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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64화 (64/363)

64화 디젤 게이트

“폭스바겐이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클린 디젤이라고 들어 봤지?”

“네. 폭스바겐이나 다른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요사이 굉장히 많이 광고하고 있으니까요. 가솔린 자동차보다 이산화탄소와 유독가스 배출이 적은 디젤차를 말하는 거잖아요. 나도 본국에서는 아우디를 타고 다니는데, 거기도 클린 디젤이 들어갔을 걸요?”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에 비해 출력은 좋지만, 인체에 치명적인 질소산화물(NOx)을 훨씬 더 많이 배출한다.

때문에 자동차 배출 가스 환경 기준이 유럽의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미국에서는 디젤 승용차의 판매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유럽 자동차 업계에서 그걸 해결한 매연 저감 장치를 장착했다며 디젤 승용차에 대한 규제를 풀어 줄 것을 요구했고, EU의 공세에 미국과 한국 등은 디젤 승용차의 판매를 허용했다.

“요즘 디젤차가 꽤 많이 팔리는 모양이에요. 덕분에 폭스바겐 주가가 두 배 이상 뛰었죠.”

특히나 요즘처럼 유가가 비쌀 때는 힘 좋고, 기름값이 덜 들고, 더군다나 환경에도 좋은 차라는 이유로 미국 시장에서도 꽤 선전하고 있었다.

“재작년에 웨스트버지니아대학 배출 가스 연구팀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한 모양이더군. 첨단 기술로 제작된 자동차는 그러한 유독 성분을 충분하게 걸러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거였지. 그런데 굉장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어.”

“재미있는 결과요?”

“어. 자동차를 실내에서 운행하는 실험을 하면 배기가스 중 유독 성분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는데, 희한하게 외부로 나가 주행을 하면 유독 가스 배출량이 급증했던 거지.”

요안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웨스트버지니아대학 연구팀도 납득할 수 없었지. 왜 실내에서는 유독가스가 정상적으로 걸러지는데, 밖에만 나가면 다시 유독가스를 내뿜는 걸까? 그것도 기준치의 수십 배나.”

“실험이 잘못되었던 모양이네요. 실험 기기의 문제이거나, 아니면 실험에 사용된 차의 문제이거나 둘 중 하나 아닐까요?”

“과연 그럴까?”

유진이 웃으며 물었다.

“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을까요?”

“이런 가정도 가능하지.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환경국에서 자동차 판매를 위한 테스트를 받을 때는 유독가스를 줄이는 저감 장치를 동작시키고, 실제 주행에서는 저감 장치를 끈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게 가능할까요? 자동차가 알아서 테스트 상황인지를 판단해서 저감 장치를 켜고 끈단 말이죠?”

요안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면 가능하기는 하겠군요. 일정 시간 동안 스티어링 휠을 움직이지 않거나, 혹은 엔진을 가동하고 일정 시간 동안은 저감 장치를 작동하다가, 그 이후로는 저감 장치를 중단시킨다든지요. 아니면 온도나 기압 들을 이용할 수도 있구요.”

똑똑한 여자라 금세 몇 가지 방법을 찾아 낸다.

“하지만 굳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저감 장치를 켜면 엔진의 성능이 줄어든다거나, 연비가 나빠질 수도 있지. 클린 디젤이라고 잔뜩 광고해 놓았지만 어떤 결함이 있을 수 있잖아.”

“설마 폭스바겐 같은 거대 기업이 그런 사기를 칠 수 있을까요? 들키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을 텐데요.”

“들킨다면 말이지.”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음…….”

요안나로서도 상상이 어려운 사기극인 모양이다.

“그래서 결과가 뭔가요?”

그녀가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유진에게 물었다.

“아직 알 수 없어. 환경국에서 실험 결과를 전달받고 폭스바겐이랑 협의 중인데, 폭스바겐 측은 어디까지나 오류라 주장하고 있는 모양이야.”

환경국에 요청해 받은 자료로는 현재의 상황을 전부 파악하기 어려웠다.

“1년이 넘게 협의 중이라고요?”

요안나의 안색이 점점 굳어 갔다.

“정말 그런 치팅 프로그램이 존재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군요.”

“그러니 우리에겐 이게 기회가 될 수 있지.”

“그렇겠군요. 정말 폭스바겐이 치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후폭풍이 대단할 거예요. 문제는…… 벌써 1년이 넘게 끌어오는 일인데, 그게 정말 밝혀질지, 그리고 사실이 밝혀진다면 언제가 될지가 관건이군요.”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래도 뭔가 해 볼 생각인 모양이네요?”

“어. 그러니까 폭스바겐 숏을 때리자.”

“진짜 한 치의 고민도 없으시네요.”

“어. 그리고 인터뷰 준비도 하지.”

이제부터는 전보다도 훨씬 더 공개적으로 움직일 생각이다.

“사무실이 멋지군요.”

윌리엄이 감탄할 만큼 제대로 된 사무실이다.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블랙록과 트럼프 타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웨스트 9번가와 5th 애비뉴에 두 개의 사무실을 구해서 세팅을 시작했고, 이제 얼추 끝나가고 있었다.

센트럴파크를 바로 내려다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맨해튼에서도 유별나게 비싼 사무실이지만, 그다지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아예 사 버릴까 고민 중입니다.”

유진은 오히려 사무실이 들어서 있는 빌딩들도 매입할 생각을 했다.

앞으로의 뉴욕 오피스 건물 가격의 상승세를 생각하면 지금 몇 개 사놓는 것도 나쁘지 않다.

두 개의 사무실은 각각 패밀리 오피스를 운영하기 위한 곳과 윌리엄에게 전권을 맡긴 자산운용사를 위한 곳이었다.

일부러 두 사무실을 각각 다른 건물에 구해, 윌리엄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는 제스쳐를 보여 주었다.

5th 애비뉴에 위치한 사무실은 자산운용사가, 그리고 코너를 돌아 플라자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은 패밀리 오피스가 사용하기로 했다.

“준비되는 대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자산운용사의 업무는 그다지 급할 것이 없다.

하지만 패밀리 오피스 쪽은 벌써 전쟁이었다.

“폭스바겐 주가 현황은?”

패밀리 오피스의 사령탑을 맡은 요안나가 가장 정신없이 바쁘다.

“폭스바겐의 현재 주가는 174달러에요. 시가총액은 1230억 달러고요.”

나이는 어리지만 사람들을 다루는 것에 익숙한 것을 보면, 영락없이 공주님이 맞다.

“최대한 많이 빌려 와. 이자에 구애받지 말고.”

공매도를 하기 위해 대차하는 주식에 대한 차입 금리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거래 주체 양측이 결정하는 것이기에 시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통은 연 10% 내외로 결정되지만 과열될 때에는 연 40%, 어떤 때는 100%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그럴 때는 공매도로 얻는 이득보다 이자 비용이 훨씬 커서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건에 대해 이자에 대한 걱정은 조금도 없다.

길어 봐야 한 달이면 끝날 사태이다.

“풋옵션도 최대한 매수하고.”

미국 주식 시장은 주가 지수 옵션 시장보다 개별 주식 옵션의 규모가 월등히 크다. 한국에 비해 규제가 덜한 만큼 일반인들도 한 가지 종목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투자를 이어갈 수 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아예 한 종목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해 적절한 가격을 정한 뒤 숏, 롱, 옵션 등을 사용해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폭스바겐 숏 받아 줄 기관이 있는지도 찾아보고.”

장외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파생 상품에 대한 투자도 잊지 않는다.

유통되고 있는 주식의 발행량과 상관없이 주가를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파생 상품은 때로는 주식 시장보다 훨씬 더 큰 액수의 거래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니 가장 유능한 직원들이 이 업무에 투입되었다.

전적으로 거래 당사자 간의 협의로 계약이 성사되기 때문에 인맥과 협상 능력이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블랙록을 통해 이러한 거래를 성사시켰고, 적지 않은 수수료를 부담했다.

물론 그만한 가치는 충분히 했다. 당시의 유진에게는 그럴 만한 인적 자원이 전무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자체 인력으로 절반, 그리고 나머지 절반 정도의 물량은 블랙록을 통해 거래를 진행했다.

지금은 수수료를 아낄 때가 아니다. 최대한 많은 계약을 맺는 것이 중요하다.

며칠 뒤, 유진의 자택으로 포브스 지의 기자가 찾아와 인터뷰를 했다.

목적했던 수량의 공매도와 풋옵션 따위를 전부 달성한 뒤의 일이다.

“중국 증시의 하락을 예측해서 굉장한 성공을 거두셨다고 들었습니다.”

“중국 증시의 과열 현상은 이미 충분히 예측된 일이었습니다. 정도 이상으로 부풀어 오른 버블은 언제고 터지기 마련이지요.”

중국 증시의 버블이 터지고 난 뒤에 원인을 분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사태를 통해 실질적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둔 당사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그 어떤 전문가의 해설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기 마련이다.

유진은 요안나를 시켜 준비해 둔 내용들을 한참 동안 떠들었다.

“현재 유진 캉의 자산 규모가 50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들었습니다. 블랙록 측에서도 확인을 받았고요. 실질적으로 빌 게이츠에 이어 세계 2위의 부호에 오르셨는데요. 단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군요.”

“운이 따라주었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겠군요.”

아무리 미국이라도 아주 조금의 겸손은 나쁠 것이 없다.

“앞으로도 이런 행보가 가능하시리라 생각하시나요?”

조금은 공격적인 질문도 어디까지나 사전에 조율이 끝난 것이다.

“언제까지나 가능할 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당분간은 문제없을 것 같군요.”

“굉장한 자신감이네요. 혹시 또 뭔가 노리고 있는 투자 상품이 있는 것은 아닌가요?”

“사실은 지금 한 가지 새로운 투자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아! 그럼 혹시 공개가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혹시 폭스바겐이 지난해에 디젤 자동차 리콜을 단행했던 일을 기억하시나요?”

유진이 흔쾌히 대답하자,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배기가스로 배출되는 유해 물질 저감 장치에 문제가 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리콜 이후에도 배출되는 유해 물질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계신가요?”

“아뇨. 리콜로 전부 해결된 게 아니었나요?”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환경청에서는 어떤 이유로 계속 유해가스를 기준치의 수십 배나 뿜어 대고 있는지 밝히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폭스바겐에서는 아직까지도 속 시원한 원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밝힐 수가 없는 거죠. 사실은 전부 사기였으니까요.”

유진의 다소 직설적인 발언에 기자가 살짝 놀라며 물었다.

“사기라니.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이시군요. 혹시라도 폭스바겐 측에서 고소할까 걱정되지 않으신가요?”

“오히려 고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에서 고소해 온다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자원을 사용해 대응할 의사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오히려 무섭네요. 500억 달러의 자산을 전부 써서도 진실을 밝히겠다면, 누구라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겠군요. 하지만 사기라니. 어떤 면이 그렇다는 건가요?”

유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클린 디젤의 실험 결과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환경보호국의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 실험실에서만 작동하고, 일반적인 주행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치팅 프로그램을 넣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정말이라면…… 무척 부도덕한 행위로군요.”

유진이 방금 한 말은 미리 조율된 내용이 아니었기에, 기자의 놀라움은 진짜였다.

“폭스바겐은 클린 디젤이라는 명칭으로 친환경적인 디젤 자동차를 지금까지 미국에서 100만 대가 넘게 팔아 왔습니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폭스바겐에서 판매하고 있는 디젤 승용차들은 가솔린 자동차에 비해 수십 배나 유독한 배출가스를 마구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런…….”

“디젤 엔진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NOx)은 인체에 아주 치명적인 물질입니다. 미국인들은 폭스바겐의 사기에 속아 환경을 깨끗하게 만든다고 착각하며 사실은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공기를 더럽히고 있던 거지요.”

“저로서는 유진 캉이 언급한 일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우리가 우리 손으로 환경을 더럽히고 있었다니…… 사실이라면 치가 떨릴 정도에요. 저도 주말에는 디젤차를 몰고 다니는데…….”

기자의 표정에는 진심 어린 분노가 떠올라 있었다.

“전 이 사실이 곧 밝혀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때가 얼마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이 환경보호국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속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새로운 투자라는 것은 혹시 폭스바겐 주식에 대한 공매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지요. 진실이 밝혀지면 폭스바겐의 주가는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질 겁니다.”

“그와 함께 지옥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것은 폭스바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겠군요.”

“그러니까 미리 경고를 드리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폭스바겐의 주식을 들고 계신 분들은 최대한 빨리 처분하십시오. 그게 손해를 줄일 방법입니다.”

유진이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정말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겠네요.”

“만일 내가 폭스바겐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그런 손해를 본다면 당장에 폭스바겐을 고소할 겁니다. 소비자는 물론이고 주주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은 대가가 필요합니다.”

“꽤 과격한 발언이시지만, 솔직히 말씀드려 맞는 말이에요. 유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폭스바겐은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포브스의 기자는 인터뷰를 하는 기자답지 않게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 인터뷰는 어땠어?”

기자가 돌아가고 난 뒤, 홍보 전문가로 영입한 모니카에게 물었다.

“아주 좋았어요. 그런데 몇몇 발음은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할 거 같아요.”

모니카는 유진의 악센트를 교정해 주었다.

“금세 좋아지고 있네요.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거의 완벽한 네이티브 뉴요커에요.”

그야 유진이 수십 년이나 뉴욕에 살았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서른이 훌쩍 넘어 건너온 탓에 여전히 좋지 않은 습관이 남아 있었다.

“자세는 나무랄 데가 없어요. 살짝 고개를 더 올리고 말을 하는 편이 낫기는 하겠네요.”

모니카는 연신 칭찬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고쳐야 할 부분을 지적했다.

그녀가 아주 훌륭한 코치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유진은 그녀의 눈빛과 손짓을 따라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본격적으로 방송에 나가기 전에 최대한 교정해야 했다.

첫 인터뷰를 방송이 아닌 포브스와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처음부터 자신감 있고, 군더더기 없는 모습을 보여 줄 생각이다. 처음 유진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은 호감을 끌어 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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