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0화 (20/363)

#19

#19. 헷징

그러는 가운데 트럼프 오가니제이션과의 협상이 끝났다.

“2,350만 달러가 최종 제시 가격입니다.”

며칠 동안 줄다리기를 한 끝에 450만 달러가 떨어졌다.

렌트비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는데, 판매가는 많이 떨어졌다.

주인이 팔 의사가 높다는 말이다.

“대단하네······. 50억을 깎은 거야?”

유성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깎였다고 생각했다.

“뭐. 생각만큼 많이 깎은 건 아냐. 사실 뉴욕이나 LA의 고가 저택이 대부분 그래. 고가 주택일수록 수요자가 한정적이고, 시장에 내놓아도 1, 2년이 지날 동안 나가지 않는 경우도 흔하거든. 20%가 아니라 절반 가까이 떨어지기도 한다고. 심지어 1/3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

유진은 호날두가 내년에 이 트럼프 타워 집 하나를 2,000만 달러에 샀다가, 트럼프가 퇴임한 이후 팔려고 내놓았지만 좀처럼 나가지 않아 절반이나 손해 보고 팔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도 유진은 상관없었다.

내년에 트럼프가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는 오히려 아파트 가격은 오를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가격이 떨어져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뉴욕에 머무는 동안 살 집이 필요했고, 비슷한 크기의 다른 집은 더 비쌌다.

결국 유진은 그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아니, 처음부터 결정은 나 있었다.

“윌리엄. 이번에 집 한 채 사려고 하는데, 어디 모기지 좀 괜찮게 받을 만한 곳이 있을까요? 아직 영주권이 나오지 않아서 내국인을 위한 모기지를 받을 수 없다네요.”

“그렇겠군요. 외국인의 경우라면 다운 페이가 40%까지 올라가지요?”

“그런 모양이에요. 근데 집값이 좀 비싸서 40%나 주기 그렇거든요.”

“얼마짜리 집을 보셨는데요?”

윌리엄이 웃으며 물었다.

“처음에는 2,800을 불렀는데, 지금은 2,350까지 떨어졌어요.”

“휘유! 그 정도면 맨해튼에서도 흔치 않은 물건이겠네요. 보자, 원57?”

한창 원57이라는 신축 맨션이 뉴요커들 사이에 회자될 무렵이다.

하지만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트럼프 타워에요.”

“아하! 근데 거기 조금 낡지 않았어요?”

“그래도 내부는 깨끗하더군요. 뭐, 맨해튼에는 100년 넘은 저택도 흔하지 않나요?”

“그렇기는 하죠. 알았습니다. 제가 한 번 알아보죠.”

겨우 하루 만에 윌리엄은 다운 페이 20%까지 가능한 은행을 소개시켜 주었다.

2억 달러나 되는 거액의 자산을 블랙록에 유치해 놓은 덕분이리라.

“그런데 왜 중국계 은행이야?”

유성이 슬쩍 물어본다. 이번 다산자동차 사건으로 중국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진 모양이다.

“지금 중국은 자본이 넘쳐나고 있거든. 그리고 정책적으로 해외 영업을 늘리려 하고 있어. 그래서 일반 은행이라면 잘 해 주지 않는 대출도 꽤 잘 나오는 편이야. 그리고 꽌시라는 게 있어서, 인맥이 있다면 안 될 일도 되는 편이고.”

“문제는 없는 거지?”

“당연하지. 세계 금융의 수도에서 영업하면서 엉뚱한 짓을 할 만큼 간이 튀어나오지는 않았을 거야.”

“그럼 앞으로 20년 동안 매달 13만 달러를 내는 건가? 결국 세금에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1년에 200만 달러라니······. 1년마다 강남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네······.”

“그렇게 말하니 굉장히 커 보이네. 하하.”

그래 봐야 유진이 보유한 자산의 1%밖에 되지 않는 푼돈이다.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에서 취급하고 있는 부동산의 리스트를 한번 보고 싶군요. 이런 멋진 물건이 있다면 더 구매할 의사가 있습니다. 물론 주택 말고 다른 부동산도 좋구요.”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나서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직원에게 요청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보유 중인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겠습니다.”

부동산을 더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말하니, 얼굴에 화색이 돈다.

이렇게 트럼프 일가에 대한 첫 번째 포석이 놓여졌다.

이제 반응을 기다리면 된다.

그렇게 계약을 마치고 며칠 뒤, 형제는 트럼프 타워로 이사했다.

어차피 짐도 없으니 딱히 이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유성은 집안 곳곳을 열심히 촬영했고, 그날 오후 바로 사진을 포스팅했다.

#트럼프타워 #센트럴파크 #생애첫주택

“이 정도면 될까?”

유성이 화려한 집안 내부와 테라스에서 센트럴파크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형의 사진까지 올린 뒤 태그를 써넣고 물었다.

“수고했다. 근데 진짜로 거만하게 나왔네.”

그런 의도이기는 했지만, 베벌리힐스에서 사 온 브리오니 정장을 걸치고 위스키 잔을 들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며 유진은 어쩐지 조금 오글거린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올린 포스팅은 벌써 커뮤니티로 잔뜩 퍼져 나갔어.”

“그럴 테지.”

“다들 부러운가 봐. 벌써 이런 고급 저택이 얼마나 비싼지 알아본 모양이야. 한국 재벌도 못사는 비싼 집을 샀다고 욕들이 장난 아니다. 크크.”

이젠 제법 악플에 익숙해졌는지, 유성은 웃으며 자신이 보고 있던 게시물을 보여 주었다.

- 로또 한 번 맞았다고 재벌 흉내냐?

- 보통 생각지 못한 큰돈이 들어오면 저렇게 흥청대다가 거지되더라고.

- 저건 잘한 일인 듯. 뉴욕 부동산 오름세가 심상치 않음. 몇 년 뒤에는 두 배가 될 수도 있음.

- 하긴. 한국이나 미국이나 부동산 투기가 제일이지. 잘 생각했네.

그런 게시물 가운데, 언제부터인가 꼭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글이 있었다.

- 쓰레기 같은 인간이네. 약혼녀를 버리고 혼자 흥청거린다 이거지?

- 나쁜 놈이야.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워.

- 어떻게 결혼 하루 전에 그럴 수 있지?

그리고 한 번 그런 글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줄줄이 댓글이 달린다.

“이거 계속 그냥 놔둬? 난 아무래도 이상해. 그때 형이 말한 그런 홍보대행사 같은 곳에서 올리는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신경 쓸 필요 없어.”

- 나 이 사람 전 약혼자랑 같은 회사 다니는데, 그 여자 지금 임신한 상태래.

- 진짜? 진짜 쓰레기네.

- 그런 경우 소송 걸어서 위자료랑 양육비랑 두둑하게 받아 내면 됨.

- 그러게?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 그런데 임신한 여자랑 파혼한 이유가 뭘까?

- 뭔가 있는 거 아니야?

- 사생활은 알 수 없는 거 아님?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은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유진에 대한 욕이 많기는 했지만, 그를 지지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게 홍보 회사에서 올리는 글 같다.”

유성은 끈질기게 형의 편을 들어 주거나 중립적인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형이 고용한 홍보 회사 직원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뭐, 아무렴 어때.”

하지만 유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지금 욕을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폭탄이 터졌을 때의 반작용 또한 클 것이 틀림없으니까.

물론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특히 남자와 여자 문제로 다툼이 생길 경우, 무조건 한쪽 성별의 편만을 드는 일도 종종 벌어지고는 한다.

남자가 무고한 누명에서 벗어나도, 상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자고 남자 욕을 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하지만 그건 앞으로 5년쯤 뒤에나 벌어질 일이다.

아직은 당사자의 성별보다는 얼마나 정당한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일 때이다.

새집으로 이사한 주에도 형제는 매일 블랙록으로 출퇴근했다.

“리포트를 보니 셰일 석유의 생산량이 굉장히 늘었는데, 수요는 줄고 있네요.”

하루에도 몇 번씩 윌리엄 윤과 함께 오일 시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면이 없지 않죠. 셰일 석유의 증가량만큼의 수요가 창출되기는 어려우니까요. 더군다나 글로벌 경기 자체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고요.”

이미 월 스트리트에서도 석유 가격은 충분히 올랐다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때문인지 선물 가격은 이 시점의 유가보다는 몇 달러 정도 아래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방향을 정한다면 역시 숏이겠네요?”

유성이 윌리엄에게 선물의 방향에 대해 물었다.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유가라는 것이 여러 정황에 따라 급변하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특히 이라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으니까요. IS들이 얼마 전에는 이슬람 국가라 선포하고 남하 중인데, 유전을 점령하고 또 불태우기라도 한다면 하루아침에 급등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윌리엄은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유진의 선물을 맡은 블랙록의 딜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포지션을 바꿔가며 약간의 수익을 내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했다.

“좋아요. 그럼 오늘은 숏 포지션으로 1,000계약을 매수하겠습니다.”

더 이상 블랙록 딜러들에게 맡겨 놓을 이유가 없었다.

시황도 볼 만큼 봤고,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도 될 거 같았다.

“1,000계약이면 백만 배럴이지? 시가로 대략 1억 달러어치나 되네.”

이제 선물의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 숙지한 유성은 금세 계산을 끝냈다.

“여기서 선물 가격이 1달러 떨어지면 100만 달러의 수익이네. 반대로 1달러가 오르면 100만 달러 손해고. 하루에 많으면 3, 4달러가 오르내리니까, 형 자산 수백만 달러가 오르거나 떨어진다 생각하니까 무시무시하네. 이제는 진짜 도박이라는 실감이 확 온다.”

“아직은 아냐. 우리는 아직 레버리지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유가 선물은 평균 15배에서 20배 정도의 레버리지를 사용하지.”

“20배? 미쳤네······. 그럼 5%만 잘못 잡아도 원금이 날아가는 거잖아?”

“오일은 그나마 적은 편이야. 금 선물은 통상 30배에 가까운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엔화 선물은 35배 정도라더라.”

“간도 큰 사람들이다.”

“도박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하는 거니까.”

유진의 경우라면 도박이 아니라 일방적인 돈 불리기라는 점이 다르겠지만.

“이번 주에는 1,000개를 더 늘리지요.”

돌아오는 월요일, 다시 블랙록에 출근한 유진은 본격적으로 레이스의 시작을 알렸다.

이제 레버리지 2배이다.

“와! 2억 달러라고? 나 심장이 떨려서 못 보겠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성의 눈은 모니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정 보기 어려우면 나가 있어.”

“아니. 그냥 지켜볼래.”

세상에서 가장 중독성 있는 것이 마약 다음으로 도박이라고 했던가?

유진 역시 자신의 선택이 맞았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하루 중 가격이 올라갈 때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제 5,000개까지 늘리겠습니다.”

그 주 수요일, 유진은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윽! 진짜?”

유성은 형이 하는 행동이 두렵기만 한 모양이다.

“레버리지가 5배라고······ 선물 가격이 1달러 오를 때마다 500만 달러 손해야······.”

울상이 되어버린 유성이 말했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손실 회피 심리(Loss Aversion)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이익보다 손해에 민감하기에, 이익을 볼 기회가 있어도 손실에 대한 우려가 우선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손실 회피에 대한 반응은 도박과 비슷한 주식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개미라고 불리우는 개인투자자들이 이익 실현에 실패하는 것은 손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보유한 주식이 조금만 올라도 떨어질까 두려워 팔아 버려 쥐꼬리만 한 수익을 얻는다.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쉽게 손절하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다가 손해를 잔뜩 키운다.

레버리지 다섯 배라는 말에 다섯 배의 이익보다, 다섯 배의 손실부터 머리에 떠올린 유성이 별난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면 준수하다고 봐도 돼. 오일 선물은 개별 주식에 비하면 훨씬 더 작은 폭으로 움직이니까.”

“그······렇구나.”

여전히 유성은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풋옵션을 매입하겠습니다. 우선은 시장에 나오는 풋은 최대한 매수해 주세요.”

“으음······.”

좀처럼 유진의 투자에 토를 달지 않던 윌리엄이 살짝 얼굴을 굳혔다.

“유가 하락에 확신을 가지신 모양이시군요?”

“네. 감이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그 녀석 요즘 하는 행동들이 영 꺼림칙하구나.”

“네. 뭔가 투자를 하는 것 같은데, 그걸 계속 SNS에 올리더군요.”

부친의 말에 성규가 바로 답을 한다.

“아마도 그렇게 계속 이목을 모으려는 것 같은데. 그걸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혹시라도 그렇게 자랑하듯 써 놓은 투자 상품이 대박을 친다면 확실하게 이목을 모으기는 하겠지요.”

“그러면 또 재민일보에서 옳다구나 하고 기사를 내겠고?”

“그럴 요량인 듯합니다.”

“그래서 대책은 있고? 선물이니 옵션이니 하는 위험한 투자 상품도 들어간 것 같던데? 훼방이라도 놓을 방법은 있더냐?”

“선물과 옵션에 투자한다고만 했을 뿐 방향은 알 수 없으니, 당장 수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유가 선물이란 게 워낙 덩치가 커서 설혹 안다 해도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성규의 부친인 대양중공업 류근수 대표의 미간이 좁혀진다.

“그럼 그냥 녀석의 실패하기만 기다린다는 말이지?”

“달리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 무슨 방법을 간구해 보는 게 좋을 게다. 지금이야 별 대수롭지 않은 종자에 불과하지만, 놈이 다산과 붙어먹었다는 게 영 거슬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에 네 할아버지한테 한마디 들었다. 어쩌자고 다산과 틀어졌느냐고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널 부르지도 않으신다면서?”

“네. 따로 뵙지 못한 지 조금 되었습니다.”

“그 양반······ 피붙이한테도 칼 같은 분이야. 작금에 벌어지는 사태는 좁쌀 한 톨만 한 것도 전부 파악하고 계실 게다. 그리니 그 종자와 성진 정밀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류근수는 자신의 둘째 아들을 날카로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녀석이 아버님께 더는 거슬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번뜩이는 눈빛으로 성규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