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02화 (102/363)

102화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은 오늘 대양중공업 주식 공매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대양증권은 지난 5월경부터 외국인 고객들의 주문을 받아 지난주까지 모두 2,657만 주에 달하는 대양중공업 주식을 공매도해 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실사에 따르면 이중 약 375만 주가 실제하지 않는 주식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른바 무차입공매도라는 것인데요. 한국의 자본시장법에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다음날 오후, 대양증권 사태에 대한 뉴스가 전해졌다.

전날 대양 그룹에서는 종일 여기저기에서 주식을 빌려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고, 다행히 외국계 투자기관에서 아주 높은 이자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적지 않은 양을 빌릴 수 있었다.

믿고 있던 국민연금으로부터는 겨우 200여만 주만 빌려왔을 뿐이다. 결국 375만 주는 메꾸지 못했고, 실사를 집행한 금융감독원도 시간을 주고도 해결하지 못한 부분을 어떻게 할 도리는 없었다.

그나마 무차입공매도 수량의 85% 가까이를 줄일 수 있었기에 대양 그룹은 한시름 놓고 있었다.

[현재 가격으로 무려 6,000억 원에 달하는 주식이 존재하지 않으면서 주식시장에서 유통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에 대해서 금융감독원은 과태료 부가 이외에는 달리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무차입공매도에 대한 처벌 규정은 최대 9,000만 원의 과태료가 전부라고 합니다.]

하지만 뉴스 보도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에 시민들은 주식시장을 교란시키는 행위에 대해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겠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주장인데요. 이태형 기자,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네. 미국의 경우는 무차입공매도에 대해 최대 20년 이하의 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영업 정지를 포함한 행정 처분과 1억 유로까지의 벌금을, 그리고 영국의 경우는 벌금의 상한이 없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한국의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주장은 사실입니다.]

단호한 기자의 말에 앵커가 다시 말을 받는다.

[그렇다면 금융당국과 입법부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높은 것도 이해가 가는군요. 더군다나 무차입공매도를 저지르는 주체의 대부분이 외국인이라는 점이 더욱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한 시민들은 자본시장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면 다른 법률로라도 이러한 행위에 대해 엄벌을 내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적용할 수 있는 다른 법률은 없나요?]

[네. 자본시장법 말고 다른 법률이라면 상법상 규정된 초과발행죄의 적용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초과발행죄는 발행할 주식의 총수를 초과하여 주식을 발행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5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주체가 회사의 발기인, 이사, 집행 임원 또는 직무대행자로 제한됩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대양증권이나 공매도 주문을 내린 외국인 모두 해당 사항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도 9,000만 원의 과태료로 끝이라는 말인가요?]

[네. 외국인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양증권의 경우 허가 취소까지도 가능하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뉴스는 꽤 긴 시간을 할애하여 이번 사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대양증권은 외국인들이 별도의 수탁계좌에 보관 중인 주식을 처분한 것이기에 무차입공매도인지 차입공매도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하는데요. 사실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증권사는 주식 매도 전에 차입공매도 여부를 확실하게 확인할 방법이 있습니다. 만일 정말 확인도 하지 않았다면 확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고, 아니면 처음부터 모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명백하게 대양증권에 커다란 잘못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대형 공매도를 주문한 외국인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과연 그런 엄청난 규모의 공매도를 주문한 것이 진짜 외국인인지, 아니면 대양중공업에 관련된 사람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대양중공업과 대양증권 측은 모두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대답을 주었습니다.]

보도 내용은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사실 외국인 투자자의 정체를 확인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아직 제대로 된 입법도 되어 있지 않고요. 괜히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오늘 공매도 세력에 본때를 보여 주기 위해 대양중공업 주가를 끌어올리자는 선동을 하는 행위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특정 주식에 대하여 잘못된 소문을 유포하거나 거짓의 계책을 유포하는 행위로 심각한 범법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며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시세조종 행위는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뉴스를 본 사람들은 그런 짓을 하고도 겨우 과태료로 끝난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리고 뉴스의 말미에 전해진 선동행위에 대한 경고에는 더욱 크게 분노했다.

- 대체 말이 됨? 위조 증권은 과태료고, 공매도 세력 척결하자고 하면 징역이라니 그게 어느 나라 법임?

- 웃기는 소리임. 그럼 그냥 개미들은 외국인과 기관이 흔드는 대로 따라 움직이다가 그냥 죽으라는 말임?

- 더러워서 씨X! 난 죽어도 안 판다. 선동 아님. 그냥 안 팜!

- 나도 안 팔아. 더럽다 정말.

금융감독원의 마지막 경고가 오히려 투자자들을 훨씬 더 크게 자극했다.

- 대양 그룹이랑 금감원이랑 한패라 이거지?

- 틀림없지. 뭔가 받아먹은 게 있지 않고서야 그럴 리 있어?

- 안 팔아. 먹고 죽는 한이 있어도 안 팔아. 선동 아님.

- 대양중공업 주식 인증한다. 절대 안 팔거야! 선동 아님.

그렇지 않아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다음날 장이 열리자마자 바로 주가가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세력과 외국인에게 당해 왔다고 느끼던 일반인 투자자들의 분노가 모인 덕분이었다.

- 선동 아님. 오늘 대양중공업 풀매수했음.

- 선동 아님. 대양증권이 망하던지, 내가 망하던지 둘 중 하나임.

- 선동 아님. 40만까지 죽어도 안 판다.

- 선동 아님. 난 50만.

어째서인지 선동 아니라는 말이 밈이 되어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도가 씨가 마른 상태에서, 새롭게 끼어드는 투자자들이 늘어나니 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날 오전이 지나기 전에 대양중공업 주가는 벌써 상한가에 다다랐다.

그리고 때를 놓치지 않고 야당에서는 금융감독원장을 해임하라는 요구를 내놓았다.

* * *

그날 오후, 청와대의 경제수석비서관실에서도 한바탕 난리가 나고 있었다.

“대체 그 양반은 그런 소리를 왜 한 거야?”

“알아보니 대양 그룹으로부터 뭔가 언질을 받은 모양입니다.”

“나참. 미친 거 아냐?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 양반 때문에 난리가 났잖아?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시기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지금 VIP가 얼마나 노하셨는지 알아?”

“그렇지 않아도 금감원 내부에서도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도 될 걸, 괜한 말로 화살이 금감원에 넘어왔다고요.”

“아무래도 안 되겠어. 후임을 한 번 알아봐.”

“알겠습니다.”

“이번엔 그 양반처럼 대기업에 연줄 대는 사람 말고 좀 깨끗한 사람으로 찾아 보고.”

“예.”

같은 시간, 야당 당사에서도 당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이번 사태를 어떻게 이용할지 논의가 오가고 있었다.

“금감원장이 제대로 똥 볼을 찼어요.”

“그러니까 말이죠. 이번 기회는 절대 그냥 놓치면 안 돼요.”

“내일 재민일보랑 인터뷰가 있습니다.”

“아니. 김 의원은 발도 빠르셔요. 재민이면 다산도 이번에 한 발 걸치겠다는 말이지요?”

“그런 모양입니다. 제대로 한마디 하고 오겠습니다.”

“자, 자. 다들 너무 개인플레이는 하시지 마시고요. 우선 전략을 잘 짜야 합니다.”

다소 과열된 분위기에 자중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야당으로서는 절대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기회였다.

“전략이랄 게 뭐 있어요? 대양 그룹을 아주 잘근잘근 씹어야죠. 그리고 금감원장, 다음이 대통령 아닙니까?”

“또 어디 인터뷰 약속 있는 분 있어요? 혼자 알아서 하지 말고, 우선 말부터 맞춥시다.”

“제가 서강일보랑 인터뷰가 있습니다.”

“오! 서강이면 제일 그룹도 관심이 있다는 거로군요.”

“다산에 제일이라. 아무리 대양이라고 해도 이번엔 힘들겠네요.”

“그렇죠. 그렇지 않아도 그 노인네 기력이 떨어지는 모양인데, 제일하고 다산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모양입니다.”

“그보다 다산과 제일이 이번 사태를 기획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 제기한 의혹에 야당 의원들의 관심이 쏠린다.

“기획이라? 어째서요?”

“다산과 강유진이라는 사람이 꽤 밀접한 관계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다산이 강유진을 사주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반대라면 몰라도 그건 좀 그런데요?”

“아무리 강유진이 지금 잘 나가도 전통의 다산을 사주하는 게 말이 됩니까?”

“자자. 우리 산으로 가지 말고 좀 제대로 합시다. 그러니까 강유진 그자와 다산이 관련이 있고, 제일도 거기 끼어들었다는 말이지요? 혹시 누구 강유진이랑 연락되는 사람 있어요?”

그러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없나 본데요?”

“하, 참. 어떻게 한 명도 없을 수가 있나? 그 강유진이는 한국 사람 아니래요?”

“사실 거의 미국인으로 봐야죠.”

“한국에서 일을 그렇게 벌여 놓고 나 몰라라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제가 한 번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나마 제 쪽에서 연줄이 있을 듯합니다.”

한 의원이 고민 끝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

“오! 강 의원. 그래, 같은 강 씨니 뭔가 통하는 게 있겠네.”

“알아보니 얼추 12촌 정도 되는 모양입니다. 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 여하튼 그걸로라도 들이밀어 보죠.”

“하하. 그래요, 뭐든 연관 지을 건수만 있으면 말은 띄워 볼 수 있죠.”

대양중공업 사태로 여기저기에서 희비가 갈리고 있었다. 물론 가장 즐거운 사람들은 대양중공업 주식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SS파트너스가 1,267만 주, 기타 투자기관 쪽으로 확보한 물량이 4,306만 주입니다. 대양중공업 총주식 발행량의 53%를 조금 넘습니다. 오늘 마감 가격은 21만 8,100원입니다.”

그날 장이 끝나고 난 후, 요안나가 상황을 보고했다.

5조 원대의 적자가 발표되던 날 한국에서 SS파트너스가 공개적으로 매수하는 동안, 요안나도 해외 다른 투자기관을 통해 1,000만 주가량을 매수했다. 그렇게 낙폭이 큰데 거둬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유진은 완전히 대양중공업을 빼앗을 수 있는 충분한 주식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로 유진이 이렇게 많은 양을 긁어모은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가 있다. 대양중공업 주식 중에서 유진이 53%, 대양 그룹 측이 30.9%을 가지고 있으면 시중에 풀린 주식은 20%도 되지 않는다.

거기서 국민연금공단의 보유분 6% 정도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겨우 10% 정도의 물량만이 풀려 있는 것이다.

대양 그룹 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라도 섣불리 보유 주식을 매각할 수 없고, 국민연금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대양중공업의 주가를 좌우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유진 자신이 된 것이다.

대양중공업이 무차입공매도로 만들어서 시중에 매각한 주식이 유통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하지만, 그래도 대양 그룹 측에서 공매도를 해결해야 하는 물량 역시 그만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키는 유진에게 있다.

“현재 주가로 계산하면 총액 10조 원이 넘는군요.”

요안나가 웃으며 보고를 마쳤다. 물론 10조 원이라는 액수는 실제 현금화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다. 지금은 매도 물량이 없어 20만 원까지 올랐지만,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아주 끔찍할 만큼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수고 많았어. 앞으로가 더 중요한 거 알지?”

“물론이죠. 준비는 다 됐습니다.”

사태는 유진이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금감원장의 발언으로 오히려 예상보다도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되어 가고 있다.

사람들의 분노를 이끌어 내는 데엔 무차입공매도 보다 금감원장의 한마디가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정말 그런 말을 하면 감옥에 가야 하나요?”

요안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물론 아니지. 공매도 세력을 혼내 주자고 말을 하면 감옥에 보낸다는 게…….”

말을 하던 유진은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어쩐지 정말 그러고도 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미국하고는 다르니까. 바른말을 했다고 감옥에 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하지.”

“그렇군요. 그러면 한국에 가서는 말을 조심해야겠어요.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으니까요.”

“어디서는 말은 조심하는 편이 좋지.”

당장 이날도 한 사람이 입을 놀려 아주 톡톡히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았다.

금감원장이 경질되는 것은 이제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비록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청와대와 여당으로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그쪽까지 넘어올까 봐 벌써 걱정이 가득했다.

유진은 잘 모르고 있지만, 이번 일만 아니었다면 금감원장을 거쳐 국회에 진출해 결국 정계에서도 한자리 차지하게 될 사람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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