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50화 (50/363)

50화 프린세스 오렌지

“유진 캉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1억 달러로 1년 만에 거의 100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면서요?”

요안나가 찾아온 것은 단순히 친구의 제안 때문은 아닌 모양이다.

그녀는 생각보다 길게 유진의 주변에 머무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었다.

“유가 하락을 예측해서 70억 달러,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일어난 테러로 한국 증시에서 10억 달러, 그리고 지금은 미국 증시에 고 레버리지로 투자 중이라면서요?”

외부에 알려진 유진의 투자는 거기까지였다.

한국에서 대양 그룹 주식 공매도로 벌어들인 돈을 다시 대양 그룹에 투자해 40억 달러가 넘는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아직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미 증시에 투자한 수익이 벌써 90억 달러에 달하는 것도 정확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니 외부에서 알고 있는 유진의 자산과 실제 자산은 약 두 배 정도의 차이가 있다.

“몇 만 달러로 1년에 100배의 수익을 내는 경우야 드물기는 해도 없는 일은 아니지만, 1억 달러라는 거액으로 그렇게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 모양이지요? 나도 이렇게까지 수익이 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재수가 좋으면 넘어져도 가지밭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마 내가 그런 모양이에요.”

“가지밭이요?”

“아! 한국 속담이에요. 그냥 운이 좋으면 뭘 해도 다 잘된다는 뜻이죠.”

생각해 보니 젊은 여자에게 설명해 줄 만한 속담은 아니다.

“단순히 운이라고 치부할 수 있겠어요? 한두 번은 운이라지만, 그게 계속되면 결코 운이라 볼 수만은 없잖아요? 지금만 해도 하필 미 증시에 투자하니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정신없이 오르고 있어요. 적어도 선구안이 뛰어난 것만은 틀림없어요.”

“설마 내 SNS까지 본 거예요?”

“네. 저 유진 캉의 굉장한 팬이거든요.”

요안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 * *

“위험한 여자야. 공주라는 배경은 거론할 것도 없고, 실력도 뛰어나지만, 욕심이 굉장해. 원하는 게 있다면 어떻게든 손에 넣고 마는 여자지.”

유진은 언젠가 윌리엄에게 들었던 요안나에 대한 평가를 머리에 떠올렸다.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한 사람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맞아. 금융 투자에서 살아남는 인간들은 다들 비슷해. 끝없는 탐욕으로 가득하지. 그런 인간들 가운데서 두각을 나타내는 여자라면 어떻겠어?”

유진의 질문에 윌리엄이 웃으며 말했다.

“바클리스에서 7년 동안 있으면서 노하우를 잔뜩 훔쳐 간 모양이야. 바클리스에서 나오고는 왕실 재산으로 펀드를 만들어서 이제는 월스트리트에서도 손꼽히는 사모 펀드의 하나로 만든 게 거의 그녀 혼자의 힘이었지.”

“대단하긴 하네.”

“재미있는 일이지? 한때 네덜란드는 영국과 함께 금융에서는 양대 산맥으로 꼽힐 만큼 중요한 나라였었잖아? 동인도 회사로 라이벌이었던 시절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 유럽의 금융 허브는 역시 런던이지. 네덜란드는 벌지 브래킷은커녕 2티어급 금융 회사도 없으니까.”

윌리엄이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요안나는 그게 아쉬웠던 모양이야.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와 금융을 공부하고 하필이면 많은 투자 은행 중에서도 영국 자본인 바클리스에 들어갔지. 틀림없이 언제고 바클리스를 뛰어넘는 투자금융 기업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을 거야. 바클리스를 뛰어넘으려면 바클리스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었겠지.”

블랙록을 나와 자신의 투자 회사를 꾸려가고 있던 윌리엄은 요안나의 투자 회사와도 거래가 종종 있었던 모양이다.

공적으로 몇 번 정도 요안나를 만나 본 윌리엄은 요안나에 대해 똑똑하고 무서운 여자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렇게 위험한 여자와 함께 일하는 건 위험하지는 않아? 너희 회사까지 잡아먹히는 건 아니야?”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요안나는 적어도 상대를 등치는 행동은 하지 않으니까. 뭐라고 할까? 왕가의 자존심? 그런 게 있는 모양이야. 적어도 자기가 한 말은 지켜. 동업자에게는 신뢰가 있고. 대신 배신한 사람에게는 가차 없는 편이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진짜 여왕님을 배알하고 있는 기분이라니까. 만약 지금이 절대 왕정 시대였다면, 정말 큰일을 했을 사람이야.”

* * *

“팬이라니, 당신처럼 멋진 여성분께 그런 말을 들으니 어쩐지 부담이 되는군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였다.

윌리엄의 말을 기억하고 나니, 요안나의 푸른 눈이 어쩐지 순수한 욕망으로 번뜩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실은 굉장히 궁금했어요. 어떻게 그만한 큰돈으로 그렇게 위험한 베팅을 하고, 또 어떻게 성공시켜 왔는지요.”

“남들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겁니다. 위험하다고는 해도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으니까요.”

“하기는. 유가 하락의 기미는 충분히 보였고, 대양전자가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에 베팅한 금액이 너무 무리였기는 하지요. 또 지난해 말부터 구글과 넷플릭스의 성장에 대해 좋은 예견은 많이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단순히 유진의 투자에 관심을 가지는 이상인 것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그거 아세요? NXP도 프리스케일에 꽤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걸요? 아! 생각해보면 모르실 리 없겠구나.”

요안나는 폭풍처럼 말을 쏟아 냈다.

그러고 보니 NXP반도체도 네덜란드의 기업이고, 네덜란드 왕실에서 약간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네덜란드 왕실은 유럽의 다른 왕실에 비해 꽤 부유한 편이다. 다른 왕실들이 주로 부동산이나 보석, 명화 따위의 재산으로 대부분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해, 네덜란드 왕실은 로얄더치셀이나 ABN-암로은행 같은 기업의 지분을 상당수 지니고 있었다.

“만일 대양전자와 다산전자의 경합이 아니었다면, NXP에서 인수에 나섰을지도 몰라요. 그쪽이 훨씬 시너지가 크거든요.”

“잘 됐군요. 대양전자가 프리스케일을 포기했으니, NXP에도 기회가 생겼네요. 두 회사가 합쳐지면 자동차 반도체와 보안 반도체 분야에서 절대 강자가 되겠군요. 어쩌면 다음번엔 그쪽에 투자해야 할까 봐요.”

“글쎄요? 말레이시아 테러의 여파로 손실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을 거 같아요. 적어도 1, 2년 안에는 어디서도 인수에 나서겠다 말하기 어려울 거예요.”

반도체 분야에 대해 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요안나는 대양 그룹이 프리스케일에 투자한 비자금 때문이라도 프리스케일을 빨리 어디엔가 넘기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했다.

유진은 한동안 그렇게 요안나와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말로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를 취합해서 납득할 만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니까요. 무슨 말도 안 되는 투자로 돈을 번 적은 없어요.”

“하지만 같은 정보를 들고 있는 다른 수많은 투자자들과 달리 유독 당신만 그렇게 엄청난 수익을 내는 이유가 뭘까요? 맨해튼의 투자은행들과 펀드에 근무하는 수만 명의 천재들은 그렇게까지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는데 말이죠.”

“글쎄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과감성이요.”

요안나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사실 미래에 대한 정보는 수도 없이 많아요. 그리고 어떤 결과에 대해서 항상 포지티브와 네거티브의 두 가지 정보가 동시에 주어지지요. 대개는 그 두 가지 모두 합리적인 이유가 있구요. 그러니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늘 상황이 반대로 흘러갈 것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에요. 그러니까 투자를 하면서도 반대의 결과가 일어날 것에 대비한 헷징을 하기 마련인 거죠. 하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았어요. 자신이 판단한 것에 최대한의 베팅을 했죠. 난 굉장히 궁금해요.”

“뭐가 궁금한 거죠?”

“대체 당신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혹은 언젠가 이카로스처럼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말지요.”

“재미있네요. 이카로스라니.”

솔직하고도 흥미로운 비유에 유진이 웃어 보였다.

“반대로 지금처럼 대단한 수익이 계속되면 오래지 않아 아주 공고한 성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남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거대한 자본으로 쌓인 올림포스산을 말이지요. 어쩌면 당신은 그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을 수도 있어요. 당신이 이카로스인지 제우스인지, 오래지 않아 결과를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재미있는 말씀이네요.”

“그래서 드리는 말인데요.”

요안나는 이번에는 잠시 뜸을 들였다.

“네.”

“혹시 사람 한 명 필요하지 않으세요?”

“어떤 사람이요?”

“뭐든지요. 당신처럼 많은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하다못해 서류를 정리한다거나, 간식을 나를 사람이라도요.”

“그러니까…… 비서 같은 거요?”

“뭐. 비서든 조수든 상관없어요. 저 꽤 유능한 편이거든요.”

“이렇게 갑자기 취업 청탁을 받을 줄은 몰랐네요.”

유진은 진심이었다. 이 시기에 이런 식으로 요안나와 얽히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하, 제가 조금 성급한 성격이라서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부딪쳐 봐야 성이 풀려요.”

“사람이야 언제라도 필요하지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능력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해요.”

“전 스턴 스쿨을 숨마쿰라우데로 졸업했어요. 지금은 바클레이에 근무하고 있구요. 지금 보여드릴 수 있는 거라고는 이 정도뿐이지만, 잠깐만 써보시면 제 능력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정말로 유진에게 고용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난 능력보다 신뢰성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어. 음…… 전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아요. 그리고 누군가의 신뢰를 실망시킨 적도 없구요. 그리고…….”

자신의 신뢰를 증명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물론 유진은 이 여자의 신뢰도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하지는 않는다.

윌리엄이 했던 말 때문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평판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지금까지 진실했던 사람이라 해도 앞날은 모른다는 것이 유진의 생각이다.

신뢰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일을 맡길 때는 늘 신뢰가 깨질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바클레이에 있는 제 상사들의 추천서 정도로는 안 되겠지요?”

요안나는 지금까지의 태도와는 달리 조금 주눅이 든 태도로 물었다.

“상사분의 추천서를 받아 오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아마 그 정도는 해 줄거라 믿어요.”

“그렇다면 한 번 받아 와 주세요. 단, 직접 받아오지 말고, 그분에게 나한테 직접 추천서를 보내 달라고 해 봐요. 솔직한 내용으로요.”

유진이 웃으며 자신의 메일 주소를 알려 주었다.

“아까 그 여자 굉장히 미인이던데. 설마 마음에 있는 거야?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잖아?”

파티가 끝나고 유성이 물었다.

“굉장히 미인인 것도 맞지만, 그보다 굉장히 스마트한 여자더라. 그리고 야망도 있고.”

“그래? 형이 그런 여자를 좋아했었나?”

“좋아한다기보다 취업 청탁을 받아서 말이야.”

“취업? 그 여자를 쓸 생각이야? 비서? 그런 미인 비서가 있으면 좋기는 하겠다.”

“글쎄? 비서라…… 그보다는 쓸데가 많을 거 같은데.”

요안나는 투자 대상에 대한 탁월한 분석으로 두각을 나타냈었다고 알고 있다.

어차피 앞으로 투자 대상이 늘어날 것이고, 유진이라고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전부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점점 유진의 행위가 미래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니 상황이 생각과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 것들을 통찰력 있는 눈으로 보아 줄 사람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다.

유진과 같은 상황을 보면서, 유진과 다른 판단을 내려 주는 현명한 사람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돌아오는 월요일, 중국 증시에 대한 베팅이 끝났다.

상해지수와 항셍지수 선물에 다섯 배의 레버리지로 200억 달러에 달하는 숏 포지션 계약을 마쳤고, 중국 공상은행, 농업은행, 페트로차이나, 중국국제항공 같은 중국 산업의 대장주들에 대한 공매도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아시아계 투자 은행들과 중국 증시 하락에 대한 옵션과 보험 계약도 맺었다.

중국 증시가 과열되어 있다는 것은 모두들 인정하고 있었기에 쉽게 옵션을 열어 주려 하지 않았지만, 3개월에 3,000포인트 미만이라는 조건으로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누구도 그런 짧은 시간 동안 중국의 증시가 그렇게까지 폭락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중국 정부에서 그걸 허용할 리 없다고 믿는 것이다.

중국 증시의 폭락은 곧 현 중국 지도부의 신뢰도와 직결된 문제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