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04화 (104/363)

104화 자객

- 와! 뭐냐? 갑자기 솟구친다!

- 상한! 상한! 오! 상한가!

그날 오후, 갑자기 나타난 매수세가 위쪽에 걸려 있던 매도 물량을 전부 잡아먹으며 가열차게 솟구쳤다. 하지만 이미 주가가 50만 원을 훌쩍 넘어서인지 상한가까지 오르지는 못한다.

- 아! 아쉽네. 상한가!

- 내일은 상한가 가나요?

- 그래도 60만 원 고지가 눈앞임.

- 내일은 70만!

갑작스러운 리콜 요청에 대양 그룹 사주 일가의 비자금 관리를 맡고 있던 미국의 사모펀드에서 어쩔 수 없이 대량의 매수 주문을 넣어야 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음날 적지 않은 매도 물량이 나와 간신히 요구받은 물량을 채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6,000억 원이라니…….”

“빌어먹을!”

주식을 매수하는 동안 대양의 두 형제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주가가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무리 대기업 사장이라 해도 6,000억의 손실은 속이 쓰릴 정도의 손실이다.

더군다나 문제는 아직 사태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물량이 어떻게 돼?”

“1,800만 주가 넘어요.”

류근일이 생각만으로도 짜증이 난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미치겠네. 그럼 손해가 얼마야?”

“모르죠. 이 지랄이 얼마나 계속될지…….”

개미들이 주식을 들고 놓아 줄 생각을 하지 않으니, 주가가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두 형제는 쓰려 오는 속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바닥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무저갱으로 빠져들고 있는 기분이다.

장이 끝날 무렵, 다행히 매도 물량이 나와 60만 원 아래로 조금 내려갔다. 두 형제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이 사상 초유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저, 사장님.”

그때, 전자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가?”

“리콜입니다.”

“또? 얼마나 되는데?”

“83만 주입니다.”

“으윽!”

류근일이 뒷골을 잡으며 주저앉았다.

“이런 개자식들!”

장남이 테이블을 엎어 버렸다. 도저히 몰려오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더러운 자식들! 아주 잡아먹으려 드는구나!”

물론 두 형제는 이 모든 사태의 시발이 자신들이 손쉽게 거액을 챙기기 위해서였다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제길…… 10만 원에서 정리를 했어야 하나?”

기어이 그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손해가 커져 가면 늘 그렇게 조금만 일찍 손절할 걸 하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손절이란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주식이든 파생이든 한 번 제대로 물린 사람들은 대부분 제때 손절하지 못하고 점점 늘어나는 손해에 매몰되어 가기 마련이다.

늘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조금만 있으면 반전이 올 거야…… 하는 생각으로 인내하고 또 인내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절망은 점점 더 커지고, 손해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지금까지의 손해가 아까워서라도 포기하지 못한다.

당장이라도 시장의 흐름이 바뀔 것만 같지만, 결국 흐름이 바뀌기 전에 이미 피해는 회복 불능의 상태까지 흘러가 버리고 만다.

그렇게 결국은 판돈을 전부 날리고 나서야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손절의 고수가 진정한 고수라는 말이 나도는 것이었다.

“20만까지 갔을 때라도 포기해야 했어.”

늘 그렇게 후회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 시점에서 포기한다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

아무리 대단한 기업가라 해도, 이렇게 투기에 한 번 물려 버리면 비슷한 상황에 빠지는 모양이다.

사실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일은 월가에서 굉장한 수익률로 큰 명성을 얻은 전설적인 투자자들 또한 언젠가는 비슷한 상황에서 잘못된 판단을 이어 가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일이 흔하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영란은행을 공략해 전설적인 파운드화 공매도 사태를 일으켜 영국이라는 나라를 굴복시킨 퀀텀 펀드의 드러켄밀러도 몇 년 뒤 롱텀 캐피탈 사태와 닷컴 버블에서 무시무시한 손실을 입으며 헤지펀드 업계를 떠났고, 같은 회사의 조지 소로스 또한 그 뒤로 안정적인 투자를 유지하다가 다시 지난해에 유진이 거액을 벌어들였던 중국 증시 폭락 사태에서 엄청난 손실을 보고 말았다.

그 전으로 돌아가면, 공매도의 전설적인 인물인 제시 리버모어 또한 공매도로 엄청난 거부가 되었다가, 공매도로 파산을 하고, 결국은 권총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주식이든 파생이든 결국은 늘 실패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도박이다.

하지만 이 두 형제는 가족이 운영하는 기업의 내부 정보를 알고 또 그걸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던 만큼 추호의 위험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상정하지 못했고, 마냥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두 형제를 바라보고 있는 회장의 비서실장은 애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엑시트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10만 원이 넘을 때부터 해 오고 있었다.

사실 그 자신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미국 쪽에서 수도 없이 건의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두 형제는 아직까지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런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손절을 하기 위해 들어갈 손해만으로도 이미 천문학적이다.

더군다나 이 위태로운 균형이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언제든 주가가 무섭게 하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더욱 그러하다.

특히나 상대가 응집력 따위는 조금도 찾기 어려운 개인투자자들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조금만 건드려 주면 지금이라도 엄마야 하고 주식을 내던질 놈들이 바로 개미들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각종 주식 사이트를 위주로 다양한 소문을 유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지 좀처럼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최악의 사태는 바로 지금이야.”

류근일이 말했다.

“4만 원짜리가 60만 원이 됐어. 그걸로 충분히 최악이야. 그러니까…… 오히려 지금이 기회인지도 몰라.”

“기회라뇨? 설마?”

비서실장은 둘째의 입에서 나올 말이 두려워 다시 물어본다.

“여기서 숏을 치면 얼마나 수익이 날까?”

그리고 여지없이 그의 입에서는 비서실장이 두려워하던 말이 튀어나왔다.

“맞는 말이야. 60만 원에 팔고, 4만 원에 사들일 수 있다면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겠어.”

손해가 누적되면 누구나 생각할 만한 물타기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공매도를 위한 물량이 전혀 없습니다.”

비서실장은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으로 두 형제를 필사적으로 말리려 들었다. 세계적인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큰 액수가 걸리니 이성을 잃고 있었다.

“나도 알아. 그냥 그렇다는 거지.”

“아쉽단 말이야.”

* * *

“오늘은 5억 달러 수익입니다.”

요안나가 보고했다.

ABTL에서 리콜 요청을 보내면 대양 그룹 사주 일가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펀드에서 매수를 시작하고, 요안나가 다른 펀드를 통해 사 두었던 매물을 풀어 준다.

그러면 이틀 안으로 공매도를 친 어딘가의 펀드에서 빌려 간 주식을 돌려준다.

그렇게 유진이 빌려주고, 유진이 팔고, 유진이 돌려받는 사이에 돈이 쌓인다.

대양 그룹 측에서는 아직 감도 잡지 못하겠지만, 그들이 공매도를 하기 위해 빌린 주식의 대부분은 유진에게서 나간 것이다.

공매도 사태가 터지기 전 예탁결제원에 나와 있던 물량의 대부분도 그랬고, 사태가 터진 이후 외국계 사모펀드에게 빌려왔다고 안심하던 물량 대부분도 그러했다.

그러니 주가를 올리고 내리는 것이 유진 마음대로인 것처럼, 리콜을 요청하는 것도 유진의 마음 먹기에 달려 있었다.

“텔슨앤코에서 83만 주, H&K에서 56만 주의 리콜 요청을 했습니다. 아마 내일 수익은 더 좋을 거예요.”

“그래도 긴장은 풀지 마.”

“물론이죠. 마지막까지 아주 톡톡히 쥐어짜야 하니까 말이에요.”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신이 났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양 그룹을 쥐어짜, 그들이 감추어 놓은 해외 비자금을 빼앗아 올 수 있는 기회이다.

사실 대양중공업을 손에 넣는 것은 그리 급한 일도, 또 중요한 일도 아니다.

대양 그룹 사주 일가에게 엄청난 해외 비자금이 있으면, 그룹을 전부 빼앗겨도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IMF 때에도 그랬다. 수많은 대기업이 도산했지만, 결국 피해를 본 것은 임직원들과 일반 국민들 뿐이었다.

파산한 대기업 사주 일가는 어디엔가 숨겨 두었던 자금으로 다시 펀드나 자산운용사 따위의 껍질을 쓰고 다시 부유한 삶을 이어 가고 있다.

대양처럼 거대 기업의 사주라면 그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 없다.

그건 유진이 원하는 결말은 아니다.

대양 그룹에게 원한을 가진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대양 그룹의 사주 일가에게 볼일이 있는 것뿐이다.

며칠 동안 요안나는 매일 조금씩 리콜 요청을 했다. 그러면 매도가 나오고, 가지고 있던 물량을 풀어 주가를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며 회수한다.

지금쯤 상대방은 피가 마르는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상대도 어쩔 수 없다. 한번 빌려 간 주식은 반환 요청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돌려줘야만 한다.

만일 주식을 매수해 돌려주지 않는다면, 중계 기관에서 증거금을 이용해 주식을 매수하고, 모자라는 금액은 다시 청구한다.

때때로 나오고는 하는 공매도로 인한 파산이 이런 함정에 걸려 벌어지는 것이다.

요안나는 아주 적절한 수준으로 주가를 유지하며 공매도 세력을 괴롭혔다.

그동안 공매도를 한 곳의 재정 상황을 알아보고, 상대가 낼 수 있는 액수를 파악하기 위해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

공매도를 유지하는 것보다, 대양 그룹 사주 일가의 해외 펀드의 규모를 알아내는 것에 훨씬 더 큰 노력과 비용이 필요했을 정도이다.

- 숏스퀴즈다!

- 오오! 드디어 시작인가?

- 오늘도 상한가 가나요?

- 상한가는 힘들겠는데? 누가 조금씩 풀어 주는데?

- 그래도 많은 양은 아닌데?

- 엑시트 기회인가?

- 아직 공매도 물량 남은 게 천만 주가 훨씬 넘어. 기다리면 더 오른다.

- 영차!

- 영차!

투자자들은 날마다 신이 난다. 주가가 올라 좋고, 공매도 세력이 피눈물을 흘리니 더욱 좋다.

그 와중에 수익을 실현하는 다른 투자자들도 있다. 만일 매도 물량이 너무 많아지면, 요안나는 매도 수량을 조절했다.

자칫 매수와 매도 사이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과잉으로 올라 있는 주가가 폭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익이 적어지더라도, 최대한 가격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한다.

다행히 다른 투자자들도 아직 공매도 세력의 물량이 충분히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쉽사리 물량을 던지지는 않았다.

“양쪽 다 비슷해요. 모두들 각자의 욕심에 충실한 모양이에요.”

“그렇지. 욕심이 없다면, 이렇게 위험한 투자에 몰려들지 않았을 테니.”

기존에 대양중공업 주식을 보유하던 사람들과 공매도 사태 이후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뛰어든 사람들은 전혀 다른 부류이다.

어떻게든 한탕을 해 보려고 과열된 것을 알면서도 부나방처럼 뛰어들었고, 그들 덕분에 주가가 더 올랐다.

“언제고 결국은 떨어질 걸 알면서도 저렇게 계속 들어오는 걸 보면 참 안타깝네요.”

전혀 안타깝지 않은 표정으로 요안나가 말했다.

어차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뛰어든 자들이다. 이 사태가 끝나면 주가가 얼마나 떨어질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굳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계산을 해 보니 대양에서 리콜을 해소하려 사 가는 수량의 20% 정도는 신규 매입이에요. 그중 상당수는 아마 대양에서 자체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그런 것 같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신규 투자자가 있는 것 같아요.”

사태에 대한 분석 능력은 유진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날 터이니, 유진은 그다지 의구심을 갖지는 않는다.

“뭐. 알아서들 하겠지. 결말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유진은 SS 파트너스를 통해 대양중공업 주가가 필요 이상으로 과열되서 지금은 매수할 생각이 없다는 시그널을 몇 번이나 주었다.

그러니 그들의 운명에 대해서 책임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못한다.

“오늘은 6억 3천만 달러의 수입이에요.”

다음날은 주가가 오른 만큼 수익도 늘었다.

그리고 유진이 본 이익보다 훨씬 더 큰 액수가 대양 그룹 사주 일가의 손해로 돌아갔을 것이다.

유진이 본 이익과 대양이 입은 피해액의 차액은 부나방처럼 뛰어들었던 누군가의 이익이 되었으리라.

가장 현명한 것은 대양중공업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들고 있다가 지금쯤 팔아 버린 소수일 것이다.

아마도 개인보다는 기관이나 외인이 그런 수익을 볼 가능성이 크다.

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대양 그룹 사주 일가의 숨겨진 비자금을 빼앗아 왔다.

“지금까지 53억 달러를 회수했습니다.”

무려 6조 원에 달하는 금액을 회수했다. 공매도를 친 세력에게는 피눈물이 흐르다 못해 기절할 만한 사태일 것이다.

“지금쯤 조금만 일찍 손절할 걸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군요.”

안 봐도 뻔한 일이다.

“뭐. 지금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말이야.”

유진도 요안나의 말에 동의하며 즐거움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유진이 풀어 둔 자객의 활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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