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2화 (22/363)

#21

#21. 스노우 볼링

아침에 일어나면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작업실에 가 유가 선물 그래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선물 숏 포지션을 조금씩 늘이다 보니 이제 다섯 배의 레버리지를 사용해 5억 달러 상당의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약간의 판단 미스, 그러니까 선물 가격이 20%만 상승해도 1억 달러가 날아가 버린다.

물론 유진은 이때의 기름 가격이 110달러를 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유가와 유가 선물 사이에는 늘 약간의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유가에 비해 선물 가격이 하향 상태이지만, 어쩌면 유진이 알지 못하는 미래에 잠깐이라도 확 솟구칠 수도 있는 일이다.

예를 들면 모두가 걱정하듯 이슬람 국가라는 당치도 않은 테러리스트들이 유전에 불을 지른다거나······.

유진이 알기로는 놈들도 유전을 자신들의 군자금을 채우기 위한 수단처럼 생각했지, 마구 파괴하고 다니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알고 있는 바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기억은 조금은 틀렸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작업실에 가 유가 선물 그래프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여기서 실패해서 1억 달러를 날린다고 해도, 유진에게는 지금 열심히 매입 중인 코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유진에게는 자금이 필요했다.

내년, 적어도 그다음 해까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이 손에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했다.

“형도 어지간히 긴장되는 모양이야?”

유성이 걱정스레 물었다.

“당연하지. 1억 원도 아니고 1억 달러야.”

“다섯 배 레버리지는 계산 안 해?”

“어. 내가 투자한 자금만 생각하면 돼.”

“하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긴장되겠다.”

“그러니까 말이다.”

형제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IS가 남하해서 모술 일대를 완전히 점령했대.”

8월 초의 어느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더니 유성이 호들갑스레 밤사이 벌어진 사건을 말했다.

“모술 댐은 물론이고 주마르 인근 유전 2곳과 아인 잘라 유전, 인근 정유소까지 전부 차지했다는데?”

유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낯선 이라크의 지명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녀석도 어지간히 신경이 쓰였구나 싶었다.

“그래?”

유진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걱정 안 돼?”

사실상 유진이 메가밀리언으로 받은 2억 달러 대부분이 오일 가격 하락에 몰려 있으니, 유성의 그런 반응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걱정이야 되지. 그래도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거 같아.”

“그런가?”

“그래서 오늘 유가는 어떤데?”

“조금 전에 봤을 때는 어제보다 2달러가량 올랐어.”

“그래. 그럼 다시 내려가겠지.”

“형은 간이 도대체 얼마나 큰 거야? 어떻게 그렇게 놀라지도 않아?”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 놓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다리는 것뿐이니까.”

유진이 솔직하게 말했다.

“아, 진짜. 옆에 있는 사람이 더 긴장되잖아······.”

그렇게 유성은 한동안 IS의 준동에 깜짝깜짝 놀라며 유가가 솟구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윌리엄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선물 가격이 상승 추세입니다. 포지션을 계속 유지할까요?”

적지 않은 우려가 섞인 목소리다.

“예. 포지션에 변경 없습니다. 당분간 이대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진의 장담대로 이라크에서의 IS는 유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겨우 하루 만에 유가는 다시 하락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오히려 그걸 신호로 여긴듯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기름 가격이 계속 내려간다.”

유진보다 더 애태우던 유성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번 주에만 7달러가 떨어졌네.”

매일 2, 3달러의 차이는 있어도 금세 원상 복귀하던 가격이 일주일 동안 7달러가 떨어졌으니 확실한 하락의 신호라고 볼 수 있었다.

“레버리지를 사용하니까 정말 엄청나기는 하다. 레버리지가 없었으면 700만 달러의 수익인데 다섯 배의 레버리지를 쓰니까 3,500만 달러나 이익이네.”

“대신 10달러가 올랐으면 5,000만 달러를 손해 봤겠지.”

“그랬으면 나 놀라서 기절했을지도 몰라. 지난번에 3달러 올랐을 때만 해도 아주 심장이 두근거렸다고.”

유성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일주일이나 열흘 사이에 수백억 원이 오르거나 내리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보고 있으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형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이 기회에 포지션을 더 늘려야겠다.”

“여기서 더 늘려?”

“어. 자본이 늘어났으니까. 그냥 포지션을 유지하면 레버리지가 줄잖아. 자본을 그냥 놀릴 수는 없지.”

“계산이 그렇게 되는 건가?”

“어. 자본 시장에서 레버리지의 가장 큰 장점은 벌어들인 돈을 다시 투자하면서 다시 레버리지를 사용한다는 거야. 그러면 같은 돈으로 레버리지 없이 투자할 때와 다르게 점점 크게 불어나지. 눈덩이가 비탈을 굴러떨어지면 주변의 눈을 집어삼켜 엄청나게 커지는 것처럼 말이야.”

유성은 유가가 90달러를 뚫고 내려서는 것을 기점으로 호기롭게 5,000계약의 숏 포지션을 추가했다.

그동안 무려 5,000만 달러의 수익이 발생했으니, 선물에 투입한 자본은 총 1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만, 만 계약이면······ 천만 배럴······. 90달러씩 천만이면 9,000만 달러······. 거의 1조 원이잖아?”

형의 베팅이 자신의 상상을 넘어서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자, 유성은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흐어어······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굴릴 수 있어?”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하니까.”

“이게 시작이라고? 형이······ 도박에 미쳤다······.”

유진은 동생의 그런 반응이 재미있는지 웃기만 했다.

그도 유가의 흐름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사실 긴장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었다.

유가에 이어 유가 선물 가격이 90달러까지 내려가던 날, 유진은 다시 포스팅을 했다.

윌리엄이 제공해 준 블랙록 딜링룸의 사진 한 장과, 유가 선물이 90을 찍는 순간의 그래프가 올라갔다.

#오일선물 #90달러? #블랙록 #딜링룸

- 아직도 선물하는 거야? 화이팅!

- 요즘 기름값 많이 떨어졌는데, 손해 좀 봤겠네. ㅋㅋㅋ

- 바보냐? 선물이 상승에만 베팅하는 줄 알아? 하방에 베팅했을지 어떻게 아냐?

- 하방에 베팅했으면 이 형 성격에 신이 나서 올렸을걸? 오늘 얼마 벌었음. 이렇게.

- 맞다. 좀 관종기가 있어서 틀림없이 자랑했을 것임.

- 모르지. 그래프 올린 거 보면 뭔가 의도가 있는 거 같은데.

- 폭망각 섰음. 꼴좋다.

- 약혼녀 버리고 호강할 줄 알았냐? 나쁜 자식!

“왜 잘 되고 있다는 소리는 안 써?”

“아직 보여 줄 때가 아니니까. 내가 잘 안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지 뭐.”

유진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10월 초, 드디어 이더리움의 프리 세일이 끝났다.

그동안 유진과 유성은 모두 15,000,000개의 이더리움을 구매했다.

크라우드 세일에 판매된 8,500만 개에 달하는 이더리움의 17.6%에 해당하는 무시무시한 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20%, 아니 25%까지 손에 넣고 싶었지만 후일 환금할 때에 골치 아파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욕심을 억누른 결과였다.

“정말로 디지털 화폐에 570만 달러나 썼네······.”

생각보다 욕심을 내서, 여유 자금으로 지니고 있던 600만 달러를 거의 다 써 버렸다.

“흐흐흐. 그래. 다 써 버렸지.”

유진은 오랜만에 아주 흐뭇하게 웃었다.

1,500만 개의 이더리움.

1,000달러일 때 팔면 150억 달러.

4,000달러에서 팔면 600억 달러나 된다.

물론 고점에서 그 많은 양을 팔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한창 코인 열풍이 불고 있을 시점의 하루 거래량을 생각해 봤을 때 계산만 잘하면 큰 손해 없이 현금화가 가능할 것이다.

다른 투자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이것만으로 세계적인 부호 명단의 상위권에 올릴 수 있는 금액이다.

이런 상황에서 즐겁지 않다면 이상한 거다.

“이게 정말 오르기는 하는 걸까? 만약 오른다면 얼마나 오를까? 이게 정말 비트코인처럼 올라 줄까?”

반대로 유성의 얼굴은 기대와 걱정이 마구 뒤섞인 혼돈의 도가니였다.

“비트코인만큼이나 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1,000배 이상은 올라 줬으면 좋겠네.”

“하하······ 농담이 농담처럼 안 들려. 그래서 그렇게 오르면 뭐할 거야?”

“대양 그룹이나 사 버릴까?”

유진이 농담처럼 말했다.

“대양중공업도 아니고 대양그룹? 음······ 꽤 재밌겠다.”

유성은 형의 말을 아주 가볍게 받아들였다.

“코인으로 번 돈으로 평생을 일구어 온 자신의 기업을 인수해 버리겠다고 하면 어떤 표정이 될까?”

“어? 어어······ 참 어이없겠네, 풉!”

형의 말에 유성은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비슷한 수준의 대기업도 아니고, 암호화폐에 투자한 돈으로 한 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 집단을 인수하겠다 나서면 당사자 입장에서야 펄쩍 뛸 일일 터다.

“진짜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네.”

대양중공업과 대양 그룹에 대한 적의를 되살린 유성이 형과 비슷한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 유진도 단지 돈이 있다고 해서 한 나라의 거대 기업 집단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걸 빼앗으려면 자본은 물론이고, 수많은 난관을 넘어서야 한다.

특히 수십 년 동안 대양 그룹이 정계, 사법계, 언론계에 뻗어 놓은 그 유구한 인맥을 뚫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그러니까, 유진은 자본 이외에도 많은 것이 필요했다.

유진의 편을 들어 줄 언론이라든지, 함께 대양과 싸워 줄 다른 세력 따위.

하지만 그걸 위해서라도 우선은 자본이 필요했다.

“숏 포지션을 지속적으로 늘리겠습니다.”

10월 초, 유가 선물 가격이 85달러까지 떨어지자, 다시 10,000계약을 추가했다.

이렇게 거래의 규모가 커지니, 숏 포지션의 진입에도 신중을 기해야 했다.

오일 선물의 하루 거래량은 많을 때는 백만 계약을 상회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수십만 계약 수준이다.

한 시간 거래량은 수천 계약. 1분 단위로 보면 수십에서 수백 계약 정도이다.

그러니까 한 번에 1만 개의 숏 포지션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경험 많은 딜러들의 조력이 필요했다.

마침 블랙록에는 그런 딜러가 충분히 많았다.

“우선 2만 계약 수준까지 늘리지요.”

그동안의 수익은 대략 1억 달러.

이제 유진이 오일 선물에 투입한 자본은 2억 달러에 달한다.

“2만 계약이면······ 17억 달러야. 어질어질해, 형. 거의 2조 원이잖아?”

유성은 점점 불어나는 계약에 압도되어 버렸다.

“그렇게 억지로 계산하지 마. 선물 1계약이 괜히 1,000배럴이겠어? 큰 숫자에 무심해지라는 거지.”

“진짜로?”

“그냥 하는 말이지. 진짜겠어?”

“아아······. 여하튼 형 말대로 큰 숫자에 무감각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어.”

“그렇지?”

조 단위의 돈이 걸린 도박판이다.

틱 하나에 수십만 달러를 오르내리고, 1달러 오르내릴 때마다 2,000만 달러가 오고 간다.

그러니 무심해지려면 굳이 한국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냥 몇 계약, 그리고 몇 틱, 이렇게 해야 부담이 덜하다.

“유가가 이렇게 될 걸 알고 있기라도 한 거야? 대체 어떻게 이렇게······.”

10월 말, 유가가 80달러 선을 오가는 모습을 보며 유성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하하······.”

“선물에서만 지금까지 2억 달러를 벌었어. 그리고 옵션 수익도 5,000만 달러 가까이 돼. 형, 무슨 투자의 천재라도 되는 거야?”

“운이야.”

“그래. 운이지. 그럼 이제 어쩔 거야? 조금은 안정적으로 할까?”

“아니. 운은 기세야. 한 번 운이 손에 들어오면 그걸 놓아 주면 안 돼.”

“아아······. 전형적인 도박꾼의 말투네.”

유성이 포기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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