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96화 (96/363)

96화 실적 발표

유진이 투자한 화상회의 시스템 업체는 Zoom 외에도 더 있었다.

Discord는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5,000만 달러에 46%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쪽도 100배 이상 성장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유진은 Discord도 업무용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Discord는 게임용 메신저로서는 뛰어나지만, 지속적으로 해킹 사고가 일어나고 멀웨어까지 퍼지는 등 보안 문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회사에서 사용되는 것은 전통적인 네트워크 강자인 시스코에서 서비스하는 협업 소프트인 웹엑스(Webex)의 화상회의 시스템이었다.

화질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보안성 면에서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Webex 또한 해킹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어서 고스트 사용자로 회의에 참석해 엿들을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대문에 가능하다면 화상회의에서는 그다지 보안이 요구되지 않는 내용만을 전달하도록 지시해 놓았다.

“그리고 대양자동차에서 맥스웰 그리피스 인수가 결정되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보고의 말미에 김환이 추가적인 소식을 알려 준다.

유진은 바로 김환이 보내준 링크를 눌러 해당 보도를 찾아보았다.

[맥스웰 그리피스는 테슬라 출신 기술자가 솔트레이크시티에 창업한 전기차 업체로, 전기차 업계에서 주도적인 기술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등 유럽 연합 국가에서 2025년 이후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자동차 산업에 환경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의 개발 필요성이 높아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대양자동차는 밝혔습니다.

맥스웰 그리피스의 인수 가격은 약 2억 달러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대양자동차는 전환사채(CB)를 발행하여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로 했습니다.]

“생각보다 낮은 가격이로군.”

유진이 보도를 확인하는 동안 화면 저편에서 묵묵히 기다리던 김환에게 한마디 던졌다.

“3억 달러라면 아직 한 대의 전기차도 출시하지 못한 기업을 인수하는 비용으로는 지나치게 높은 게 아닌가요? 테슬라 출신이라고 해도, 초기 멤버도 아니고 그저 일반 기술자 한 명이 차린 회사에요. 테슬라 초창기 창업자들이 나와 창업한 Atieva의 기업 가치가 겨우 2억 달러라고요.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죠. 딱히 대단한 기술을 공개한 것도 아니고, 전부 페이퍼 플랜에 불과한데.”

“물론 그렇기는 한데, 앞으로 2, 3년만 있어도 전기자동차 업계의 가치가 지금보다 열 배는 오를 테니 말이야.”

“대양 측에서 자금이 급하게 필요한 게 아닐까요?”

대양이 맥스웰 그리피스를 인수하기 위해 지불하는 3억 달러 중 대부분은 맥스웰 그리피스의 투자자인 NT소머셋과 TBD 벤처를 거쳐 다시 유나이티드 엑셀런트와 DL캐피탈에 돌아갈 것이다.

이미 유진은 DL캐피탈이 대양 그룹 사주 일가의 해외 자금을 관리하는 사모펀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데이비드가 수완을 발휘해 유나이티드 엑셀런트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국 맥스웰 그리피스 인수는 대양 그룹 사주 일가의 비자금을 채워 주기 위한 한 편의 사기극이란 소리였다.

“흠······ 그럴 때가 된 건가?”

유진은 2016년 하반기에 대양 그룹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잘 알고 있다. 갑자기 자금이 필요한 일이라면 아마 그것뿐이다.

“우선 알았어. 추후에 지시를 내릴 테니, 우선은 대양 그룹의 행동에 주시하고 있으면 될 거야.”

“알겠습니다.”

화면이 꺼지고, 유진은 요안나를 찾았다.

“대양중공업 지분 현황이 어떻게 되지?”

“대양인터내셔널 8.6%, 대양상사 6.5%, 대양카드 5.2%, 대양화재 4.1%, 대양 그룹 사주 일가가 6.5%로 대양 그룹 보유분이 30.9%, 국민연금공단이 7.3%, 뱅가드 6.7%, 퍼스트 트러스트 5.6% 등 해외 자산운용사와 펀드가 39.4%이며 그중 우리 쪽이 여덟 곳을 통해 31.2%를 갖고 있어요.”

이해 들어 꾸준히 매수해 온 덕분에 유진의 지분은 이미 대양 그룹쪽 지분보다 훨씬 많았다.

그렇게 여러 곳으로 나눈 이유는 대양 그룹 측에 알려지지 않으려는 이유에서이다.

자본시장법의 주식 대량보유 보고제도 때문에 상장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하게 되거나 그 이후로 1% 이상의 지분 변동이 있을 경우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TRS(총주식스와프) 같은 장외파생상품을 이용하면 공시에 구애받지 않고 주식을 매집할 수 있다.

자산운용사나 사모펀드, 헤지펀드, 투자은행 등을 통해 기준 이하의 주식을 매수한 뒤에 필요한 시기가 오면 한 곳으로 블록딜을 통해 넘겨주면 상대가 알아차리기 전에 충분한 주식을 매집해 경영권 분쟁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파생상품은 설계에 따라 주식의 법리적 소유권리와 주식을 통해 얻는 이익의 주체를 분리할 수 있기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공시하지 않고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고는 한다.

유진만이 아니라 적지 않은 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정체를 감추고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에 원하는 곳으로 옮기거나, 위임장을 통해 권리를 행사한다.

“39.4% 중에 우리가 31.2%라면 대양에서 가지고 있는 숨겨진 지분은 거의 없다는 말이군.”

유진은 대양 그룹이 자신처럼 해외 투자기관을 통해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국인이 보유한 39.4% 중 유진의 지분이 31.2%라면 남는 것은 겨우 7%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적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외국인으로 가장해 보유 중이던 지분을 이미 팔아치웠다는 가정을 할 수 있다.

“공매도 상황은 어떻지?”

한 가지 확인을 더 해 본다.

“공매도 비중은 43%, 현재 대차잔고 비중이 32%입니다.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역시 그걸 준비하는 모양이네.”

대양중공업 주식 거래량 중에 공매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40%가 넘는다는 것은 시장이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총발행주식 중 소유자가 다른 기관에게 빌려준 양이 32%나 된다는 것은 공매도에 사용했다거나, 혹은 공매도를 위해 빌려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했다.

역시 주가 하락을 가리키는 지표이다.

“뭔가 악재를 터트려 주가를 하락시키려는 거겠죠?”

“어. 틀림없어.”

요안나와 함께 대양중공업에 대한 사항들을 파악하고 나니, 더욱 확실하다는 예감이 든다.

그날 오후, 유진은 한국의 김환에게 연락했다.

“조만간 대양중공업에서 실적을 발표할 거야.”

“조선업 시황이 최악이니 실적 발표가 있으면 주가가 많이 떨어지겠네요.”

“아마도. 우리 쪽 분석으로는 적어도 절반 이하로 떨어질 거야. 그러니까 현재가에서 40% 떨어지면 매수를 시작해.”

“알겠습니다.”

유진의 말대로 며칠이 지나지 않아 대양중공업이 실적을 발표했다.

[대양중공업이 올해 들어서만 조 단위의 대규모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대양중공업은 올 2분기에만 최대 3조 원에 달하는 영업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한다고 합니다. 또한, 그동안 실적에 반영하지 않은 적자 규모도 최소 2조 원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양중공업의 대규모 손실에는 금융 위기를 전후해 국내 조선업계에서 경쟁적으로 수주한 해양플랜트 사업이 큰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조선업의 추격 때문에 기존 저가 선박의 수주를 대신해 고가의 해양플랜트 수주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최근의 초저유가 사태로 해양플랜트를 주문한 업체들에서 주문한 선박의 인도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양중공업의 적자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알려지며 주가는 폭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예정대로 대양중공업은 그동안 숨겨 왔던 부실 규모를 터트리며 주가 하락을 유도했다.

조선업계의 적자는 유달리 대양중공업만 가진 문제는 아니다.

업계 1위인 다산중공업 또한 이해 초에 3조 원이 넘는 적자를 발표했고, 제일중공업도 적지 않은 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대양중공업의 경우 지난 분기에도, 또 그 전에도 반영하지 않았던 적자 2조 원을 터트리며 모두 무려 5조 원이 넘는 엄청난 적자를 한 번에 반영하는 것이라 시장에 주는 충격은 더욱 클 것이다.

실적 발표 다음 날 오전, 대양 그룹 회장 자택에는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인 9시가 넘어 노인과 자식들이 거실에 모여 있었다.

이날은 정례의 아침 식사 자리에도 노인은 오지 않고 아들 둘만 다른 식구들과 했다.

“어제 하한가까지 내려갔다고 했지?”

한동안 노환에 시달리다 최근 다시 기력을 회복한 대양 그룹 회장이 전보다 힘이 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네. 발표가 나고 잠깐 사이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장이 열리자마자 하락을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에 22,000원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번 일의 주도적 역할을 맡은 둘째 류근일이 대답했다.

예상했던 대로 5조 원에 달하는 적자 발표는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팔지 못해 안달인 수많은 주주들이 남아 있었다.

“지금 어느 정도나 갖고 있지?”

“30.9%입니다.”

“그래. 그동안 내다 판 건 어떻게 되고?”

“역외 펀드로 보유하던 12.2%는 이미 전부 매각했습니다. 공매도는 약 33.4% 정도입니다.”

유진이 파악한 대차잔고 중 상당 부분이 이들의 행사 때문이었다.

엄청난 양의 공매도이다. 보통이라면 이렇게까지 많은 양의 공매도가 시중에 나오지는 않는다.

너무 많은 양의 공매도를 쏟아부으면 뒷감당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양 그룹 사주 일가는 이미 사상 최대의 적자를 발표할 의도였기에 부담 없이 일을 저지를 수 있었다.

“모두 1조 9,000억 원을 회수했습니다.”

석 달에 가까운 시간 동안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도록 조절하며 천천히 팔아 왔다.

그럼에도 적지 않게 하락했지만, 작전대로 완벽하게 수행했기에 만족스러운 액수가 나왔다 자평하고 있었다.

사실은 이들이 매도한 주식을 거의 대부분 유진이 매수했기에 주가 하락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지만, 그 사실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 자식만 아니었다면 훨씬 더 좋은 가격으로 팔 수 있었는데 말이야.”

장남이 분통이 터진다는 듯 말했다.

“그 빌어먹을 놈만 아니었어도 4,000억은 더 받았을 겁니다.”

류근일도 비슷한 표정이다.

현재 대양중공업 시가 총액은 대략 4조 원 수준이다. 전고점이던 2011년에 비하면 1/3 가까이 떨어져 있는 상태.

류근일은 만일 유진과 얽히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2조 원 이상은 유지하고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목표가가 얼마라고? 2만 원쯤 했었나?”

노인이 다시 둘째에게 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얼마 전에 대양중공업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셋째 류근수는 보이지 않았다.

사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 지사로 유배를 떠난 것이다.

50이 넘는 나이에 그렇게 유배길에 오르는 것은 재벌 가문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다. 이 일은 대양 그룹이 여전히 노 회장의 손아귀에 꼼짝없이 잡혀 있음을 반증하는 사건이었다.

“1만 4,000원입니다. 아마 하한가를 세 번 정도 찍으면 바닥에 가까울 겁니다.”

류근일이 대답했다.

대양 그룹은 이번 발표로 주가가 적어도 60% 이상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럴 경우 2011년에 비해 1/10 수준까지 떨어지는 셈이다.

사실 이맘때 한국 조선업계의 Big 3로 불리는 다산중공업, 제일중공업, 대양중공업 중, 다산과 제일의 주가가 거의 그 정도였다.

그만큼 한국 조선업계는 지독한 위기에 놓여 있었다.

다만 제일과 다산은 이미 적자를 실적에 반영해 바닥을 치고 차츰 주가가 상승하는 추세였고, 대양은 지금까지 그걸 꾹꾹 눌러오다가 한 번에 터트려 바닥으로 추락하는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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