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00화 (100/363)

100화 공매도 박살

그날 저녁 주식 사이트 게시판 등지에서는 대양 그룹 사주 일가에게는 또다시 가슴이 철렁할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 대양중공업 공매도 물량 실화임?

- 나도 보고 있는데 지금 3천만 주가 조금 안 되게 공매도에 물려 있음. 전에는 3천만 주가 훨씬 넘었음.

- 공매도 있을 만하지 않음? 주가가 과열된 건 사실이잖아.

- 공매도가 최근에 한 게 아님. 적자 발표 전에 벌써 3천만 주가 넘었음. 그리고 적자 발표하고 하한가 칠 때도 그대로였음. 주가가 상승하고 나서는 오히려 줄어들었음.

- 물렸네. 개꼬소!

- 아주 X 돼 버렸네.

한국의 일반 투자자들의 공매도에 대한 적개심은 대단하다.

공매도 제도 자체가 일반인들은 접근도 어렵고, 기관과 외국인들은 쉽게 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 그럼 지금 매수 대기 물량이 2천만 주임?

- 2천 750만.

- 저거 그대로 두면 지옥 감. 크크크!

- 숏스퀴즈 오겠네!

- 숏스퀴즈가 머임?

- 공매도 종목의 가격이 상승해서 어쩔 수 없이 매수하고, 그 와중에 주가가 다시 상승하는 거.

- 주가가 떨어질 때까지 버틸걸?

-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음. 주가가 너무 오르면 증거금을 추가로 내야 하고, 그거 못 내면 강제 청산 들어감.

- 3천만 주면 손해도 어마어마하겠네.

- 지금은 모르지만 주가가 두 배로 오르면 손해가 3조 원임.

- 헉! 공매 청산 3조 원 실화냐?

- 숏스퀴즈 오면 주가 자동 상승. 2배에서 3배, 4배도 가능.

- 4배 가면 5조 원. 대양중공업 적자만큼이네.

- 공매도로 5조 원 손해 보는 거임? 졸라 신난다!

- 씨X 공매도하는 새X들 죽어 봐라! 나 절대 안 판다.

- 나도 숏스퀴즈 올 때까지 홀딩!

- 공매도 세력을 드디어 잡을 수 있겠네!

- 4배면 20만 원이 넘네?

- 20만? 개꿀! 20만 이하로는 죽어도 안 판다.

공매도 수량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험악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 영향인지 매수세는 늘어났고, 그렇지 않아도 드물던 매도량도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 그런데 공매도면 주식을 빌려서 하는 거 아님? 누가 그렇게 빌려줌? 3천만 주면 30%임.

- 예전에는 주식 없어도 우선 팔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안 됨. 그러니까 꼭 빌려와야 함.

- 그니까 그걸 누가 빌려줬냐고?

- 니가.

- 응? 뭔 소리임?

- 니가 증권사에서 대양중공업 사면 그 주식을 증권사에서 공매도 세력한테 빌려줌.

- 미쳤음? 내 주식을 공매도하라고 빌려줘서 주가를 떨군다고?

- 보통 그렇게 약정이 되어 있음. HTS 설치할 때 물어보는데, 보통 그냥 넘기니까 모름. 그니까 빌려주기 싫으면 대여 해지 신청을 해야 함.

- 씨X 미쳤나? 내 주식을 왜 맘대로 빌려 가고 그러는데?

-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증권으로 옮기는 방법도 있음.

- 나 지금 해지했음. 졸X 기분 나쁘네. 주식 대여 신청한 적도 없는데 체크가 되어 있음.

- 기분 나빠서라도 안 판다. X새X들.

몇 년 뒤에는 어지간하면 아는 일이지만, 아직은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 이 기회에 공매도 세력을 박살 내야 함!

- 공매도 박살!

- 20만 가쟈!

- 우리가 안 빌려주면 저놈들도 다 죽는다!

- 20만까지 안 팔면 손해가 5조!

- 10조 가자!

어느 사이엔가 일반 투자자들은 공매도 세력이라는 명백한 적을 상대하는 투사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도 공매도 세력이 입는 손해만큼 커다란 수익을 올릴 기회였다.

- 근데 주식이 있어야 사지. 아주 씨가 말랐네.

- 어제 들어갔어야 하나?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을 것 같은데?

- 아침에 장 열리자마자 들어간다.

이러한 논란들은 딱히 어느 한 게시판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상스럽게도 수많은 주식사이트나 주식 관련 커뮤니티, 심지어 일반적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 * *

SS파트너스가 대양중공업 주식 매입에 나선 지 사흘째, 대양중공업 두 형제는 이제 부친의 자택이 아닌 테헤란로의 대양 그룹 본사 빌딩에서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진콜이라고? 어떻게든 해 봐! 지금 거기 증거금 더 넣을 돈이 어디 있어! 제기랄!”

류근일은 종일 전화로 미국 쪽에 지시를 내리느라 바쁘다.

“삼환이야?”

“삼환하고 유일 둘 다 들어왔다네요. 오후 두 시까지 넣지 않으면 강제 청산을 하겠다는데, 미치겠네.”

“그러게 어제 전부 정리했으면 이 꼴은 안 났을 거 아냐?”

장남이 류근일을 타박한다.

“쓸데없는 소리 마요. 어젠 형도 나랑 같은 생각 아니었나?”

그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 류근일이 아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비서실장이 불편한 얼굴로 두 형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참, 미국 쪽 헤드가 시원치 않아서 그런가? 처리들이 엉망이야.”

“그러게 말이야. 한재덕이 그 양반이 일 처리 하나는 똑 떨어지게 잘했는데.”

형제는 지금 실무진에게 혼선을 주고 있는 것이 자신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미국 쪽 책임자만을 탓했다.

“오 실장. 한재덕 그 양반 지금 어디 있다고 했지?”

“조지아에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래? 조지아가 뉴욕에서 많이 먼가?”

“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현직을 떠난 지 오래라, 지금처럼 다급한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1년 전 프리스케일 사태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손해를 본 사주 일가는 그 사태의 책임을 물어 DL캐피탈의 책임자였던 리처드 한을 경질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국에서 대양의 비자금을 관리해 온 한재덕은 그렇게 한순간에 밀려나고 말았다.

“이제 1년밖에 안 됐는데. 하긴, 이 상황에서 갑자기 머리를 교체하는 것도 그러네. 알았어.”

장남도 비서실장의 말에 수긍했다.

“뭐? 에스아이지에서도? 또? 나머지도 전부 마진콜이라고? 으아! 씨바!”

쾅!

전화를 받던 류근일이 분을 참지 못하고 책상을 찼다.

이번에 모두 다섯 곳의 증권사를 통해 공매도를 던졌는데, 주가가 상승하며 증거금을 넘어서자 그 다섯 곳 모두에서 증거금을 추가로 요구하는 연락이 왔다.

시간 내로 증거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공매도 수량만큼을 시장가로 매입해서 강제 청산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손해가 얼마나 될 거 같아?”

“몰라. 지금 상태라면 감도 안 잡혀.”

청산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는다. 만일 증거금으로도 부족하다면 고스란히 부채로 남는다.

지금 상태로 보아 청산에 들어가면 주가가 다시 치솟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윤 비서. 어떻게 됐어? 세몰이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류근일이 자기 비서에게 소리치듯 물었다.

밤새 투자자들의 반응이 완전히 공매도에 대해 적대적으로 돌아선 것을 알기에, 그들도 무언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네. 지금 홍보팀과 하청 쪽에서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열심히가 중요해? 제대로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거 아냐?”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상사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비서는 이런 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최선을 다하는데 이 꼴이야? 어째 반응이 하나도 없잖아?”

“그만해라. 윤 비서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장남이 짐짓 말려본다.

“형 쪽은 어때요?”

“우리 쪽이라고 뭐 다르겠냐? 지금 무슨 말을 한들 약발이 먹히겠어?”

장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려 1조 원이 달린 작업이다. 때문에 모든 통로를 사용해 상황을 반전시켜 보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 스스로의 말처럼 좀처럼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

그날 온종일 두 형제는 대양증권이 아닌 다른 증권사를 통해 주문했던 공매도 처리로 골머리를 썩여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양증권을 통해 주문한 공매도의 양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대양증권 쪽은 마진콜 없이 사태가 끝날 때까지 지연시킬 수 있다.

지금의 주가는 틀림없이 이상 가격이니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하락할 테고, 그때가 되면 손해를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그러하듯, 형제들 또한 긍정적인 미래만 바라볼 뿐 당장 자신들의 눈앞에 닥친 깊은 수렁을 외면하고 있었다.

상황이 잘못 돌아가면 손절만이 답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는 손실 앞에서 흔쾌히 당장의 실패를 인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투자와 경영은 전혀 다른 종류의 재능이 필요하다.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뒤에 금융 투자로 그간의 노고를 한 번에 잃어버리는 사업가들이 적지 않은 것이 그런 이유에서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형제의 그릇된 판단을 일깨워 줄 회장도, 그나마 냉정하게 국면을 바라보던 셋째도 없다.

회장의 비서실장도 괜히 두 형제의 결정에 어깃장을 놓아 후한을 만들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대양 그룹 사주 일가는 한 발 한 발 끝을 모르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 * *

“오늘 공매도 물량이 꽤 줄었습니다.”

뉴욕 시각 새벽 3시 30분, 한국 증시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시간이 지났다.

장이 끝나고 난 뒤 요안나는 유진에게 필요할 자료들을 정리해 가져왔다.

“매일 야근이니 피로하겠어.”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도 내가 보스보다는 젊잖아요?”

요안나가 씩 웃으며 자료를 건네주었다.

“흠. 공매도가 430만 주나 줄었네.”

“아까 몇 번 급상승이 있던 게 그 때문인 모양이에요. 기어이 숏스퀴즈가 나왔군요.”

“남아 있는 공매도 물량이 2,340만 주라. 아직도 한참 남았군.”

“차라리 지금이라도 전부 청산하는 쪽이 나을 텐데요.”

“그게 마음처럼 쉬운가? 매도 물량이 이미 말라붙어 버렸는데. 상한가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그러네요. 미국이랑은 달랐죠. 여하튼 꽤 속이 쓰리겠어요.”

미국의 주식시장은 상한가가 없어서 하루에 100%가 넘게 상승하기도 한다.

만일 대양중공업이 미국 시장에서 공매도를 쳤다면 지금쯤 정말 재앙이 무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흔히 공매도는 수익은 한정적이고 손실은 무한하다고 한다. 특히 미국처럼 상한가가 없는 경우에 그런 일이 벌어지고는 한다.

하지만 상하한가가 있다면 손실이 수백%까지 가는 일을 보기는 쉽지 않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한국은 공매도가 유리하다는 것은 사실에 가깝다.

“아직은 아무것도 아니지.”

유진이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이 사태의 결말을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마냥 즐거울 수밖에 없다.

“무척 즐거워하시네요. 보스가 그렇게 진심으로 웃는 거 그리 보기 힘든데 말이에요.”

“내가 그랬나?”

“네. 브렉시트로 4,00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도 지금처럼 즐거워하시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때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랬던 거 아닐까?”

“글쎄요?”

요안나는 유진의 말을 믿는 표정이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녀의 말이 틀리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돈을 벌어들이는 것에서는 소비에서 느끼는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처럼 점점 쾌감의 크기가 줄어드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어차피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당연하게 거두어들인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지난 삶에서 자신과 가족을 절망으로 밀어 넣었던 자들에 대한 복수는 늘 할 때마다 새롭다.

“참! 배고프지 않아? 다들 배고플 텐데 뭘 좀 시킬까?”

아직 오피스에는 적지 않은 직원들이 남아 있다.

전 세계적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각자 맡은 시장이 다른 탓에 항상 누군가는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알아서들 잘 찾아 먹으니 신경 쓰실 거 없어요. 전화 한 통이면 플라자호텔에서 바로 가져다주는데요.”

세계 각지에 있는 오피스들은 모두 세계 제일의 복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곳 맨해튼 오피스는 더욱 그렇다. 월스트리트의 어느 투자기관에도 뒤지지 않는 급여와 성과급, 그리고 다양한 보너스와 편의를 제공한다.

유진이 알고 있는 미래의 지식을 직접적인 수익으로 창출해 주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퍼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필요한 것은 우선 주문하고, 결제 요청만 올리면 바로 처리가 된다.

일을 하다 피곤하면 집에 가는 대신, 바로 옆 건물인 플라자 호텔에서 투숙을 하면 그만이다. 전부 회사가 비용을 지불한다.

하지만 미국의 많은 첨단 기업들이 그러하듯 그만큼 직원들을 마구 굴리고 있다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집에 들어가기 싫을 만큼 피로하다면 최고급 호텔을 마음껏 사용하라는 의미이다.

“그럼 요안나도 아직 안 들어갈 생각인가?”

“들어가야죠. 같이 나가요. 보스 말을 들으니 살짝 출출하네요. 뭐라도 먹고 싶어요.”

“그럴까?”

유진은 요안나와 함께 거리로 나왔다. 새벽이라 인적이 드문 5번가를 따라 걷는 동안 앞뒤로 선 경호원들이 혹시라도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저걸로 하죠?”

요안나는 아직까지 들어가지 않고 있던 푸드 트럭을 가리켰다. 한창 인기 높은 할랄 음식이라 유진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각자 닭고기와 푸석푸석한 쌀밥을 담은 그릇 하나씩 받아들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그러다가 적당한 곳을 찾아 거리에 앉아 방금 산 음식을 먹기 시작한다.

“이 거리가 이렇게 조용한 것도 나쁘지 않네.”

뉴욕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지만, 새벽 4시를 넘어가니 아주 조용하다.

“그러네요. 이런 시간도 나쁘지 않아요.”

요안나가 웃으며 플라스틱 포크로 거의 부서져 있는 고기와 밥을 떠서 먹었다.

유진은 비키니를 입은 요안나의 모습과 지금 길거리에 앉아 할랄푸드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 지난 삶에서 미디어를 통해서나 보던 그녀의 차갑기만 하던 모습과 조금도 매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잠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 여자가 자신과 함께 일하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무슨 생각을 하고 그렇게 음흉하게 웃어요?”

“응? 비키니.”

유진은 저도 모르게 솔직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아! 비키니. 보기 좋았어요?”

“어. 굉장히.”

“그럼 또 놀러 가요. 언제.”

“그럴까?”

유진은 머릿속으로 언제 시간이 날지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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