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1화 (21/363)

#20

#20. 크라우드 세일

“지금 안전 자산에 넣어둔 1억 달러 상당의 펀드와 주식을 담보로 차입을 원합니다. 가능하겠죠?”

유진이 윌리엄에게 새로운 요구를 했다.

“물론 가능합니다. 어느 정도를 원하십니까?”

“최대한으로 알아봐 주세요.”

이제 본격적으로 레이스를 시작할 때가 왔다.

“그렇게 하죠.”

윌리엄이 흔쾌히 대답했다.

“최대 7,500만 달러까지 가능합니다.”

다음날, 곧바로 차입 규모가 결정되었다.

“오일 헷징 보험을 알아봐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에 차입한 7,500만 달러는 거기에 넣을 생각입니다.”

“어떤 조건으로 알아볼까요?”

“6개월 이내에 WTI 가격이 50달러 미만으로 갈 경우 권리 행사가 가능한 조건입니다.”

“50달러 미만이라······ 2008년 이후로 그렇게 떨어진 적이 없는 것은 알고 계시죠?”

“네. 보고서에서 읽어 봤습니다.”

유진은 요사이 늘 들고 다니는 블랙록에서 발행한 유가 관련 보고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국제 금융 위기 이후로 한 번도 그렇게 떨어진 적이 없더군요. 그나마도 얼마 안 가서 감산 협의로 도로 원상 복귀되었구요.”

“그리고 지금 이슬람 레반트 반군들이 일으키는 전쟁은 이라크 전쟁 못지않게 유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입니다. 이라크에서 유전 두어 개만 날아가도 유가가 치솟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 하락에 거의 전 재산을 걸겠다는 거로군요.”

“한 번 걸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요.”

“알겠습니다. 확신하고 계신다면 진행하겠습니다.”

여전히 마땅치 않은 얼굴로 윌리엄이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려 그렇게 해도 저나 블랙록에서야 조금도 손해 볼 것 없는 상황입니다. 2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의 유지에서 적지 않은 수수료를 받고, 이번에 차입하신 7,500만 달러에서도 이자 수익이 나오지요. 또 투자은행에 헷징 보험을 중계하는 수수료도 꽤 됩니다.”

윌리엄의 말이 길어졌다.

“그에 반해 유진 씨가 부담해야 하는 리스크는 적지 않습니다. 충분히 고민하셨겠지만, 조금 더 고려해 보시는 쪽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50달러는 너무 위험합니다. 70달러 수준만 되었어도······ 주제 넘는 말로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요청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고민은 충분히 해 봤습니다. 어쩌면 이번에 제게는 커다란 기회가 될 것 같군요. 생각처럼 안 되면 어쩔 수 없구요. 어쨌든 충고는 감사합니다.”

유진은 단호하게 윌리엄의 충고를 거절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투자은행들 쪽에 타진해 보겠습니다.”

여전히 찜찜한 표정으로 윌리엄이 대답했다.

“헷징 보험이 뭐야?”

그날 블랙록을 나서며 유성이 물었다.

“그것도 일종의 옵션이라고 생각하면 돼. 단지 옵션 거래 시장에 나와 있는 것과 달리 기관과 기관 사이에 계약으로 체결되는 거야. 보통 헷징이라는 것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을 의미하지. 그러니까 석유 수입 업체에서 유가가 너무 뛸 경우를 대비해서 일정 수준의 유가를 넘어서면 보험금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보험료를 내거나, 반대로 산유국에서 유가가 떨어질 때를 대비해 약간의 보험료를 내놓고, 유가가 떨어지면 보험금을 타 가는 거야.”

“산유국에서도?”

“멕시코가 그런 헷징을 잘하는 걸로 유명해. 벌써 2000년대 초반부터 장기 헷징 보험을 유지하고 있어. 2008년에 그걸로 꽤 이익을 보았을 거야.”

“그런데 형은 수입이나 수출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

“어. 그래도 상관없어. 현대 투자 금융 업계에서는 현물의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그런 식의 보험 상품을 거래해. 그것도 일종의 도박 같은 거야. 특정한 상품이 일정 가격에 다다를지 그렇지 못할지에 대해 서로 베팅을 하는 거지.”

유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걸 받아 주나?”

“유가가 당장 6개월 이내에 50달러나 떨어질 리 없다고 생각하면 적절한 수수료에 보험을 발행할 거야. 그리고 투자은행은 그 위험성을 계산해서 적절한 보험료와 보험금을 책정하겠지.”

“그럼 실제로 판매되는 상품이라는 거네?”

“어. 하지만 아무나 투자은행에 가서 보험 상품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보통은 규모가 큰 무역상이나, 산유국, 혹은 펀드에서 요구하지.”

유진이 메가밀리언 당첨금을 받자마자 블랙록으로 달려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종류의 협상에는 전문가가 따로 있는 법이고, 그런 전문가가 가장 많고 협상력이 뛰어난 데에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자산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만 한 곳이 없을 것이다.

거기다 거래의 신뢰성 면에서도 블랙록만 한 곳은 없다.

약간의 수수료를 지불하는 대가로 유진이 얻는 이득은 적지 않다.

가장 큰 것은 역시 시간이다.

만일 그가 스스로 투자 회사를 차리거나, 투자 전문가를 영입하려 했다면 적어도 몇 달은 늦춰졌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유가는 이미 완연하게 하락세를 보일 터이니, 헷징 보험을 계약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섯 곳의 투자은행과 협상을 통해 헷징 보험을 발행하기로 했습니다.”

유진은 며칠 지나지 않아 원하던 계약을 전부 맺을 수 있었다.

“JP모건 체이스, 에버코어, BNP 파리바, 도이체방크와 라자드에서 각각 1,500만 달러를 받아 주기로 했습니다. 지금부터 180일 동안 WTI 가격이 50달러 미만으로 내려갈 경우에 권리 행사가 가능합니다. 행사 기간이 짧고, 목표가가 현재가의 50% 미만인 만큼 지급되는 보험금은 보험료의 19배에서 23배까지로 체결되었습니다.”

각 투자은행마다 동일한 계산을 하지는 않았으니, 아웃풋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블랙록에서는 하나도 받아 주지 않은 게 조금 의아했다. 뭔가 위험성을 눈치챈 것일까?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생각보다 훌륭한 결과에 유진은 크게 만족했다.

“휴우······ 솔직히 시키시니 했습니다만, 각 은행들의 유가 전망으로는 당장 6개월 이내에 유가가 절반으로 떨어질 가능성을 최대 5%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윌리엄은 유진에게 헷징을 요구받았을 때보다도 더 어두운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7,500만 달러를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제 블랙록에 매일 출근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

윌리엄이 돌아간 후, 유진이 유성에게 말했다.

어차피 포지션은 그대로 유지할 터이고, 남은 것은 지켜보는 것뿐이다.

“하기는. 우리가 블랙록 사원도 아닌데.”

유진이 블랙록을 수시로 드나드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투자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려는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블랙록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블랙록 매니저들과의 친분도 깊어졌다.

이제 적절한 친분도 챙겼으니, 출퇴근하듯 드나드는 일은 그만둬도 될 것 같았다.

중요한 이벤트가 생기면 블랙록에서 알아서 연락을 줄 것이다.

“이더리움 프리 세일이 시작됐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이더리움 크라우드 세일이 시작됐다.

아직 개발이 끝나지도 않은 이더리움을 자체 페이지를 통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 판매 가격은 1비트코인당 2,000이더리움으로 정해졌어. 처음 14일 동안만 이 가격으로 하고 그 뒤로 조금씩 올라갈 예정이래. 판매 기간은 44일이고, 1인당 총 발행 수량의 12.5%까지만 구입할 수 있어.”

그동안 유진의 지시로 이더리움 판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던 유성이 상황을 알려 주었다.

“그러니까 처음 14일 안에 사야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살 수 있어. 오늘 비트코인 시세가 620달러였으니까, 1이더리움당 대략 0.31센트 수준인 셈이야. 뒤로 가면 최대 0.5달러 선까지 올라갈 수도 있어.”

“지금까지 판매량은 어떻게 돼?”

사실 이게 유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더리움 초기 가격이 굉장히 낮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 얼마나 많은 수량이 판매되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유진은 될 수 있으면 많은 수량의 이더리움을 구매할 생각이었지만, 초기 판매량이 적다면 살 수 있는 양도 한정될 것이다.

앞으로 이더리움 가격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혼자서 절반씩이나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첫날만 800만 개가 조금 안 돼.”

유성의 대답에 안심이 됐다.

100만 개만 구입할 수 있어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첫날 그 정도나 팔렸다면, 유진도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설 수 있을 터였다.

“얼마나 사들일 생각이야?”

“음······ 여유 자금 전부 다 넣을 생각도 있어.”

주식과 선물에 2억 달러를 투자하고도 아직 적지 않은 돈이 남아 있다.

유성에게는 형에게 대차한 500만 달러 중, 부친의 회사에 투자한 200만 달러를 제하고 남은 300만 달러가.

그리고 유진도 트럼프 타워에 자택을 마련하느라 적지 않은 돈을 쓰고도 대략 그 정도의 여유 자금이 있었다.

“괜찮을까? 이 큰돈을 아무도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디지털 자산에 넣어 두는 게?”

유성이 걱정스레 물었다.

당첨금을 받기 전, 가지고 있던 돈으로 소소하게 하루 몇백 달러씩 살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투자라는 건 그런 거야. 날릴 위험이 있는 만큼,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도 늘어나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지······ 알아.”

하지만 유진에게는 노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아니, 이 정도면 메가 리턴 정도 되겠다.

보수적으로 잡아도 3년 동안 3,000배에 달하는 수익이 보장된다.

좀 더 여유를 갖는다면 10,000배의 수익도 우스울 정도이다.

100만 달러가 100억 달러로 변하는 마술 같은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 우선 오늘은 1,000비트코인 어치만 매수하자.”

“어? 그럼······ 62만 달러네? 이더리움 200만 개? 이렇게 많은 이더리움을 구매해도 상관없어? 너무 소수에게 몰리는 거잖아?”

“아무 상관 없어. 어차피 코인은 소수의 고래들에 의해 좌우되는 시장이니까.”

“고래?”

“어. 주식 같은 투자 시장에서 소액으로 시장에 진입한 사람들을 개미라고 하잖아?”

“어. 무슨 개미들의 반란이니 하는 말 들어본 거 같아.”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 개미들과 비교도 되지 않는 자금을 운용하는 개인을 슈퍼 개미라고 하고. 그런데 그런 슈퍼 개미 중에서도 차원이 다른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을 고래라고 해. 꼭 개인이 아니라 기관일 수도 있고. 어쨌든 이런 고래들이 실제로 유통되는 발행량의 절반, 많을 때는 90% 이상을 소유하고 시장을 마음대로 좌우하는 거지. 고래가 가격을 올리고 싶으면 올리고, 내리고 싶으면 내릴 수 있어.”

“그러면 너무 불공정한 게임 아니야?”

“당연히 불공정하지. 만일 주식 시장에서 그런 행동을 하면 단번에 잡혀갔을 거야. 하지만 코인은 유가 증권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니 법에 저촉되지도 않아.”

“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매수해.”

“알았어.”

그날 두 형제는 각각 1백만 개의 이더리움을 손에 넣었다.

2018년 1월 기준으로 14억 달러씩 28억 달러의 가치를 지니게 될 양이다.

2021년 9월이면 거의 100억 달러에 달하는 가치가 될 것이다.

심지어 그걸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당분간 매일 그날의 판매 상황을 지켜보며 그날 팔리는 수량의 최하 10%에서 최대 30%까지 매집할 생각이야.”

“알았어. 당분간은 여기 신경 쓸게. 그런데 노트북만으로 코인을 구매하고 선물 주식 시황도 보려니 화면이 조금 답답하네.”

커다란 화면이 벽면 한쪽을 채운 블랙록에 익숙해지다 보니 노트북 화면이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럼 모니터 사지 뭐. 아니다. 컴퓨터도 몇 대 맞추는 쪽이 낫겠다. 네가 알아서 방 하나를 작업실로 꾸며.”

“어? 그럼 비용 제한 없이 사도 돼?”

“당연하지.”

“오키! 기다려 봐!”

그날 유진은 메가밀리언 당첨 이후 처음으로 동생이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며칠 뒤, 자택의 방 하나는 자산운용사 딜링룸 못지않은 멋진 작업실로 꾸며졌다.

넓은 한쪽 벽이 초대형 모니터 여섯 개로 가득 찼고, 그 옆으로는 다시 중형 모니터가 주욱 늘어서 있다.

또 네 개의 책상에 다시 멀티 모니터가 구비된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흐흐······.”

유성은 자신이 설치한 작업실을 보며 아주 흐뭇해했다.

“저 모니터는 오일 선물, 저건 인덱스 펀드, 그리고 저건 혼합형 펀드······.”

형이 투자한 상품별로 각 모니터에 나오도록 설치를 해 두어, 이 방에 들어서면 각 상품의 상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고생했다.”

“이렇게 보람 있는 일도 오랜만이야.”

역시 유성에게는 이런 종류의 일이 맞는 것 같았다.

두 형제의 일과는 이제 그 작업실을 위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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