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73화 (73/363)

73화 벨에어와 비지니스 젯

“여기로 하지요. 언제 입주할 수 있겠습니까?”

LA 서부에 위치한 부촌 벨에어의 고지대에 위치한 한 저택을 둘러보던 유진이 옆에서 안내해 주던 에이전트에게 물었다.

캘리포니아에 도착해서 일주일 째, 유진은 일행과 함께 할리우드의 호텔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동안 유진은 지역의 부동산 에이전트와 벨에어의 대형 저택들을 구경하고 돌아다녔다.

미국 서부 지역 본거지는 이 동네에 마련할 생각이다.

“지금 비어 있는 곳이니 계약만 끝나면 당장이라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인 벨에어 내에서도 매물로 나와 있는 저택 중 가장 비싼 곳이라 관심을 주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팔리지는 않는 애물단지 같은 집을 사겠다고 하니 부동산 에이전트가 크게 반겼다.

LA에서 가장 비싼 지역에 위치한 2에이커가 넘는 대지에, 욕실만 20개짜리 대저택을 구매할만한 재력가는 그리 흔치 않았다.

“진짜 부자는 맞네요. 1억 3,000만 달러짜리 저택을 한번 보고 결정한단 말이지요?”

사라가 조금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그녀의 부친도 대단한 재력가이기는 하지만, 유진처럼 거침없이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멋진 집이기는 하네요. 파티를 하기에는 최고예요.”

사라가 LA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30m 풀 옆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겠군.”

유진이 이 저택을 선택한 것은 파티 때문이 아니라, 지금 시장에 나와 있는 가장 비싼 저택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LA뿐 아니라 뉴욕에도 아직 이만큼 비싼 주택은 시장에 나온 적이 없다.

이제는 넘사벽이라 할 만한 부를 쌓아 올린 유진은 그러한 부를 사용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1억 5,000만 달러라 해도 모기지를 받으면 겨우 수천만 달러의 지출에 불과할 뿐이다.

700억 달러의 자산 규모에 비하면 이 정도 자택은 오히려 소소할 정도이다.

더군다나 이 고급 주택가는 동네를 들어설 때부터 삼엄한 경비들이 지키는 게이트를 통과해야 해서 미국에서도 가장 안전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비즈니스 젯을 한번 알아봐. 가능하면 가장 비싼 걸로.”

그날 호텔로 돌아와 모니카에게 다시 지시를 내렸다.

홍보 담당자인 모니카는 어느 사이엔가 유진의 개인적인 비서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녀도 딱히 유진이 시키는 지시를 싫어하지 않았고, 유진은 모든 개인적인 행사에 앞서 미디어와의 관계를 생각해 모니카와 상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모니카에게는 보수를 조금 더 책정해 주고 업무를 늘리기로 협상했다.

“비즈니스 젯이요? 하기야 필요할 때가 되기는 했죠.”

모니카도 납득했다.

지금까지는 뉴욕 이외에는 크게 돌아다닐 일이 많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달랐다.

한번 움직일 때마다 적지 않은 인원이 함께 움직여야 했다.

경호팀만 10명이 넘고, 홍보팀도 그 정도 수준이다.

그 외에도 이동 목적에 따라 전문가들이 붙는다면 모두 수십 명에 달하는 인원이 움직이게 된다.

“에어버스 A380하고 보잉 747-8 VIP가 가장 고급 기종인 것 같아요. A380은 아직 비즈니스 젯으로 나온 것은 없지만, 주문은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에어버스는 피하도록 하지.”

어차피 전 세계 항공사에서 퇴출당할 A380을 굳이 개인 용도로 사용할 이유는 없다.

“747-8 VIP는 3억 7천만 달러부터 시작해요. 원하는 옵션에 따라 추가 비용이 들어가고요.”

일반적인 비즈니스 젯에 비해, 보잉 747이나 에어버스 A380을 개인 용도로 쓰는 사람들은 대개 산유국 왕족이나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처럼 과시욕이 강한 사람들이다.

당연히 내부를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선호했다.

특히 중동의 왕족들은 황금으로 치장하는 것을 그렇게나 좋아한다고 알고 있다.

“30명에서 50명 사이의 인원이 최대한 편하게 탑승할 수 있게 만들면 좋겠군.”

하지만 유진의 경우는 실용성을 가장 중시한다.

자기뿐 아니라 함께 움직일 사람들이 편히 쉬고,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을 요구했다.

“747기종이면 주문 제작이라 3년 정도 걸린다는군요.”

아무래도 당분간은 렌트해야 할 것 같다. 중고 비행기가 나와 있기는 하지만, 기왕 산다면 새 걸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747 최신 기종의 비즈니스 젯 이용료는 시간당 25,000달러 수준이에요.”

들어보니 이쪽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에 겨우 수십만 달러로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면, 틀림없이 사는 것보다 경제적이다.

하지만 유진에게 비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얼마나 효율적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여하튼 747 구입 건은 저택 구입과 함께 기사로 낼게요.”

세계에서 제일 비싼 저택과 세계에서 제일 비싼 자가용 비행기를 동시에 구입한다는 기사는 한동안 화제가 될 것이다.

모니카를 고용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까지 그녀는 무엇 하나 군소리할 나위 없이 잘해 주고 있다.

“벨에어의 자택은 이번 주에 들어가기로 했어요. 지금 청소 중이에요. 인테리어는 딱히 손볼 게 없겠어요. 당장 그대로 사용해도 될 거에요.”

함께 저택을 둘러본 모니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입주 기념으로 파티를 열지.”

“어떤 쪽 인사들을 부를까요?”

“캘리포니아에서의 시작을 화려하게 하려면 역시 배우들이 좋겠지?”

벨에어의 호화 저택 중 상당수는 할리우드의 배우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명목은 이웃사촌들을 초대하는 행사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죠. 보스의 초대를 거절할 배우는 아마 없을 거예요.”

모니카와 유진은 배우에 이어 LA의 명사들을 초대할 계획을 세웠다.

뉴욕과 더불어 제2의 본거지가 될 곳이니,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이어 갈 생각이다.

하지만 유진이 가장 먼저 초대한 손님은 그런 화려한 명사가 아니었다.

“굉장한 저택이군요. 역시 유진 씨의 자택다워요.”

50대의 중년 부부는 유진의 안내로 자택을 돌아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두 분을 위해 적당한 저택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언제 한 번 에이전트와 돌아보십시오.”

유진의 호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해 주시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지나의 모친은 유진의 말에 마냥 감격하고 있었다.

“벨에어에 자택이라니. 꿈만 같군요.”

지나의 부친도 마찬가지였다. LA 한인 타운에서 작은 슈퍼를 경영하고 있는 평범한 서민 부부에게 하루아침에 다가온 행운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제가 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 씨에게 하는 투자 계약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단지 지나 씨가 워낙 바쁘신 분이라 제가 약간의 도움을 드리려는 거지요.”

“정말로 우리 애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건가요?”

지나의 부모는 유진의 말에 무척 뿌듯해하면서도 조금은 의아해한다.

“매생이나 파래 비슷한 걸 키우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요?”

지나는 그다지 자신의 일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나의 연구가 세상을 구할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지나 씨의 연구에 1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도 그 때문이죠.”

“1억 달러요?”

역시 사람을 설득하는 데 구체적인 액수의 돈보다 나은 것은 없다.

“세상에…….”

“우리 애가 똑똑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나 씨의 연구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지구는 온난화의 위협으로부터 훨씬 더 안전해질 것이고, 지나 씨는 엄청난 부자가 될 겁니다. 어쩌면 저보다 더한 부자가 될지도 모르지요.”

“설마요. 유진 씨보다 더 부자라니요.”

유진의 팬이라는 부부였지만, 유진이 하는 말은 퍽 황당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조금도 과장이 아닙니다. 지나 씨의 연구가 가져올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시장이 열리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범세계적인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2020년 이후 세계 각국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강도 높은 정책을 발안한다.

2030년까지 석유 연료 기반의 자동차 대신 전기차로 전환하기로 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들에게 다양한 페널티를 물리면서 온난화를 막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나라에서 내연기관 자동차를 판매하는 회사들은 전기차 회사로부터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했으며, 이 탄소배출권의 가격은 때로는 내연기관 자동차를 팔아 얻는 이익 전부에 해당할 정도로 비쌌다.

테슬라 자동차는 중국에서만 탄소배출권 판매로 1년에 1조 원의 이익을 얻는다. 전기차 판매로 얻는 이익에 몇 배나 되는 수익이다.

테슬라가 1년에 겨우 100만 대의 자동차를 팔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 회사가 될 수 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22년 4월, 한국의 탄소배출권 거래 가격은 톤당 3만 5,000원 수준에 달한다.

그리고 동시기 EU에서는 톤당 80유로, 원화로는 대략 10만 원을 넘어서게 된다.

2020년 기준 세계적으로 감소시켜야 할 탄소배출량은 120억 톤에 달한다. 1톤당 80유로에 달하는 유럽식으로 계산하면 대략 1조 유로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물론 정말로 그 정도 수준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아직은 목표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갈수록 온난화 때문에 발생하는 재난이 늘어나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2020년이 넘어서면 탄소 배출 시장의 규모는 대략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 될 것입니다.”

“수천억 달러라고요?”

“네. 그리고 지나 씨의 연구는 그런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고요.”

“아! 진아야. 네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니?”

자신의 딸이 그렇게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한국계 미국인들의 우상인 유진에게 듣게 되니 딸이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지나는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자신의 부모님이 인정해 주는 것은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듯했다.

“지나 씨는 인류의 미래를 지켜 줄 보물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유진은 평상시와 달리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지나를 띄워 주었다.

지나의 연구 결과를 독점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 서비스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유진에게 있어서는 미래의 헤게모니를 선점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온 미래에서는 지나가 무상으로 기술을 공개해 버린 덕분에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의 몇몇 회사가 글로벌 선두 기업의 자리를 차지했다. 네 개의 회사가 각각 1조 달러 클럽에 설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진이 그 과실을 독점할 생각이다.

지나에 대한 투자뿐 아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유진에게는 세상은 투자할 곳투성이였다.

지금까지는 당장의 자본을 모으기 위해 금융 투기에 주로 신경을 써 왔지만, 이제부터는 좀 더 먼 미래를 본 투자에 본격적으로 임할 생각이다.

유진이 캘리포니아로 날아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지나의 연구실이 있는 패서디나의 작은 사무실과 차고에는 칼텍 출신 너드들이 만든 수많은 벤처기업이 있었고, 그중에는 몇 년 뒤에 수십억 달러짜리 유니콘으로 성장할 회사도 잔뜩 존재했다.

물론 유진이 그런 기업들을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몇몇 회사들은 반드시 투자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나의 부모가 다녀간 다음 날, 정식으로 파티가 열렸다.

모니카가 할리우드의 에이전트들을 통해 섭외한 스타들이 대거 유진의 저택을 방문했다.

유진이 미국 제일의 부자라는 사실과 함께 그가 올해 제작되고 있는 수십 개의 영화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 할리우드 스타들의 발걸음을 움직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날은 유진에게 있어서도 조금은 신선한 하루였다.

늘 스크린을 통해서만 보던 스타들을 자택으로 초대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것은, 지난 삶에서의 유진으로서는 꿈도 꾸지 않던 일이었다.

“아깝네요. 사라만 아니었으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시했을 텐데요.”

40대에 들어서는 섹시한 여배우 레베카 콜슨이 칵테일 잔을 들고 그렇게 말했을 때는 유진도 살짝 당황했다.

“저도 아쉽군요. 앤드류만 아니었다면 제가 먼저 대시했을 겁니다.”

유진이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대꾸했다.

레베카 콜슨은 남편 앤드류 체이스와 두 아이를 낳아 잘살고 있는 잉꼬부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도 사라랑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아니었으면 진짜로 내가 탐냈을지도 모른다니까.”

레베카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유진의 팔을 건드렸다.

“자꾸 남의 남자 건드리지 말라고요.”

어느새 다가온 사라가 유진을 낚아챘다.

“조심해야 해요. 저 여자 진짜 위험해요.”

사라가 유진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 경고해 주었다.

“앤드류랑 여전히 다정한 사이 아닌가?”

“두 사람이 다정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건 전부 앤드류가 속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요. 레베카가 지금까지 건드린 남자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요? 앤드류도 다 알고 있으면서 참고 사는 거예요.”

“아…….”

이쪽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는 게 없는 유진으로서는 처음 듣는 일이다.

“여하튼 여기 와 있는 여자들은 전부 조심해야해요. 하나같이 유진을 노리고 있을 테니까.”

사라가 웃으며 다시 한번 경고했다.

사라와의 계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당분간 사라는 유진의 좋은 파트너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그녀가 있는 덕분에 귀찮은 여자들의 접근을 막을 핑계가 있어 더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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