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패밀리 오피스
“내가 대통령 선거에 나선 것이 무슨 사업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런 것도 아니니 상관없지.”
의뭉스러운 트럼프는 유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면서도 슬쩍 넘겨 버린다.
뼛속까지 사업가인 트럼프가 대통령의 자리마저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는 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이죠. 트럼프 씨는 어디까지나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숭고한 목적으로 나선 거니까요.”
“아무렴. 미국을 예전의 그 강인하고 위대한 시절로 돌려보내려면 역시 내가 나서야 하지.”
트럼프가 웃으며 말했다.
“참! 몇몇 지인들의 투자를 받아 패밀리 오피스 하나를 열 생각입니다.”
유진이 다시 화제를 돌렸다.
“패밀리 오피스?”
“투자 실적을 보고 함께 하기를 원하던 사람들이 몇몇 있어서요.”
“호오!”
“혹시 관심 있으신가요?”
“1년간의 수익이 20,000%가 넘는다고 했었지?”
트럼프는 숫자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대화를 할 때면 늘 다양한 숫자를 꺼내 놓으며 자신이 하는 말에 신뢰를 더해 줄 근거로 삼는다.
“대략 39,000%정도 되겠군요. 1억 달러로 390억 달러를 만들었으니까요.”
그러니 그와 대화를 할 때면 상대 역시 명확한 숫자를 제시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
숫자를 사랑한다는 말은 제시되는 숫자에 약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꿀꺽!
트럼프의 얼굴에 탐욕이 서렸다.
“현금으로 390억 달러라는 말이지? 기가 막히군. 부자 순위 5위 안에 들어가겠군. 빌 게이츠가 800억 달러, 500억 달러의 래리 엘리슨, 제프 베이조스가 478억 달러,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가 412억 달러였지? 레리와 세르게이가 330억 달러 수준이니 틀림없이 그보다는 위야.”
트럼프는 세계 부호 순위를 정확한 액수까지 외우고 있었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니다.
세상의 많은 부자 중에서도 트럼프처럼 부호 순위에 집착하는 사람은 달리 없을 것이다.
트럼프는 늘 자신이 세계 부호 순위 몇 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고, 혹시라도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한다면 불같이 화를 냈다.
트럼프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세계 부호 순위에 들어 있다는 것을 부정당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뭐. 내년에는 1위를 한 번 노려 볼까 생각 중입니다.”
“멋진 일이야. 해외 이민자가 1년 만에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자산가가 되다니, 이야말로 아메리카 드림이로군.”
트럼프는 부러움을 감추고 말했다.
“실적이 그 정도쯤 되니, 지인들에게서 자기 돈을 같이 굴려 줄 수 있냐는 요청이 들어오더군요.”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사실 저로서는 그래야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내가 보유한 자산만도 어지간한 투자은행 수준이고, 약간의 레버리지를 쓰면 국가 예산급의 자금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친구로서의 우정 때문이지요.”
“대체 어떤 친구들에게 그런 요청을 받았는지 물어도 되겠나?”
“뭐. 고국의 힘 있는 몇몇 사람들과 그 외 여러 나라의 비슷한 사람들이지요.”
“그래. 한국 말이지.”
끄덕이는 트럼프를 보며 유진은 이제야 생각 났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참. 새로 오픈할 패밀리 오피스의 책임자는 지금 저와 파트너로 일하고 있는 요안나 양이 맡을 예정입니다. 이건 비밀인데, 트럼프 씨만 알고 계십시오.”
“뭔가?”
“요안나 양은 네덜란드 국왕의 장녀입니다. 차기 네덜란드 왕위 계승자이지요.”
요안나에게는 이미 허락을 받은 일이다.
더군다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기도 하다.
“아! 그랬었나? 그렇다면 혹시 네덜란드의 왕실도?”
“뭐. 전혀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요안나에게 제안해서 그녀의 2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10만 달러를 우선 투자받기로 했다.
요안나는 좀 더 큰 액수를 넣고 싶어 했지만, 유진이 제시한 기준이 되지 않는다. 10만 달러의 투자 역시 직원에 대한 호의 표시에 가까웠다.
“그렇군…….”
트럼프는 심히 관심이 가는 기색이다.
트럼프는 굉장한 권위주의자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지도자보다 국왕이나 독재자들과 친분을 쌓는 데 더 열심이었다.
“자네의 패밀리 오피스에 투자를 한다면 꽤 높은 수익이 보장되겠군?”
“투자라는 것이 누가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물론 저도 앞날을 확신할 수는 없구요. 그래도 나를 믿어 주는 친구들은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라 믿는 모양입니다.”
“그래. 그래서 그 패밀리 오피스엔 어느 정도의 자금이 모였나?”
트럼프는 유진이 말하는 패밀리 오피스에 점점 관심을 보였다.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하지만 제 친구들에게 최하 1억 이상의 투자만 받는다는 것은 말씀드려도 괜찮겠군요.”
“1억 달러라고?”
트럼프가 움찔한다.
트럼프는 자신이 늘 미국 400대 부자 순위에 상위권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실질적인 트럼프의 자산은 언제나 논란거리였다.
다양한 부동산과 라이선싱 사업에 투자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패도 적지 않았다.
더군다나 유진의 투자가 지금까진 성공적이었다 해도, 그런 거액을 믿고 맡길 만큼의 신뢰가 쌓인 것은 아니다.
“아! 이제 그만 가 봐야겠군요. 트럼프 씨도 유세로 일정이 바쁘시지요?”
고민에 빠져 있는 트럼프에게 유진이 먼저 작별을 고했다.
미끼를 던져 놓았으니, 이쯤에서 일어나야 했다.
다음번에 만날 때에는 트럼프가 몸이 달아 있을 것이다.
유진은 트럼프가 자신의 지갑에서 직접 돈을 꺼내 놓기를 원했다. 그것도 신경이 쓰일 만큼 큰돈을 말이다.
“전에는 꽤 큰 집이라고 느꼈는데, 이제는 이 집도 복작거리네.”
자택으로 돌아오니 유성이 집안 여기저기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지. 경호팀에 홍보팀만으로 꽉 차는 기분이네.”
뉴욕으로 돌아온 유진은 사람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할 일이 많아지니 이것저것 손이 모자라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고용한 사람들은 홍보팀이다.
얼마 전까지는 동생이 함께 다니며 유진의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것을 담당했지만 자기 일로 바쁜 유성에게 그것까지 시킬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유진의 이름값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에 한 사람의 힘으로는 벅찼다.
유진은 헤드헌터를 통해 꽤 재능 있는 포토그래퍼와 대기업에서 홍보를 담당해 온 사람들을 여럿 고용했다.
이제 유진의 행보는 한국에 자신을 알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넓게 유진을 알리고, 그를 통해 영향력을 키워 가야 했다.
“정부에서 드디어 칼을 빼 들었어요. 위안화를 평가절하하겠다는군요.”
8월 들어 중국 정부는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위안화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이로써 중국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더 낮은 가격으로 수출할 수 있고, 수입품의 가격은 오를 것이다.
하지만 경제라는 것이 그렇게 쉽사리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잠시 반등이 있나 싶더니 오히려 전보다 더 열심히 하락을 시작했다.
“드디어 3,000이에요.”
온종일 중국 증시 그래프를 살피던 요안나가 기쁨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8월 25일, 상해종합지수는 2,935까지 떨어졌다.
즉시 투자은행들과 맺은 옵션과 보험의 권리를 실현했다.
여기에서 100억 달러가 조금 넘는 수익이 생겼다.
4,000포인트에서 다시 숏 포지션으로 진입한 지수와 풋옵션, 그리고 중국 증시의 대장주들에 대한 공매도도 모두 청산을 시작했다.
“옵션과 보험금 수익이 100억 달러, 기타 상품에서 180억 달러입니다. 굉장한 금액이 될 것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액수에요.”
처음 투자한 50억 달러를 포함해 340억 달러가 현금으로 계좌에 쌓였다.
거기에 6월 말에 진입한 유가 선물 숏 포지션과 풋옵션도 아주 쏠쏠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60달러에 진입해서 8월 하순엔 40달러까지 떨어지며 유진에게 60억 달러를 안겨 주었다.
더불어 75억 달러를 담보로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11개 기업의 주식 375억 달러 상당을 구입해 놓은 것도 아직까지 나쁘지 않은 수익을 올리는 중이다.
“블랙록을 통해 운용하는 자산이 500억 달러를 넘고 있습니다.”
유진의 자택을 방문한 윌리엄이 최근 6개월 동안의 결산을 보고했다.
“500억 달러면 꽤 큰돈이죠?”
유진이 웃으며 물었다.
“물론이죠. 1년 만에 이만한 부를 쌓아 올린 사람은 인류 역사상 한 명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겠구요. 지금까지의 성과만으로도 유진 씨의 이름은 영원히 남을 겁니다.”
사실 미래를 알고 있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유진에게 부를 늘리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걸로 무얼 할 수 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할 뿐이다.
“그만한 돈을 전부 블랙록에 맡겨 운용하는 것은 더 이상 무리일 것 같아요.”
유진이 통보하듯 말했다.
지금까지는 큰 투자를 위해 블랙록의 이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유진의 이름 그 자체로 충분히 월가에 먹혀들어 갈 수준이 되어 있었다.
유동자산 500억 달러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개인은 지금까지 없었고, 헤지펀드로 따져도 수위권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그러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윌리엄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일정 부분은 계속 블랙록을 통해 운용하겠지만, 상당수는 따로 운용할 예정이에요.”
“무시무시한 자산운용사가 하나 탄생하는군요.”
“그래서 말인데. 어떤가요? 난 앞으로도 윌리엄과 함께하고 싶은데요. 물론 윌리엄이 요구하는 조건은 가능하면 들어 주지요.”
유진이 이날의 용건을 꺼냈다.
“그건…… 정말 감사한 제안이군요.”
윌리엄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물론 당장 결정하라는 것은 아니에요. 한 번 생각해 보겠어요?”
“음. 아뇨. 지금 대답을 드리지요. 솔직히 말해 유진 씨의 제안이 제 일생에 다시는 없을 굉장한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유진은 어쩐지 이어서 윌리엄이 할 말들을 듣기도 전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안 될 것 같아요. 유진 씨의 투자 방향과 제가 추구하는 투자의 방향이 너무나 달라요. 유진 씨는 앞으로도 차라리 헤지펀드에 가까운 극도로 위험한 투자를 진행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 주는 종류입니다.”
윌리엄이 블랙록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블랙록은 세계 제1의 자산 관리 회사이다. 당연히 최대의 수익이 아닌 최선의 수익을 노린다. 그렇다고 고수익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강구한다.
“유진 씨의 오피스에 들어가면 틀림없이 굉장한 돈을 벌게 될 겁니다. 또 커리어에도 더할 나위 없겠지요. 하지만 제가 그곳에서 하게 될 역할은 무척이나 한정적일 것 같군요.”
유진이 예상했던 그대로의 대답이다.
윌리엄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위험을 회피하는 감이 뛰어나다는 점일 것이고, 그 자신 역시 스스로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길을 걸어간다.
유진은 윌리엄이 언젠가 블랙록을 나와 자신의 자산 관리 회사를 차려 성공적인 운영을 이어 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블랙록에서처럼 안정적이면서도 결코 낮지 않은 수익을 올리는 자산 관리 회사였다.
“이렇게 깊이 생각도 하지 않고 거절의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늘 생각해 왔던 거라 서로에게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이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합니다.”
“역시 윌리엄은 믿을 만한 사람이네요. 보통이라면 생각이 조금 달라도 우선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부터 고민했을 텐데요.”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얼마나 주실 생각이셨나요?”
“윌리엄의 능력이라면 적어도 여덟 자리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겠어요?”
“네? 어, 음……. 상당히…… 관대하신 액수로군요. 하하…….”
윌리엄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다행이네요. 액수를 듣기 전에 거절할 수 있어서요. 액수부터 들었다면 진짜 고민했을 겁니다.”
하지만 윌리엄은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훨씬 더 먼 곳을 보는 사람이었다.
“제 제안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또 얼마나 대단한 미끼를 던지시려구요.”
윌리엄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500억 달러를 하나의 오피스에 전부 집어 넣을 생각은 없습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물론이죠. 때로 공격적인 투자를 할 때도 있지만, 그 정도 규모의 자금은 확실히 나누어 둘 필요가 있지요.”
“그래서 헤지펀드 역할을 할 패밀리 오피스와 안정적인 투자를 이어갈 펀드를 따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두 오피스는 독립적으로 운영할 생각이고, 윌리엄에게는 그 안정적인 투자의 책임을 부탁하고 싶어요.”
유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가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확정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나 지금처럼 그가 운영하는 자금이 많아질수록 세계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것이다.
그러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했다.
그걸 위해서는 유진의 자산 일부를 안정적으로 운용해 줄 수단이 필요했다.
“독립적이라면…….”
“해당 오피스 대표의 의사로 자유롭게 자금을 운용하면 돼요. 아무런 오더도 없을 겁니다. 때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걸 어떻게 사용하건 그건 대표가 알아서 할 일이지요.”
유진이 원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정보를 손에 쥐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할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이건…….”
윌리엄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절대로 놓치면 안 되는 기회가 맞겠지요?”
“물론이죠. 다시 거절한다면, 아마 평생 멍청이라고 놀림을 받을 겁니다.”
“하하. 그렇군요. 유진 씨는 정말 제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주셨네요.”
윌리엄이 백기를 들었다.
윌리엄은 블랙록에 사표를 내고 나오기로 했다. 더불어 자신의 팀을 위한 직원들도 하나씩 섭외하기 시작했다.
유진 또한 투자 관리를 위한 능력 있는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상당수는 윌리엄의 인맥을 통해서였지만, 지난 1년 동안 유진이 쌓아 둔 인맥도 이제 적은 편은 아니다.
더군다나 지난 1년 동안 유진이 이룬 업적은 이미 월가를 뒤흔들고 있어서, 유진의 스카웃을 거절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유진은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곧이어 벌어질 새로운 이벤트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환경보호국에 요청한 자료가 왔어요.”
요안나가 서류 한 뭉치를 가지고 와 보고를 한다.
“이제야 왔나?”
요안나가 인턴으로 합류하기도 전에 요청한 자료가 이제야 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자료들인가요?”
요안나가 유진 옆에 앉아 서류를 넘겨 보며 물었다.
“환경보호국과 폭스바겐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분쟁에 대한 자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