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포위망
[대양 그룹이 미국에서 불매운동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현재 세계 제일의 거부로 거론되고 있는 강유진 씨가 미국 현지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대양 그룹과 강유진 씨 사이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 또한 부각되고 있는데요, 이를 접하게 된 미국인들이 대양 그룹 계열사의 상품에 대해 불매운동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공중파 뉴스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몇몇 케이블 뉴스 채널에서 유진과 대양 그룹 사이의 일을 다시 부각시키며 보도했다.
“대양 그룹 주가에 유의미한 하락세가 보이고 있습니다.”
다산자동차 미주 본부에서 금융 계열사로 옮겨간 김성훈 회장의 셋째 아들 김철호가 부친에게 보고했다.
“지난번 한국에서와 달리 미국에서의 불매 운동이 주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얼마나 떨어졌지?”
다산 그룹 김성훈 회장이 물었다.
“대양자동차와 대양전자의 하락이 가장 눈에 띕니다. 자동차는 15%, 전자는 21% 떨어졌습니다.”
“우리 쪽은 반사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디젤게이트로 매출이 상승하고 있었는데, 대양자동차에서 매출이 떨어지는 만큼은 아니지만, 적지 않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인 다산자동차 사장이 말했다.
“전자는 우리보다는 제일 쪽이 더 크게 이익을 보는 모양입니다. 우리 쪽은 컨슈머 가전이 주류가 아니라 아쉽군요.”
얼마 전 다산전자 사장으로 전격 승진한 둘째 아들 김수호가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여하튼 대양 그룹의 피해가 막심하겠군?”
“올해에만 적어도 1조 원 이상의 피해가 예상됩니다.”
다시 셋째 김철호가 말했다.
“주가는 그룹 전체에 걸쳐 최대 25%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 부분을 맡게 된 뒤 전보다 훨씬 자신감이 넘치게 된 김철호는 분석 결과를 연이어 말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정말로 그런 큰돈을 가진 게 맞는 건가?”
사실 김성훈 회장의 관심사는 그것이었다.
“거의 맞는 모양입니다. 포브스에서 블랙록을 통해 확인했고, 또 여타 경로로 알아보아도 그리 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허! 도대체가 믿기지를 않는구만. 대체 어떻게 1년 만에 그런 짓을 해낸 거지?”
천하의 다산 그룹 회장이 보기에도 유진이 이루어 낸 성과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정도면 천운이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군요.”
“천운이라…… 그렇다면 거스르면 안 되겠구나.”
회장이 농담처럼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첫째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기업을 일구는 것도 아니고, 도박에 가까운 짓을 몇 번이고 하고 있으니, 마치 근본 없는 모래성을 하염없이 쌓아 올리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둘째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운이란 것은 오를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는 법이지. 그러니 운을 쥔 자를 거스르려 하지 말고, 기세를 빌어 보는 것도 방편이겠지. 운이 떨어지면 슬쩍 내려서면 그만이고.”
아직 제대로 된 투자 금융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한국의 기업가들이 보는 유진의 사업은 그 정도였다.
영국이나 일본, 그리고 미국은 이미 투자은행과 자산관리회사 등의 투자 금융업이 실질적으로 산업을 지배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실물 기업을 손에 쥔 재벌들의 세상이다.
“지금도 그 녀석과는 사이가 나쁘지 않지?”
“네. 꾸준히 연락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국내 기업 중에는 우리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잘 지내보도록 하거라. 녀석이 낙마할 때까지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니까.”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조만간 유망한 사업을 함께하고 싶다는군요.”
“다른 건 몰라도, 지금까지의 일만 보아도 안목은 탁월한 것 같으니 구체적인 제안이 들어오면 진지하게 고민해 보거라.”
다산 그룹 회장 일가는 한시적이지만 유진과 공존 공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지난번 SS파트너스에서 온 제안은 검토가 끝났나?”
명성전자 사장이 동생인 명성상사 사장에게 물었다.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어요. 나쁠 것은 없으니까.”
명성 그룹을 이끌어가는 두 형제는 자택 대신 계열사인 호텔에 마련된 별실에서 긴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명성 그룹의 사주 가문도 여느 그룹처럼 그룹의 큰일이 있을 때는 가족 간에 긴밀하게 협력을 하며 처리했다.
특히 이번처럼 작게는 수천억 원에서 크게는 수조 원이 소요되는 인수합병 같은 경우라면 계열사 간 자금 흐름을 조절해야 하기에 필수적인 일이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어. 작년까지 그냥 사원에 불과하던 녀석이 지금은 5,000억을 가볍게 볼 만한 인물이 되었다니 말이야. 근데 수근이가 잘랐다고 했지?”
명성전자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난처하게 됐어요. 하, 진짜. 수근이 녀석, 괜한 짓을 해서 말이야. 그냥 뒀어도 알아서 나갈 거를.”
명성상사 사장이 푸념했다. 아들이 저지른 짓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으니 난처하기만 하다.
“그래도 달리 앙심을 품지는 않은 모양이야. 그런 제안을 해 온 걸 보면 말이지.”
“뭐. 속이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도 녀석이 같이 일하던 인간들을 잔뜩 데려갔으니, 얼추 이쪽에서도 서운한 것은 있지요. 혹시라도 만날 일이 있으면 그걸로 때우렵니다.”
“그래야지. 지금 그 녀석이랑 각을 세워 좋을 거야 없지.”
“뭐, 우리야 그렇다 쳐도 대양은 참 골치 아프겠어요. 어쩌자고 그런 자와 척을 져 가지고.”
“맞아. 큰 골치지. 흐흐. 다행이야.”
명성전자 사장이 낮은 웃음을 흘린다.
“천만다행입니다. 그 집 넷째 아들이랑 아직도 혼사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었으면 큰일 났겠어요. 괜히 싸움에 끼어들 수도 없고, 입을 씻을 수도 없고 말이죠.”
“그러니까 말이야. 나 참. 그때 일로 내가 집에서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말도 못 해. 어쩌자고 그런 망나니 같은 녀석한테 딸애를 주자고 했냐고.”
“그렇게 감쪽같이 숨기고 있을 것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천만다행이죠. 상견례 한 번 안 하기를.”
“여하튼 맥스 인수전은 SS랑 같이하기로 한 거지?”
“예.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조건이 문제지요.”
고려 중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큰 문제가 없으면 진행하는 쪽으로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금은 모자라지 않고?”
“그게, 참……. SS파트너스에서 원한다면 자신들이 자금을 전부 대겠답니다. 대신 BW(신주인수권부사채)나 CB(전환사채)를 발행하는 조건으로요. 5년짜리 정도면 좋겠답니다.”
“곤란하지 않겠어? 나중에 녀석들이 상사 주식을 너무 많이 손에 쥐고 있으면 말이야.”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어차피 그쪽 자금을 생각하면 굳이 함정 같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5,000억으로 흔들릴 상사도 아니고요.”
“하긴 그렇지. 그러면 SS 쪽에 남는 게 뭐지?”
“녀석이 어지간히 대양과 싸우고 싶은 모양입니다.”
“훗! 역시 아직은 애송이로구만. 대양을 괴롭히겠다고 5,000억 원을 태워?”
명성전자 사장이 헛웃음을 지었다.
“또 모르죠. 워낙 감이 잡히지 않는 인간이라.”
“그건 맞는 말이야. 내 살다 살다 그런 인간은 처음 본다니까. 앞으로가 두려워. 설마 여기서 지금보다 더 벌어들이는 건 아니겠지?”
“우리 쪽 분석으로는 7대 3이랍니다. 7이 1,000억 달러까지 무난하게 가는 거고. 3은 여기서 한 번쯤 큰코다칠 거라더군요.”
“그래, 그럴 때가 되기는 했지.”
“한 번 제대로 고꾸라졌으면 좋겠어요.”
동생 쪽이 살짝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명성을 움직이는 두 형제는 절반쯤은 경의에 차서, 절반쯤은 질투의 심정으로 유진의 실패를 바라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두 형제는 유진의 행태에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유진이 마치 대양 그룹을 노리는 거대한 포식자처럼 느껴졌다.
70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금력은 이 나라에서 네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기업으로서도 경계심을 늦출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SS파트너스? 그거…… 강유진인가 하는 자의 것이지?”
국내 유수의 금융 그룹인 서성금융지주의 오상수 회장은 계열사인 서성카드의 사장을 맡고 있는 동생을 통해 유진의 제안을 전달받았다.
“맞습니다. 강유진이 국내에 세운 사모펀드입니다.”
“SS파트너스가 윈턴 그룹과 함께 컨소시엄에 참여하겠단 말이지?”
“지분은 우리 쪽이 지정하는 만큼 참여하겠다고 합니다. 삼호카드 인수에 필요한 자금은 얼마가 되었든 상관없고요.”
“흠, 삼호카드가 필요하기는 한데…….”
“서성카드를 확고하게 수위에 올려놓을 기회입니다.”
“하지만 SS가 끼어들면 그냥 인수전으로 끝나지 않아. 대양과 척을 지겠다는 말이 되지.”
오상수 회장은 조금 부담스러운 듯 보였다.
“그렇기는 하지요. 강유진 그자가 원하는 그림이 그것인 모양입니다.”
“지금 대양이 꽤 곤란한 지경에 처해 있는데, 우리가 비수를 꽂는 느낌이란 말이야. 내가 그 노친네 성격을 잘 아는데, 한 번 원한을 가지면, 뒤끝이 아주 길어.”
“그렇다고 해서 대양이 우리 서성에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답니까?”
“대양 계열사 몇 개가 우리와 거래를 트고 있지. 요즘 같은 때에 그 정도 기업 몇 개가 주거래 은행을 바꾸면 곤란해.”
“하지만 삼호카드를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다시 언제 기회가 올지 모릅니다.”
동생 쪽은 설령 대양과 관계가 악화되더라도 삼호카드를 손에 넣을 가치가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골치 아프군.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렵겠어.”
오상수 회장의 고민이 깊어져 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길을 택할 것이다.
“참. 그리고 협력 관계가 잘 이루어지면, SS파트너스와 SS벤처스 주거래은행을 우리 서성은행으로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쪽 거래 규모라면 대양 그룹 계열사 몇 개 정도는 우습지 않을까요?”
“음…… 지금까지 들어온 돈만 4조 원이 넘지?”
“차입금도 그 정도라고 하더군요. 지금까지는 전부 외국계 은행에서 받은 모양입니다.”
“끄응, 이거…… 미끼가 너무 탐스럽잖아?”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양 그룹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한 포위망은 그렇게 하나씩 구체화 되어 가고 있었다.
“대양 그룹은 모두 87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계열사들은 크게 자동차, 전자, 중공업, 건설, 금융, 유통, 에너지, 그리고 상사 이렇게 여덟 개의 부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새로이 합류한 한국계 미국인 직원인 데이비드가, 유진이 요청한 대양 그룹의 현황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지금 진행 중인 주요 사업으로는 대양 리테일에서 추진 중인 맥스 편의점 인수와 미국계 패스트푸드 체인 나인틴 도넛 한국 유통 사업, 대양카드사에서 삼호카드 인수 건, 대양자동차에서는 일본의 부품 업체인 토호쿠 NK 제작소 인수와 미국의 전기차 업체인 맥스웰 그리피스 인수 등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펀드 출신의 데이비드는, 기업 분석의 전문가로서 상당한 고액의 연봉과 성과금을 제시하고 스카웃했다.
유진은 그가 대양과의 싸움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맥스웰 그리피스?”
처음 들어보는 자동차 회사이다.
전기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연기관을 대신해 주도적인 교통수단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사실 지금쯤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나 수소차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개발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대양에서 미국의 전기차 업체를 인수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어지간한 전기차 업체는 얼추 알고 있는 유진은 자신이 모르고 있는 회사를 대양자동차가 인수한다는 말에 뭔가 걸리는 표정으로 물었다.
“테슬라 출신 기술자가 솔트레이크 시티에 설립한 전기차 회사로, 약 2년 전에 창업했습니다. 지금까지 두어 곳의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받았고, 아직 양산까지는 꽤 먼 듯합니다.”
“지금 전기차를 양산하는 기업이 얼마나 되겠어. 그럼 기술력은 확실하다는 건가?”
“거기까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신생업체이고, 또 위치가 위치인지라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솔트레이크 시티는 몰몬 교도들이 세운 도시로, 지금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몬 교도인 반쯤은 종교적인 도시이다.
유타 주의 수도이니 어느 정도 공업이 발전해 있기는 하지만, 전기차 업체가 그런 곳에 있다니 그것도 의아하다.
“투자했다는 벤처캐피털은?”
“캘리포니아의 NT소머셋이라는 곳과 필라델피아의 TBD벤처입니다. 두 곳 모두 벤처캐피털로 두각을 드러내는 곳은 아닙니다. 솔직히 제가 이쪽에서 일한 지 6년 가까이 됐는데, 둘 다 처음 듣는 곳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겠어? 우선 그걸 최우선으로. 인력이 필요하면 충원을 요구하고.”
“그러겠습니다. 솔트레이크 시티에 다녀올 필요가 있겠군요.”
데이비드는 바로 일정을 잡았다. 역시 한국 사람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인지, 행동에 주저함이 없었다.
유진은 데이비드라면 한국의 대기업에서도 충분히 출세할 만하다 생각했다. 사실 그가 상사에 다닐 때 늘 보곤 했던 인정받는 상사맨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