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화 (1/363)

#0. 신랑 혼자 떠난 신혼 여행

“그러니까 결혼식 전날 파혼하고, 비행기 표와 호텔 값이 아까워서 신혼여행을 혼자 오셨다가 로또를 사셨다고요?”

기자가 흥미롭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뭔가 뻔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았는데, 엉뚱한 이야기를 해서인 모양이다.

“솔직히 아까워서라기보다는, 그냥 마음이 허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혼자 왔으니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생각 없이 산책을 하고 있는데, 로또 판매점이 보이더군요. 어쩐 일인지 발길이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한 장 사 버린 뒤였습니다.”

“재미있네요.”

“어찌된 일인지 그 사람······ 그러니까 결혼할 뻔했던 사람의 생일과 나이, 내 생일과 나이, 우리가 결혼하기로 했던 날짜. 그렇게 다섯 개의 숫자를 표시해 버렸더군요. 어쩌면 그런 식으로나마 추억을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 남은 하나는 별 생각 없이 아무 번호나 써넣은 모양입니다.”

“하필이면 헤어진 사람과 관련된 숫자들이 이번 메가밀리언 당첨 번호였다는 거죠?”

수도 경제 신문의 미국 특파원이라는 기자는 유진의 이야기를 꽤나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들어 주고 있었다.

기자로서도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메가밀리언에 당첨되었다는 정도의 단순한 이야기보다는 뭔가 양념이 들어가는 쪽이 훨씬 기쁜 것이 당연했다.

“예. 그랬어요. 그걸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지요.”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파혼하신 상대분이 이 인터뷰 기사를 보신다면 속이 좀 상하시겠어요. 아, 참! 지금 제가 한 말은 기사로 낼 건 아니에요.”

“음. 솔직히 그런 사람은 아닌 걸로 알아요.”

유진은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그 사람은 늘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결코 돈 때문에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에요.”

이런 자리에서 상대방을 헐뜯는 짓처럼 어리석은 행동은 자제하려 노력한다.

“파혼하셨으면서도 그분에 대한 신뢰가 여전하신 모양이네요.”

“네. 우리가 비록 헤어지기는 했지만, 그 사람 자체에 대한 신뢰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에요.

단지 우리가 서로 맞지 않았을 뿐이지요.”

유진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아주 잘도 지껄이고 있었다.

굳이 당첨자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델라웨어, 캔자스 같은 주가 아니라 캘리포니아 주에서 복권을 구입한 것, 그리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한국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흔쾌히 승낙한 까닭이 뭐겠는가?

당연히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사방팔방 알리려는 것이다.

그걸 보고 약올라 할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널리 퍼트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거기에는 전 약혼자도 포함된다.

그녀가 이 기사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짓게 될지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유진에게 작은 즐거움을 안겨 줬다.

“참! 당첨금이 4억 9천만 달러라고 하셨지요?”

“4억 9천만 달러라고는 하지만 일시불로 받고, 또 세금을 제외하면 확 줄어들더군요.”

“그렇죠? 한국과는 달리 일시불로 받으면 차이가 굉장히 크다고 하던데요.”

“예. 아직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계산해 놓은 게 있습니다. 우선 일시불로 받으면 총액의 62%를 받게 된다네요. 거기서 3억 380만 달러로 줄어들더군요. 그리고 세금을 내야하는데, 연방세와 주세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연방세의 경우는 소득에 따라 20%에서 37%까지 차등이 있는데, 저같은 경우는 외국인이니까 일괄로 30%를 징수한답니다. 연방 소득세를 제하면 2억 1,200만 달러로 확 줄어듭니다.”

유진은 마치 복권 협회 대변인이라도 된 듯 지급될 당첨금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주(州)에 납부하는 주 소득세가 있는데 운이 좋은 것인지, 캘리포니아에서는 복권에 주 소득세를 받지 않는답니다. 만일 뉴욕이었다면 거기서 8.8%를 더 납부해야 하니, 주 소득세만 2,700만 달러를 더 내야 했겠지요.”

“소득세도 엄청나네요. 그럼 복권은 어지간하면 뉴욕에서 사는 것은 피해야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뉴욕이었으면 300억 원을 더 내야 했습니다.”

“그러면 결국 당첨금 4억 9천만 달러에서 절반이 넘게 깎여서 2억 1,200만 달러를 받는다는 말이지요? 뭔가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큰돈이네요. 한국 돈으로 하면 대략 2,300억 원 정도이죠?”

“네. 세금이 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이지요.”

두 사람은 그렇게 티키타카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복권에 당첨되신 것이 지난 3월 21일인데, 당첨 확인은 꽤나 늦게 하셨더군요.”

“복권을 사놓고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설마 그게 당첨될 줄은 몰랐거든요.”

사실은 다른 목적이 있었지만, 그걸 말할 수야 없다.

“가끔 그렇게 뒤늦게 알고 찾으러 오시는 분들도 있나 보더라구요. 그런데 거액의 당첨금을 어디에 사용하실지 생각은 해 보셨나요?”

기자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네. 물론이죠. 사실은 아버님이 운영하고 계신 회사가 지금 힘든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아! 그럼 아버님 회사에 투자를 하실 예정이시군요.”

“투자라면 투자겠죠. 아들 돈이라고 적법한 절차 없이 아버지의 회사에 쓸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죠. 그럼 신주 인수나 그런 방법이 있겠군요.”

“예. 아예 제가 인수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아버님한테도 큰 선물이 되겠네요. 아버님께서 운영하시는 기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진 씨의 당첨금이라면 대기업에서 투자하는 수준 아니겠어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사실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평범한 운영상의 문제라면 모르겠지만, 소송이 걸린 일이라서요.”

“소송이요?”

“네. 대양중공업과 소송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당장 소송 비용이 엄청난 것은 물론이고, 대기업과 소송 중이라 공장의 운영 자체가 멈추었습니다. 앞으로 들어갈 비용이 얼마나 될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기자를 부른 진짜 목적은 이것 때문이다.

전에도 대양중공업과의 소송을 언론에 노출시켜 보려 했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다르다.

한국인이 미국에 와서 엄청난 거액의 로또에 당첨된 것만으로도 뉴스거리이다.

거기에 대기업과의 소송이라는 소스를 끼얹는다면?

“대양중공업이라면······ 잠시만요. 이건 좀 다른 문제네요. 잠깐 녹음은 중단할게요.”

지금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인터뷰를 하던 기자가 정색하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녹음기를 중단시켰다.

“혹시 이거 때문에 취재에 승낙하신 건가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취재를 요청해온 쪽은 그쪽이었지 않던가요?”

유진이 능글맞게 웃으며 되물었다.

이거······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한 행운남의 인터뷰가 아니다.

기자는 이제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과 관련된 취재는 불편하신가요?”

유진이 다시 물었다.

대양중공업은 4대 재벌의 하나인 대양 그룹의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이다.

대기업에 불리한 기사를 내는 것은 신문사로서도 꽤나 리스크를 부담해야 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제 입장에서는 환영이지요.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시면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거든요.”

“그럼 제가 사과를 해야겠네요.”

“괜찮아요. 도리어 감사를 드려야겠네요. 미국에 와서 한국 대기업에 관련된 기사를 쓰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기자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메이저 신문사의 미국 특파원은 유능한 사람들이라더니, 다르기는 하다.

“그런데 많이 심각한 내용이려나요?”

그리곤 정색을 하며 다시 물었다.

“그렇겠죠? 한 기업이 존폐의 위기에 몰려 있으니까요.”

“좋아요. 그런데 인터뷰한 내용이 전부 기사화된다고는 장담 못 해요.”

“물론이죠. 그리고 신문사가 그쪽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유진은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수도 경제 신문사가 경제 신문사 가운데 메이저이기는 하지만, 지금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유진의 기사를 실어 줄 신문사야 널려 있다.

“알았어요. 다시 인터뷰를 시작하죠. 그리고 제가 장담은 못 드리지만, 그래도 최대한 공정하게 실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말씀은 드릴게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유진도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문사 쪽에서도 대기업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절대 싣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늘 대기업에 쩔쩔맨다고 욕을 먹고는 하지만, 사실 언론은 대기업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대기업이 언론에 쩔쩔맨다는 쪽이 더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언론이 목을 매는 것은 예전에는 구독자 수, 지금은 조회수이다.

오히려 대기업 친화적인 경제 신문사에서 이런 종류의 비판 기사는 훨씬 더 많이 싣는다.

미국에서 거액의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대기업의 갑질에 고통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독점 기사로 올리는 것은 확실한 조회수를 보장할 것이다.

거기에 대기업을 향한 비판 기사는 해당 대기업으로 하여금 광고 집행을 늘리게 하는 협박의 효과도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첫 번째 기사 정도는 아마 올라갈 것이다.

그것도 꽤나 자극적으로.

하지만 수도 경제 신문에서 유진의 이야기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리라는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그럼 다시 시작하지요.”

기자가 녹음기의 버튼을 다시 눌렀다.

“아버님의 회사가 대양중공업과 분쟁 중이시란 말씀이시지요?”

아까와는 사뭇 다른 태도로, 눈을 반짝이며 그녀가 물었다.

“예. 저희 아버님께서 운영하시는 기업은 대양중공업의 협력관계에 있습니다. 아니, 있었었지요.”

유진은 이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풀어 놓기 시작했다.

“일종의 하도급인가요?”

“대양중공업에서 필요한 부품을 납품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 전쯤 대양중공업과 5년짜리 납품 계약을 맺고, 공장을 확장했습니다. 그쪽의 요구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 뒤로 처음 맺은 계약과 계속 이야기가 달라지다가, 얼마 전에는 갑자기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업체에 넘기겠다고 하더군요. 이래서는 대양중공업에서 요구한 납품을 처리하기 위해 투자한 비용을 전부 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도 해고해야 할 처지입니다.”

“납품 계약이 취소되는 일이야 흔한 일 아닌가요? 계약이 파기되었다면, 합당한 위약금을 받고 끝내면 되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대양중공업 측에서는 납품 중단의 원인이 우리 쪽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위약금은 오히려 우리가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기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양쪽의 주장이 상당히 다르다면 소송에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겠군요.”

“우리의 경우에는 충분한 증거가 있습니다. 계약서라든지, 납품한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없었다는 증거 등이죠.”

“그렇다면 승소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모양이네요.”

“그렇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지요. 이런 경우 법정 분쟁의 승리가 진정한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게 되고는 하죠. 대기업과의 분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소송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것 아니겠어요? 벌써 대기업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에서는 매 공판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일정을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또 수많은 쓸데없는 자료를 잔뜩 제출하고는 하지요.”

“고의로 시간을 끈다는 거군요.”

“공판이 한 차례 늘어날 때마다 변호사에게 지불해야 하는 수임료는 늘어나고, 상대가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려면 또 비용이 늘어나더군요. 그러는 동안 공장은 계속 놀고 있고, 비용은 늘어만 갑니다.”

유진은 차근차근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사실 자기가 한 말이 얼마나 기사화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그걸 다른 사람이 접할 수 있는 길이 꼭 이 기자가 쓴 기사일 필요는 없다.

유진은 계속해서 처한 현실, 그리고 닥쳐올 결말에 대해 이야기했다.

몇 년이나 지속되는 소송의 끝에 그의 가족은 몇 푼 되지도 않는 배상금 따위로는 결코 복구할 수 없는 상처만 가득 안게 될 것이다.

그게 유진이 겪었던 미래의 모습이다.

‘이번엔 그렇게 두지 않아.’

다시 한번 그때의 분노를 되씹으면서도, 담담한 미소를 띠며 유진은 인터뷰를 이어 갔다.

“말씀드린 것처럼 대기업과의 소송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시간과 비용의 문제이지요. 하지만 이제 비용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것 같네요.”

유진이 다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설마 이번 당첨금을 전부 소송 비용으로 사용하겠단 말씀이신가요? 2천억 원 전부를요?”

“물론이죠. 필요하다면 그럴 생각입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그 돈은 전부 쓸 데가 있다.

메가밀리언에 당첨되기 전에 이미 어디에 써야 할지는 전부 계산이 끝났다.

단순하게만 계산해도 3년 내로 100배 이상 벌 기회가 가득인데, 그 많은 돈을 설마 전부 소송 비용으로 사용할 리 있는가?

어디까지나 블러핑이다.

이제 우리도 총알은 충분하다. 한 번 끝까지 해보자.

지금 유진은 그렇게 전쟁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유진이 가진 총알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아니, 그때쯤 되면 더 이상 총알이 아니라 미사일, 핵탄두 정도로 불러도 될 것이다.

“대기업과의 소송이라니, 굉장히 힘드셨겠어요.”

인터뷰가 이어지며, 기자는 점점 더 흥미를 느끼는지 적극적으로 물어 왔다.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죠. 당사자가 아버님이시기는 해도, 온 가족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혹시 이런 질문 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유진 씨의 파혼에도 영향을 끼친 건가요?”

이 기자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물어 왔다.

유진은 그녀가 한 질문의 의도를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인터뷰가 드라마틱하게 흘러가고 있으니, 차라리 뭔가 조금 더 난잡한 스토리를 끄집어내고 싶은 모양이다.

약혼자의 부친이 운영하는 회사가 위기에 처하자, 난파선에서 달아나듯 떠나버린 약혼녀 이야기라면 꽤 그럴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추악하다.

“아니요. 우리가 파혼한 것은 그 전의 일입니다.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유진은 최대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기자는 전 약혼녀가 상관없다는 말에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이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라 할 수 있지요. 그녀의 직장이 대양중공업이니까요. 괜히 저와 얽혀서 지금쯤 고통받고 있을 걸 생각하면 참······ 먹먹하네요.”

유진은 자신의 의도와 정반대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약혼자분이 대양중공업에 근무 중이시라고요?”

기자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또 뭔가 이야기거리가 있다.

“대양중공업에서 파견 나왔던 그녀를 만난 게 인연의 시작이었죠.”

유진은 지금은 파혼한 약혼녀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기자는 연신 그래요? 네에? 하는 추임새를 넣어가며 신이 나서 질문을 던졌다.

“참. 오프 더 레코드로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이 기자가 물었다.

“뭔가요?”

“혹시 파혼의 원인이 뭔지 말해 주실 수 있나요? 인터뷰를 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해서요.”

“그건 곤란하네요. 누군가의 명예가 달린 일이어서.”

“그 누구가 어느 쪽인지 밝히실 수는요?”

“양쪽 모두라고 해 두죠.”

“굉장히 능청스러운 면이 있으시네요. 알았어요. 곤란하면 묻지 않을게요.”

하지만 그녀의 눈은 유진과 약혼녀 사이의 파국에 대해 파고들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뭐, 직접 알아보고 싶다면야 말릴 생각은 없다.

유진은 그렇게 속으로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기자님이야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렇게 서로 사이좋게 인사를 하고 기자를 돌려보낸 유진은 호텔 소파에 걸터앉아 위스키 잔을 비우며,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멋진 일들의 시발점에 대해 반추해 보기 시작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