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84화 (84/363)

84화 1조 달러의 사나이

“이번에 꽤 크게 한몫 본 모양이군.”

시샘 어린 얼굴로 도널드가 물었다.

“그럭저럭 100%는 될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니라는 투로 유진이 말했다.

“100%라…….”

“보수적으로 잡아서 말이지요.”

“1조 달러를 벌었다는 소리도 들리던데?”

“설마 그 이야기를 믿는 건 아니겠죠? 1조 달러라니요.”

“하긴 그렇지.”

트럼프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만큼 영 아쉬운 모양이다.

만일 이번 투자에 발을 빼지 않았다면 유진이 관리하는 트럼프의 자산은 20억 달러 가깝게 늘었을 것이다.

트럼프 자신이 주장하는 자산이 35억 달러 수준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엄청난 액수이다.

그의 부친 때부터 쌓아 온 부동산에 몇 개의 카지노와 호텔, 그리고 인기 쇼 어프렌티스를 10년간이나 이어 오며 벌어들인 모든 재산이 그 정도다.

그런데 유진에게 5억 달러를 맡기고 겨우 1년 만에 그가 평생 벌어들인 돈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일 기회가 있었다.

아마 지금쯤 자신의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회를 걷어찬 사람은 그 자신이다. 유진은 이번 투자도 성공할 거라 확신했고, 트럼프에게 몇 번이나 기회를 주었다.

“다음엔 또 어디에 투자할 생각인가?”

“아직 끝난 게 아니라서요. 브렉시트의 영향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파운드 하락이나, 엔화 상승세가 계속 이어질 모양입니다.”

“그런 거 말고, 이번 같은 건 말일세.”

“글쎄요? 이번처럼 세계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 어디 흔하게 있는 일이겠습니까?”

유진이 짐짓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끄응…….”

“앞으로도 계속 기회가 있겠죠.”

“그랬으면 좋겠군.”

“참! 패션 사업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이방카가 슬쩍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것도 잘 되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런칭할 예정입니다.”

“유진이 손을 댄 일이니 물론 잘 되겠죠?”

이방카가 욕심을 감추지 않고 희망을 내비쳤다.

처음에는 거액의 로열티만으로도 만족하는 것 같았지만, 유진이 관련된 사업이 족족 성과를 거두자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사업에도 점점 기대가 커지는 모양이다.

원래였다면 이방카 자신이 지금쯤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할 생각을 할 무렵이다.

하지만 이미 이방카 트럼프 상표의 아시아 사용 권한은 유진에게 넘어갔고, 또 그녀 자신의 사업적 수완이 유진보다 나을 거라는 자신은 없었기에 그녀는 사업권 회수를 요청하는 대신 중국에서의 패션 사업이 성공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이방카의 매력이 동아시아에서도 충분히 어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 물론 이방카가 원한다면 사업권을 돌려줄 수도 있어요.”

“아니에요. 지금은 아빠를 보좌하는 것만으로도 바빠요. 유진이 훨씬 잘할 거라고 믿어요.”

유진의 입에서 돌려준다는 말이 나오자 이방카가 펄쩍 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라이선스 비용을 받을 수 있고, 사업이 성공하면 자신이 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 굳이 그걸 돌려받을 생각은 없었다.

더군다나 트럼프가 이번 브렉시트 투자에서 겁을 먹고 빠져 버린 덕분에 입은 손해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했다.

“그렇다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신경을 써야겠군요.”

“자네가 신경을 써 주면 우리도 고맙지.”

트럼프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유진에게 자신의 투자금을 신경 써 줄 것을 요청했다.

트럼프 일가는 점점 더 유진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은 주로 재정적인 문제이지만, 앞으로도 거기에 한정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트럼프 일가에게 재정적 문제는 항상 1순위였고, 그걸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목요일에는 워싱턴에서 열리는 행사가 있어요.”

트럼프 부녀와 헤어진 후, 모니카가 유진의 스케줄을 알려 주었다.

브렉시트 투자 건이 마무리에 들어가면서 유진의 사교 행사가 재개되었다.

다시 주말이면 다양한 인사들을 초청해서 사교 파티를 열었고, 또한 뉴욕뿐 아니라 미 동부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열리는 다양한 행사에 초대받아 참석하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와 달리 유진이 만나는 사람들은 점점 더 파워를 지닌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에릭 홀더입니다.”

이날은 제법 거물과 함께 자리하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유진 강입니다.”

“요즘 가장 핫한 분이군요. 어딜 가나 유진 이야기뿐입니다. 아! 유진이라고 불러도 되겠죠? 아니면 칸이라 불러 드릴까요?”

“그냥 유진이라 불러 주세요. 에릭.”

“그렇게 하죠.”

만남은 처음부터 부드러웠다.

“설마 브렉시트가 그렇게 결정 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아! 물론 유진은 아니었겠지만 말이에요.”

“세상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항상 일어나는 법이지요. 저라고 확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투자 효율성을 따졌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세상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영국뿐 아니라 온 유럽이 점점 폐쇄적으로 바뀌고 있어요.”

“유럽뿐이 아니지요. 사실 아메리카도 그런 시류에서 떨어져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맞아요. 걱정이 커요. 아! 그러고 보니 유진은 아니겠군요. 트럼프를 지지한다 했었죠?”

“지지라기보다는 사적인 친구에 가깝습니다.”

유진이 가볍게 웃으며 정정해 주었다.

“만일 트럼프가 된다면 무척 곤란해질 것 같은데 말이에요.”

“에릭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지요.”

“내게 기회라고요?”

“에릭도 야망이 있는 사람 아니었나요? 차기를 노린다면 힐러리보다는 트럼프가 되는 쪽이 유리하지 않겠어요?”

“흠. 내가 그런 말을 하고 다녔던가요?”

에릭이 웃으며 되물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정치인이신데요.”

에릭 홀더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7년 동안이나 오바마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으로 재임했던 사람이다.

지금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 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워싱턴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 누구보다 크다.

“솔직히 말해 전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결심이 선 것도 아니고요.”

“에릭이라면 아주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일 그 결심이 선다면 말씀해 주세요. 최대한 도움을 드리고 싶으니까요.”

“말씀만으로도 고맙군요. 벌써 마음이 흔들리고 있어요.”

에릭은 기쁨을 참지 못하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최근 에릭이 MTN 그룹 건을 아주 훌륭하게 처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MTN 그룹은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 본사를 둔 통신 회사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전역에 광범위한 서비스를 하는 국제적인 기업이다.

가입자만 무려 2억 명이 넘는 아프리카 최대의 통신 회사이며 수익의 상당 부분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이지리아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2015년 나이지리아 정부는 MTN 그룹의 불법 행위를 적발하고, 무려 52억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

MTN 그룹은 이 막대한 벌금을 줄이기 위해 에릭을 고용했고, 에릭은 법정 투쟁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법무부 장관과의 교류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벌금을 32억 달러까지 줄일 수 있었다.

확실한 내막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에릭이 미국 법무부 장관으로 있던 경력과 관련이 있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이 일로 에릭이 근무하던 법무 회사와 에릭은 다시 큰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나름 노력을 해 보기는 했습니다. 다행히 말라미와는 서로 통하는 게 있어서 말이지요.”

에릭은 자신이 비정상적인 루트로 일을 해결한 사실을 감추지 않았다.

“참! 에릭에게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가요? 월스트리트의 정복자가 하는 부탁이라니, 상당히 기대가 되는군요.”

에릭은 요사이 미디어에 오르내리는 유진의 별명을 부르며 친근하게 말했다.

“내가 운영하는 회사가 짧은 시간 사이에 급성장을 하다 보니,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지금도 법률 부분은 몇 개의 로펌에 위임을 하고 있는데, 사내에서 제대로 통괄할 사람이 없어요.”

“흠. 혹시 제게 유진의 회사에 들어오라는 말씀인가요?”

“가능하다면 가장 유능한 분을 모시고 싶습니다. 그리고 에릭은 제가 알고 있는 한 그 리스트 제일 위에 있는 분이지요.”

유진은 대놓고 전관예우로 전 법무부 장관을 스카웃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미국에서는 그게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이기에 가능한 말이다.

전관예우는 유달리 한국에만 있는 악습은 아니다.

미국도 행정부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하다가 퇴임 후에는 금융회사나 법률회사 등의 사기업에 고액의 연봉을 보장받으며 취직해, 공무상 얻은 다양한 인맥 풀을 제공하고는 한다.

한편으로는 행정부에서도 민간 기업의 고위직 인사를 행정부 고위직으로 발탁해서 민간 기업의 기부나 기타 조력을 얻기도 한다.

미 정계에서 말하는 소위 회전문(Revolving door)이 바로 이런 시스템이다. 문을 돌아 행정부로 갔다가 다시 문을 돌아 사기업으로 오며 양측으로부터 명예와 보수를 받고, 마찬가지로 양측에 적절한 이익을 제공한다.

어찌 보면 한국보다도 더 고도화된 전관예우인 셈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이런 회전문 인사는 이해 상충과 기관의 신뢰 상실을 불러일으킨다며 비판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하지만 마땅히 규제할 방법은 없다.

당장 이 회전문 인사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권력과 금력, 그리고 인맥을 보유한 파워 피플이며, 또한 의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로비스트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반평생을 살아온 유진은 이런 회전문 시스템의 영향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러했듯이 합법적인 시스템이라면 그걸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거 꽤 고민되는 제안이로군요. 하지만 지금 근무하는 회사에서도 충분한 대우를 받고 있어서 말입니다.”

“물론 그러시겠죠.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차후에 에릭의 야망을 실현하고자 할 때, 제가 얼마나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말이에요.”

유진은 에릭이 다음 선거에 나갈까 고민하다, 결국은 포기하게 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유진이 에릭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그가 차기나 차차기에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해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가 지금 가진 가장 큰 배경, 바로 전직 법무부 장관이라는 타이틀 하나 때문이다.

“그렇군요.”

에릭의 눈빛이 흔들린다. 세계에서 가장 현금이 많은 사람의 도움이라니, 정치에 야망을 둔 사람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제안이다.

“그리고 연봉은 아마 여덟 자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유진이 쐐기를 박았다.

“진심입니까?”

“여덟 자리로 4년 계약, 4년 뒤에는 에릭에게 고민할 기회를 드리지요. 아! 또 한 가지, 우리 회사에서는 임원(Chief)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천만 달러라는 연봉보다 투자 권리라는 말이 훨씬 더 중요했다.

유진의 투자회사가 얼마나 큰 수익을 올리는지 이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오늘 밤 집에 가면 집사람과 아주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 할 것 같군요.”

에릭은 체면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계약서를 꺼내라고 외치고 싶었다.

이후 두 사람은 다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진과 대화를 나누어 보니, 아무래도 이번에 힐러리는 조금 힘들 것 같군요. 세상이 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세상이 변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요. 한동안 세계화와 이성이 중시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만, 이제는 이성이 아닌 감정이 당분간 훨씬 더 크게 작용할 모양입니다.”

“그런 것 같군요. 망할! 아! 유진에게 한 말은 아닙니다.”

“괜찮아요. 동양에서는 가득 찬 것은 기울고, 빈 것은 다시 차오른다고 말하곤 하죠. 그렇게 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거지요.”

에릭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음양 사상이었던가요?”

“동양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시군요.”

“대학 때 잠시 관심이 있어 공부를 해 보았습니다.”

“서양이라면 아우프헤벤이겠군요.”

“그럴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맞는 말이군요. 사람들이 이성을 멀리하고, 증오의 감정으로 미래를 결정짓는 것조차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이라는 말이지요?”

“그다음 단계의 첨단에 에릭이 서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의 대화는 아주 깊게 새겨 두도록 하지요.”

에릭 홀더는 유진에게 감명을 받았다며 사의를 표했다.

그가 감명을 받은 것이 유진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여덟 자리 플러스 알파의 제안 때문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잠시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다가 자리를 움직였다. 에릭에 대한 제안은 큰 문제 없이 해결될 듯싶었다.

그리고 유진이 영입하려는 사람은 에릭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주머니가 두둑하니, 아주 많은 사람을 고용할 생각이다.

적어도 에릭 정도의 배경을 지닌 사람들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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