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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81화 (81/363)

81화 학습 효과

“6월 22일 24시 환율을 기준으로 3개월짜리 스왑 계약을 원한다는 말이지? 야마다 상.”

미쓰비시도쿄UFJ은행 뉴욕 지사의 직원인 미야케가 물었다.

“어. 10억 달러짜리야.”

야마다가 대답했다.

“그런데 거기는 어때? 분위기 괜찮아?”

지금은 야마다가 고객으로 찾아왔지만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사이라, 미야케는 대형 거래를 협상하는 와중에도 스스럼없이 사적인 질문을 던졌다.

“분위기야 최고지. 뭣보다 액수가 다르잖아. 우리 보스가 다른 건 몰라도 돈은 아끼는 타입이 아니라서 말야. 이번에도 걸려 있는 성공 보수가 굉장해.”

미쓰비시도쿄UFJ은행 뉴욕 지사에서 근무하던 야마다는 몇 달 전 그때까지 받던 보수의 30%나 높은 제안을 받고 유진의 오피스로 자리를 옮겼다.

제안받은 액수도 액수였지만, 지난 2년 동안 세계 금융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 유진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는 욕심이 더욱 컸다.

사실 처음 옮길 결심을 하기 전까지는 꽤 고민이 많았다.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딜러와 매니저들은 쉽게 이직을 하는 편이지만,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아래 등급의 회사로 옮겨가면 다시는 위로 올라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은 일본 최대의 금융기관이며, 세계적으로는 2티어급 투자은행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에 비해 유진의 오피스는 최대한으로 쳐도 탑부티크 수준이다.

물론 유진의 위세가 굉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위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더군다나 그의 투자 방법이 헤지펀드나 다름없을 만큼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려져 있었다.

언제든지 한 번의 실패만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월스트리트에서는 그처럼 스타로 떠올랐다, 하룻밤 사이 파멸한 투자자들이 수없이 많다.

유진이라고 그런 패배자의 명단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야마다는 어떤 결과가 나든 역사적인 현장을 자신의 두 눈으로 목격하고 싶다는 욕망에 굴복했다.

아마도 다시는 이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성공해야 보수가 있는 거 아니겠어? 이번에는 조금 위험하지 않아? 약간이라면 몰라도, 베팅한 액수가 천문학적이라던데? 아무리 캉이라 해도 이번에는 무리수 같아.”

미야케가 슬쩍 딴지를 걸어 왔다. 사실 관동 출신인 야마다는 관서 출신인 미야케를 그다지 신뢰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더군. 사실 내부적으로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야. 겁도 좀 나고.”

야마다가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다가 LTCM처럼 될지도 몰라.”

미야케는 월스트리트 사람들에게는 어떤 상징처럼 일컬어지는 전설적인 헤지펀드를 거론했다.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

1994년 혜성처럼 등장해 3년 만에 30배라는 경이적인 수익을 창출해 내고, 러시아 채권에 과도한 레버리지로 투자를 이어가다가 1,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부도를 내고 만 그 회사는 결과적으로 월스트리트에 굉장히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하하. 롱텀캐피탈이라니. 끔찍한 소리 하지 말아.”

“LTCM처럼 Fed의 원조도 받을 수 없을 거야.”

미야케가 다시 한번 겁을 준다.

롱텀캐피탈이 일으킨 사태는 월스트리트에 재앙을 몰고 오기 충분한 규모였다.

결국 Fed(미국 연방준비제도, 타국의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기관)은 500억 달러의 거액을 조달해 롱텀캐피탈에 지원해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결과적으로 롱텀캐피탈은 기사회생을 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월스트리트의 투자기관들에게 사고의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면 결국 국가에서 도와준다는 신호를 준 셈이고, 그 결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이르기까지 방만한 투자를 마음껏 자행해 왔다.

마치 한국의 대기업들이 경영에 위기를 맞으면 정부에서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듯, 월스트리트에도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사조가 팽배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야케는 유진의 경우라면 다를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유진이 미국의 주류인 백인도, 월스트리트의 주류인 유대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리야 없지만, 나야 어쩔 도리가 없지.”

“잘 생각해 봐. 난파하는 배에서는 먼저 내리는 사람이 승자야. 이건 친구니까 하는 말이야.”

“한번 생각해 보지. 수수료 부분은 어때? 우리 쪽 계산이면 나쁘지 않을 텐데.”

“검토해 볼게. 어지간하면 승낙이 떨어질 거야.”

“당연하지 않아? 2:8이나 1:9인데.”

야마다가 다시 한번 죽는소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을 나서는 순간 야마다의 얼굴은 언제 기가 죽었냐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야마다는 스왑 담당인 미야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소심하고 간교하지만, 약자를 보면 금세 거만을 떤다.

야마다가 풀이 죽은 자세를 취한 것은 어디까지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서였다.

보스인 유진을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이번 투자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으로, 야마다는 미야케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야마다가 알고 있는 미야케라면 제안받은 스왑 계약이 거저먹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만일 야마다가 반대로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면, 지레 겁을 먹고 계약 체결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이날 야마다의 행동도, 그리고 야마다를 미쓰비시도쿄UFJ은행으로 보낸 것도 모두 유진의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그동안 유진은 월스트리트의 다양한 금융기관에서 경력을 쌓은 직원들을 대거 고용했다.

앞으로 있을 투자에 그들이 지닌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 순간, 월스트리트에 있는 수십 곳의 대형 투자기관에는 야마다처럼 자신의 옛 직장을 찾아 계약을 요구하는 직원들이 각자가 지닌 능력으로 최대한 많은 계약을 맺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계약 하나하나가 성과급으로 연결될 것이고, 야마다가 말한 것처럼 그들의 보스는 결코 돈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미야케에게 말한 것처럼 오피스 내부 분위기가 나쁜 것도 아니다. 사실 그럴 리가 없는 일이다.

유진의 리크루트에 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진이라는 남자가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해냈는지 궁금해하고 옆에서 지켜보고자 하는,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높은 보수라고 해도 지금까지 다니던 초일류 기업에 사표를 내고, 사실상 헤지펀드 수준인 유진의 아래로 들어갔을 리 없다.

야망과 모험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하고, 유진이 이루어 갈 위업에 동참하고 싶은 그들은 이번 유진의 결정에 처음에는 조금은 의아해했지만, 곧 납득하고야 말았다.

남들과 다른 위업을 쌓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문제는 그런 판단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적절한 시기에 최대의 계약을 성사시켜야 했다.

보스인 유진이 지난 2년 동안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에 각종 파생상품 계약으로 엄청난 액수를 받아 낸 것은 유명한 일이다.

이번에도 투자은행들은 유진의 직원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파생상품을 체결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베팅의 향방을 결정할 키를 쥔 것은 어떠한 특정한 주체가 아닌 영국 국민들이라는 것이고, 대부분 영국 국민들이 그렇게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리는 없으리라 생각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오피스의 직원들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목표로 한 계약을 하나씩 성사시키고 있었다.

만일 베팅 스코어가 2:8이나 1:9로 벌어지지 않았다면, 유진의 투자는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바쁜 시간이 흘러가는 와중에 손님이 찾아왔다.

“영화는 어때?”

뉴욕에서 촬영을 시작한 새 영화 때문에 얼마 전 날아온 사라는 조금 지쳐 보였다.

“나쁘지 않아요. 사실은 꽤 즐거워요. 역시 영화를 찍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거 같아요. 지나가 옆에 없는 것만 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예요. 이번에는 느낌이 꽤 좋아요.”

“좋은 영화가 될 것 같군. 흥행에도 성공할 거야.”

유진은 이번 영화가 그다지 성공적이지도 않고, 사라의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참! 우리나라 사람들이 브렉시트를 선택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면서요?”

사라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어보았다.

“내가 그랬었나?”

유진은 시치미를 뚝 떼고 물었다.

“아빠가 그러더라고요. 유진이 브렉시트 찬성에 거액을 베팅했다고요. 지금 월스트리트가 난리가 났다던데요?”

유진이 운용하는 자금의 규모는 이미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백억 달러를 움직여도 약간의 레버리지를 사용하면 수백억 달러가 넘어가 버린다.

천억 달러에 레버리지까지 더하면 벌써 일국의 예산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무지막지한 액수가 된다.

수천억 달러에서 크게는 수조 달러를 운용하는 기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는 장기간에 걸쳐 수없이 많은 다양한 상품에 분산투자를 하는 경우이다.

하지만 이번 유진의 베팅은 제법 여러 개의 상품에 나누어 놓았다고는 하지만,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투자되는 것이다.

지금도 그의 충실한 직원들은 월스트리트 여기저기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닐 것이다.

유진은 이번 투자에 대한 정보를 막을 도리도 없고, 막을 생각도 없었다.

사실 반쯤은 의도적인 행동이다.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아.”

“뭐. 사실 나도 어쩌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아빠가 들으면 기겁을 하겠지만 말이에요.”

사라가 웃으며 말했다.

“사라가 브렉시트 찬성파였는지는 몰랐는걸?”

“생각보다 제 주변에도 꽤 있어요. 영국이 굳이 유럽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녀처럼 아주 상류층에서도 찬성파가 꽤 있는 모양이다.

단지 이민자에 분노한 노동자들과 달리 그들은 전통 있는 영국의 귀족으로 영원히 남아 있기를 원한다는 면에서 조금 다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경제적으로 곤란한 사람들이 자신을 더욱 곤경으로 밀어 넣을 유럽연합과의 결별에 손을 들어 주는 데에 반해, 상류층은 약간의 경제적 손실이 있어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사라가 방문하고 다음 날, 유진은 그녀의 부친에게 연락을 받았다.

“브렉시트 타결에 베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자금도 포함이 되는 건가요?”

“어느 정도는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

그는 유진의 대답에 잠시 말이 없었다.

“곤란하신 모양이군요?”

유진이 먼저 말꼬를 터 주었다.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왕실과 관련된 자금이 국민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사건에 투자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왕족 모두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일이라서 말이지요.”

왕실 재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유진의 투자가 불러일으킬 파장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하기는 한국이었어도 대통령이 국가 대사에 돈을 걸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당장에 탄핵 소리가 나올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델비안 경의 자금은 투자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델비안과 맺은 계약에는 자산의 운용은 전적으로 유진의 관할이라 못 박혀 있었다. 그러니 계약을 파기하지 않는 한 유진은 마음대로 자산을 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유진은 그런 고집을 피울 생각은 없었다.

“납득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델비안에게 이번 투자에서 제외시켜 주겠다고 하는 것은 호의에 가까운 일이다.

그의 요청이 단순히 파장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아니면 투자가 실패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큰돈을 벌 기회를 마다한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유진에게 우려의 목소리를 건네는 사람은 또 있었다.

“이번 투자는 조금 성급한 것이 아닌가?”

6월 7일,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다섯 개 주에서 거행된 마지막 경선에서 완승을 거두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것이 확실시된 트럼프는 유진을 자신의 펜트하우스로 초대했다.

“여론을 들어 보니 브렉시트 타결의 가능성이 30%도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80% 이상이라는 기사도 있습니다.”

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하나도 재미없군. 너무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게 아닌가?”

트럼프가 불편한 표정으로 물었다.

“트럼프 씨의 대통령 당선을 확신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브렉시트가 통과되리라 확신하고 있을 뿐입니다.”

“확신이라…….”

트럼프가 말을 흐렸다.

유진은 그의 얼굴에서 사실 트럼프 자신도 완벽하게 자신이 대통령이 될 거라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 노인은 그저 가능성에 도박을 걸고 있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도박사의 눈으로 유진이 불안한 베팅을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벌었지?”

“우리가 관리하는 트럼프 씨의 자산이 어제 자로 8억 7,325만 달러이니 3억 7,325만 달러의 수익이로군요. 대략 75%의 수익률입니다.”

“굉장하군…….”

트럼프가 한숨을 쉬듯 말했다.

“그래서 이번 브렉시트 베팅에 실패하면 어떻게 되지?”

“최악의 경우라면 전부 날리겠죠.”

유진은 여전히 여유 있는 태도로 말하고 있었다.

“곤란하지. 그건.”

“곤란하시다면 트럼프 씨의 자산은 이번 투자에 포함하지 않겠습니다.”

유진은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트럼프가 상당히 고심하고 있을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트럼프뿐 아니라, 유진에게 돈을 맡긴 다른 사람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유진의 성공적인 투자에 얹혀 가기를 원했지만, 막상 위험한 투자가 눈에 보이니 겁이 나는 것이다.

유진은 그들 모두에게 투자에 빠질 기회를 주었다.

유일하게 그런 요구를 하지 않은 사람은 셰이크 만수르뿐이었다.

아마도 중동의 거부에게 몇억 달러 정도 되는 돈은 유진의 진가를 알아보기 위해 날려도 상관없는 수준으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트럼프도 결국엔 고심 끝에 이번 투자에서 빠지기로 결정했다.

이미 트럼프가 그러한 결정을 내리리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던 유진은 앞으로 반 달만 지나면 지금의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할 것을 생각하며 즐거워졌다.

이번 투자에 소문이 나는 것을 굳이 막으려 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브렉시트 탈퇴에 베팅했다는 소식이 자연스럽게 그들의 귀에 들어가길 원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그동안 벌어 온 돈을 한 번에 날려 버릴까 전전긍긍하기 원했다.

이번 일로 유진에게 투자한 인사들은 유진의 결정에 반대 의사를 표하는 것이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유진은 그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고, 커다란 행운의 기회를 걷어찬 것은 그들 스스로였다.

좋은 교훈은 언제나 훌륭한 학습 효과를 남기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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