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49화 (49/363)

49화 해밀턴

블랙록을 통해 중국의 주식 시장 붕괴에 배팅하고, 팀 카렐을 통해 영화 산업에 대한 투자 협상이 이어지는 사이 유진은 다시 다른 일거리를 찾았다.

“이제 슬슬 코인 매집을 시작하도록 하자.”

“이더리움 말고 다른 것도?”

“어. 어차피 암호화폐 거래소를 몇 개나 열 생각이니 코인을 보유하고 있어야지.”

지금까지 유진이 매입한 암호화폐는 1,500만 개의 이더리움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동생을 미국으로 부른 뒤, 한동안 유성이 지닌 돈으로 암호화폐에 투자를 해 보라 했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유성이 보유한 자산은 얼마 되지도 않았었다.

그러니 두 형제가 이더리움 외에 지닌 암호화폐는 모두 합해도 겨우 수만 달러가 넘지 않았다.

2014년은 가상 화폐에 투자하기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2014년 2월 마운트곡스가 85만 개의 비트코인을 해킹으로 탈취당했다고 밝힌 후 파산 신청에 들어가면서, 그때까지 나름 고공행진을 하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폭락을 시작했다.

2013년 말 한때 1,000달러까지 올라갔던 비트코인 가격은 2014년 내내 하락에 하락을 거듭해, 2015년 초에는 200달러 선까지 밀려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트코인이 암호화폐 거래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다른 암호화폐의 가격 역시 동반 하락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면 비트코인도 매입해야 하나?”

“오늘 비트코인 가격 동향 좀 확인해 봐.”

“총 발행량은 1,400만 BTC, 단가는 240달러, 그러면 총액은 34억 달러 정도 되네.”

“그래? 이제 떨어질 만큼 떨어진 것 같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이다. 유진이 알기로 첫 번째 대폭등이 오기 2년쯤 전에는 200달러 부근까지 떨어졌었다.

지난 삶에서 그가 코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앞으로 몇 년 뒤의 일이었다.

하지만 관심을 가지는 일에 늘 그래왔듯이 코인 가격의 과거 시세도 눈여겨보았기에 대체적인 시세는 알고 있었다.

물론 과거를 안다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판단을 내리기 위한 데이터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어느 정도까지 매수할까?”

“음…….”

유진은 생각에 잠겼다.

유진의 자산 규모를 생각하면 현재의 암호화폐 시장은 너무 작다.

비트코인과 다른 모든 암호화폐의 총액을 합쳐도 겨우 수십억 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은 시장에서 암호화페에 대해 믿음을 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여기서 막대한 자본을 지닌 유진이 무작정 덤벼들면,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암호화폐 시장이 요동을 칠 것이다.

그러니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에 가능한 적은 영향을 주면서, 가능한 많은 암호화폐를 손에 넣어야 한다.

우선 생각한 것은 한 발행량의 10% 정도를 매집하는 것이다. 그래 봐야 매집하는 동안 상승분을 생각해도 4억 달러면 충분하다.

그리고 2년 뒤에 이걸 팔면 무려 200억 달러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 실제는 굉장한 차이가 있을 터였다.

우선 시중에 유통 중인 코인 수량이 발행 수량의 10%나 된다는 보장도 없다.

앞으로 몇 년이 흘러도 코인 시장은 대량의 비트코인을 지닌 소위 ‘고래’들이 주도한다.

2%의 계정이 95%의 비트코인을 통제한다는 말이 단순히 뜬소문은 아니다.

특히 아직은 대형 채굴업자들이 대량의 코인을 보유하고 있을 시기였다.

그러니 유진 혼자서 10%나 되는 코인을 매집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 고민이 되는 것은 나비효과로 인해 유진이 알고 있는 코인 가격의 미래가 바뀌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우선은 천천히 매집하자. 유통량이 얼마나 되지?”

“음. 잠시만…… 대략 2천만 달러에서 5천만 달러를 오가는 정도야.”

“그러면 하루 10만 달러 정도만.”

“하루 10만 달러가 정도만이야?”

유성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 달이면 300만 달러고, 1년이면 3,000만 달러야.”

“그러니까 천천히라고 하는 거지. 우선은 10만 정도로 반응을 보다가 천천히 늘려 갈 거야.”

“도대체 얼마나 사려고?”

“한 3억? 어쩌면 5억 정도까지도 생각하고 있어.”

“5억? 달러로? 그러면 전체 발행량의 10%도 넘는 거잖아?”

“그렇게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목표는 그 수준이야.”

유진은 현실적으로 그렇게 많은 비트코인을 손에 넣는 것은 어려울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주식과 달라서 누가 얼마나 많은 비트코인을 쥐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으니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 처음에는 가볍게 10만 달러로 시작해서, 시가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으로 하자.”

“알았어.”

“그리고 다른 코인들은 어떻게 되지?”

“라이트 코인은 1.4달러를 오가고 있어. 하루 거래량은 100만에서 200만 달러 수준이고. 리플은 0.006달러. 거래량은 30만에서 70만 달러 사이. 가격이 낮아서인지 하루 거래량이 많지 않아.”

유성은 그동안 자신이 눈여겨 보았던 코인들의 현황을 차트도 보지 않고 말했다.

그만큼 그도 진지하게 시황을 살펴 온 것이다.

“기타 코인도 매수할 만한 타이밍이네. 마찬가지로 최대한 매수하도록 하자.”

“그렇게 되면 이더리움 1,500만 개에 비트코인은 발행량의 10%나 손에 들고 있게 되는 셈이네. 다른 코인도 그렇게 되고, 우리가 암호화폐 거래소도 10개쯤 통제하면…… 암호화폐 시장 자체를 통제하려는 거야?”

유성은 형의 의도를 너무 크게 넘겨짚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어차피 시장에서 암호화폐의 가치를 고평가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니까. 우리는 적당한 시점에서 현금화할 거야.”

그렇게 동생과 투자 방안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데,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캡틴 아메리카, 로그 원, 도리를 찾아서, 정글북, 주토피아 이렇게 다섯 작품에 모두 3억 달러를 투자하는 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

계약을 보고하는 팀 카렐의 입은 거의 찢어지려 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계약대로 투자금은 8월 중으로 전부 납입하도록 하지요.”

“수고는요. 투자를 받는 거라면 어려운 일이지만, 투자를 한다는데 수고랄 게 있나요.”

팀 카렐을 통해 모두 15억 달러에 달하는 영화 투자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따로 지시하신 해밀턴에 대한 투자도 이번 주 내로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뮤지컬 쪽은 전문이 아니라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잘됐네. 주말에는 해밀턴이나 보러 갈까?”

유진은 영화에 투자했다는 말보다, 해밀턴에 투자가 성사되었다는 말에 더 기뻐했다.

“뮤지컬? 그거…… 재미있어?”

유성이 조금 미심쩍다는 눈으로 형을 보았다.

“평이 아주 좋더라고.”

올해 4월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된 뮤지컬 해밀턴은 미국 건국의 주역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에 대한 힙합 뮤지컬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게 될 작품이다.

이미 프리 쇼에 해당하는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큰 호평을 받아, 한 달 뒤에 뮤지컬의 본진인 브로드웨이 데뷔를 앞두고 있었기에 그다지 자금 사정이 딸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큰돈을 흔쾌히 투자한다는데 거절하지는 않았다.

“나 뮤지컬 같은 거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솔직히 한국에서 남자들이 뮤지컬을 보러 가는 경우는 데이트할 때가 대부분일 것이다.

여자들의 경우는 뮤지컬에 나오는 배우에 빠져서 같은 뮤지컬을 몇 번이고 보러 가는 일도 적지 않은 듯하지만, 남자야 어디 그런가?

남자라면 차라리 캡틴 아메리카를 열 번 보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해밀턴은 너도 좋아할 거야.”

“그러려나?”

유성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뮤지컬 투자라니…… 그건 좀 신기하다. 뮤지컬도 영화처럼 투자자들한테 돈을 받는구나?”

“물론이지. 뮤지컬 한 편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나 무시무시한데.”

뮤지컬 한 편을 올리는 데 투입되는 비용은 수천만 달러 수준.

블록버스터급의 영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영화 한 편 제작비에 해당하는 비용이다.

사상 최고의 비용이 들어간 스파이더맨의 경우는 무려 8,000만 달러에 가까운 자금이 투입되었다.

당연히 한두 사람의 투자로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영화와 뮤지컬 투자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

뮤지컬에 투자한 자금은 영화처럼 그해에 전부 정산해서 돌려받는 것이 아니다.

뮤지컬의 수익은 공연되는 극장의 티켓 수익이 대부분이다.

영화처럼 전국에 걸쳐 수백, 수천 개의 극장에서 동시 개봉하는 것도 아니고, 브로드웨이의 한 극장에서 티켓을 팔아 보아야 얼마나 많이 팔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뮤지컬 흥행의 확률은 영화보다 낮은 20% 선에 불과하다.

하지만 흥행에 성공할 경우 짧으면 10년, 길면 수십 년 동안 투자한 금액을 매년 얼마씩 돌려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영화 투자가 한 방을 노리는 도박 같은 성격이라면, 뮤지컬 투자는 매년 일정한 이자를 받는 저축 비슷한 성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수천만 달러를 투자해서 20년 동안 10억 달러쯤을 돌려받는다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나 이미 투자할 곳은 채이고 남는 유진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투자처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해밀턴은 유진이 뉴욕에 와서 꽤 여러 번 직접 공연을 즐긴 애정하는 뮤지컬이다.

그런 뮤지컬의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유진에게는 단순한 투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투자는 유진에게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도락이라고 할 수 있다.

“알았어. 형이 투자한 건데, 그래도 한 번은 봐야겠네.”

만일 캡틴 아메리카나 스타워즈를 보러 가자고 했으면 지금과 판이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사실 유진도 처음 해밀턴을 보러 간 것은 어느 여성과의 데이트 때문이었다.

많은 한국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유진도 상대방을 기쁘게 해 주려는 의도로 리처드 로저스 씨어터의 티켓을 예약했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유진은 같은 공연을 보러 갔었다.

물론 대부분은 누군가와 함께였다. 그리고 전부 다 다른 사람이었고.

유진은 뮤지컬 공연이 꽤 가성비 높은 데이트 코스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또 스스로도 즐길 수 있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처음으로 여자가 아닌 누군가와 해밀턴을 보러 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주 주말, 언제나처럼 이루어진 유진의 사교 모임을 방문한 그녀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녕하세요. 요안나라고 해요.”

인사를 건네는 이는 유진보다 몇 살 정도 어린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은 범접하기조차 힘든 어떤 아우라를 마구 풍기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강유진입니다. 오늘 처음 오셨지요?”

“네. 잠시 뉴욕에 들렀는데, 지인이 오늘 아주 멋진 자리가 있다고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듣던 대로 멋진 저택이네요.”

잠시 유진은 자신이 상대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하는지 고민했다.

앞으로 몇 년쯤 뒤 이 여인은 맨해튼의 금융계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게 될 것이다.

유럽에서도 유서 깊은 오라녜나사우 가문의 수장이자 네덜란드 국왕인 빌험 8세의 장녀이며 네덜란드 왕위 상속 순위 1위라는 대단한 위치를 지닌 여인이지만, 그녀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그런 거창한 배경 때문은 아니다.

그녀는 뉴욕에서 금융학을 공부하고, 세계구급의 거대 투자 은행인 벌지 브래킷 중 하나인 바클리스에 입사해서 초기 몇 년 동안은 평범한 애널리스트로 일을 배우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동기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성과를 내며 빠르게 승진해 서른이 조금 넘는 나이에 파트너에 이르게 된다.

그때 즈음에 그녀의 배경 또한 알려지게 되면서,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온 투자의 여왕, 혹은 얼음 공주님이라는 별명으로 월스트리트 최고의 셀럽으로 등극한다.

그러니까 지금 즈음의 그녀는 아직 투자 은행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는 평범한 애널리스트에 불과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신의 성과가 드러날 때까지는 주변에 자신의 배경이 알려지는 것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고 알고 있다.

아무래도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은 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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