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55화 (55/363)

55화 이슈 메이커

한국에 들어온 다음 날, 테헤란로의 슈팅스타 본사 건물에 출근해 그동안의 상황을 보고 받았다.

“슈팅스타 컴퍼니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굉장히 많습니다.”

“얼마나 되지?”

“SS파트너스에 할당한 3조 7,000억 원 중 7,000억 원을 썼고, SS벤처스에 할당한 1조 원에서 4,000억 원 정도를 사용했습니다.”

김환이 우수리를 빼고 대략적인 자산을 알려 준다.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의 말레이시아 공장에 테러가 일어나기 전 6억 달러를 들여와 대양 그룹 계열사의 주식을 공매도해서 벌어들인 돈이 1조 5,000억 원, 그리고 사태의 끝에서 대양 그룹 주식을 긁어모아 재차 벌어들인 돈이 2조 3,000억에 달했다.

대양 그룹 계열사의 주식은 대부분 처분해서 현금화했다.

대양 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핵심인 대양인터내셔널 주식이 아니라면 굳이 손에 들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또 그동안 작은 규모의 사모펀드 하나와 벤처캐피털 하나를 인수해 각각 SS파트너스와 SS벤처스로 이름을 바꾸고 운영 중이었다.

“지금까지 모두 서른두 개의 부동산을 구매했습니다.”

SS파트너스에서는 테헤란로에 나와 있는 빌딩 매물을 거둬들이느라 7,000억 원을 사용했다.

현재 슈팅스타의 본사로 사용 중인 빌딩 수준의 매물은 거의 전부 사들였다 보아도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 사이의 중소형 오피스 빌딩도 위치만 괜찮으면 가리지 않고 매입했다.

물론 각 빌딩에는 적어도 80% 이상의 대출이 들어가 있어서,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가치는 모두 4조 원을 훌쩍 넘어선다.

이 빌딩들이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전부 두세 배 이상 오를 것이니, 레버리지를 고려하면 적어도 열 배에 가까운 수익이 날 것이다.

“SS벤처스에서는 모두 서른다섯 개의 기업에 투자를 마쳤습니다.”

SS벤처스에서 비트 코리아, 빗원, 코인제로, 두그루 등 암호화폐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한 돈이 200억 원, 마켓 컬리넌, 바비리퍼블릭, 캐럿 등 초기 단계 기업에 투자한 자금이 3,000억 원 수준이다.

그리고 유진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김환과 팀원들이 성공 가능성 높은 스타트업에 추가로 투자한 돈이 500억 원에 달했다.

“운용자산 기준으로도 국내 1위 벤처캐피털이고, 투자 금액 기준으로도 두말할 나위 없는 1위입니다. 겨우 몇 달 동안에 이 정도로 많은 기업에 투자한 경우는 없습니다.”

SS벤처 이전의 한국 1위였던 프라임 벤처캐피털의 운용 자산은 5,000억 원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도 스타트업이 아닌 일반 기업에 대한 투자까지 합쳐서였고,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3,000억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지금 투자 중인 기업들에서 추가 투자 요청이 들어오면 최대한 투자를 유치하도록 해.”

“네. 모두 전망이 확실하고, 경영진의 능력이 출중하니 투자를 이어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유진이 고른 스무 개의 기업들은 모두 6, 7년 안에 각기 1조 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들이다.

그때가 되면 슈팅스타에서 보유한 이 기업들의 지분만으로도 어지간한 대기업 규모에 달할 것이다.

한동안 두 사람은 슈팅스타의 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식사라도 할까?”

“그럴까요? 벌써 점심시간이 지났네요. 그런데 요안나 양은 무얼 좋아하실까요? 혹시 한국 음식은 접해 본 적 있나요?”

김환이 유진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옆에서 멀뚱멀뚱 앉아 있던 요안나에게 물었다.

“한국 음식은 몇 번 정도는 먹어봤어요. 굉장히 헬시한 음식이더군요.”

처음으로 영어로 질문이 오자 요안나가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맨해튼에도 한국 식당이 꽤 있죠?”

“어. 근데 딱히 거길 다니게 되지는 않더라고.”

뉴욕에서의 삶이 한국에서의 삶과 비슷한 정도인 유진은 더 이상 한국 음식에 집착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저 시즌에 한 번 정도 특식처럼 먹어 주면 만족스러울 정도였다.

지난번까지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던 동생을 위해서라도 종종 한국 식당을 다니고는 했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면 유성 혼자 다녀오고는 했다.

“그럼 오랜만에 제대로 된 고향 음식으로 할까요?”

김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고향 음식이라…… 어제 실컷 먹었어.”

오랜만에 집에 가니 어머니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의 음식을 해 놓으셨다.

“그래도 요안나한테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대접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김환은 요안나가 꽤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유진은 요안나를 인턴 사원이라 소개했지만, 김환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 한국 음식 먹으러 가지.”

“그렇지 않아도 예약해 놓았으니 지금 가면 딱 될 겁니다.”

김환이 유진과 요안나를 데려간 곳은 신사동의 한식당이었다.

“익히지 않은 게라고요?”

요안나는 검은 소스에 담겨 있는 날 게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끝으로 게를 건드려 보았다.

“여기 괜찮지.”

유진은 김환의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생각해 보면 여길 와 본 것도 아주 오랜만이다. 아마 30년은 된 것 같다.

“도저히 손이 안 가면 다른 걸 먹어도 돼. 튀김도 괜찮으니까.”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인 표정으로 게장을 콕콕 찔러 보고 있는 요안나에게 말했다.

“아뇨. 한 번 먹어 볼게요.”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게장을 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 유진이 하는 것처럼 게의 몸통을 살짝 눌러 포크로 살을 조금 떠서 입에 넣어 본다.

“음…….”

처음 게살이 입에 들어갈 때는 굉장히 곤욕스러운 얼굴이더니, 금세 표정이 바뀐다.

“맛있네요. 살짝 짭짤하고 굉장히 크리미해요. 익히지 않은 게의 살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예요.”

“그렇죠? 생각보다 외국 사람들이 게장을 좋아하더라고요.”

“맞아.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가끔 여기로 데려오고는 했지.”

“선배한테 배운 거죠. 흐흐.”

간장 게장은 외국 손님의 접대로 꽤 효과적이었다.

물론 낯선 이국의 음식에 두려움을 갖는 사람이라면 서양 식당으로 데려갔지만,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게장만 한 것도 없었다.

처음에 입에 넣기까지는 무척 망설여지지만, 입에 들어와 맛을 보고 난 뒤부터는 모두들 정신없이 그 맛에 탐닉하고는 했다.

“꼭 질 좋은 버터가 섞인 것 같은 느낌이에요.”

요안나도 그랬다.

“간장의 발효 풍미와 발효 버터의 풍미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게 참 희한하단 말이에요. 날 게의 맛이 이렇게까지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게. 이런 음식은 생각도 못 했어요.”

요안나는 어느샌가 정신없이 게장을 파 먹고 있었다.

“그렇게 게만 먹는 것보다 밥이랑 같이 먹으면 더 좋아요.”

김환이 게장을 밥에 비벼 먹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래요? 어? 아! 진짜네!”

요안나도 금세 게장의 진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먹으면 짜지 않으려나?”

생각보다 많은 양의 게장을 먹어치우는 요안나를 보며 김환이 말했다.

“네덜란드 음식도 굉장히 짜더라고. 그러니까 게장 정도는 짠 축에도 못 낄 거야.”

유진도 요안나처럼 한 숟갈에 게살을 듬뿍 얹어 먹어치우며 말했다.

“하긴. 그렇겠네요. 저도 유럽 출장 다니면 그 짠맛이 진짜 힘들더라고요.”

“네덜란드는 좀 더 심한 편이야. 워낙에 염장 음식을 많이 먹었어서 그런 모양이지.”

“아! 요안나가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했었죠? 네덜란드 여자들은 전부 미인인가 봐요.”

김환은 다시 한국말로 대화를 시작했다.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 요안나 정도면 네덜란드에서도 꽤 미인일 거야.”

“그런데 정말 그냥 인턴인가요?”

“왜? 아닌 거 같아?”

“왠지 흑심이 들어 있지 않나 싶어서 말이에요. 하하.”

“그런 거 없어.”

그리고 그런 거 있으면 큰일 나…… 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었다.

“선배 악명이 아주 하늘을 찌를 듯하네요.”

김환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다.

전날 유진이 귀국하며 몰고 온 사태를 이야기해야겠다 싶은 모양이다.

“나도 봤어. 아주 죽일 놈이 따로 없더군.”

유진이 웃으면서 말했다.

전날 공항에서의 해프닝은 바로 기사화되어 각 포탈의 대문에 도배가 되어 버렸다.

뉴스로서뿐 아니라 각 포탈의 검색어 순위 상위권은 온통 유진에 관련된 단어들이다.

“지금 선배가 이 나라에서 제일 핫한 사람이에요.”

그럴 만도 했다. 1년 전에 미국에서 고액의 로또에 당첨되고, 1년 만에 다시 그 돈을 수십 배로 불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디어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으로 유진을 지목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부호 순위는 어디까지나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기준으로 하고 있지, 현금을 1조 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전무할 것이다.

물론 대기업 사주들이 은밀하게 돌리고 있는 비자금이야 그 수준을 넘어서겠지만, 유진처럼 10조 원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을 지닌 사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결코 없을 것이다.

한국 제일의 현금 부자가 결혼을 한다고 해도 큰 이슈가 될 터인데, 그런 훈훈한 이슈도 아니고 파혼 소송 도중 새로운 금발 머리 미녀 애인과 함께 입국한 사실처럼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는 이야깃거리도 없을 것이다.

“출구 전략은 있으시겠죠?”

김환이 살짝 웃음기를 거두며 물어 왔다.

“이대로는 아무래도 지장이 있겠지?”

“조금은요. 아무래도 선배의 이미지가 지금 거의 연쇄살인마에 가까우니까, 비슷한 조건이라면 우리 쪽 투자는 받지 않으려 할 겁니다.”

김환의 우려는 그런 것이었다.

슈팅스타에서 진행 중인 사업은 대부분 다른 기업에 대한 투자이다. 그리고 이미 궤도에 올라 순항 중인 사업체에 비해 스타트업들은 이미지에 크게 의존한다.

“당장 급한 투자는 없으니 그건 상관없는데, 지금까지 투자한 회사들이 문제예요.”

만일 유진이 지금처럼 악마화되어 연일 미디어에 오르내린다면, 기존에 슈팅스타에게서 투자를 받은 업체들도 불안에 떨게 될 것이다.

“잠깐은 버텨 주겠지. 당장 우리를 대신해 그만한 돈을 투자할 곳을 어디서 구하겠어.”

“물론이죠. 하지만 길게 가면 곤란해요.”

“길게 갈 것 없어. 재판 끝날 때까지만 버티면 돼. 할 수 있겠지?”

유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시다면 버틸 수밖에요.”

김환도 이제 다시 웃음을 되찾으며 대답했다.

유진의 태도에서 지금의 사태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며,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읽은 것이다.

김환과 다른 팀원들이 대기업을 떠나 유진에게 합류한 것은 단순히 유진이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바탕에는 유진의 옛 동료들에게 유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이후로 김환은 더 이상 유진에게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진짜 맛있는 식사였어요.”

1인당 하나면 충분한 커다란 게를 세 마리나 먹어 치우고 공깃밥도 세 그릇이나 비운 요안나가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모양이네. 요안나가 그렇게 행복해하는 얼굴은 처음 봐.”

“아! 그런가요? 진짜 행복해요. 적어도 오늘은 투자로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고, 엄청나게 맛있는 것도 먹었으니까요. 그래도 한국어는 배워야겠어요. 왠지 나만 소외되는 기분 좋지는 않았어요.”

“원한다면 한국어 선생을 붙여 주지. 시간을 낼 수 있겠어?”

“물론이죠. 원하는 걸 이루려면 시간은 어떻게든 만들어 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식당을 나설 때였다.

번쩍하는 빛이 일행의 눈을 내리쳤다.

“강유진 씨. 정원일보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을 보니 또 기자가 서 있다. 이번에는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기에 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아!”

깜짝 놀란 요안나가 뒤로 물러서며 비틀거렸고, 유진은 재빠르게 그녀의 몸을 팔로 끌어안았다.

번쩍! 번쩍!

다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이내 기다리고 있던 존과 경호원들이 유진 일행을 둘러쌌다.

“유진 씨. 파혼한 여성분과의 소송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세요.”

유진 일행은 기자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모두 굳은 얼굴로 아무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

“아무래도 앞으로 저런 기자들이 더 늘어나겠어요.”

김환이 살짝 걱정되는 듯 말했다.

“그러겠지.”

유진은 어느새 다시 굳은 얼굴을 풀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