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69화 (69/363)

69화 버킷리스트

“맥스웰 그리피스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솔트레이크 시티에 날아갔다 왔습니다.”

데이비드가 3일 만에 보고를 올렸다.

“투자 의향을 전하고 공장과 실험실을 보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만, 거부당했습니다. 투자도 받을 생각이 없다고 하더군요. 대표는커녕 임직원 한 명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뭔가 이상한 회사에요. 솔트레이크 시티 근교에 꽤 넓은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그쪽 부동산이 워낙 헐값이라 크게 가치는 없을 겁니다.”

이미 예상하던 일들이지만, 확실하게 하기 위해 직접 대륙을 횡단해 갔다 왔다.

“아! 물론 우리 회사 이름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 명함이 아직 몇 장 남아 있어서 그걸 사용했습니다.”

데이비드가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그 정도의 일머리는 있는 인재이니 역할을 맡긴 것이었다.

“캘리포니아의 NT소머셋과 필라델피아의 TBD벤처 모두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납니다. 둘 다 지역의 작은 투자회사로, 3년 전에 각기 다른 사모펀드로 넘어갔습니다. 매각 규모는 알 수 없습니다. NT소머셋은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사모펀드에, 그리고 TBD는 DL캐피탈에 매각되었더군요.”

실마리가 잡혔다.

DL캐피탈은 대양 그룹의 비자금을 관리하기 위한 사모펀드이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유진은 거의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펀드가 뭐지?”

“유나이티드 엑셀런트라는 이름입니다. 대표는 한국계 미국인이고요.”

이제 유진은 대양 그룹에 관련 있는 사모펀드를 모두 셋 알아 냈다.

맥스웰 그리피스와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 인수에 관여했던 DL캐피탈.

삼호카드 인수에 연관된 토미 베이커슨.

그리고 다시 맥스웰 그리피스에 관련된 유나이티드 엑셀런트.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테슬라 자동차 출신의 기술자가 창업했다는 맥스웰 그리피스라는 벤처기업에 대양 그룹의 자금이 유입된 유나이티드 엑셀런트와 DL캐피탈이 투자를 한다.

그리고 몇 년 뒤에 대양자동차에서 그걸 꽤 큰 가격으로 인수한다.

그 과정에서 DL캐피탈과 유나이티드 엑셀런트는 아주 두둑한 수익을 올릴 것이다.

아마 기술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고, 대양자동차에서 전기자동차 기술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유진은 앞으로 2년 뒤쯤 대양자동차에서 내놓은 전기차가 나쁘지 않은 평을 받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대양자동차가 맥스웰 그리피스라는 미국 회사를 인수한 것은 금시초문이다.

그렇다면 인수가 수포로 돌아간 것일까? 아니면 조용히 인수를 끝낸 걸까?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해 보겠습니다. 많이 이상해요.”

데이비드의 촉도 그런 모양이다.

“필요한 자원은 전부 사용해도 좋아.”

불법적인 수단만 아니라면 최대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어쩐지 이걸 파헤치면 뭔가 쓸 만한 것이 나올 것 같았다.

“자, 오늘부터 다시 새로운 투자에 들어갑시다.”

중국 증시에 대한 투자도 끝났고, 폭스바겐 주가 폭락 사태도 끝난 뒤 잠깐의 휴식을 가졌다.

그동안 못했던 조직을 구성하는 일에 일주일가량 걸렸다.

입사하고 몇 달 지나지도 않아 거액의 보너스를 손에 쥐게 된 직원들은 모두 사기가 충만했다.

“우선 가용 자산부터 확인해야겠군.”

“확인이나 마나 500억 달러가 그대로 있어요. 당장 어디엔가 투자할 곳이 없다면 은행에라도 넣어 둬야 하겠어요.”

요안나가 웃으며 말했다.

750억 달러의 자산 중에서 150억 달러 상당이 블랙록을 통해 미국 주식 시장에 투자 중이고, 50억 달러는 한국에서 투자 중이다.

나머지 550억 달러 중 윌리엄이 맡은 자산관리회사에 50억 달러를 맡겼고, 요안나를 통해 운용할 자산이 500억 달러에 달한다.

윌리엄에게는 유진이 알고 있는 몇 가지 미래에 대한 지식을 힌트로 주었다. 그걸 어떻게 사용하건 그 이상은 윌리엄의 몫이다.

“유가 선물 현재 가격이 어떻게 되지?”

지난번 유가 선물에 투자했다가 30달러 즈음에서 바닥이라는 느낌으로 청산한 지 한 달가량 지났다.

“오전에 50달러를 살짝 넘었다가 다시 내려와서 지금 49.7달러 선이에요.”

“유가 선물에 200억 달러를 넣지. 이번에도 숏으로.”

기다리던 시간이 돌아왔다.

“유가가 다시 떨어질 거라 예상하시는군요?”

“아직 산유국들 사이에 감산 합의가 안 됐잖아. 지금까지 이번에는 합의가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로 바닥에서 30%나 상승했는데, 한 달이 넘게 지지부진하고 있으니, 기대감도 떨어질 때가 됐어.”

지난번 삶에서 유진은 명성상사에 근무하며 카타르 정유 공장 건설 사업에 관여했다.

국내의 다른 프로젝트 오가니제이션 업체와 해외의 대형 건설사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뒤로 유진의 팀은 한동안 카타르 현지를 드나들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당시 유진의 관심사는 당연히 오일 가격이었다. 프로젝트의 성과와 유가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기에, 매일 유가를 챙겨야 했다.

그 뒤로도 현직에 있는 동안 유진은 유가의 동향을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

유가는 단지 정유 공장과 산유국에 관련된 문제는 아니다. 사실상 모든 산업에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유가를 파악하는 일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유진이 알고 있는 이 당시 유가 흐름은 세일 가스 혁명으로 드라마틱하게 하락하기 시작해서, 몇 번의 바닥을 찍고 반등했다 하락하기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40달러 초반까지 떨어졌다가 60달러까지 반등하고, 다시 30달러 후반까지 내려갔다 다시 50달러까지 오른다.

여기까지가 유진이 최근 투자한 유가의 큰 흐름이고, 마지막으로 30달러 미만으로 추락한다.

‘아마도 2016년 초였지? 그 뒤로는 산유국끼리 생산 동결에 합의한 뒤로 한동안 꾸준히 오를 거야.’

확실한 날짜나 정확한 가격까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한 번의 급락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미래를 알고 있는데, 기회를 놓칠 필요는 없다.

“음…… 그런 분석을 본 것도 같네요. 하지만 보스가 말하니까 무게감이 틀려요. 어쩐지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처럼 설득력 있게 들리잖아요.”

“딱히 요안나를 설득하려는 건 아닌데 말이야.”

“그래도 난 벌써 설득이 되고 말았다고요. 나도 내 자산을 유가 숏에 넣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요.”

물론 요안나는 유진에게 얻은 정보를 통해 사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는 비밀유지계약서에 서명해 놓았다.

요안나뿐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마찬가지이다.

물론 서명 하나로 완벽하게 비밀이 유지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요안나는 그렇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100억 달러는 블랙록을 통해 투자한 주식과 비슷한 비율로 주식을 매수하도록. 음…… 넷플릭스 같은 곳은 더 담기 어려울 테니, 아마존이나 구글, 페이스북에 좀 더 비중을 높이고.”

블랙록을 통해 75억 달러를 총수익스와프로 375억 달러 상당의 주식에 투자해 놓았다. 반년 동안 벌써 100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유진은 앞으로도 자신이 넣어 둔 종목들이 유망할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사실 그 종목 말고 다른 종목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도 했다.

“이번에도 최대한의 레버리지인가요?”

“물론이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50억 달러는 통화 선물과 옵션에 넣도록 하지.”

“통화 선물이요?”

“어. 파운드-달러는 하락, 엔화-달러는 롱으로.”

“또 뭔가 좋은 정보가 있는 모양이에요.”

요안나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냥 평범한 투자야. 통화 분석 자료를 보니 엔화 강세와 파운드 약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 같더군.”

물론 진실은 따로 있다. 내년에 있을 또 하나의 이벤트를 위해 차츰 준비하려는 것이다.

“그쪽은 큰 기대를 하기 어려우니 10배 정도만 사용하지.”

통화 시장은 다른 투자 종목에 비해 등락 폭이 그리 크지 않다. 1년 동안 50%가 떨어지면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니 10배의 레버리지는 결코 크다고 할 정도가 아니다.

“나머지 50억 달러는 당장 뺄 수 있게 초단기금융상품에 넣어 둬.”

유진은 그렇게 수십조 원에 달하는 자금의 투자 방향을 잠깐 사이에 지시해 주었다.

물론 유진이 내린 지시는 간결했지만 그걸 실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직원들이 다시 정신없이 움직여야 할 것이다.

“사라 양으로부터 연락이 왔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자 모니카가 다가와 사라 델비안의 말을 전해 준다.

“무슨 일이지?”

“데이트 신청이라고 하더군요.”

모니카가 웃으며 말했다.

“아!”

과거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후로 좀처럼 놀라는 일이 없던 유진이지만, 사라의 당돌한 대시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언제?”

“생각이 있으시면 보스가 정하시라는군요. 사라 양은 당분간 뉴욕에 머물 생각이랍니다.”

“사라 가족의 아파트가 여기서 멀지 않아요.”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 같던 요안나가 다시 다가와 말했다.

“델비안 가족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뉴욕으로 여행을 오고는 했어요. 센트럴파크 동쪽에 있는 콘도인데, 꽤 멋진 곳이죠.”

“사라의 부친이 꽤 부유한 은행가라고 했었지?”

“네. 런던에서도 이름난 투자은행이에요. 영국 부자 순위 100위 안에는 들걸요.”

영국의 부자들은 국내 인사들만큼이나 러시아나 인도 같은 해외 인사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미국 다음으로 많은 억만장자가 있다.

그런 영국에서도 순위에 들 정도면 한국으로 치면 거의 재벌 총수 정도일 것이다.

“데이트하기에는 역시 미술관이 좋을 거예요. 사라하고 보스하고 둘 다 취향이 비슷한 것 같으니까요.”

요안나는 친절하게 데이트 장소까지 정해 주었다.

“적당한 시간 봐서 스케줄에 올려놓아. 장소는 MoMA로 하지.”

모니카에게 알아서 데이트 시간을 만들라 지시했다.

사실 유진의 하루는 너무나 정신없이 흘러서, 데이트할 시간을 내려면 모니카의 손을 빌려야 했다.

“알았어요. 시간 정해서 사라 양에게 전할게요.”

모니카는 요령껏 유진에게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바로 이틀 뒤 점심 시간 무렵, 유진은 차를 몰고 요안나가 알려 준 델비안 가족의 자택 앞으로 갔다.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유진이 직접 차를 몰았고, 경호원들은 다른 차들을 타고 그의 뒤를 따랐다.

“취향이 좋으시네요. 멋진 차예요.”

사라 델비안이 유진이 열어 준 조수석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데이트하기에는 이보다 멋진 차가 없는 것 같아서요.”

유진이 운전석에 앉으며 말했다.

“역시. 제 눈이 틀리지 않았네요. 어지간히 여자들을 만나고 다니셨나 봐요?”

“전혀요. 사라 양의 연락을 받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구한 차입니다.”

“정말인가요? 이틀만에 DB5를 구했어요? 대단한데요? 거기다 보존 상태도 굉장히 훌륭해요.”

“그렇죠? 나도 받아보고 놀랐으니까요. 여기까지 5,000km를 달려왔는데 운전하는 데 아무 무리가 없더군요. 무려 50년도 더 된 차가 말이에요.”

“클래식한 차를 모는 멋진 신사처럼 멋진 사람은 없지요. 절 위해 그렇게까지 하셨다니 정말 기쁘네요.”

“사라 양은 그렇게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여성이지요.”

유진이 차를 출발시켰다.

“얼마나 주셨어요?”

유진이 MoMA로 몰고 가는 동안 사라가 물었다.

금융가 부친을 두어서인지 귀족 영애치고는 그런 질문에 서슴없다. 아니면 그냥 성격인지도 모르고.

사라 델바인은 원래 거침이 없기로 유명했으니.

아니, 그건 앞으로 한참 뒤의 일이었던가?

유진이 사라의 연기를 좋아하기는 했었지만, 그녀의 모든 행적을 꿰뚫고 있을 정도의 팬은 아니었다.

“90만 달러일 겁니다.”

“싸게 사셨네요. 얼마 전에 본국에서 알아봤을 때 80만 파운드짜리가 있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상태가 좋아요.”

요안나가 스쳐 지나가듯 알려 주었었다. 사라는 본드카의 대명사인 DB5를 좋아한다고.

1964년에 나온 골드핑거에서부터 2012년 나온 스카이폴, 그리고 이해 크리스마스에 개봉 예정인 스펙터에까지 DB5는 본드카의 상징과 다름없는 차이다.

유진은 아마도 사라가 본드걸 배역에 관심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가 알기로 사라는 영영 본드걸과는 인연이 닿지 않는다.

“오늘은 처음부터 기분이 좋네요. 날 위해 이렇게까지 해 줄 줄은 몰랐거든요. 사실은 우리 만나던 날 이후로 연락이 한 번도 없어서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요.”

“관심이 없을 리가요. 전부터 사라 양의 팬이었는데요. 그리고 사라 양과 데이트하는 것이 개인적인 버킷리스트였지요.”

유진은 횡단보도가 보여 차를 잠시 세우고 말했다.

“정말인가요? 버킷리스트?”

사라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정말이지요. 사라 양과의 데이트를 거절할 남자가 세상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군요.”

“아뇨. 정말 버킷리스트가 데이트에서 끝이냐고요.”

사라가 슬쩍 유진의 허벅지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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