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8. 트럼프 타워
“트럼프 가문?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유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도날드 트럼프라는 사람이 있어. 부동산 사업가인데 셀레브리티로 더 유명하지. 어프렌티스라는 TV쇼 진행자로, 미국인들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야.”
“사업하는 사람이 TV쇼 진행을 해? 미국은 재미있네.”
“미국이 재미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재미있는 사람이야. 한시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참지 못하는 사람이야.”
“관종이네.”
“그치.”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슬쩍 웃고 말았다. 한 관종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는 왜?”
“부동산 좀 보려고. 앞으로 뉴욕에 올 일이 많은데, 올 때마다 호텔에 묵을 수야 없잖아.”
“그건 그렇지. 호텔비도 아깝고 말이야. 언제까지 다산에서 호텔을 제공받을 수도 없는 일이고······.”
빌딩에 들어선 유진은 로비에서 빌딩의 관리자를 만났다.
“어서 오세요.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앤서니입니다.”
“예. 유진입니다.”
“팰리스 호텔 측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콘도를 보고 싶다고 하셨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유진은 부동산 에이전시가 아니라 이 건물의 관리를 맡고 있는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에 연락을 넣었다.
그것도 팰리스 호텔 스위트룸의 버틀러를 통해 연락을 취했으니, 상대도 유진이 이 멋진 빌딩의 주민이 될 정도의 재력이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트럼프 타워는 처음 와 보는군요. 굉장히 화려하네요.”
“6층까지는 럭셔리 브랜드가 입점한 쇼핑몰입니다. 19층까지는 오피스, 그리고 위쪽이 콘도입니다.”
“밑에 쇼핑몰이 있으면 편하겠네.”
아직까지 그저 평범한 아파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유성이었다.
“어? 무슨 아파트가 이렇게 크고 화려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62층에 내려 직원을 따라 집을 본 유성은 혀를 내둘렀다.
거대한 응접실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있다.
“6,100스퀘어 피트 면적에 모두 5개의 침실이 있습니다.”
“6,100스퀘어 피트면······.”
공학도인 유성이 손가락으로 꼽아 가며 계산을 해 본다.
“566제곱미터네. 평수로 하면 170평 정도지? 지금 우리 묶는 호텔보다 20%쯤 큰 거네.”
“그 정도로는 안 보이는데?”
“실평수가 얼마인지 모르니까. 그래도 크기는 크다.”
직원이 다시 설명을 이어 갔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센트럴 파크를 내려다보는 이 멋진 거실이지요.”
“63층에서 내려보는 센트럴 파크는 멋지군요.”
“그렇죠? 저희 회장님의 절친인 마이클 잭슨도 한때 이곳에 거주했었습니다.”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이 살던 집이라고?”
트럼프는 모르지만, 마이클 잭슨은 모를 수 없는 유성은 더욱 놀랐다.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회장분 일가의 저택도 여기라고 했죠?”
“맞습니다. 바로 위층에서 3층을 전부 사용하고 계십니다. 회장님의 많은 부동산 중에서도 특히 마음에 드는 곳이라 거의 이곳에 머물고 계십니다.”
이곳 트럼프 타워에 대한 트럼프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에 온통 황금색으로 꾸며 놓고, 심지어 진짜 황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가구와 소품들을 장식해 놓았다.
아마도 트럼프는 황제를 꿈꾸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여기 살면 이웃사촌이 되겠네요.”
“물론이죠. 회장님뿐 아니라 스필버그 감독의 뉴욕 자택도 이 아래층에 있습니다.”
직원이 뿌듯해하며 손가락으로 밑을 가리켰다.
“우와! 엄청나잖아? 스필버그?”
“힐러리 클린턴 여사가 뉴욕에 머물 때면 스필버그 감독의 유닛에서 머물고는 하셨죠. 아! 브루스 윌리스의 자택도 있습니다.”
유성의 반응을 보고 유명 인사에 반응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직원이 이 건물을 구매한 유명 인사들을 줄줄 내뱉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곳 트럼프 타워는 한때 뉴욕에서 가장 핫한 고급 아파트였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최근 신축 중인 건물에 비하면 살짝 밀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언제부터 사용할 수 있을까요?”
“지금 비어 있으니 당장이라도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수리할 곳은 없고요?”
“저희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에서 관리를 맡아 항상 신경 쓰는 곳입니다.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그건 좋네. 어차피 호텔도 나와야 하잖아?”
새 호텔을 잡았을 때 나갈 비용을 계산해 보고 유성이 말했다.
“가격은 2,800만 달러입니다. 필요하시다면 다운페이 10%에 모기지를 제공할 은행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월 지불할 모기지는 대략 16만 달러 수준입니다.”
“2,800만 달러? 별거······ 아니, 엄청 비싸······. 아, 모르겠다. 그런데 사려고?”
“생각 좀 해 보고.”
“그런데 다운 페이는 또 뭐야?”
유성의 질문에 유진이 웃으며 답했다.
“미국에서 집을 살 때 일정 부분만 미리 지불하고, 나머지는 매달 얼마씩 내는 거야. 10%면 280만 달러를 내고 한 달에 16만 달러를 내면 되는 거지. 아! 세금은 별도야.”
“주택 융자네. 이런 고급 아파트도 그렇게 사는구나?”
“뭐, 당연하지 않겠어? 그러면 렌트는요? 잠깐 살아 보고 결정을 하는 쪽도 나쁘지는 않겠는데.”
“렌트의 경우 월 15만 달러에, 관리비가 1만 5천 달러입니다. 1년분을 미리 지불하시면 10%를 할인해 드리지요.”
“흐음······.”
유진은 고민에 빠진 척 잠시 말없이 있었다.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혹시 가격이 문제라면 약간의 융통성을 보여드릴 수는 있습니다.”
“1년 일시불이라면 얼마라 했죠?”
“15만 달러에 관리비 1만 5,000달러. 12개월이면 198만 달러에, 10% 디스카운트를 하면 178만 2,000달러입니다.”
“월세 15만 달러에 관리비까지 1만 5,000이면 좀 과한 것 같은데?”
유성이 딴지를 걸었다. 딱히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면이 좀 있지.”
유진은 다시 집안을 건성으로 둘러보았다.
“관리비라면 조금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관리비보다는 월세 쪽이 문제인 것 같군요. 솔직히 트럼프 타워가 요즘 새로 신축 중인 콘도에 비하면 낡은 면이 있지 않아요?”
“흐음······ 약간의 조정은 가능하겠지만······.”
“이번에 새로 신축한 원57 비슷한 사이즈가 12만 달러 내외던데.”
“렌트비는 저희 쪽 관할이 아니라 이 유닛의 소유자분과 협의를 해야 합니다.”
“알겠어요. 그럼 최대한 얼마까지 가능한지 알아봐 주세요.”
잠시 후, 전화로 협의를 마친 직원이 14만까지 가능하다고 알려 주었다.
관리비도 1만 4천으로 내려갔다.
“그러면 판매는 얼마까지 되죠?”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직원이 다시 주인과 통화를 하고 온다.
그렇게 몇 번의 협상이 끝나고 나서도 유진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원57과 비교를 다시 해 봐야겠어요.”
“만족하실 만한 가격을 다시 한번 타진하겠습니다.”
판매 가격보다 판매 수수료가 중요한 직원 입장에서는 이 거래를 꼭 성사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뉴욕의 고급 아파트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었지만, 트럼프 타워처럼 낡은 건물이라면 조금 문제가 다르다.
하루 25,000달러짜리 호텔에 묵고 있는 VIP만큼 통 큰 고객이 자주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정말 여기 살 거야?”
트럼프 타워에서 나오며 유성이 물었다.
“네 생각에는 어떤데?”
“음······. 지금 있는 호텔 가격을 생각하면 확실히 싸게 먹히겠다. 근데 월세가 2억에 사는 건 300억 원이면······ 어휴! 근데 매입할 거야? 아니면 월세?”
“아마도 매입이 싸게 먹히지 않을까 싶어.”
“1년에 월세가 20억 원이면 크긴 크다. 그래도 300억 원짜리 아파트라니······ 한국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가 얼마더라?”
“글쎄? 한 50억쯤 되려나?”
“뭐. 여긴 뉴욕이니까. 그래도 300억······. 아아, 역시 감이 안 잡혀.”
“좀 비싼 면이 없지는 않아. 그래도 당분간 뉴욕의 아파트 가격은 계속 치솟을 거라고 하더라고. 지금 사놓으면 어지간하면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아.”
물론 이 트럼프 타워만은 예외다.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 나서며 잔뜩 어그로를 끌어 버린 덕분인지, 아니면 트럼프 때문에 이 아파트를 드나들기 불편해진 덕분인지, 오직 이 아파트 가격만 뒤로 후퇴해 버릴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 아래층이라는 메리트가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이 점이다.
“트럼프라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해?”
“어느 면에서고 대단한 사람인 것은 맞지.”
유진은 동생이 이해하기 힘든 미소를 짓고 있었다.
트럼프 타워의 저택을 매입하기 위해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유진과 유성은 블랙록에서 자산이 투자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주식과 인덱스 펀드, 혼합형 펀드에 투자된 금액은 일단 매수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선물은 그렇지 않았다.
주식과 달리 가격의 오름과 내림 양방향으로 투자를 할 수 있으니,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유진은 그런 판단을 자신이 내리는 대신, 블랙록의 경험 많은 딜러들에게 위임했다.
그리고 형제는 블랙록에서 제공한 사무실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관찰할 수 있었다.
물론 호텔에서 노트북으로 확인해도 되지만, 기왕이면 전문가들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다시 추가 주문을 내릴 생각이었다.
“종일 들여다보고 있으니 정신이 없다.”
오일 가격은 106달러를 기준으로 하루에도 몇 달러씩 오르내렸다.
매니저들은 적당한 시점에 롱 포지션을 잡거나, 혹은 숏을 선택하기도 했다.
유진이 딱히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진의 포지션은 하루에 수십만 달러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했다.
유성은 유가 선물 차트 사진 한 장을 포스팅했다.
#오일 선물 #옵션 #1억 달러
#블랙록 #윌리엄 윤
- 이형 선물한댄다! 미친 모양이다.
- 그러게? 전문가도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게 선물인데.
- 자기가 뭘 안다고 선물이래? 파생 한 방 잘못 맞으면 골로 간다.
- 2억이 아니라 20억도 하룻밤에 사라지는 게 파생임.
- 닉 리슨이 베어링 은행 말아먹은 것도 선물이지.
- 닉 리슨은 선물이 아니라 옵션임.
- 선물이 맞음.
“풉! 또 싸운다.”
댓글을 읽던 유성이 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아는 게 나오면 참을 수가 없나 봐.”
“그거야 인간의 본성이지.”
“그러려나······.”
- 이 형 오래 보고 싶은데. 안타깝다.
- 그냥 안전 자산에 넣어 두지.
- 오빠 멋있어요. 연락 좀 주세요!!
- 선물 같이 위험한 파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님.
- 뭐 어떰. 나 같아도 공돈 생기면 한 번 해보겠음. 복불복아님?
- 그러다가 한 방에 가지.
- 잘 가라!
“대체로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데?”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파생 상품에 대해서 도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내가 봐도 그렇더라. 형처럼 레버리지 없이 하는 거야 주식이나 큰 차이를 모르겠는데, 레버리지를 마음대로 늘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위험 같아. 솔직히 나도 고 레버리지라면 도박이랑 다른 게 뭔지 모르겠어.”
“맞아. 거대한 도박판. 이곳 월 스트리트······ 아니, 현대의 투자 금융계라는 것이 말이야. 선물 같은 경우는 1대1로 다투는 포커 같은 거고, 옵션은 몇십 분의 1에서 크게는 몇천 분의 1 이상을 노리니까 룰렛이나 스포츠 토토 같은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듣고 보니 그러네.”
“그나마 다른 도박에 비하면 공정하고, 수수료도 적은 편이지. 복권이나 토토 같은 경우는 적어도 50% 이상을 떼어 가고, 거기에 세금까지 붙잖아?”
“하기는······.”
선물이나 옵션이 처음에는 위기 상황을 헷징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결과적으로 돈 놓고 돈 먹는 도박판과 다름없었다.
“아아······ 내가 이런 엄청난 카지노에 오게 될 줄은 몰랐어.”
유성은 이제 블랙록을 세계에서 가장 큰 카지노 정도로 생각하기로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결과를 알고 있다면 도박이라기보다 그냥 앉아서 돈 먹기에 불과했다.
그것도 한번 시작하면 무지막지하게 불어나는 돈 굴리기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