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08. 도그E?
“암호화폐? 그게 뭐야?”
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은 암호화폐 개념이 일반인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시기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주식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 유성에게는 더더욱 낯선 단어였다.
유진은 비트코인이나 다른 종류의 가상화폐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비트코인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아. 근데 종류가 그렇게 많았어?”
“어. 지금도 수없이 많은 암호화폐가 개발 중이야.”
“그런데 그게 사 두면 주식처럼 돈이 된다고? 아무런 가치도 없고, 누가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닌데?”
처음 암호화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올 만한 일반적인 반응이다.
“보장해 주는 사람이 왜 없어?”
“누가 보장해 준다고?”
“거기 투자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욕망을 우습게 보지 마.”
“뭐. 잘은 모르겠지만 알았어. 여하튼 시키는 대로 해볼게. 그러니까 비트코인이란 걸 사면 된다는 거지?”
“비트코인도 사야 하지만 다른 종류의 코인도 전망이 나쁘지 않아 보여.”
비트코인은 앞으로 2년 사이에 대략 60에서 70배 정도의 수익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잠시 침체기를 갖다가 다시 용솟음치고.
그러니까 비트코인의 구입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유진은 이미 잔뜩 오른 비트코인 말고도 아직 헐값에 불과한 코인이 잔뜩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트코인은 거래소에서 구매할 수 있어.”
유진은 노트북을 켜고 코인 거래소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대개 비트코인 위주로 거래를 하고, 거래소에 따라 다른 코인을 추가로 끼워 넣기도 해.”
비트코인이 아닌 다른 코인의 경우는 거래소에 따라 몇몇 가지만 취급하고 있는 수준이라, 원하는 코인이 있으면 거래할 곳부터 찾아야 했다.
“그러니까 당분간 넌 암호화폐에 대해 좀 알아봐.”
“알았어. 그렇게 하지 뭐.”
“참. 너 영어는 좀 되니?”
유진은 동생을 부려먹을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 뭐······ 토익 공부는 잠깐 했었는데······.”
유성이 자신이 없다는 표정으로 멋쩍게 웃었다.
“그럼 이참에 영어 공부도 좀 하자.”
“그럴까?”
유진은 수소문해서 영어를 개인 교습해 줄 사람을 찾았다.
LA에 계속 머물 것이 아니기에 학원을 다니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영어 선생님은 여자가 좋겠지?”
“당연하지!”
유성은 미녀 개인 교사와의 로맨스를 꿈꾸며 환한 얼굴이 되어 대답했다.
“아······ 이게 아닌데······.”
개인 교사를 처음 만나고 꽤나 실망한 듯한 동생의 표정을 보며 유진은 쿡쿡대고 웃었다.
실력 있는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다년간의 경험이 있는 사람인 것 아닌가?
유진이 동생을 위해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초빙한 선생님은 이제 50줄에 들어서는 깐깐해 보이는 여자였다.
뭐, 설마 진짜로 미녀 개인 교사와의 로맨스가 벌어질 거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 테니 그냥 무시하기로 하자.
그렇게 유성의 LA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호텔 짐으로 내려가 열심히 쇠질을 하고, 형과 함께 아침을 먹고 인터넷으로 암호화폐에 대해 공부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영어 선생이 찾아와 반나절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를 했다.
받은 돈값을 하려는지, 선생은 잠깐의 시간이라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유성을 닦달했다.
그리고 나서도 돌아갈 때는 또 한 움큼의 숙제까지 내주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다시 쇠질을 하고 암호화폐를 알아본다.
그러는 와중에도 틈틈이 카메라를 꺼내 들고 형을 모델 삼아 인물 사진 연습을 했다.
“어때? 할 만하니?”
“고3 이후로 이렇게 빡세게 살아보기는 처음이야. 왠지 삶에 충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빠듯한 생활이었지만, 불만은 없어 보인다.
원래가 착실한 녀석이라 그런 것도 있고, 얼마 전 겪은 일로 인해 독기가 오른 탓도 있으리라.
유진은 자신이 과거로 돌아와 가장 다행인 것은 동생은 물론이고 다른 가족들에게서도 그 불행했던 시간을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 생각했다.
약간의 독기 정도는 괜찮다.
대양중공업을 향한 적개심 정도야 나쁘지 않다.
지난 삶에서 유성의 독기는 도를 지나쳐, 파멸적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형님을 잘 둔 덕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갖고 싶은 것은 다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해 줄 생각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것저것 좀 시켜도 된다.
“코인에 대해서는 많이 알아봤어?”
며칠이 지나고, 유진이 지나가듯 물어봤다.
“코인 종류가 꽤 많더라고. 라이트코인, 리플, 대쉬······.”
그간 열심히 알아보더니 유성은 코인에 대해 제법 빠삭해졌다.
“팩톰. 비트셰어. 피어. 와이비. 모레나······.”
심지어 유진이 평소 들어보지도 못한 다양한 코인을 꺼내 놓는다.
“확실히 비트코인 가격이 그렇게 오른 걸 보면 다른 코인들도 따를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는 해. 하지만 반대로 비트코인이나 다른 코인이 지금 가격도 유지 못 하고 폭락할 수도 있고 말이야.”
“그렇지. 굉장히 불확실하지. 그러니까 여윳돈이 있다면 좀 묻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비트코인처럼 처음에 몇 센트도 안 되던 게 몇백 달러나 되면 작은 돈이 큰돈이 될 거 아냐.”
“하기는. 형한테 여윳돈이 좀 많기는 하지.”
“그런데 너 저금해 놓은 돈은 있어?”
“돈? 조금밖에 없어. 흐. 카메라랑 액세서리랑 그런 거 사느라고.”
“크게 상관없어. 그래도 백만 원은 있을 거 아냐?”
“그보다야 많지. 왜?”
“우선 그걸로 코인을 사도록 해. 얼마 있는지는 모르지만 당첨금 들어올 때까지는 전부 쓴다 생각하고 이것저것 사들여 봐.”
뭐든 해 봐야 는다. 지금은 우선 연습에 가깝다.
“형의 촉이 그렇다면 알았어.”
“뭐부터 살 생각이야?”
“음. 라이트코인이 유망한 거 같아.”
유성의 선택은 라이트코인이다.
“지금 10달러 수준이더라고. 그런데 가격이 떨어지는 걸 보니 좀 무섭기도 하고······.”
앞으로 한참 뒤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알트코인의 시세는 상당 부분 비트코인 시세를 추종한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지난해 말 1,150달러를 찍은 뒤 하락해서 올해 5월에는 400달러까지 떨어졌다.
올해 초에 있었던 마운트곡스라는 거래소에서 대량의 비트코인이 해킹당한 사건의 영향이 컸다.
그러니 비트코인의 뒤를 이어 실버의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라이트코인의 가격도 하락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건 그렇고······.
라이트코인이 이 당시 10달러라면 결코 싼 가격은 아닌데······.
하지만 유진은 말릴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큰돈을 넣는 것도 아니고. 또 폭락을 한 번쯤 겪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다.
더군다나 2년 뒤 다가올 대 상승장을 생각하면 약간 떨어지는 정도야 우습지도 않다.
“아니면 리플이라는 코인은 그렇게 가격이 높지도 않으면서 아주 잔뜩 폭락을 했더라고.”
“그래?”
“그런데 지난해 말 0.05달러에서 최근에는 0.004달러까지 1/10로 떨어졌는데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걸까?”
“그거야 아무도 모르지. 모르니까 투기라고 하는 거고.”
천연스레 시치미를 떼고 말했지만, 언제고 그 폭락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폭등하게 될 것을 알고 있는 유진은 리플도 꼭 사란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뭔가 웃긴 암호화폐도 있어. 도그E? 도게? 뭐라고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암호화폐를 비웃으려고 만든 코인이라네. 근데 발행 수량도 무한대에 장난 같은 걸 왜 투자하는 걸까? 올해 초에는 열 배나 올랐다가 쭉 미끄러지고 있대.”
“도그이 보다는 도지 정도로 읽는 게 낫겠다. 여하튼 아무도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해 모르니까 그냥 이슈가 생기면 오르거나 내릴 뿐이야. 사실은 암호화폐라는 게 전부 농담인지도 모르지.”
“그래. 형 말대로 오르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가볍게 돈을 넣어 둘 만은 한 거 같아.”
“그 농담 같다는 코인도 빼놓지 말고 사자.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도지코인의 회수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지만 큰 상관은 없다.
“0.0003달러면······ 한국 돈으로도 0.3원이네. 백만 개를 사면 30만 원이야. 그런데도 하루에 20만 달러 가까이 거래가 되고 있어.”
0.0003달러짜리가 어떤 관종 부자의 한마디에 무려 2000배에 달하는 폭등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지금 백만 원을 넣어두면 20억 원으로 뻥튀기된다는 말이다.
“이더리움이라는 것도 꽤 핫하더라. 근데 이제 막 개발 중인 거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몇 년 뒤에는 비트코인에 이어 2등의 자리를 고수하는 이더리움은 이제 겨우 태동기에 불과했다.
“이더리움은 여기서 구매할 수 있어.”
유성이 이더리움 판매 페이지를 열었다.
아직 이더리움은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았고, 자체적인 크라우드 세일 방식으로 판매된다.
“아직 판매 시작은 아닌 모양이네?”
홈페이지에는 돌아오는 7월 말부터 판매 예정이라 적혀 있다.
동생이 이런 것까지 찾아낸 걸 보면 꽤 촉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유진은 짐짓 잘 모르는 척 물어보았다.
“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벌써 코인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꽤 인기야.”
한 번 코인에 대해 말해 준 뒤로 유성은 알아서 미래의 먹거리들을 잘도 골라내고 있었다.
형제는 각자 보유한 자금으로 슬금슬금 코인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유진이 기억하고 있는 코인에 대한 정보만 해도 얼마 전 당첨된 메가밀리언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
겨우 2억 달러가 아니라, 그야말로 재벌 소리를 들을 만큼의 자본을 손에 넣을 기회였다.
그날부터 형제는 각자 보유하고 있는 자금으로 코인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투자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거의 연습에 가깝다.
“이런 알트코인이 정말 언젠가는 비트코인처럼 빛을 볼 날이 올까?”
시키는 대로 코인을 수집하면서도 유성은 여전히 의구심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리고 가능성은 무척 높다고 봐.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어. 그리고 이런 암호화폐로 돈을 버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그 관심은 더욱 커질 거고. 관심이 모일 수록 가치는 높아질 거야.”
“그럼 언젠가 암호화폐가 정말 진짜 화폐를 대신해 쓰일 날도 오는 건가?”
“그건 전혀 다른 문제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여기 투자를 해서 돈이 되느냐 하는 문제이지, 이건 절대 화폐가 아니야. 화폐의 탈을 쓴 도박 도구일 뿐이지.”
“아! 역시 어렵다. 사실 정말로 사 둬서 돈이 된다면, 진짜 화폐든 아니든 상관없지 뭐. 그럼 얼마나 오를까?”
“글쎄? 그거야 아무도 모르지. 코인에 따라 다를 테고. 그래도 억지로 추측을 해 본다면, 비트코인의 전철을 밟아 어떤 코인은 수십 배는 오를 거고, 또 어떤 코인은 천 배 이상 오를 수도 있어.”
“정말로 그렇게 되면 좋겠네. 단돈 100만 원어치만 사 둬도 몇 년 뒤에는 큰 재산이 될 거 아냐? 꼭 복권을 대량으로 사 놓는 거 같다.”
유진은 동생의 말이 그다지 틀리지 않다 생각했다.
단지 인쇄가 잘못되어서 긁을 때마다 당첨이 나오는 즉석 복권 같다고 해야 할까?
그게 100배냐 1,000배냐의 차이일 뿐이다.
복권을 긁고 당첨금을 확인할 때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 사소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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