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투자 결산
“참! 미첼을 소개해 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그녀의 팬인가요?”
“사실 전에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만나면 전부터 팬이었다고 할게요.”
“하하. 그렇게 해요. 미첼도 좋아할 거예요. 그런데 미첼은 무슨 일로 만나는 것인가요?”
“공연에 투자할 생각이에요.”
“하데스타운에요?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요? 저 때문인가요?”
“아뇨. 나랑은 그렇게 맞는 것 같지 않지만, 어쩐지 굉장히 잘 될 것 같아서요.”
“정말요? 유진이 뮤지컬과 영화를 고르는 안목은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는데. 그럼 우리 뮤지컬도 히트하는 거예요?”
에밀리가 뛸 듯이 좋아했다.
“맞아요.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미첼도 좋아할 거예요. 투자 때문이 아니라 유진의 선택이라면 흥행이 보증된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에밀리는 유진의 말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포크 가수이자 이 뮤지컬의 음악을 맡은 아나이스 미첼과 감독인 레이첼 차브킨은 유진의 투자 의사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유진은 해밀턴에 투자한 것보다는 조금 적은 액수의 투자를 결정했다.
정말로 에밀리 때문은 아니다. 유진의 기억 속에서 하데스타운은 앞으로 몇 년 뒤에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중 하나였다.
매년 제작되는 많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중에 몇 년 뒤에도 브로드웨이에 남아 있는 뮤지컬은 손에 꼽힐 정도이다.
그러니 유진의 기억에 남아 있을 정도의 뮤지컬이라면 틀림없이 성공작이라는 말이다.
아마 토니상도 몇 개 정도 탄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투자해야 했다. 하데스타운 또한 유진의 성공을 증명하는 트로피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전기자동차 업계에 대한 투자 결산입니다.”
플로리다에서 돌아온 뒤 며칠간의 휴가 동안 그녀가 했던 말처럼 집에서 푹 쉬고 출근한 요안나가 보고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VC에서 그동안 추진하던 리비안과 루시드 그룹에 대한 투자를 성사시켰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각각 캘리포이나 어바인과 뉴어크에 본사를 둔 리비안과 루시드는 앞으로 미국 전기차 업계에서 테슬라에 이어 시가 총액에서 2, 3위를 다투게 될 기업들이다.
“리비안에는 3,000만 달러의 투자로 43%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1,800만 달러를 들여 지금까지 투자한 다른 투자자들의 지분 15%도 인수했습니다.”
현재까지 리비안이 유치한 투자금은 겨우 150만 달러에 불과하다.
앞으로 5년 안에 모두 15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받을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투자는 헐값이나 다름없었다.
전기자동차에 대한 전망이 최고치에 이르는 2021년 이 회사는 주식공개를 추진하고, IPO 직후 주가 총액은 무려 1,500억 달러에 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앞으로 다른 회사에서 투자를 유치할 때마다 지분이 희석될 것이기에 유진의 지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때마다 유진도 적절한 수준의 투자를 이어갈 것이니 정점에 이르렀을 때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
“Atieva 쪽은 아직 성과가 없다고 하네요.”
Atieva는 테슬라 자동차에서 배터리 개발을 이끌었던 버나드 체 부사장이 창업한 회사로, 배터리 부분에서는 테슬라 못지않은 기술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진 회사이다.
때문에 리비안에 비해서는 상당히 많은 투자를 유치한 상태였다.
하지만 가장 많은 투자를 한 중국의 중국 베이징 자동차와 LeEco가 루시드 그룹의 자동차 개발에 반대하며 배터리 개발과 공급에만 주력하기를 원했다.
결국엔 중국 투자자들에 의해 창업자인 버나드 체가 CEO에서 쫓겨났고, 경영진과 투자자의 대결 구도 속에 이번에는 중국 베이징 자동차가 갑자기 지분을 정리하고 나가 버렸다.
그런 복잡한 상황에서도 개발진은 전기차 제작에 매진하고 있는 상태다.
“지아유에팅(贾跃亭)과는 지분 50%에 대한 인수 가격에 대한 협상을 진행 중입니다. 지아유에팅도 매각 의사는 있는데, 너무 큰 액수를 부르고 있습니다.”
초기에 5,000만 달러를 투자해 25%의 지분을 확보하고, 나중에는 중국 베이징 자동차의 지분까지 인수한 지아유에팅은 중국의 IT 기업인 LeEco의 창업자로, 다양한 사업에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둔 유능한 사업가이다.
최근에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쇼핑몰을 만들고, 거액의 자금을 들여 야후로부터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형 건물을 인수하는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었다.
미국에서의 사업에 무려 2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하니, 캘리포니아에서는 굉장한 거물이 등장한 셈이다.
“그렇게 서두를 건 없어.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되면 그쪽에서 오히려 팔게 해 달라고 할 테니까.”
“올해 말로 예정된 사업에 차질이 있을 걸로 보시는군요.”
“그럴 가능성이 커. 무엇보다 회사 이름이 문제야. LeEco가 뭐야. 그런 네이밍으로 성공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
“하기야 LeEco라는 단어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난감하네요. 그렇다고 설마 이름 때문에 시패할 거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지요?”
“정말이라고. 그런 이름을 지은 거부터가 미국 시장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걸 의미하잖아? 자기가 중국에서 성공했듯이 뭐든지 싸게 밀어붙이면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알아.”
“왠지 어거지 같으면서도 납득이 되네요.”
사실 유진은 그저 지아유에팅의 미국 진출이 거대한 실패로 끝날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어떤 이유로 실패하게 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지아유에팅은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돈을 마구 뿌리고 덩치를 키우며 그걸 미끼로 외부의 투자 유치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겨우 시작하는 회사가 2억 5,000만 달러짜리 사옥을 구매했다는 것부터 에러이다.
더군다나 그의 사업은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스마트폰, 자전거, VR헤드셋 같이 도대체 서로 어떤 시너지가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분야에 중구난방으로 손을 대고 있다.
거대한 생태계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그저 돈이 될 것 같은 사업에는 무엇이건 건드려 본다는 중국식 비즈니스 마인드에 불과할 뿐이다.
한창 성장 중인 중국에서라면 충분히 먹히겠지만, 미국에서는 그저 가격이 싸다는 점 외에는 아무런 장점도 되지 못했다.
유진은 결과적으로 지아유에팅이 아주 거하게 사업을 말아먹고 파산을 신청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적당히 접근하며 기다리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전기차 업체에 대한 투자는 미국 내에서만이 아니라 멀리 바다 건너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쟝이 리막 오토모빌리에 대한 투자를 성사시켰다고 합니다.”
얼마 뒤, 유럽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유럽의 VC를 책임지고 있는 쟝 미셸 슈발리에는 프랑스 출신의 미국 사람으로, 6개 국어를 능란하게 사용하는 재능있는 비즈니스맨이다.
6개 국어라 해도 결국 유럽 언어이니 비유럽 계통 외국어에 능란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평을 들어보면 각 언어를 완벽하게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한다고 한다.
그 뛰어난 언어 능력만큼이나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친분을 맺는 능력또한 출중해 유럽 전역의 스타트업을 찾아다니며 투자를 성사시키는 데에 아주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고 있다.
“쟝이 이번엔 크로아티아어도 익혀, 이제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하나 더 늘었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지시한 리막 오토모빌리티는 크로아티아에 위치한 회사로, 한동안 사장인 마테 리마츠의 원맨 회사로 유지되다가, 몇 년 전 리막 콘셉트 원이라는 전기 슈퍼카를 만들어 내며 무섭게 떠오르고 있는 곳이었다.
무려 시속 350km에 달하는 속도와 놀라운 가속력으로 여느 슈퍼카들을 압도하는 성능을 자랑하는 리막 콘셉트 원은 그 우아한 디자인 때문에도 자동차 애호가들의 눈길을 끌어모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닥 대단한 투자를 유치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은 마테 리마츠가 미국이나 독일이 아닌 크로아티아라는 소외된 나라에 회사를 설립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5,000만 달러로 46%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쟝이 투자 제안을 하러 크로아티아에 날아갈 때까지, 리막 오토모빌리티는 겨우 5만 유로의 투자를 받은 것이 전부였다.
겨우 5,000만 달러로 리막 오토모빌리티의 지분을 그렇게나 확보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리막은 해가 다르게 눈부신 성장을 이어갈 것이다.
“지미 탕이 니오, 리샹, 샤오펑에 대한 투자 협상을 완료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싱가폴에 있는 아시아 투자 VC에서도 중국의 전기자동차 업체들에 대한 투자를 성사시켰다.
사실 초기 미국이나 유럽의 전기차 시장은 중국의 전기차 시장에 비하면 아주 사소할 정도이다.
중국 정부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전기차 산업에 적지 않은 투자를 이어 오고 있다. 미래의 먹거리로 전기차 산업을 점찍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양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중국 전기차가 빠르게 발전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유진은 중국의 수많은 전기차 업체 중에서 눈에 띄게 성장할 회사들을 점찍어 지미 탕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번에 투자하기로 한 업체들은 업력이 겨우 2, 3년에 지나지 않지만, 머지않아 중국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게 될 것이다.
유진은 전기차 스타트업에 대한 초기 투자 금액을 10억 달러 정도로 잡았지만, 그의 유능한 VC 파트너들 덕분에 훨씬 더 적은 돈을 쓰고 있었다.
앞으로 5년 뒤에 이 회사들의 가치가 모두 수천억 달러에 달할 것을 생각하면, 아주 가치 있는 투자들이 성사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이 몇 곳의 전기차에 대한 지분만으로도 적정한 시기에 팔고 나오기만 한다면 세계 10대 부자 안에 여유 있게 들어갈 정도이다.
하지만 전기자동차 업계에 대한 투자는 유진의 VC 투자의 아주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VC 투자의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몇 년 뒤부터는 IPO를 할 때마다 지분을 정리하는 것으로 매년 끔찍할 만큼의 자산이 증식할 것이다.
그리고 유진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종류의 투자를 하는 곳이 또 있었다.
“유아라, 이현욱 커플이 이제 준비가 완전히 끝났다고 합니다. 가을 시즌부터 제대로 시작할 모양입니다.”
서울에서의 일을 맡고 있는 김환이 화상회의를 통해 정례보고를 해 왔다.
최근 유진은 화상회의 시스템 분야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Zoom Video Communications에 3억 달러를 투자하고 33%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미 몇 곳의 펀딩을 받았고, 유진의 투자는 Late Stage Venture에 해당하는 것이니 적은 비용으로 높은 지분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Zoom의 가치를 9억 달러로 인정하고 최대한의 투자를 한 것이다.
꽤 큰 액수이지만, 몇 년 뒤에 이 회사가 지금보다 100배나 큰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을 생각하면 더 많은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하지만 유진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모든 오피스에 자신이 투자한 기업인 Zoom의 시스템을 절대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시내렸다.
Zoom의 창업자인 에릭 위안은 중국 출신 미국인으로, 핵심 개발진을 자신과 같은 중국인으로 채용했고, 어떤 이유에서인가 암호화 서버를 중국에 두었다.
결과적으로 본사만 미국에 있고, 개발진과 서버 모두가 중국에 있는 것이다.
단지 중국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다.
앞으로 몇 년 뒤에는 Zoom을 사용하는 동안 암호키가 베이징으로 전송되고, 한편으로는 개인정보가 지속적으로 유출된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더군다나 보안에 취약한 점이 추가로 알려져, 영국 국방부, 나토 등에서 줌을 퇴출하기에 이른다.
그러니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