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01화 (101/363)

101화 대차(貸借)

대양중공업이 사상 최악의 적자를 발표하고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주가는 실적과 반대로 하루가 다르게 올라 이제 13만 원을 넘나들고 있다.

사태가 시작되기 직전 4만 원대였으니 거의 세 배 가까이 오른 셈이다.

그동안 주식판은 난리가 났다. 매물은 없는데, 사려는 사람은 많다. 누구도 대양중공업이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보단 공매도 세력이 어떻게 말라죽는지 보고 싶어 했다.

- 개꿀! 일주일 전에 들어간 대양중공업 벌써 세 배 먹었음.

- 난 며칠 뒤에 들어가서 두 배임. 아깝.

-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아. 앞으로도 두세 배는 올라갈 듯함.

- 영차! 영차!

- 30만 가자!

- 30만이 뭐임? 백만도 가능함!

- 백만 가자! 영차! 영차!

세계 제일의 부자라는 강유진이 뭐라도 해 줄 것 같은 희망이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고 있었다.

- 웃기네. 5조 원 적자에 거의 자본잠식 상태인 기업 주가가 이게 뭐임?

- 망하려고 작정들을 했음. 적당히 빠져나오는 게 최고임.

- 나 같으면 이쯤에서 만족하고 빠져나온다.

물론 경고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 강유진이 작전 세력이랑 뭐가 다름.

- 강유진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피 보게 생겼네.

- 강유진이를 구속해야 함.

어떤 이유에서인지 유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 아니. 강유진이 무슨 죄?

- 잘못은 대양 그룹인데 왜 엉뚱하게 강유진을 구속해?

물론 비난의 목소리보다 그렇지 않은 쪽이 훨씬 더 많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의문을 제시한다.

- 그런데 이번 공매도는 엄청 이상한데? 물량이 너무 비정상적이야. 매매 비중의 30%가 아니고 총발행량의 30%나 되는 물량이 공매도가 나오는 일은 아주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지. 누군가가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큰 양을 칠 수 없어.

- 알고 있었다고? 적자 발표를?

-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양을 공매도하긴 어려워. 발행량의 30%를 팔고 나서, 그만큼 거둬들이는 게 사실 실패 확률이 너무 높거든. 확실한 악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몰라도. 근데 공매도를 때리고 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사상 최대의 적자를 발표했단 말이야.

- 틀림없네, 그럼. 그쪽이네.

- 와! 사실임? 진짜 5조 적자 발표 앞두고 30%나 공매도를 쳤음?

- 만약 강유진이 매수한다고 하지 않았으면 주가가 바닥을 쳤을 텐데, 그럼 적어도 1조 원을 벌 수 있었겠네?

- 미친 거 아님? 회사 내부 정보로 공매도를 때려서 1조 원?

- 역시 그 그룹답다.

- 전에 미국 반도체 회사 인수할 때도 몇십억인가 꿀꺽하려고 하지 않았어?

- 근데 증권관리 하는 데서는 왜 가만히 있음? 내부거래는 중죄 아닌가?

- 금융감독원임. 원래 거기는 하는 일 암 것도 없음.

몇명이서 서로 티키티카 하면서 분위기를 이끌면 곧 사람들의 이목이 모인다.

그렇게 대양 그룹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뒤에는 다시 새로운 의혹을 심어 준다.

- 진짜 문제는 주가가 몇 배나 올랐는데, 아직 팔지 않았다는 거임. 이 상태라면 적자가 3조 원은 되야 함.

- 3조 원? 맞네. 미쳤네.

- 어떻게 3조임?

- 지금 남은 공매도 물량이 2천 450만 주인데, 주가는 13만 원이야. 그럼 3조 2,500억 원어치 주식을 사서 갚아야 하거든. 그런데 팔 때는 1조 원쯤에 팔았을 거야. 차액이 2조 2,500억이야. 근데 2,500만 주를 사려면 다시 숏스퀴즈가 발생하고, 주가가 지금보다 꽤 오를 거야. 그니까 최소 3조 원은 손해를 보는 거지.

- 꼬시네.

- 그런데 문제는 여기까지 오면서 주식을 빌려준 곳에서 그냥 있겠냐는 거야. 보통은 리콜 요청을 해서 팔아 버리면 굉장히 큰 이익을 남길 수 있거든. 또 그렇지 않다 해도 증거금을 추가로 요구하는데, 아마 지금쯤 3조짜리 마진콜이 갔을 거야. 어딘지 모르지만 3조짜리 마진콜을 받고 바로 넣어 줄 곳이 있겠어?

- 대형은행인 모양이지?

- 대형투자은행은 그런 위험한 짓 안 해. 보통 헤지펀드에서나 하는 일이야. 그리고 이 정도 규모의 헤지펀드라면 뉴욕에서도 탑급인데, 굳이 한국에서 이런 짓을 한다고?

- 그럼 뭔데?

사람들의 궁금증과 관심이 치솟는 순간, 결정적인 한마디가 던져진다.

- 내 생각에는 뭔가 대X 그룹하고 관련이 있어. 특히 X양증권 쪽 말이야. 거기서 어쩌면 가짜 주식을 팔았을 수도 있어.

- 가짜 주식?

- 증권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주식을 생성해서 팔 수도 있어. 무차입공매도라고 한국에서는 금지된 건데, 몰래들 하는 모양이야.

- 그게 사기지! 무슨!

- 사기인데 사기가 아니야. 무차입공매도는 금지된 건 맞는데 또 처벌 규정은 없어.

- 뭐? 가짜 주식을 팔아도 처벌 규정이 없어? 졸라 웃기네.

- 한국이 그럼. 과태료만 물면 그만임.

- 그럼 주식 대여 신청을 거절해도 그냥 만들어 내면 그만? 실화임?

- 사실임. 나도 얼마 전에 암. 그냥 우선 팔고 보면 그만임. 과태료도 얼마 안 함. 한 2천만 원 내면 끝임.

- 미쳤나? 가짜 주식을 팔고 2천만 원이 말이 되나?

- 금감원은 뭐 하는데?

- 지금 신고하고 옴. 링크 첨부함. 다들 읽어 봐 주면 좋겠어.

이번 논란은 특정 주식거래 사이트에서 시작되었고, 거기서부터 다시 수많은 사이트와 커뮤니티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곧 SNS에서도 종일 찾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미 사람들은 대양증권이 무차입공매도를 했다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사람들의 분노는 점점 불꽃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주식 대량보유 보고 제도에 따라 SS파트너스는 대양중공업 주식 1,257만 주를 취득했음을 공시했다. 지분 취득의 목적으로는 경영참가라고 명시했다.]

그리고 공시에 대한 뉴스가 나가자, 잠시 주춤하던 주가가 다시 치솟는다. 이제 대양중공업 주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한편 SS파트너스 측은 작금의 대양중공업 주가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앞으로도 대양중공업 지분을 매수할 의사는 있지만, 현재처럼 비정상적으로 높은 가격으로는 매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며 과열된 주가 때문에 피해를 보는 투자자가 없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남겼다.]

기사에 첨부된 SS파트너스의 우려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제 강유진이라는 부자의 대양중공업 인수보다 대양증권의 무차입공매도에 대한 사실 여부가 훨씬 더 큰 관심사였다.

당장 대양증권을 통해 대양중공업 주식을 보유하던 사람들이 증권사를 옮기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대양중공업 주식이 없어도, 대양증권을 탈퇴하겠다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그리고 다른 증권사 또한 주식 대여가 없는 증권사로 이전하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목소리가 높은 것은 대양증권을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무차입공매도를 사기 주식, 혹은 위조 주식 발행이라 말하며, 주식시장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 * *

“난리가 났습니다.”

유진과 통화를 하고 있던 김환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온통 대양중공업 공매도 이야기로 떠들썩하더군.”

두 사람 모두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듯 말하고 있었다.

“조만간 금융감독원에서 실사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쪽도 어쩔 수 없겠네.”

“그렇죠. 이 사태가 더 커지면 정권에까지 타격이 갈 테니까요. 5조 원 대의 사기 행각이 사실로 밝혀지면 결국 그 칼날이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사실인지 여부야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당분간은 매수를 계속 유지하도록 해.”

대양중공업 인수를 위해서라면 지금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유진이 원하는 것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다.

* * *

“대체 일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냐?”

노인의 목소리는 날카로웠지만, 전처럼 기운이 차 있지는 않았다.

류 회장은 일주일 내내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고, 의사들의 처방으로도 기운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아흔을 넘어가는 나이이니 현대 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나 그럼에도 류 회장의 분노는 기운이 넘치던 시절에 비해 결코 못 하다 할 수 없었다.

“대체 언론사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지금 최대한 막아 보고 있는데, 몇몇 신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금감원장에게 전화가 왔다고?”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네. 오전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일까지 시간을 끌어 보겠다고 합니다. 그동안 어떻게든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예전 같지가 않아. 전 같으면 알아서 처리하고 인사를 해 왔을 텐데…….”

노인이 한탄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고 있어?”

“지금 그렇지 않아도 급하게 처리하는 중입니다.”

류근일이 대답했다.

“지금까지 뭘 하고 있던 게야? 일주일이나 시간이 있지 않았더냐?”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분노하는 것이 아니다. 일을 저지르고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망이다.

“그래. 현재 상황은?”

“아직 청산하지 못한 공매도 물량이 2,322만 주입니다. 예탁결제원과 다른 통로를 통해 1,062만 주를 대차해 놓은 상태이고, 나머지 1,260만 주가 문제입니다.”

“아직 해결 못 한 무차입공매도 수량이 절반을 넘는다고?”

“예탁결제원에도 나와 있는 물량이 말라 버렸습니다. 지난달까지 나와 있던 물량은 전부 가져왔고, 그 뒤로도 나올 때마다 전부 쓸어오고 있습니다만…….”

“그래서, 그 나머지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느냐?”

“여기저기 알아보는 중입니다. 국민연금 측에도 추가로 대여해 줄 수 있는지 물어보고는 있습니다.”

류근일이 열심히 변명을 늘어놓는데, 오경덕 비서실장이 말을 꺼냈다.

“조금 전에 국민연금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예탁원에 맡긴 물량 외에 남은 게 380만 주가 있는데, 그걸 전부 대여해 주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아마 눈치가 보이는 모양입니다. 여론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전부가 어려우면 얼마나?”

“절반 정도는 어떻게 해 보겠다고 합니다.”

“하아, 자네가 다시 한번 통화를 넣어 보게. 아니지. 허 의원에게 먼저 전화를 해 봐.”

회장은 여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

나중에 신세를 갚아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해결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이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그래. 나머지는?”

“다들 몸을 사리는 형편입니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여론으로부터······.”

“그걸 말이라고 해? 지금 다른 사람 사정을 보고 있을 때야? 어떻게든 채워 넣어야 할 거 아니야?”

노인이 호통을 쳤다.

“정 안되면 그룹 보유분이라도 채워 넣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보루가 그것이다.

“그건 어렵습니다. 대주주가 공매도에 주식을 빌려준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대차를 한다 해도 5일 안에 신고했어야 합니다. 배임 문제에 공시의무 회피 등 법적으로는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느새 다시 돌아온 비서실장이 끼어들었다.

“허 의원은?”

“지금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아마 몸을 사리는 모양입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 방법을 마련하겠습니다. 오늘 내로 꼭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 비서실장은 똑 떨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알았네. 여하튼 그룹 보유분으로 대치하기 힘들다는 말인데, 누가 그걸 모르나? 단지 편법이라도 써야지. 금융감독원하고 그걸로 해결을 볼 수 있다면, 당장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그걸 해결 방법으로 제시하겠습니다.”

결국은 오 비서실장에게 처리를 맡겨 버린 셈이었다.

그때였다. 류근일이 어디에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어디? 타이거X에서 120만 주? 텔슨앤코는 212만 주? 그래. 조건은? 알았어, 그렇게라도 해야지.”

그는 환해진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지난번 확보했던 곳에서 추가로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들었다. 조건은 어떻게 되느냐?”

“담보 150%에 대양증권이 보증을 서야 한답니다. 이율은 45%고요.”

“아주 지독한 놈들이네. 담보가 150%에 대양증권 보증까지?”

첫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 그거라도 빌려 와야지. 그럼 이제 얼마나 남았느냐?”

“국민연금에 남은 물량을 가져오고 조금만 더 구하면 됩니다.”

류근일이 기운을 차리고 대답했다.

“그래. 한시름 놓았구나. 그나마 하늘이 돕는지도 모르겠구나.”

류 회장은 여전히 기운 없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두 아들은 부친이 처음으로 하늘을 언급했다는 사실에 흠칫했다. 자식들이 알기로는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확실히 기력만 떨어진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약해진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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