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패밀리 비지니스
“나와 이방카가 우리 장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신다는 말인가요?”
“하버드 출신인 미스터 쿠슈너의 인텔리하고 젊은 이미지와 이방카의 세련되고 보다 진보적인 이미지가 한쪽으로 치우친 도널드의 이미지를 보완해 주지 않을까 싶군요. 물론 선거 전략에서도 미스터 쿠슈너가 큰 역할을 할 듯싶고요.”
재러드의 부친이 하버드에 300만 달러를 기부한 뒤에 성적이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재러드가 입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거론할 이유가 없다.
“사실 도널드는 중요한 사항이 있으면 내 의견을 묻고는 하죠.”
유진의 사탕발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재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일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하고 난 뒤에도 재러드 쿠슈너는 자신이 대통령에게 아주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방면으로 알리려 애를 썼다.
스스로가 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주니어보다 내가 오히려 더 아들 같이 느껴진다니까요.”
어떤 면에서 재러드의 경쟁자는 도널드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부친을 따라 백악관에 들어갔지만, 두각을 나타낸 쪽은 재러드였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도널드는 지속적으로 사위에 대한 신뢰를 보여 주었다.
“당연한 일인 듯싶군요. 잠깐 대화를 나누어 본 것만으로도 재러드의 스마트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늘 곁에서 지켜본 도널드라면 더욱 그러하겠죠.”
대기업에 다니면서 참 많이 배운 것은 다른 사람을 띄워 주는 일이다.
또 국제적인 업무를 하면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만나 인맥을 만들어가며 느낀 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다.
굳이 아부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인간관계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 주는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그리고 칭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자부심을 가지는 부분을 캐치하는 것이다.
“당신이 백악관 입성을 확신한다고 말씀드리면 도널드가 무척 좋아할 것 같군요.”
“도널드뿐 아니라 재러드와 이방카도 함께겠죠. 솔직히 워싱턴에 믿을 만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들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일 뿐이죠.”
“맞는 말입니다. 하나같이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만 아는 놈들이죠.”
“도널드가 백악관에 들어가면 재러드와 이방카가 도와드려야 할 겁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가족뿐이죠.”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고려해 보겠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재러드는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자, 그러면 다시 5번가의 빌딩에 관해 이야기를 해 보죠. 재러드는 이 빌딩을 리노베이션 해서 가치를 높이고 싶어 하죠?”
“아주 훌륭한 물건이니까요.”
“그런데 지분 관계는 너무 복잡하고, 필요한 비용은 많은데, 리노베이션 기간 동안 맨해튼의 고급 콘도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죠.”
“솔직하게 말해 그런 면이 없지는 않죠. 하지만 리스크가 있는 만큼 보상도 대단할 겁니다. 최하 80억 달러짜리 빌딩이 될 수 있어요. 뉴욕에서도 가장 가치 있는 건물이 될 겁니다.”
“하지만 모두들 투자에 확신을 갖고 있지는 않고요.”
“좋은 물건에는 항상 좋은 주인이 있기 마련이죠.”
“만약 내년에 도널드가 백악관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보죠. 그러면 투자 유치가 지금보다 훨씬 쉽겠죠?”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재러드가 씩 웃으며 말했다. 유진이 지금껏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에 대해 확신한다 말했으니, 5번가의 빌딩에 투자받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만약 그 시점에서 누군가의 투자를 받는다고 합시다. 예를 틀어 카타르 투자청이나 사우디의 억만장자, 혹은 중국의 보험사 같은 곳에서 말이죠. 그럴 경우 언론이 그걸 어떻게 보도할까요? 미국과 잠재적인 적성국이 차기 미국 대통령과의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사위의 빌딩에 거액의 투자를 하려 한다고 물어뜯겠죠?”
“음…….”
재러드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도널드는 론 울프죠. 진보적인 미디어든 보수적인 미디어든 트럼프 일가를 헐뜯고 웃음거리로 만들 생각뿐이에요.”
“잘 알고 있군요. 미국의 언론들은 너무 편파적이에요. 자신들의 비위를 거스르면 마구 물어뜯기 바쁜 쓰레기 같은 놈들이죠.”
“그렇다면 그런 해외의 투자를 받는 것이 도널드에게 도움이 될까요?”
“하지만 내 빌딩은 도널드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리고 그런 지저분한 미디어의 논리에 끌려다닐 생각도 없구요.”
솔직히 말하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트럼프 일가는 늘 그랬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익이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미디어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그리고 선거에 도움이 될까요?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공직자의 이해 상충 문제는 늘 선거에 큰 영향을 주지요.”
재러드는 다시 한번 짧은 침묵을 이어 간 끝에 말했다.
“좋아요.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나 보군요.”
“난 도널드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사소한 흠결로 선거에 방해가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더군다나 재러드가 백악관에 도널드와 함께 입성하지 못하는 것은 더더욱 아쉽구요.”
유진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을 할게요. 재러드의 666번지 빌딩에 4억 달러를 투자하지요. 그러면 미국인들이 싫어하는 아랍이나 중국의 투자를 유치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면 쿠슈너 컴퍼니의 대표 자리를 다른 가족에게 인도해서 미디어에서 물어뜯지 않도록 해요. 그게 당신과 도널드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재러드가 유진의 조언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도널드와 마찬가지로 재러드 역시 욕심으로 가득한 진짜 사업가다.
하지만 앞으로 1년쯤 지나면 생각이 많이 바뀔 것이다.
언론은 재러드의 가족 회사를 끊임없이 물어뜯을 것이고, 그 모습을 보면 유진의 조언을 따르지 않은 것을 조금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무척 관대한 제안이군요. 지난번 이방카에게 했던 제안과 마찬가지로. 대신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나요?”
재러드는 영악한 사업가이다.
후일 사우디나 카타르, 그리고 중국 공산당의 돈지갑 노릇을 하는 인민보험의 투자 유치를 받으려 한 것도, 그들의 속셈을 이용해 자신의 배를 불리려는 것이었다.
“물론이죠. 내가 재러드와 이방카에게 약간의 호의를 베푸는 대신, 날 좋은 친구로 여겨 주었으면 좋겠군요.”
유진은 마냥 속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치 않았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사람들이 선량하고 다른 이에게 호의를 베풀기 원한다고 믿는 사람과, 모든 사람이 자신처럼 오직 이익을 추구한다고 믿는 사람.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호의에는 항상 어떤 조건이 따라붙는다고 믿는다. 자기 자신이 그러하듯 말이다.
물론 재러드를 비롯한 트럼프 일가는 후자 쪽이다.
그러니 유진의 호의가 순수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라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차라리 명쾌하게 원하는 바를 주고받는 쪽이 신뢰를 받기 좋다.
“좋아요. 도널드는 몰라도 나와 이방카는 당신의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십 년 가까이 골치를 썩이던 건물의 투자가 비로소 해결된다는 것이 기뻤던지, 재러드는 이날 가장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투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차후에 의논하기로 하죠. 우선 도널드가 언제쯤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할지 알려 주세요. 그 전에는 해결하는 편이 좋을 테니.”
“물론이죠. 그 전에 해결하는 게 최선이죠.”
빨리 투자금을 유치하고 싶은 생각으로 재러드는 신이 난 모양이다.
“아! 그래도 절대 나쁜 투자는 아닐 겁니다. 난 5번가의 빌딩이 개축한 뒤에는 정말로 뉴욕에서 가장 비싼 건물이 될 거라 믿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방카의 패션에 투자한 것도 단순한 호의는 아니죠. 우리 모두에게 충분한 이익을 안겨 줄 거라 믿고 있으니까요.”
유진은 이후 약간의 협의 끝에 5억 달러에 빌딩 전체 지분의 30%를 받는 계약을 맺기로 했다.
5억 달러로 재러드의 호감을 사는 것은 절대 비싼 투자가 아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라면 훨씬 더 큰 돈으로 훨씬 더 작은 호의를 얻을 테니까.
더군다나 666번지는 제대로 리노베이션을 한다면 정말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물건이기는 하다.
물론 지분이 너무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어 개발이 정말 가능할지의 문제는 있지만.
유진은 필요하다면 그 건물의 지분을 지닌 다른 투자자로부터 지분을 사들일 생각도 있었다. 도널드가 백악관에서 나오면 재러드의 지분까지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뉴욕 한복판에 멋진 빌딩 한 채를 소유하는 것도 멋지지 않은가?
“아빠가 유진을 한번 만나고 싶어 해요. 시간을 내줄 수 있겠어요?”
며칠 뒤에 이방카가 물어왔다.
“물론이죠. 초대해 주시면 언제든 방문할게요. 언제고 트럼프 가족의 멋진 펜트하우스를 보고 싶었거든요.”
“그럼 오늘 저녁은 어때요?”
아무래도 도널드의 대통령 출마 선언이 가까워 오는 모양이다.
“반갑소. 한국에서 온 부자 청년.”
트럼프는 호탕하게 웃으며 유진을 맞이했다.
“전부터 도널드 트럼프 씨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젊고 멋진 분이시군요.”
“이방카와 재러드에게 유진에 대해 들었소. 행운을 몰고 다니는 남자라더군.”
“멋진 표현이군요. 행운을 몰고 다닌다기보다 행운을 찾아다닌다는 편이 낫겠지만요.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행운을 찾은 것 같군요.”
“재러드가 말하기를 내가 선거에 출마할 거라 했다면서요?”
“도널드가 지난 20년 동안 출마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지 않던가요? 이번만큼 적당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맞는 말이오. 그래서, 유진은 내가 백악관을 차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요?”
“전 1달러짜리 복권 한 장으로 2억 달러의 잭팟에 당첨됐고, 다시 그 2억 달러로 1년 동안에 100억 달러로 만들었죠. 그리고 그동안 알게 되었어요. 난 정말로 어디에 걸어야 행운이 올지 알 수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만약 다음 선거에 가진 돈 전부를 걸 수 있다면 트럼프에게 걸 겁니다. 아마 20배쯤 불릴 수 있겠군요.”
바로 전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는 5%의 벽을 넘지 못했다.
“멋진 베팅이 되겠군.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사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전 재산을 거는 게 아니라, 은행에서 돈을 빌려 베팅을 해야지. 베팅에 실패하면 회사를 파산시키고. 흐흐흐.”
누구도 믿지 않는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는 것이 기뻤던지, 트럼프는 자신의 사업 노하우를 가르쳐 주었다.
“맞는 말입니다. 오늘 한 수 배워 가네요.”
“내 딸과 사위에게 보여 준 호의의 대가로는 충분한 거 같소?”
“물론이죠. 다음번에는 꼭 그렇게 해 보지요.”
적절한 칭찬으로 시작된 자리는 우애롭게 흘러갔다.
“그래, 듣자 하니 파생으로 모은 돈으로 적당한 투자처를 찾고 있다고 했었죠?”
역시 트럼프가 유진을 초대한 목적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지금 꽤 큰 딜을 하는 중이라 크게 여유 자금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재러드의 빌딩에 5억 달러를 써 버리는 바람에요.”
유진의 말에 트럼프가 살짝 실망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도널드의 말처럼 쓸 만한 투자처가 있다면, 남의 돈을 빌리면 되지요.”
“오! 영리한 학생이로군.”
도널드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내가 몇 군데 쓸만한 부동산을 알고 있는데, 혹시 나와 함께 투자해 볼 생각은 있소?”
도널드는 뼛속까지 부동산 업자이다. 대통령 선거에 나서서도, 그리고 대통령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트럼프는 자신의 부동산을 노출시키기에 바쁜 사람이었다.
미국의 법률은 무척이나 웃기게도 다른 고위 공직자에게는 이해 충돌에 엄격해서 공직에 오르기 전에 주식을 처분하거나 백지 신탁에 맡길 것을 강요하지만, 오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러한 의무를 강요하지 않는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식 이전에 주식을 팔거나 신탁을 하는 식으로 다른 공직자와 동등한 의무를 지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단아인 트럼프는 그런 것이 없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그만큼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마음껏 휘두른 사람은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다시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롱 아일랜드에 멋진 대지가 하나 있어요. 바다가 보이는 아주 멋진 곳이지. 이번에 그걸 구입해서 트럼프 컨트리 클럽으로 만들 생각이오. 타이거 우즈가 설계를 맡아 준다고 했지.”
트럼프는 빌딩만큼이나 골프 클럽을 사랑하는 남자였다.
이미 전 세계에 10개가 넘는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두바이에 골프장을 오픈할 정도다.
“그리고 몬테 카를로에 굉장히 멋진 호텔 하나가 매물로 나왔는데, 꽤 괜찮은 곳이오. 바다가 보이고 부지가 넓은 최고급 호텔인데 겨우 2억 달러밖에 안 하지.”
이건…… 유진은 트럼프가 말하는 곳이 어떤 축구 선수가 트럼프와 함께 매입하게 될 호텔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축구 선수가 앞으로 한 달쯤 뒤에 유진이 살고 있는 바로 그 트럼프 타워에 아파트 한 채를 사게 될 것도.
아무래도 트럼프는 그 물건을 유진에게 먼저 던져 보려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