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회귀자의 특권
유진은 트럼프와 동업으로 몬테카를로의 호텔을 구매하기로 약조했다.
트럼프 일가와의 회동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대양 그룹과의 일전이 기다리고 있다. 단순히 기 싸움이라면 몰라도, 일가의 모든 것이 걸린 싸움이라면 그쪽도 가능한 수단을 전부 동원할 것이다.
법조계나 언론계는 물론이고, 그보다 훨씬 위쪽의 힘 있는 자들을 동원하겠지.
아마도 청와대를 통해 유진에게 압력을 넣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청와대의 주인들은 달콤한 대가를 제안받는다면 틀림없이 대기업의 손을 들어줄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지금의 대통령은 대기업에 친화적이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유진에게도 거기에 대항할 수단이 필요했다.
대양이 대통령을 뒷배로 삼는다면, 유진 또한 그 정도의 힘을 지닌 사람을 등에 업고 싸울 필요가 있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은 꽤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6월 중순이 되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우선 블랙록에 들러 이해 초부터 투자한 열한 개의 종목에 대한 수익을 확인했다.
“아마존 주가는 무려 48%나 올랐습니다. 해당 기간의 평가 수익은 24억 달러입니다. 넷플릭스는 68%의 상승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평가 수익은 34억 달러에 달합니다.”
열한 개의 종목 중에서 두 종목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다.
6%가 오른 구글에서는 4억 달러, 페이스북은 11%가 올라 5억 6,000만 달러의 수익을 보았다.
25억 달러를 투자했던 다른 종목들도 적당한 수익을 거두었다.
브로드컴은 24%가 올라 6억 달러, 나이키는 8%가 올라 2억 달러, 스타벅스는 17%가 올라 4억 5,000만 달러, 액타비전 블리자드는 30%가 올라 7억 5,000만 달러, EA는 24%가 올라 6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모든 종목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홈 디포는 0.3%가 떨어져 7,500만 달러의 손실을, 그리고 NVIDIA는 10%가 떨어져 2억 5,000만 달러를 손해 봤다.
이번 투자에서 유이한 손해였다.
큰 상관은 없다. 당장 주식을 팔 생각도 아니고, 적어도 이해 말까지를 보고 매수한 종목들이다.
75억 달러를 담보로 375억 달러의 주식을 사서 9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이중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58억 달러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다섯 배의 레버리지가 아니었다면 대략 24%의 수익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지난 4월에 6억 달러를 인출했으니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84억 달러에 달했다. 물론 이걸 전부 꺼내면 계약 중인 담보에 문제가 있으니, 일부만을 다른 투자에 사용하기로 했다.
“50억 달러로 중국 증시에 투자할까 합니다. 요즘 무척 핫하더군요.”
“뭐.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저희 쪽에서도 중국 증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고 있습니다.”
윌리엄 윤이 말했다.
“중국 주식이 그렇게 전망이 좋아?”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유성이 물었다.
“1년 반 만에 두 배 반이나 올랐으니 잔뜩 달아오른 상태라고 할 수 있죠.”
윌리엄이 대신 대답했다.
“그럼 형도 거기 투자하는 거야? 앞으로도 계속 오를 거라 생각하고?”
“상해종합지수에 숏을 치고 싶은데요. 풋옵션도 구입하고 싶고요.”
“떨어질 거라는 말이야?”
“응. 중국 정부에서 지금까지 주식시장 부양을 위해 잔뜩 버블을 만들어 놓았으니까, 슬슬 빠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
“저희 쪽에서도 그런 분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버블인지 알 도리는 없지요. 두 배 반이 정점일 수도 있고, 열 배가 정점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죠? 그래도 한 번 해 볼 만한 것 같아서요. 난 여기쯤에서 떨어진다에 걸어볼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적당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주세요. 20%가 더 오르면 포기하고 청산한다 생각하고 있으니, 이번에도 레버리지는 5배 정도 수준이면 좋겠군요.”
“전부 상해종합지수에 말이지요?”
“사실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것은 아니니까, 상해지수와 항셍지수, 인버스 인덱스, 인버스 ETF. 그리고 각 분야의 대장주들의 공매도도 괜찮고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요?”
유진은 돌아오는 6월 중순에 중국 시장의 버블이 터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며칠이면 될 겁니다. 우선 이틀 안으로 준비를 마치겠습니다.”
다음날부터 유진은 매일 블랙록을 방문하며, 중국 증시의 버블이 터질 경우 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다양한 방안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설명받았다.
유진의 말처럼 블랙록에서 올릴 수 있는 수익이 적지 않으니 중국 증시 전문가들을 대거 투입해서 매일같이 다양한 투자 방안을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상하이 증권 시장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과연 지금이 적절한 시기인지는 모르겠군요. 저희 쪽 전문가들은 중국 증시가 급등에 따른 피로감으로 단기적으로 변동성이 커지는 구간에 진입했지만, 중장기적으로 중국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여전히 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윌리엄 윤은 경고를 잊지 않았다.
“상해종합지수 5000 돌파가 코앞입니다. 어쩌면 이걸 모멘텀으로 다시 급격한 상승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5000 돌파를 기점으로 시작하죠. 6000을 넘어가면 전부 잃는 거고, 내려가면 크게 따겠죠. 어차피 쉽게 들어온 돈이니 상관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풋옵션을 최대한 매수해 보고, 나머지는 숏에 투자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세요.”
그렇게 중국에 대한 투자를 진행하던 어느 날, 기다리던 전화를 받았다.
- 내일 저녁 스파크에서 만난다고 합니다. 약속 시간은 7시 30분입니다.
브롱크스의 탐정 사무소에 한 가지 사소한 문제를 의뢰했고, 그쪽은 수완 좋게도 금세 원하는 정보를 구해 주었다.
이번에는 유진이 아닌, 그의 좋은 친구를 위한 일이다.
다음날 저녁 유진은 유성을 데리고 탐정에게 들었던 한 식당으로 향했다.
“굉장히 오래된 식당 같네. 뭐랄까? 고색창연? 그런 느낌이야.”
자리에 앉아 식당을 한 번 둘러보고 유성이 말했다.
“맞아. 꽤 유서 깊은 식당이지. 뉴욕의 마피아들이 모이던 곳으로 유명해. 1985년 뉴욕 최대 마피아 조직인 감비노 패밀리의 보스가 여기서 총에 맞았다고 하더라. 80년대만 해도 뉴욕은 꽤 무서운 곳이었던 모양이야.”
“와! 그런 말 들으니 무섭잖아.”
“지금은 전혀 상관없어. 마피아도 더 이상 없고. 이제 여기는 월가의 트레이더들이나 법조인들이 격조 있게 모여 친분을 쌓으려 만나는 곳으로 훨씬 더 유명해.”
“어? 그래?”
유성이 조금 마음이 놓인 얼굴이 되었다.
“그럼 여기도 사진 찍을까?”
“아니. 그건 됐어. 오늘은 그냥 맛있게 먹고 나가자. 사진이나 찍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음식이니까.”
“그래? 알았어. 그렇게 맛있단 말이야?”
“어. 뉴욕 사람들이 인정하는 맛집이야. 월가 트레이더들이 얼마나 까다로운데.”
“그래? 기대되는데?”
“응. 나도.”
“와 본 거 아니야? 꼭 먹어본 것처럼 말하고는······.”
사실은 먹어 봤다.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십 년도 훨씬 더 뒤의 일이지만······.
“뭘 시키면 될까?”
“잠깐 기다려봐. 윌리엄도 오기로 했으니까. 그런데 일은 잘돼?”
유진이 사람들과 만나고 다니는 동안, 유성은 뉴욕에 새로운 법인을 설립하느라 바빴다.
“어. 법인 설립은 마쳤어. 그런데 왜 미국하고 한국에 암호화폐 거래소를 따로 만드는 거야?”
우선은 시키는 대로 일을 진행하면서도 궁금한 모양이다.
유성뿐 아니라 누구도 한국의 암호화폐 시장이 해외의 암호화폐 시장과는 다르게 흘러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테니, 그런 의문이 이상할 것은 없다.
“미국뿐 아니라 싱가폴에도 설립할 거야. 각 지역마다 투자자들의 성향이 다르니 거기 맞는 거래소를 개설할 필요가 있어.”
암호화폐라고는 하지만, 아직 어디서도 실질적인 화폐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니 국가마다 암호화폐에 대한 접근도 다르고, 정부의 규제 방안도 다르다.
지난 삶에서의 유진이 암호화폐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각각의 국가별로 암호화폐에 대해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우선은 아시아, 한국, 미국 세 곳에 서로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를 개설하고, 상황에 따라 다른 전략을 펼 생각이다.
어느 한 곳도 놓치기는 아쉬운 시장이니 최대한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런 한편으로는 후일 미국의 주요 거래소가 될 비트멕스, 코인 베이스 같은 기존 거래소에 대한 투자도 추진하고 있다.
암호화폐가 성장하게 되면 이 회사들의 가치 또한 적어도 수십억 달러에서 크게는 천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가 될 기업들이다.
아직은 소규모의 스타트업에 불과한 이 기업들에 유진에게는 푼돈 같이 느껴지는 자금을 투자하면,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벌써 오셨군요.”
한창 유성과 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윌리엄이 들어와 그들을 발견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서 와요. 그동안 신수가 좋아지셨네요.”
“신수가 좋아지기는요. 정신없이 바빠 집에 언제 들어갔는지 모를 지경이에요.”
“그런 것 치고는 아주 멀쑥해 보이는데요?”
“그렇게 보이셨다면 살이 좀 빠져서 그런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집을 옮겨야 할 거 같아요. 오고 가는 시간이 모자랄 정도예요.”
“맨해튼으로 옮기시게요?”
윌리엄은 뉴저지의 자택에서 맨해튼으로 출근을 한다고 알고 있다.
“아무래도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전부 유진 씨 덕분입니다. 커미션도 많아졌고, 승진한 뒤로 일이 바빠 살이 빠진 것도 말이죠. 하하. 그러니 오늘은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좋지요. 그럼 이사 가면 초대 부탁드릴게요.”
“그러죠. ······어?”
그때, 윌리엄의 눈길이 저쪽에서 들어오고 있는 두 사람에게 향했다.
식당의 입구에서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 동양인 여인과 키가 크고 잘생긴 백인 남자가 서로 껴안다시피하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유성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 하는데, 유진이 동생을 제지했다.
유성도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닌지라, 윌리엄의 태도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는 조용히 있었다.
윌리엄은 유진과 유성을 신경도 쓰지 못하고, 그 두 다정한 연인이 저쪽 자리에 앉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연인은 꽤 열렬한 사이인 듯 보였다. 자리에 앉아서도 서로를 뜨겁게 바라보며 손을 뻗어 상대의 몸을 더듬는데 스스럼이 없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날을 잘못 잡은 모양입니다.”
한참 만에 윌리엄이 사과를 했다.
“괜찮습니다. 어쩐지 제가 실수를 한 것 같군요. 날이 안 좋았던 모양이에요.”
“아뇨. 정말로······ 유진 씨 덕분입니다.”
윌리엄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유진 씨 때문에 제 인생이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윌리엄의 웃음은 어딘지 서글퍼 보였다.
“그 변화가 좋은 쪽이었으면 좋겠군요.”
유진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