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7화 (7/363)

#06. 아카데미의 보디가드

다시 시간은 흘러갔다.

복권국에 다녀와 며칠이 지난 뒤, 그날 찍은 사진이 지역 신문사에 실렸다.

“이제 이 전화는 꺼 둘 테니까 연락할 일 있으시면 따로 알려드리는 번호로 하세요.”

유진은 미국에 와서 개통한 번호를 알려 주었다.

이제 신분이 노출되기 시작했으니, 날파리들이 달라붙을 것이다.

- 그래. 알았다.

그리고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이메일로 인터뷰 요청이 수없이 많이 날아왔다.

유진은 그중에서 자신의 목적에 어울릴 것 같은 신문사를 찾아 인터뷰 요청에 응하는 메일을 보냈다.

서로 메일이 몇 번인가 오간 뒤, 기자가 찾아왔다.

인터뷰는 나름 즐거웠다.

아마도 그걸 스스로의 출사표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신문에 기사가 올라갔다.

생각보다 적은 면을 할애한 기사는 아니다. 그날의 대화가 제법 충실하게 들어가 있다.

적어도 기사 상으로는 성진 정공이라는 중소기업이 대양중공업이라는 대기업 계열사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논조로 보였다.

물론 그 뒤로 더 이상 유진이나 성진 정공에 관한 기사는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유진은 그것만으로도 우선은 충분히 목표한 것을 달성했다 생각했다.

그때쯤 유진은 그동안 알아 놓았던 유명 경호 회사에 연락해 보디가드를 파견해 달라고 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이름과 얼굴이 알려졌으니,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혹시 실제하는 위협을 받고 있습니까? 고객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점은 명확하게 해 주셔야 합니다.”

상담원이 물었다.

“그런 것은 없어요.”

“그렇다면 실제하는 적이나, 혹은 잠재적인 적이 있습니까?”

“음······ 한국의 큰 기업과 법적으로 소송 중이기는 하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여기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말씀이로군요.”

듣고 보니 그렇다. 가능성이 별로 없다와 전혀 없다는 단순히 뉘앙스만 다른 것이 아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목숨이 오갈 수도 있다.

“그렇겠군요. 좋아요, 실질적인 위협이 충분히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로 하죠.”

유진은 상담사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무장 보디가드 서비스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보디가드라고 전부 권총을 차고 다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영화에서야 개나 소나 총을 들고 다니지만, 실제로는 비무장 보디가드와 무장 보디가드가 따로 있다고 했다.

“음. 좋아요. 그편이 낫겠군요.”

정장 안쪽의 홀스터에 권총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탐탁지 않았지만, 상담사의 말이 옳았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보디가드를 고용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좀 더 확실한 쪽이 낫다.

1인당 하루 1,000달러에서 1,200달러로 비용이 조금 더 올라갔다.

일반적인 경호 회사의 경우는 이보다 대략 절반 이하를 요구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단 한 번도 고객을 사망에 이르게 한 적 없다고 주장하는 이 회사는 월등히 비싼 가격을 불렀다.

더군다나 실질적인 위협을 받는 의뢰인의 경우라면 다시 할증이 잔뜩 붙는 모양이다.

대신 문제가 생길 경우 온 사방에 총을 난사해서라도, 어쨌든 고객은 지키고 본다는 충성심으로 가득한 요원들만 파견한다니 돈을 지불하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든든하다.

다음날, 팔뚝이나 등 뒤에 뭔가 아주 은밀하고 특별한 문신이 새겨 있을 것 같은 예비역 스타일의 사내 둘이 파견을 나왔다.

정장을 입고 있는데도 대흉근으로 단추가 튕겨 나갈 것 같은 것이, 꼭 G.I 조를 보는 것 같았다.

“존 웨스트윈드입니다. 존이든 웨스트윈드든 편한 대로 불러 주십시오.”

“아카데미의 로저 버튼입니다. 저희 아카데미는 창업 이후 단 한 명의 고객도 사망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경호를 맡는 동안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의 안전은 지켜 내겠습니다.”

뭔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해 보이는 보디가드였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지만, 나름 유명······ 악명 높은 곳이니 믿어 보기로 한다.

사실 이 회사는 임무 수행을 위해서라면 민간인의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의뢰인의 목숨만큼은 기필코 지켜낸다니, 평화로운 미국 땅에서야 더할 나위 없겠지.

든든한 보디가드를 둘이나 부른 덕분으로 그날부터 유진은 좀 더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몸을 사리느라 가 보지 못했던 곳들도 방문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역시 돈이 최고다.

보디가드를 고용하면서 호텔도 옮겼다.

할리우드와 베벌리힐스의 경계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호텔이다.

볼거리 가득한 할리우드와 베벌리힐스를 편하게 오갈 수 있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호텔을 옮기고 난 다음 날.

평소처럼 부친에게 전화를 거니 불편한 기색으로 말을 꺼낸다.

- 네 엄마한테 들었는데 그 애한테 전화가 왔다는구나. 너한테 연락을 취하려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어서 네 엄마한테 했다지 뭐냐.

유진의 전처······ 아니, 이제는 전 약혼녀에 관한 이야기였다.

수도 경제 신문에 난 인터뷰 기사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 네 미국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기에, 엄마가 너한테 물어본다고 했다는데. 어떻게 할까?

“제가 전화할게요.”

- 그러겠니?

“네.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회사는 좀 어때요?”

- 뭐. 그럭저럭 돌리고 있다.

대양중공업에의 납품이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거래가 끊겼으니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부친도 유진도 그리 내색하지 않았다.

“유성이한테 다 들었어요. 요즘 거의 쉬는 거나 다름없다면서요.”

- 그래도 기존 거래처들이랑 새로 납품할 곳도 있고 나름 바쁘구나. 참! 너 덕분에 거래처가 늘었어.

“거래처가 늘어요?”

- 그래. 네가 2천억짜리 미국 로또에 당첨된 걸 알았던지, 우리 회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더구나. 어떻게 알고 찾아와 이것저것 묻다가 주문을 하기도 하더라.

“귀찮지는 않으세요?”

- 뭐, 상관없다. 딱 보면 같은 업계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으니, 영 아니다 싶으면 쫓아내면 그만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는 뭐든 일거리가 있는 게 중요하니 그 정도야 감수할 수 있지. 세상 참 희한하구나. 그게 또 이렇게 도움이 되기도 하네.

역시 어떤 식으로든 알려진다는 것은 모든 일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무명(無名)보다 악명(惡名)이 훨씬 가치 있다는 말이 허튼소리만은 아니다.

“주변이 너무 소란스러우면 엄마랑 같이 이리로 오세요. 사장님 없어도 회사는 돌아갈 거 아니에요?”

- 일 없다. 나 없으면 하루도 못 돌아가.

부친은 완강했다.

하기야 평생을 일만 하고 살아온 분이니 아들에게 돈이 조금 많이 생겼다고 쉴 분은 아니라는 것을 유진은 잘 알고 있었다.

- 차라리 네 엄마나 보내도록 하마. 이참에 미국 구경이나 하고 돌아오라고 하지 뭐.

“엄마 오시면 아버지가 적적하시잖아요.”

- 적적하기는. 일 없다.

하지만 모친도 미국으로 오지는 않았다. 남편을 챙겨 줄 사람이 자신뿐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아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부친에게 연락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며칠 지난 뒤에 유진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기다리고 있었던 차인지 늦은 시간인데도 바로 받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안달이 난 모양이다.

“전화했다며?”

무심한 목소리로 유진이 물었다.

- 대체 뭐 하는 거야?

그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응? 무슨 말을 하는 거야?”

- 인터뷰 말이야.

그녀의 목소리에는 독기가 잔뜩 서려 있다.

- 당신이 로또에 당첨된 건 알겠는데, 그걸 굳이 인터뷰까지 하고 날 거론한 이유가 뭐야?

“아······ 그랬나? 인터뷰라는 게 처음이라 경황이 없다 보니 그런 모양이네.”

- 그것 때문에 내 꼴이 지금 어떤 줄 알아?

“응?”

- 회사 사람들 말이야. 대체 사람을 어디까지 짓밟아야 속이 시원하겠어?

“그럴 의도는 없었고, 또 그런 식으로 인터뷰를 한 것 같지 않은데?”

- 끝까지 그렇게 나온다는 거지?

“난 아무 의도도 없어.”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겉돌고 있었다.

“소장 보낸 거 받았지?”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래. 변호사가 답변서 제출할 거야. 그리고 소송 기일이 잡히면, 그때 한 번 보지.”

- 그러니까 소송도 끝까지 해 보자는 거지?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묘했다.

흠, 설마 이제 와서 소송을 꺼리는 걸까?

“여기쯤에서 그만두고 싶어?”

- 응? 아······ 아냐. 좋아, 끝까지 한번 가 보자고.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뭔가 있구나.

그녀와 몇 년을 같이 살았어도 그녀의 감춰진 진실을 그다지 깨닫지 못했던 유진이었지만, 적어도 그녀의 감정선을 눈치챌 정도는 된다.

그러니까 그녀가 진심으로 소송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렇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걸 원하고 있다는 거겠지.

뭐, 그렇다면······.

“그래. 그래서 속이 풀린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유진은 씩 웃으며 그녀가 원치 않을 대답을 해 주었다.

- 나쁜 새끼! 뒈져 버려!

이번에도 심한 욕설과 함께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녀에게 분노를 유발했다는 사실에, 유진은 또다시 기꺼워졌다.

그건 그렇고, 그 자식은 무슨 생각인 거지?

유진의 가족이 궁지에 몰렸을 때라면, 이 소송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유진에게 거액이 생긴 지금에야 딱히 타격을 줄 수는 없을 텐데?

유진은 자신이 아직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 남자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전화를 끊고, 그동안 세종 홍보에서 받은 대양 그룹 회장 일가에 대한 정보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대양 그룹은 현 회장이 60년 전에 창업해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4대 그룹으로 올라선 신화를 가진 대기업 집단이다.

전자를 필두로, 자동차, 중공업, 금융, 유통, 통신 등 모든 산업 분야에 진출한 전형적인 한국형 대기업.

지금은 아들들에게 각 계열사를 맡기고 조용히 은거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지만, 여전히 그룹에 대한 영향력은 막강한 모양이다.

유진은 류 회장의 많은 식솔 중에 셋째 아들인 대양중공업 대표이사의 파일을 열었다.

나이는 예순이고 장성한 아들이 셋이 있는데, 셋 다 대양중공업 본사 또는 계열사에 근무 중이라······.

유진은 다시 그자의 둘째 아들 파일을 열었다.

[류성규. 나이는 서른넷. 서울 대학을 나와 하버드에서 MBA 과정을 이수, 모건 스탠리에서 경력을 쌓고 돌아와 대양중공업에 입사.

대양 그룹 3세들 중 가장 능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됨.

서울대학교 입학 당시 조부에게 받은 소정의 금액을 증권 투자에 투입하여 대학 졸업 때까지 서른 배가 넘는 금액으로 만들어 주위를 놀라게 함.

회장의 사랑을 받는 손자로 알려짐. (확실치는 않음)

성격은 쾌활한 편.

여성 편력이 있다고 알려짐. (확인 필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본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함. (가능성 높음)]

유진은 세종 홍보에서 받은 자료에 미래의 자신이 알고 있던 기억들을 더해 류성규라는 사내에 대해 이미지를 그려 봤다.

무척이나 야심 있는 남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갈 남자이다.

몇 년 뒤 대양 그룹 회장이 사망한 뒤, 아들들 사이의 피 터지는 전쟁이 벌어진다.

승자는 셋째 아들인 대양중공업 회장.

그리고 다시 몇 년 뒤, 대양 그룹 회장이 된 사내는 자신의 부친보다 훨씬 일찍 타계하고 만다.

당연히 그의 아들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고, 여기서 승리하게 될 사람이 바로 둘째 아들인 류성규, 이 남자이다.

겨우 마흔 줄에 들어선 남자가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거대 그룹의 정점에 서게 되었으니, 능력이야 확실하다.

‘이 녀석이란 말이지······.’

지난 삶에서 유진은 자신의 가족에게 닥친 불행의 근본이 이 남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부친이 당사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자가 생각보다 빨리 죽었을 때, 유진은 꽤 허탈해했었다.

‘다행이네. 이번엔 갚아 줄 상대가 있어서.’

유진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분노할 상대가 창창하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일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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