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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87화 (87/363)

87화 시네마퍼스트

“자동차 실적이 너무 안 좋다고 들었습니다.”

이제 거의 환갑에 들어서는 대양의 오경덕 비서실장이 회장의 첫째 아들에게 물었다.

“아주 죽겠어. 지난해에 비하면 20%는 떨어졌어. 국내고 해외고 할 거 없이 죄다 문제야.”

“아무래도 비난 여론이 사라지지를 않고 있으니 말입니다. 작년 이후로 대양 그룹 이미지가 사상 최악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전자 쪽은 오히려 더하다고 합니다. 회장님께서 걱정이 크십니다.”

“하. 미치겠네. 성규 그 자식 때문에 우리가 무슨 꼴이야? 강유진인지 뭔지 하는 자식의 약혼녀와 붙어먹지만 않았어도 이 꼴까지는 나지 않았을 거 아냐?”

“그게 원인이 된 것은 틀림없지요. 하필이면 그자가 그렇게까지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오경덕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1조 달러? 하. 미치겠네. 요즘 잠도 안 와. 그 녀석이 정말로 1조 달러를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그걸로 우릴 공격한다 생각하면 아무 대책도 없는 거 아냐?”

“1조 달러 이야기는 낭설에 가까울 겁니다. 저희 쪽 계산으로는 그 1/10도 어려울 거 같습니다.”

“그렇겠지? 여하튼 그 자식이 현금으로 100조 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일 거 아냐? 그 돈이면 대양 그룹 사고도 남잖아?”

브렉시트 사태로 한국 주식시장도 10%가 넘게 빠졌다가 시간이 흐르며 다시 제자리를 찾았지만, 유독 대양 그룹은 그렇지 못했다.

막대한 자금을 보유한 강유진이 대양 그룹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비밀도 아니었고, 실적은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시장의 반응이 좋을 수가 없었다.

대양 그룹 전 계열사 주가는 2년 전 대비 30%나 빠져 버렸고, 좀처럼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M&A 이슈가 생기면 주가가 오르기 마련이니까요. 여하튼 난처한 것은 틀림없지요.”

“동유럽하고 동남아시아라도 좀 팔려 주면 좋겠는데, 어째 어렵네. 그쪽에서도 이미지가 너무 망가져 버렸어. 나 원…… 우리가 잘못한 거라면 어떻게 손이라도 써 볼텐데, 성규 그 새끼 때문에. 하아…….”

대양자동차 사장은 끊임없이 조카를 원망했다.

“강유진의 명성이 올라가는 만큼 우리 대양 그룹의 이미지가 하락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각국 인터넷 통계를 확인해 보면 대양 그룹에 대한 악평이 어디서든 조직적으로 유포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강유진 측에서 계속 작업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지독한 새끼. 아주 우리 그룹을 통째로 쓰러트리겠다는 거야?”

“솔직히 그런 의도로밖에는 달리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그 자식 때문에 나가리 된 프로젝트가 몇 개야? 맥스 편의점, 삼호 카드, 대풍건설…… 큼직한 것만 세 개야. 올해 들어와서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잖아. 그 녀석이 무서워서.”

“대양 그룹의 신규 사업 분야에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경쟁사에 힘을 실어 주고 있으니까요.”

회장 비서실장의 얼굴에도 근심이 잔뜩 서렸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다. 회사의 이미지야 언제고 다른 방식으로 재고할 수 있다 해도, 모든 신규 사업이 막혀 버린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막대한 현금을 지닌 유진이 대양 그룹 경쟁사에 약간의 현금을 얹어 주는 것만으로도 대양은 사업을 포기해야 했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서는 기존의 사업 분야에서도 각 기업들과 힘을 합쳐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차라리 중공업을 떼어 주고라도 이쯤에서 끝내고 싶을 지경이라니까.”

“회장님 앞에서는 절대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알아. 알아. 그냥 하는 소리야.”

“여하튼 전사적으로 어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특단의 대책이라…… 어떤 식으로든 강유진 그 자식하고 관계를 조금이라도 호의적으로 만들지 못하면 의미 없지.”

“그렇습니다.”

“역시 그 방법뿐인가? 근수가 내려가야겠지?”

회장의 심복이 장남을 찾아온 것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였다.

“중공업 사장을 교체하고, 성규 도련님이 유죄 판결을 받는 정도로 그쪽에서 납득을 해 주면 좋겠는데요.”

“끄응, 근수 그 녀석 꽤 낙담하겠어. 자기는 회사에서 떨어져 나가고, 총애하던 아들은 감옥에 가게 되면 말이야.”

자동차 사장은 회장 비서실장의 말이 결코 사적인 의견이 아닌 것을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부친의 말을 대변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이미 부친이 어느 정도 결심을 했다는 말이다.

사실 조금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셋째 동생이 둘째보다 껄끄러운 상대였는데, 녀석이 이렇게 자빠져 버리면 대권이 손에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오 비서실장이 자기를 먼저 찾아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룹의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양 그룹이 손에 들어올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러니 형제분들끼리 우선 마음을 합쳐서, 중공업 사장님을 위로해 주시고, 좋게 물러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여하튼 알았어. 내가 근일이랑 상의해 보지.”

자꾸만 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다.

대권이 눈앞에 보인다.

그때였다. 사장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사장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야? 중요한 대화 나눈다고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아?”

“지금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뉴스에 한채아가 습격을 당했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한채아? 그 미친년?”

“네. 원주 고속터미널 근처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당해 흉기에 찔렸다고 합니다.”

“뭐야? 누가 그런 짓을?”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태가 안 좋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벌써 온통 대양 그룹에서 테러를 사주했다는 풍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미친! 진짜 성규 그 미친놈이 저지른 거 아냐?”

자동차 사장은 비서실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설마 그럴 리가요. 성규 도련님도 생각이 없으신 분이 아닌데. 선고 공판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틀림없이 악영향이 있을 것을 모르실 리 없습니다.”

“그럼 누군데!”

자동차 사장은 악을 쓰듯 외쳤다.

“지금은 괴한이 누군지를 알아보는 것보다 당장 여론을 돌려야 합니다. 이래서는 대양 그룹에 엄청나게 악영향이 생길 겁니다.”

“그, 그래. 어떻게든 해 봐! 윤 비서! 못 들었어? 빨리 나가서 어떻게든 조처해!”

“네, 넷!”

강유진의 전 약혼녀가 피습을 당한 사건은 굉장한 파장을 몰고 왔다.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사건은 오히려 더욱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쉬지 말고 게시글 올려! 그래. 이번엔 더블로 쳐 줄게. 걱정하지 말고 올려.”

그 시간, 세종 홍보에서는 정신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철우는 관련 업체들을 총동원해서 이 사건을 대양 그룹과 연관 짓는 게시물을 광범위하게 올리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 등지에 있는 작업장을 통해 한국은 물론이고 전세계적으로 커뮤니티 사이트와 다양한 SNS를 이용해 이 사건을 퍼트리고, 대양 그룹을 비난하는 게시물과 댓글이 엄청난 숫자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식시장은 거기에 바로 반응했다.

사건이 보도되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대양 그룹 주 계열사 종목에 VI가 발동되었다.

며칠이 지나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한국의 언론은 온통 그 뉴스로 도배가 되고 있었다.

난데없이 뜨거운 물을 맞아 버린 대양 그룹에서는 사태를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한 채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유진으로서는 당장 나쁠 것은 없는 사태였다.

세종 홍보를 통해 대양 그룹의 이미지를 떨어트리는 작업도 순조로웠고, 지금에 와서는 딱히 그런 작업을 할 것도 없이 대양의 이미지는 완전하게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러던 차에 류근수 대양중공업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아무래도 작금의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을 지게 된 모양이다.

하지만 유진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유진과 그의 가족이 지난 삶에서 받은 고통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KF엔터의 한정아 대표로부터 면담 요청이 왔습니다.”

그러던 하루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연락을 받았다.

KF엔터는 대한민국 공인 최대 그룹인 제일 그룹의 엔터테인먼트 계열사로, 대표인 한정아는 제일 그룹 회장의 둘째 딸이었다.

“면담이라고?”

“네. 지금 LA에 머무는 중인데 마침 뉴욕에도 방문할 일이 있어 시간이 되시면 한번 뵙고 싶다는군요.”

“음…… 그렇게 하지. 모니카가 알아서 시간 잡아 봐.”

유진은 그녀가 뉴욕에 오는 것이 과연 다른 일 때문에 오는 것인지, 아니면 유진과의 만남 자체가 목적인지 궁금해졌다.

바로 이틀 뒤, KF엔터의 대표가 유진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쪽에서 급하게 자리를 원한 것으로 보아,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한정아입니다.”

기품이 흐르는 단아한 얼굴의 여인이 먼저 인사를 해 왔다.

“반갑습니다. 강유진입니다. 뉴욕까지 날아오시느라 피곤하시겠군요.”

유진이 듣기로 한정아는 LA에서 뉴욕으로 날아와 휴식 없이 방문했다고 했다.

“괜찮습니다. 유진 씨의 747 정도는 아니지만, 제일의 비지니스 젯도 제법 안락하답니다.”

그녀가 농담처럼 대답했다.

아직 한국의 다른 대기업들은 국민들의 눈을 의식해 전용기를 구매하지 못하고 있지만, 제일 그룹은 달랐다.

한국 제일의 대그룹이라는 이름값도 있고, 또 전 세계적으로 수위에 오른 계열사들 덕분에 자가용 비행기를 산다 해서 눈총을 살 정도는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제일 그룹은 무려 네 대나 되는 전용기를 운용하고 있다.

그중 한 대는 747 바로 아래 단계인 737로 알려져 있다.

유진은 회장의 딸인 한정아가 타고 왔을 비행기라면 역시 737이 아닐까 예측해 본다.

“아직 주문한 비행기가 나오지 않아 그렇게 안락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제일 그룹의 비지니스 젯이라면 한번 타 보고 싶네요.”

“혹시 필요하신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제가 미리 준비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대신 747이 나오면 저도 한 번 태워 주시고요.”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호의를 표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시군요.”

유진도 제일 그룹과 서로 나쁜 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다. 앞으로의 일은 몰라도 당장은 한국에서는 대양 그룹과 척을 진 것으로 충분했다.

“멋진 사무실이군요.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일을 한다면 능률도 굉장히 오르겠어요.”

“아무래도 맨해튼에서 제일 시원한 뷰 포인트니까요.”

“저도 이렇게 멋진 사무실에 근무하고 싶네요.”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사무실도 좋지만, 한강이 보이는 사무실도 그보다 못하지는 않을 텐데요?”

유진의 말에 한정아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저희 회사에 대해 잘 알고 계신가 봐요?”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지배하는 회사이니 모를 수야 있나요.”

“그렇게 보아 주시니 감사하군요. 하지만 유진 씨의 명성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번에 할리우드에 갔다가 정말 깜짝 놀랐지 뭐예요. 정말 거기서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계시더군요.”

그녀가 슬슬 찾아온 목적을 밝히려 하고 있었다.

“그 정도인 줄은 모르겠어요. 그쪽에 친구들은 많지만요.”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 흥행한 작품들은 전부 유진 씨의 자본이 들어갔다면서요?”

“작년부터 영화 쪽으로 투자를 많이 하기는 했지요. 워낙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요.”

“그렇다고 해도 선구안이 보통 좋으신 게 아니더군요. 거의 90% 넘는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다던데, 유진 씨는 그냥 투자만이 아니라 영화 쪽에도 굉장히 선견지명이 있으신 모양이에요.”

“운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욕심도 참 많으세요.”

한정아가 살짝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올 연말부터 개봉되는 영화들의 한국 배급권을 미리 선점하셨더라고요.”

유진의 투자 조건이 그것이었다.

원래였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대신 투자금 회수에 약간의 손해를 본다.

어차피 돈이야 다른 곳에서 충분히 벌어들일 수 있으니, 유진은 기꺼이 대가를 지불했다.

“하하. 사실 한국에서 영화 배급 사업을 시작해 볼 생각이라서요. 제가 영화에 아주 관심이 많거든요.”

“신비한 동물 사전, 라라랜드…… 마블과 스타워즈만 빼고는 중요한 영화는 전부 선점을 하셨더라고요.”

마블과 스타워즈는 디즈니에서 캐시카우로 애지중지하는 프랜차이즈라 유진으로서도 끼어들기 쉽지 않았다.

그 영화들에도 어느 정도 투자를 했지만, 한국 시장 독점권을 따내지는 못했다. 그것까지 가지려면 디즈니를 매수하지 않고서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스타워즈의 경우는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미국 시장에서와 달리 한국에서 스타워즈는 그저 평범한 블록버스터 영화 중 하나일 뿐이다.

그보다는 마블 쪽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때문에 유진은 마블 영화에 대한 독점권을 얻어 내기 위해 계속해서 협상 중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디즈니코리아를 넘겨받을 생각도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유진에게는 넘치는 자금이 있다.

“한국에서 배급을 하신다면, 역시 극장 선정도 유진 씨가 결정하시는 거겠죠?”

그녀가 LA에서 뉴욕으로 황급히 날아온 까닭은 역시 그 때문이다.

지금까지 개봉한 영화들은 아직 유진에게 한국 시장 배급권이 없지만, 가장 중요한 시즌인 크리스마스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이제 할리우드에서 제작하는 흥행 영화는 유진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극장에 걸 수 없는 것이다.

제작, 배급, 극장에 이르는 영화 산업의 수직계열화로 한국의 엔터 업계를 좌지우지하던 KF엔터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일 것이다.

당장 몇 달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 시즌에 극장에 걸 영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유진과 협상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 세계적인 부호가 된 유진과 협상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사람이 움직여야 했다.

제일 그룹 회장 딸이 여기까지 급하게 찾아온 이유였다.

“지금 시네마퍼스트 인수 협상 중입니다. 아! 이건 비밀이었지?”

유진이 능글맞게 웃으며 한국 멀티플렉스 3위 기업의 인수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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