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9화 (29/363)

#28.

#28. 라이센스

“전혀 무리가 아니에요. 패션계에서 이방카 트럼프는 언제고 기존 명품 브랜드의 반열에 올라설 겁니다. 그때 가서 지금을 돌이켜보면 오히려 거저 얻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이방카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고려를 해 봐야 할 것 같은 금액이네요.”

이방카는 다시 열정적으로 자신의 사업을 설명했다.

“좋아요. 그럼 이번엔 제 쪽에서 제안을 하죠. 1,500만 달러에 10% 어때요?”

사실 이방카의 패션 사업에 그만한 가치는 없다. 더군다나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는 그녀가 백악관으로 들어간 뒤 이해 충돌이라는 문제에 봉면해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당신도 거래를 할 줄 아는 사람이네요.”

이방카가 웃는다.

유진의 제안이 그녀가 생각한 마지노선보다 위쪽인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 유진의 선물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방카의 패션 사업은 미국 내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더군요.”

“언젠가는 해외 진출도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은 국내에 집중할 때에요.”

“그동안 생각을 해 보니, 이방카 트럼프라는 이름의 가치는 아메리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충분히 먹힐 것 같더군요.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말이죠.”

“동아시아에도 제가 그렇게 유명한가요?”

놀란 듯한 이방카의 물음에 유진이 고개를 내젓는다.

“아직은요. 하지만 마케팅 여부에 따라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여요. 그래서 말인데, 두 가지 옵션을 제안할게요.”

“뭔가요?”

“첫 번째는 이방카 트럼프가 해외, 특히 동아시아 5개국인 한국, 일본, 중국, 타이완, 싱가폴로 사업 영역을 늘리는 거예요. 그렇게 한다면 투자금을 두 배로 올리지요. 지분은 15%면 충분하고요.”

“아하!”

이방카의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로 움직였다.

“그리고 남은 하나는 이방카 트럼프의 브랜드를 라이센스하는 거예요. 아시아 지역에 대한 라이센스를 준다면, 로열티로 1년에 1,000만 달러를 지급하지요. 혹은 매출액의 15%나.”

“1년에 1,000만 달러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1년에 1,000만 달러를 주겠다니 반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의 부친인 도널드 트럼프는 이미 자신의 이름을 다양한 상품에 사용할 수 있게 라이센스를 주고 있었고, 그로 인한 소득이 소비재 상품에서만 1년에 수백만 달러에 달했다.

유진은 이방카에게 그녀의 부친이 이름을 팔아 얻는 수익의 몇 배를 제안한 셈이었다.

“1,000만 달러, 또는 매출액의 15% 둘 중 큰 쪽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계약 기간은 6년으로 하지요. 6년마다 양쪽의 의사에 따라 계약 갱신을 하는 것으로요.”

6년 뒤에는 볼 장 다 보았으니, 더는 그런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거······ 무척 관대한······ 아니. 꽤 적절한 제안이로군요.”

이방카로서도 놀랄 만한 제안이다.

아직 그녀의 이름값은 결코 그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오가며 기업 가치를 성장시킬 정도의 이름값과 디자인 재능을 지닌 칸예 웨스트 정도라면 모를까, 부친 덕에 조금 이름이 알려진 이방카가 제안받을 만한 로열티는 결코 아니다.

“어떤가요? 한 번 생각해 보겠어요?”

이방카가 그걸 절대 거부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진은 시간을 주었다.

“네? 생각이요? 아! 그렇죠.”

이방카가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혹시라도 유진이 제안을 되물릴까 두려운 모양이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난 언제라도 사인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이방카는 당장이라도 사인을 할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리고 잠시 두 사람은 대화를 더 나누었고, 이방카는 고려를 해 보겠다며 우아하게 자리를 떴다.

1년에 1,000만 달러씩 6년짜리 계약. 어떻게 보면 굉장히 큰돈이다.

하지만 유진에게는 거저와 다름없는 비용이다.

유진이 원하는 것은 이방카에게 한 번 큰 선심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방카의 부친이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그녀에게 지속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미 대통령 딸의 사업 파트너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몇 년 동안은 귀찮은 일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이건 유진이 트럼프 일가에게 선물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외국인인 유진은 미국의 정치인에게 여하한 기부도 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대통령 출마를 결심하지도 않은 지금 맺은 정상적인 계약에 따라 지불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떤 식으로든 유진과 트럼프 일가와의 불법적인 자금 공여에 대한 꼬투리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선심을 쓰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이방카에게 한 제안은 꽤 현실성 있는 사업이다.

동아시아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적어도 일본에서는 상당히 가능성이 컸다.

일본인들의 미국에 대한 사랑은 유별나기로 이름나 있었고, 꽤나 튀는, 악명에 가까운 명성을 지닌 트럼프라고 다르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국의 수상보다 더 그를 사랑했다.

심지어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는 2020년에는 동경에서 미국의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물론 트럼프의 딸인 이방카도 일본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녀가 일본에 방문했을 때에는 거의 할리우드 최상급 스타에 못지않은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세 아이를 키우며 자신의 사업을 일궈 내고 부친을 돕고 있는 모습이 일본 여성들에게 커다란 감명을 준 모양이었다.

그녀가 목에 걸고 나온 목걸이가 잠깐 사이에 매진이 되어 버렸을 정도였다.

그러니 일본에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를 미리 준비해 둔다면, 적어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는 꽤 훌륭한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국도 나쁘지만은 않다.

트럼프 일가가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자 이방카는 중국에 자신의 이름으로 수십 개 브랜드의 상표를 등록했다.

그때 즈음 중국에서의 사업성을 확신한 모양이다.

하지만 진출 시기가 너무 늦었다.

겨우 상표를 출원하고 매장을 내기 시작해서 사업이 궤도에 오를 무렵, 이방카는 내내 시달리던 이해 상충의 문제로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대결 구도를 이어 가며 중국에서의 사업을 영위하기 불편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유진은 거기에 대해서도 이미 생각을 해 두었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의 사업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동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한국에서 트럼프의 이미지는 최악에 가까울 것이다.

만일 한국에서 매장을 연다면, 그저 트럼프 일가에 보여 주기 위한 생색용 정도일 것이다.

어쨌든 동아시아에서의 이방카의 패션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우선 트럼프가 대선에 나서기 전에 각국에 사업을 개시해야 하고, 그녀가 부친의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에, 그녀와 그녀의 이름을 딴 사업을 분리시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라이센스라는 방식이 제격이다.

유진은 친구 사이의 우정을 키운다는 핑계로 주중에 재혁을 초대하기도 했다.

“와! 집이 굉장하다. 무슨 아파트가 이렇게 으리으리하냐? 난 진짜 손바닥만 한 스튜디오에 사는데. 거기도 눈 튀어나오게 비싸더라구. 이만한 집이면 대체 얼마나 비싼 거야?”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재혁은 호들갑을 떨어 댔다.

“그런데 요즘 너 파생한다며? 그것도 꽤 많이 벌었다던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재혁은 유진의 투자에 대해 물어 왔다.

“어. 올해는 운이 좀 트이나 봐.”

“얼마나 벌었어?”

“한 10억 정도.”

“달러로? 미쳤네. 대체 어떻게 그렇게 벌 수 있냐?”

“그러게 말이다. 나도 믿기지 않을 정도야. 블랙록 딜러들이 제안하는 대로 하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되더라. 뭐, 레버리지를 좀 세게 넣기는 했지. 어떨 때는 10배쯤 하다가, 느낌이 좋으면 20배, 40배를 넣기도 하고. 사람이 그렇더라. 운이 붙으면 이게 될까? 하는데 또 그게 되더라고.”

유성은 그 공을 전부 블랙록의 딜러들에게 돌리고, 자신의 베팅을 뻥튀기해서 마치 마냥 운이 좋은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어떤 상품에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거 좀 위험하지 않아? 자칫 잘못하면 큰일 나잖아?”

“그런 면도 있지. 그래도 인생 한 방 아니냐? 이번에 제대로 한 번 굴려서 남은 인생 걱정 없이 살련다.”

“야. 메가밀리언 당첨금만으로도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는데. 하긴, 인간 욕심이 그렇지.”

“너도 알잖아. 우리 아버지 회사랑 대양이랑 소송 붙은 거. 그거 생각하면 2억 정도로는 안 되겠더라고.”

“그랬지? 맞다. 대양.”

대양 이야기가 나오니 말에 힘이 없어진다. 혹시라도 유진이 자기 이야기를 기사로 실어 달라고 할까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녀석의 입장도 이해는 갔다. 사주와 사돈이 될 대기업에 불리한 기사를 싣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참! 대양 그룹이 하청업체에 대해서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 내가 좀 모아 놓은 자료들이 있는데, 한 번 써 볼래?”

유진이 슬쩍 건드려 보았다.

“그래? 한 번 줘 봐. 내가 써서 데스크에 올려 볼게. 근데 기사화되는 건 나도 확답은 못 주겠다. 너도 알잖아. 데스크에서 자르면 그만인 거.”

“그렇지. 에이, 관두자. 괜히 너한테 부담만 주기 싫다.”

“아냐. 여하튼 줘 봐.”

재혁은 억지로 유진의 기분을 맞춰 주려 했다.

“그래. 그럼 한번 봐.”

유진은 재혁에게 대양에 대한 몇 가지 자료를 건네주었다.

“한번 보고 내가 열심히 써 볼게. 친구야.”

“부담 갖지 말고 그냥 봐.”

“아냐. 내가 진짜 신경 좀 써 볼게.”

하지만 결국 재혁은 대양에 대한 기사를 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우리 데스크에서 너무 어려워한다. 미안하다.”

며칠 뒤에 다시 만난 재혁이 사과를 했다.

“미안하기는. 괜히 너한테 부담 줘서 내가 더 미안하지. 신경쓰지 마.”

“다음에는 내가 더 푸시 좀 해 볼게. 쓸 만한 기삿거리 있으면 넘겨 줘.”

어쩐지 재혁의 눈이 이상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다산이랑은 잘 되어 가니?”

“그럭저럭. 그때 오스틴에서 다산전자 실무팀이랑 조인해서 프리스케일이랑 협상에 들어갔거든. 난 그냥 시작만 같이했고, 거기서부터는 다산의 몫이지.”

“그럼 진행 상황은 모르겠네?”

“아냐. 계속 연락하고 있으니까. 지금 실사가 대충 끝난 모양인데, 가치 산정 중인 모양이야. 러프하게 120억 달러에서 최대 150억 달러 사이로 판단하는 모양이야. 거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얼마나 얹어 주느냐가 문제지.”

“그렇지. 결국은 경영권 프리미엄의 가치지. 어때? 얼마나 쳐 줄 것 같아?”

“다산이 꽤 의욕적이야. 프리스케일을 손에 넣으면 경쟁에 유리한 게 사실이니까. 원래 다산이 자동차 일괄 생산이 가능하잖아. 거기에 반도체까지 들어오면 완전체지.”

“대략 얼마나?”

역시나 프리스케일 문제는 집요하게 물어 온다.

“글쎄? 그거야 그쪽 전략에 따라 다르겠지. 하지만 적어도 수십억은 되지 않을까? 최대 200억은 될 거 같아.”

다산이 그렇게 큰 액수를 내놓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진은 잔뜩 부풀린 액수를 불렀다.

“휘유! 그렇게 많이?”

“뭐. 대충 결정이 나면 너한테 얘기해 줄게. 그러면 넌 기사로 올리기 전에 다산전자랑 자동차 주식이나 좀 사 놔. 다산에서도 틀림없이 부양에 들어갈 테니까.”

“크크! 그래. 역시 친구밖에 없다.”

유진은 재혁의 눈빛이 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유가는 부지런히 하락하고 있었다.

“하루 만에 7억 달러를 벌었어!”

폭포처럼 떨어져 내린 선물 그래프를 바라보며 유성이 얼빠진 얼굴로 말했다.

11월 26일 73달러였던 선물 가격이 하루 만에 66달러까지 떨어졌다.

“그······러네.”

하루에 이렇게나 떨어질 줄은 몰랐던 유진도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0만 계약의 숏 포지션은 선물 가격이 1달러 떨어질 때마다 1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으니 유성의 말대로 하루에 7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이 맞다.

“반대로 우상향으로 그렇게 올랐다면 하루에 7억 달러를 손해 보았겠네······.”

기쁨이 기쁨 같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겨우 하루 사이에 기업 하나를 사고팔 만큼의 돈이 오가고 있었다.

“이런 일은 드물어. 유가가 하루에 7달러나 떨어지다니.”

그야말로 몇 년에 한 번 나올 대폭락이었다.

그리고 그건 유가가 정말로 상승의 여지가 없음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제 유가 시장은 끝이 어딘지 몰라 패닉에 빠졌다.

“지금까지 선물로만 17억 달러야······. 거의 2조 원이라고. 말이 돼?”

유성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 될 것도 없지.”

유진은 아직 바닥이 아님을 알고 있다.

“옵션은 아직 계산도 안 끝났잖아. 형이 세상의 모든 돈을 전부 긁어모으는 거 같아.”

“그럴 리가. 오일 선물에서만 1년에 조 단위의 자금이 오고 가는데.”

“하기는······ 오늘 하루 오가는 금액이 백억 달러 가까이 되니까······. 누군가는 형처럼 벌어들였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 개인은 아니라도 기관이라면 그 정도 포지션을 갖고 있을 수 있지.”

“그럼 이제 또 포지션을 늘릴 거야?”

“아니. 10만 계약만 해도 굉장히 큰 물량이야. 더 늘리면 주체하기 어려워. 그리고 이제 슬슬 바닥이 가까워지는 거 같아.”

이제 슬슬 엑시트를 염두에 둬야 할 때였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