고 원정으로 와야 할 거리다. 언제 올지 모르는 우리를 위해 때맞춰 다시 음식을 데우는 배려를 받기엔 방문 빈도가 너무나 낮았다. 그 때문에 차갑게 식고 불어터졌을지언정 우리들의 눈에는 성대한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떡볶이, 떡꼬치, 순대, 김말이, 어묵, 피카쥬돈까스.
철저하게 아이들의 입맛에 맞춰 진화해온 분식집의 메뉴들은 무엇 하나 사사로이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라인업이 화려했다. 아이들은 그 먼 거리를 걸어오면서 이미 신중하게 먹을 음식을 골라놨지만 결국 분식집 앞에서 그런 계획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에 펼쳐진 잔칫상에 아이들은 한참을 머뭇거렸고 집에 갈 때가 되어서야 겨우 메뉴를 고를 수 있었다.
“저는 컵떡볶이 300원어치 주세요.”
“순대튀김 주세요!”
저마다 한 손에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들고 돌아오는 길은 더욱 멀었다.
문방구에 도착해 그 앞 평상에서 먹겠다는 내 원대한 계획을 같이하려던 아이들은 이 계획이 생각보다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다 식어 빠진 군것질거리지만 코끝에 전해지는 달콤한 향기는 바람이 불 때마다 견디기 힘든 시험에 들게 했고 저 멀리 보이는 문방구는 좀처럼 가까워지질 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콰당.
“으앙!”
“무슨 일이야?”
“병식이가 넘어져서 떡볶이를 다 쏟았어!”
“울지 마. 형이 조금 나눠줄게.”
“나도 떡꼬치 하나 줄게.”
“나는 피가쥬 귀 한쪽.”
병식이의 빈 종이컵에는 그렇게 다시 음식들이 채워졌다. 전보다 훨씬 푸짐하고 종류도 다양해진 종이컵을 받아든 병식이는 그제야 소매로 콧물을 훔치고 배시시 웃었다.
그런 아이들이었다.
가난한 집 장독에 쌀이 떨어지면 바가지가 장독바닥을 긁는 소리가 온 동네를 울렸고 그날 밤 이웃들이 다 같이 없는 살림에 한 주먹도 안 되는 콩밥이라도 들고 와주던 시절이었다.
친구가 음식을 흘렸다 해서 모른 체할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같이 문방구 평상에 앉을 수 있었다.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앉아 긴 여정을 함께한 음식이 행여나 금방 사라질까 조금씩 베어먹는 모습이 꼭 추수가 끝나고 낱알을 쪼는 참새 같기도 했다.
“이렇게 문방구 앞에서 먹으니까 아랫마을 애들 같다, 그치?”
“아랫마을 애들은 좋겠다. 오락기도 있고 떡볶이집도 있고.”
그제야 내가 왜 굳이 이 먼 길을 걸어와 문방구 앞에서 떡볶이를 먹는지 이해가 됐다.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아랫마을에 있던 커다란 문방구와 그 옆에 붙어 있는 분식집을 부러워했던 것이다.
* * *
“형, 자요? 눈 좀 떠봐요.”
“어? 아, 미안.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옛 기억을 과하게 떠올린 모양이다.
“장사는 안 될 것 같스므니다.”
“맞아. 우리 빼면 끽해야 하루에 두세 팀 받고 끝날걸? 하루에 만 원도 못 건져. 인건비는 그렇다 치고 폐기하는 음식은 어떡할 거야?”
“음식 준비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셋 다 큰 사업을 하다 보니 내가 분식집을 하겠다는 말에 곧장 문제점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문제점들은 하나같이 치명적인 것들이었다.
문방구는 장사라 하기에도 민망한 취미 생활이다.
손님이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그렇게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면 된다. 마진율은 적을지언정 몸이 힘들거나 고정 지출이 생기지는 않았다. 문방구 오픈을 준비하는 데 기껏해야 빗자루질을 하고 오락기를 내놓는 게 전부였으니까. 유통기한이 임박한 불량식품이야 내가 맥주 안주로 까먹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음식점을 하나 운영하는 것은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다.
퇴직하면 치킨집을 차리겠다는 막연한 꿈을 이야기하는 직장인이 전국에 얼마나 많던가? 우리나라는 자영업의 나라라고 칭해도 될 만큼 영세한 음식점이 많고 그 음식점의 점포수에 맞게 경쟁도 치열하다. 밑바닥부터 배워 철저하게 상권을 분석하고 경쟁력 있는 맛을 갖추지 못하면 인건비도 건지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잘못하면 달에 수백만 원씩 깨먹는 골칫거리가 될 수 있었다. 내 넉넉한 벌이에도 그 정도 출혈은 감당키 어렵다.
“음식을 팔면 망할 거야.”
“그런데 왜 하려는 거므니까? 어차피 바쁜 것도 싫어하면서.”
“음식을 파는 게 아니야. 추억을 파는 거지. 어차피 여긴 음식점이 없어. 만약 멀리서 우리 문방구를 찾아왔다면 이동시간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2시간이야. 밥을 밖에서 먹을 가능성이 커. 2인 이상 방문한다는 계산에, 문방구에 하루 열 명이 온다면 분식집에는 적어도 4팀을 받을 수 있어.”
“한 팀에 만오천 원씩 하면 그래도 턱없이 모자라잖아.”
“손님은 늘어날 거야.”
“왜?”
“사는 게 힘들거든.”
“그게 무슨 소리예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녀석들에게 나는 그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삶은 힘들고 고단하다.
어느 인생이 그렇지 않을까?
노후는커녕 다음 달을 걱정해야 하는 벌이에 늙어가는 부모님과 자라는 아이, 혹은 취업을 걱정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희망찬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과거의 그리웠던 추억은 눈만 감으면 선명히 떠올릴 수 있다. 아무 걱정 없이 학교를 다니며 그날 받은 용돈으로 문방구와 분식집을 다니던 그 시절의 추억 말이다.
나는 그 추억을 팔기로 했다.
어설픈 흉내는 독이다. 모두 마음 한켠에 고이 간직한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 구색만 갖춘 레트로카페 같은 모양새를 했다간 오히려 역효과만 날 테니까.
진짜가 필요했다.
배달 앱으로 몇 개 고르면 3만 원이 우습게 넘어가는 그런 프랜차이즈 떡볶이집이 아니라 학창 시절 부족한 용돈으로도 아무렇지도 않게 들렀던 그 시절의 진짜 떡볶이집이.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적어도 한 달에 수백만 원씩 까먹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여하튼 분식집은 열 거야. 건설업체를 알아보고 하려면…….”
“우리 삼정건설이 딱이죠.”
“저긴 아마 사우디 사업 때문에 분명 하청 줄 거므니다. 루데건설로 하므니다.”
“아직 우리 사업 착수하려면 멀었거든?”
“우리 루데그룹은 이번에 상도 탓스므니다.”
“그건 그냥 해마다 돌아가면서 받는 거잖아!”
“그래서 상진 상, 삼정건설은 올해 받았스므니까?”
건설사에 몸담고 있는 상진이와 지환이가 내 말도 잘라먹고 경쟁하듯 서로 자신의 건설사가 짓겠다 했다.
“야, 다락방 딸린 작은 건물 하나 짓는데 무슨 삼정건설이랑 루데건설이야. 그냥 동네에서 몇 군데 견적 받아보고 할 거야.”
“그런 문제가 아니므니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이므니다!”
“그래! 다음 주 금요일까지 준비해서 누가 지을지 정해!”
“아니, 그럴 필요가 없다니까…….”
기껏해야 3억이나 들어갈까 싶은 건물을 짓는 일이다. 물론 3억도 엄청나게 큰돈이긴 하지만 번듯한 상가건물을 사는 데에도 10억은 우습게 들어간다. 그런 건물에 비하면 분명 그리 큰 건수가 아니다. 특히 삼정건설과 루데건설이 나설 정도로 큰 사업은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여보세요? 김 부장? 내일 오전에 급한 회의가 있으니까 부서 직원들 전원 참석시켜 주세요. 네, 전부요.”
“모시모시…….”
내가 뭐라 만류하기도 전에 이미 최종 심사 일자까지 정해버린 두 녀석은 어디론가 바쁘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겠다. 난 아무 데나 해도 되니까 너희들끼리 정해. 괜히 내가 정했다가 나중에 섭섭하다 그러지 말고.”
“그럴게요.”
“알겠스므니다!”
계획에 없던, 그리고 전혀 필요하지 않을 대결이 다음 주 금요일에 열리게 생겼다.
이게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