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5화 (15/363)

#14.

#14. 상하이 부부가오 치처

“무장을 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존이 아직 문밖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내에게 말했다.

“어······ 그렇게 하세요.”

한국인이라 밝힌 사내는 두 팔을 높이 들고, 존이 자신의 몸을 더듬는 것을 허락했다.

“비무장입니다.”

로저가 말했고, 존이 그 한국인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안녕하십니까. 전 한국에서 온 김창호라고 합니다. 어느 분이 여기 책임자이신가요?”

눈치가 없지는 않은지, 존과 로저는 책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유진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한국말로 말했다.

“어? 한국분이셨습니까?”

사내는 조금 어리둥절하면서도 유진이 서 있는 응접실로 걸어 들어왔다.

“예. 한국 사람 맞습니다. 앉으세요. 제안하실 게 있다고 하셨죠?”

“예. 다름이 아니라 여기 스위트룸에서 일주일간 머무르신다고 들었습니다.”

사내가 조금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

“우선은 그럴 예정이에요. 그런데요?”

“사실 저희가 꼭 이 스위트룸이 필요해서 그렇습니다만, 저희에게 양보를 해 주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양보라······.”

“예. 물론 여기 비용은 저희가 지불하고, 대신 다른 호텔 스위트룸을 저희가 수배해 드리겠습니다. 그쪽 비용도 저희가 지불하지요.”

“글쎄요? 내가 그럴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딱히 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닌데. 그리고 이렇게 마음대로 올라와 이런 식으로 물어도 괜찮은 건가요? 이 호텔에서는?”

유진이 조금 삐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그건······ 사실 사정이 조금 있어서······.”

“그러니까 이쪽 호텔과는 상관없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아. 네? 아, 그건······.”

사내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배인과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네.”

유진은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자! 잠시만요! 억!”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달려들려다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던 존에게 잡혀 바닥에 쓰러졌다.

“아! 안 됩니다! 이러면! 구! 국제적인 망신이라구요!”

사내가 악을 쓰듯 소리쳤다.

“국제적인 망신이라니? 혹시 국가에서 나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유진이 전화기를 든 채 물었다.

“아, 아니요. 하지만······ 사실은 전 다산자동차 미주 본부에서 나왔습니다. 호텔에 알리면 다산자동차에 문제가······.”

“아니. 무슨 다산자동차가 한국을 대표하는 국영기업이라도 된다는 말인가요?”

“그렇지만 이런 소란으로 다산의 이름이 거론되면, 국익에도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나, 참. 그놈의 국익은 참 뜬금없네. 존, 풀어 줘요. 그쪽도 위험한 행동 하지 말아요. 우리 존과 로저가 조금 무서운 사람들이라서 말이죠. 가슴에는 권총도 갖고 있다구요.”

“예? 힉!”

사내는 권총이라는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래서 그쪽이 다산자동차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았어요. 그래서요? 내가 이 방을 뭣 때문에 비워 줘야 한다는 거죠?”

“저, 사실은 우리 다산그룹 회장님께서 급히 뉴욕에 순방을 오셨습니다. 그런데 늘 머무시는 이곳 팰리스 호텔 스위트룸에 다른 분께서 머물고 계시다고 해서, 제가 양해를 부탁드리려 찾아왔습니다.”

“예.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이제 돌아가 보세요. 존.”

유진이 손을 흔들며 존에게 눈짓을 했다.

“자! 잠시만요!”

사내는 존에게 끌려 방 밖으로 쫓겨날 때까지 소리를 쳤다.

“응? 이래도 되는 거야?”

불청객을 내쫓고 문을 닫고 나서야 그때까지 멀뚱멀뚱 보고만 있던 유성이 물었다.

“안 될 건 또 뭐가 있겠니?”

“다산 그룹 회장 일이라며? 괜히 그 사람들한테 미움 사는 거 아냐?”

그렇지 않아도 대양 그룹과 척을 지고 있는데, 이제 다산 그룹과도 불편한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다산이면 대양보다 한길 위잖아.”

“한길 위는 뭐. 그게 그거지.”

유진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제일 그룹, 다산 그룹, 대양 그룹, 명성 그룹.

한국의 재계는 물론이고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네 개의 대기업 집단이다.

그중 다산 그룹과 제일 그룹은 수십 년 동안 수위 다툼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고, 대양 그룹은 언제라도 2위 자리에 올라서려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다산은 제일과 라이벌이면서, 대양의 맹추격을 받고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특히 주 분야가 같은 자동차와 중공업 위주인 다산과 대양은 여러모로 비교되는 사이였다.

“여하튼 조금 불안해.”

유진과 달리 유성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20대의 젊은이에 불과할 뿐이다.

거대한 기업 총수의 부탁을 거절한 것이 불편한 것이 당연했다.

“걱정하지 마. 정말 필요하다면 다시 찾아올 테니까. 조금 전에 왔던 친구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일개 직원 같더라고. 그래서야 은혜를 베풀고도 아무 대가도 받을 수 없지.”

“은혜씩이나······.”

유성이 어색하게 웃었다.

“여하튼 신경 쓸 거 없어.”

“그래, 그건 그렇고 별나네. 대기업 회장이면 꼭 이런 방에서 자야 한다는 거야? 그걸 위해서 직원들이 구걸하러 돌아다니고?”

“뭐, 꼭 허식이라기보다는 보안상 이유 같은 것도 있으니까.”

하지만 유진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유진이 장년을 지나 알게 된 지인은 다산자동차 미주 본부의 뉴욕 지사에 근무하다 지사장까지 올라갔던 사실을 자랑스레 떠들고 다니고는 했었다.

그 친구가 뉴욕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눌러앉은 데에는 유진으로서도 꽤 공감이 가는 면이 있어서 가까이 지냈던 기억이 난다.

어쩐 일인지 과거로 돌아오기 전 유진의 주변에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서로 공유하고 있는 아픔 때문에 상대를 좀 더 쉽게 받아들였기 때문인 모양이다.

그 나이대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그 친구는 때때로 자신이 다산자동차에 근무하면서 있었던 일을 꽤나 자세하게 풀어내고는 했다.

* * *

“다산자동차뿐 아니라 한국 대기업의 해외 지사 사람들이 제일 신경 써야 하는 업무가 뭔지 알아?”

친구는 어느 땐가 그렇게 말을 꺼냈다.

“딴 게 아니고, 한국에서 오는 VIP들 영접하는 일이야. 특히 회장님이나 그 가족분들이 들르기라도 한다고 연락이 오면 아주 난리가 났다니까. 특히 회장님 순방 같은 경우는 말도 못 해. 보통 오시기 한 달 정도 전에 미리 알려 주니까, 그때부터 비상이 걸리는 거지.”

그는 상상만으로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면 보통 3대 호텔 프레지던트 룸에 방문하시기 1주일 전부터 우리가 맡아. 그리고 회장님 오실 때까지 그 방을 전부 회장님 취향대로 꾸미는 거지. 그동안 다른 팀에서는 회장님 취향에 맞는 식당들을 섭외하고, 회장님이 관심을 가지실 만한 관광거리라든지, 지역 정보라든지, 여하튼 무지막지할 정도로 정보를 취합하는 거야. 회장님이 저게 뭐지? 한마디만 하면 그거에 대해 바로 대답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그는 VIP 방문 때문에 일어나는 소동을 한참을 지껄였다.

언제나 유별난 것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래도 우리는 나은 편이야. 제일 그룹 같은 경우는 해당 지역 지사 인력으로 부족해 아르바이트를 20명 정도 고용하고는 한다더군. 단순히 정보 수준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저명 인사라든지, 역사 같은 것까지 꼼꼼하게 챙겨야 했어. 다들 알잖아? 제일 그룹이 얼마나 철두철미한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거기서 하는 게 고과에 엄청나게 반영되니까 죽을 각오를 하고 준비를 하는 거야.”

대체 그런 준비를 하는 동안 지사의 업무는 누가 보냐는 말에, 다들 하다 보면 하게 된다며 웃었다.

“그리고 식당 같은 경우는 보통 10배수로 예약을 해. 열 곳 중에서 그날 기분에 따라 한 곳으로 가는 거지. 나머지 9개? 그거야 당연히 전세를 냈으니 비용 지불하고 끝이지. 우리 같은 경우는 수행하지 않는 직원들이 원하는 식당으로 가서 대신 먹어치우기도 했어. 어차피 돈은 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런 행위가 절대 안 되는 기업도 있다더라고.”

슬슬 이야기가 길어지고 있었지만, 다들 그러려니 들어 주었다.

“그런데 말이야. 한 20년쯤 전이었나? 그때는 참 난감한 요구를 받았어. VIP가 온다고 최고급 호텔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당장 구하래. 마침 뉴욕에서 국제회의가 하나 열리고 있어서 그 급 호텔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지. 그러다가 다행히 한 곳에 비어 있어 구할 수 있었는데, 거기 묵으러 온 사람은 VIP도 VIP 가족도 아니더군. 웬 머리 벗겨진 중국 사람이었지. 알고 보니 중국 고위층인 모양이던데, 그쪽 체면을 살려 주려면 최소 3대 호텔 프레지던트 스위트가 필요했다더군.”

* * *

그 친구가 그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한 것 때문에 유진은 그 일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하필 유진이 하루 25,000달러짜리 사치스러운 방을 택한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유진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벨이 다시 울렸다.

“어떻게 할까요? 보스?”

존이 물었다. 바로 쫓아낼까 하는 질문이다.

“우선 열어 봐요. 같은 사람이면 쫓아내고, 다른 사람이라면 들여보내도 좋아요.”

존이 현관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두 사내가 서 있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고, 좀 더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다.

“다산자동차?”

존이 물었다.

“다산자동차 미주 사업본부에서 나온 장현수라고 전해 주세요.”

정중하면서도 힘 있는 말투로 한 사내가 말했다.

“들어오세요.”

여전히 응접실 소파에 앉은 채 유진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앉으세요.”

성큼성큼 걸어온 두 사내가 유진의 허락을 받고, 소파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다산자동차 미주 사업본부 장현수 부장입니다. 강유진 씨 되시죠?”

상대는 그동안 이 방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알아낸 모양이다.

“반갑습니다. 장현수 부장님. 어떻게 절 알고 계시는 모양이네요.”

“네. 사실은 SNS에서 확인했습니다.”

사내가 살짝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아! 그렇군요. 그걸 잊고 있었네. 그런데 아까도 여기는 내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로서도 아주 큰맘 먹고 온 거라. 꽤나 의미 있는 행사거든요. 저한테는.”

“꼭 필요한 사정이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회장님께서 묵으셔야 한다고요? 아무리 회장님이라고 해도 이건 좀 실례 같군요.”

“사실은 사정이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미국 시찰에 나오신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 여길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은 아닙니다.”

남자는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군요.”

유진은 관심이 없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했다.

“보안상의 문제로 전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의전 차원의 문제는 아닙니다. 이번 한 번 양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흐음, 의전 차원은 아니다······. 뭐. 보안상의 문제라니 깊게 물어보는 건 실례겠네요.”

“사실은 여기서 아주 중요한 상담이 열릴 예정입니다. 이번 상담은 우리 다산자동차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칠 사안입니다.”

그때까지 묵묵하게 있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아! 그쪽 분은?”

“다산자동차 미주 본부 김철호 부사장입니다.”

이제 겨우 마흔도 안 되었을 사내는 대기업에서 거의 꼭대기 수준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게 의미하는 것은······.

“그러고 보니 다산 회장님의 셋째 아드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유진은 그제야 알아본 양 인사를 했다.

“네, 뭐. 반갑습니다.”

딱히 반갑지 않은 표정으로 부사장이 어색하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럼 여기서 중요한 회의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네. 이번 회담이 무척 중요합니다. 우리 쪽에서 상대의 체면을 살려 줘야 하기 때문이죠.”

“부사장님······.”

부장이 조금 당황한 얼굴로 부사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부사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유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불편하시더라도 양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대신 저희가 적당한 사례를 하지요.”

어쩐 일인지 상당히 절박해 보이는 태도였다.

“부사장님이나 되시는 분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데, 그깟 양보 정도야 해 드릴 수 있죠.”

유진이 태도를 싹 바꾸며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부사장의 얼굴이 한순간에 활짝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협상 같은 것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하며 유진이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런데 체면을 살려 줘야 한다는 걸 보니 중국 사람인 모양이네요.”

유진의 말에 부사장도 부장도 얼굴이 해쓱해진다.

“그쪽 사람들 체면에 목매는 거야 유명하지 않습니까. 저도 상사 근무를 하면서 그쪽 사람들 대접을 몇 번 해 봤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체면과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아, 유진 씨가 명성상사에서 프로젝트 오거나이징 본부에 있었다고 했죠?”

우선 양보를 받았으니 한결 편해진 얼굴로 부사장이 말했다.

더군다나 자신이 부사장이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승낙을 하니 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것까지 알아보셨습니까? 역시 대단하네요.”

“그런 거라면 명성도 기본 아닙니까? 프로젝트 오거나이징이라면 파이낸싱이나 건설보다 현지 정보와 인맥이 먼저겠지요?”

부장이 대꾸했다.

“네. 현지에 가서 그쪽 사람들과 교감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 수집이 우선되어야겠지요.”

“그렇군요. 듣기로 유진 씨가 꽤 유능한 인재였다고 들었습니다.”

방을 양보받기 위해서인지, 부장은 자신보다 새파랗게 젊은 남자에게 아부를 서슴지 않았다.

“유능은요. 뭐 그래도 자랑은 아니지만, 인맥 관리 하나는 잘했습니다. 사실 중국에서 사업 진행을 하며 쌓아 두었던 인맥들과는 아직도 연락하고 있습니다.”

“대단하네요. 명성 상사에서 중국 관련 프로젝트라면 역시 상하이 센터 금융 DB 건이겠죠? 히타치 컨소시엄을 물리치고 그걸 따낸 것은 정말 유쾌한 사건이었어요.”

“알고 계시네요. 하하. 참! 제 지인 중 하나가 그러던데, 이번에 상하이시 당서기 류샤오쥔이 베이징에 올라간 지 사흘째 되었는데, 연락이 두절이라더군요.”

유진이 지나가듯 한마디 흘렸다.

“네?”

그의 말에 부사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린다.

“아니, 왜 그러시죠?”

유진이 천연덕스레 물었다.

“아뇨······. 그 이야기가 사실입니까?”

부사장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어 왔다.

“100% 확실하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만······.”

유성은 자신의 말에 확신을 주지 않는다.

“저희 쪽에서 알기로는 중난하이에서 회의가 길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부사장이 다시 한번 확인하려 했다.

“그런가요? 제가 들은 이야기랑은 조금 다르네요. 뭐, 제가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네요. 참! 언제까지 비워 드려야하지요?”

유진은 별 것 아닌 이야기라는 태도로 화제를 바꿨다.

“오후 2시까지만 비워 주시면 됩니다. 그때까지 저희가 다른 호텔을 섭외해 놓겠습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만족하실 곳으로······.”

부장이 이때다 싶어 재빨리 말했다.

“잠깐. 잠깐만. 아까 그 류샤오쥔 서기 이야기 좀 들어 봅시다.”

하지만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부사장이 물어 왔다.

“뭐, 듣기로는 류샤오쥔이 주석한테 뭔가 잘못 보인 게 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유진이 말을 흐린다.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요. 류샤오쥔이라면 주석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사람 아닌가요?”

“이제 겨우 집권 2년 차인 주석에게 후계자로 거론되는 사람은 사실상 라이벌 아닌가요?”

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부사장은 대답 대신 생각에 잠겼다.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유진은 여전히 흘리는 듯한 말투였다.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들으셨나요?”

“그거야 제가 밝힐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신문에서 보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중난하이에서 전격적으로 상하이시 서기장 경질이라는 기사가 얼마 뒤에 신문 단신 정도로 나올 것이다.

물론 중국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야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이야기이지만, 관련된 업무를 보는 사람들에게야 천금 같은 정보이다.

그리고 마침 유진은 그 정보를 팔 만한 적당한 곳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만나실 분이 류샤오쥔 서기와 관련된 인사인 모양이군요.”

유진은 그제서야 뭔가 감을 잡았다는 듯 말했다.

“아, 그건······.”

김 부사장이 말을 흐린다.

옆에 있는 부장의 표정을 보니 부장은 그쪽과는 상관없는 모양이다.

“좀 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부사장은 아무래도 유성의 말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다.

“흐음, 아무래도 제가 지닌 정보의 가치가 이런 호텔 방을 비워 드리는 정도와는 비할 수도 없을 거 같네요.”

“우리한테 도움이 되는 정보라면, 그에 대한 대가는 지불하겠습니다.”

“대가라······ 좋습니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우선 제가 들은 이야기만 말씀드리지요.”

유진은 조건을 거론하지도 않고 풀어놓았다.

“제 지인의 말로는 지금 국가안전부 안가에서 보호 중이라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주 안으로 결과가 날 모양입니다. 아마도 좋지 않은 쪽으로요.”

“그게 확실한 건가요?”

부사장의 얼굴은 조금 심각한 표정이다.

“확실하냐고 하면 대답을 드리기 어렵군요. 하지만 지금 다산이 누구랑 어떤 협상 중인지 몰라도, 저라면 조금 시간을 지연시켜 볼 것 같아요.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상하이 부부가오 치처가 독이 될지?”

‘상하이 부부가오 치처’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부사장은 그 어느 때보다 굳은 표정으로 유진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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