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07화 (107/363)

107화 거인의 몰락

폴리티칼 인사이드라는 잡지에 실린 기사는 유진도 잘 알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이 IS에 무기를 판매했음이 확인되었다. 위키리크스는 지난 월요일 힐러리 클린턴이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재임하던 당시 시리아에 주둔 중이던 IS의 무장봉기를 위해 무기를 판매했다는 사실이 민주당 인사들의 이메일을 통해 밝혀졌다고 폭로했다.]

뉴스의 근거는 그다지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위키리크스에서 이메일을 입수했다는 증거도, 이메일의 실제 내용도 알려진 것은 없다. 하지만 이 기사는 불이 타오르듯 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도널드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로군요.”

유진은 가볍게 대답하며 자신과의 연관성을 애매하게 부인했다.

사실 유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다. 그저 터질 것이 터져 나왔을 뿐이다.

“자네가 관련이 없다면 그런 줄 알고 있겠네. 하하하.”

트럼프는 아주 유쾌하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이번 기사와 유진이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사실 조금 의아한 것은 유진이었다. 힐러리를 향한 악의적인 기사가 나올 것을 알고 있던 유진은 아마도 트럼프 캠프에서 이러한 기사를 내보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사가 나올 무렵 트럼프에게 슬쩍 언급해서 그가 힌트로 삼거나, 혹은 이미 그러한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해도 유진의 선견지명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한데 조금 전 목소리를 들어 보니 트럼프 캠프에서는 완전히 유진의 작전쯤으로 간주하는 모양이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쪽에서 그렇게 생각한다 해서 나쁠 것은 없다.

사실 생각해 보면 꼭 그 기사가 트럼프 캠프에서 의도적으로 낸 것이 아니라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기사를 올린 폴리티칼 인사이더라는 곳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이라 보는 것이 어쩌면 더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가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는 하지만, 트럼프 캠프 관계자들이 가짜 뉴스를 사주했을 때의 후폭풍을 생각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테니까.

이 뉴스 같지도 않은 뉴스를 보도한 곳은 언론 매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주로 민주당에 대한 흑색선전을 보도하는 극우 매체이다.

올리는 글들은 대개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억지 주장뿐이고, 그 때문에 항상 이런저런 논란에 휩싸여 있기도 하다.

사실 비단 폴리티칼 인사이더뿐 아니라 미국에는 수도 없이 많은 가짜 뉴스 제작사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이런 가짜 뉴스 배포자들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미국의 근간이 되는 헌법 중 수정헌법 1조에 따라 미국의 의회는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미국은 서구 사회를 놓고 보아도 놀라울 만큼 발언의 자유를 엄격하게 지키는 나라이다.

시민들이 국가 권력으로부터 부당한 억압을 받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제정된 헌법이 가짜 뉴스 생산자들이 마구 날뛰게 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이기는 하지만, 미국인들에게 말할 자유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나치 찬양이나,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모욕하는 일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

이런 가짜 뉴스 생산자들이 가장 날뛰는 것은 역시 선거 때이다.

보통 때보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열기에 사람들은 알아서 이런 가짜 뉴스를 찾아 읽는다.

폴리티칼 인사이더 같은 매체가 이러한 가짜 뉴스를 마구 양산하는 요인은 물론 정치적인 목적도 있지만, 경제적 이유가 훨씬 더 크다.

트럼프에게 도움이 되고, 클린턴을 비방할 수 있는 기사들은 수요가 아주 높다. 많은 사람이 기사를 보면 광고 수입이 높아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더군다나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성향과 일치하는 기사에 대해서는 어떠한 근거도 따지지 않는 경향이 훨씬 더 높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의 상대인 클린턴을 비난하는 기사들이 우후죽순으로 터져 나오기 좋은 토양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번 기사처럼 그다지 믿을 만한 근거가 없어도 트럼프에게 도움이 된다면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무지성으로 기사를 퍼 나르기 시작한다.

힐러리 클린턴이 IS에 무기를 공급했다는 기사는 당연히 거짓말이다. 적어도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자극적인 기사는 쉴 새 없이 퍼져 나가고 있고, 힐러리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안길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다시 재러드 쿠슈너에게서 연락이 왔다.

쿠슈너는 잠시 이런저런 인사치레를 하다가 용건을 꺼냈다.

“666번지의 리노베이션에 대해 조금 진전이 있나요?”

부동산 재벌로 알려진 쿠슈너는 장인인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건물의 가치에 거의 필적하는 부채로 이루어진 일련의 부동산들을 소유하고 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부채를 전부 청산하고 나면, 실제로 손에 쥐게 되는 돈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쿠슈너에게 가장 큰 자산은 역시 장인인 트럼프 소유의 트럼프 타워 바로 맞은편에 있는 5번가 666번지의 빌딩일 것이다.

부동산 거품의 시기에 시가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으로 구매한 이 빚덩어리 건물의 리노베이션에 쿠슈너의 모든 꿈이 달려 있다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장인이 대통령이 된 뒤, 쿠슈너는 아주 많은 사람으로부터 이 빌딩의 리노베이션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심지어 카타르에서 투자를 받기 위해 장인에게 카타르를 테러 지원국이라 비난하도록 조언을 하기까지 한다.

당시 중동 지역 역학 관계의 긴장 해소를 주장하던 카타르를 국무장관의 의견과도 대척되는 전혀 엉뚱한 행동이었다.

덕분에 카타르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을 뻔하지만, 러시아 미 대선 개입 사건의 특검으로부터 이 사건 또한 조사가 시작되며 카타르의 투자는 물 건너가 버렸다.

우습게도 이러한 트럼프의 돌발 행동은 카타르로 하여금 거액의 미국 무기를 수입하는 결정을 내리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당장의 국익에는 약간의 도움을 주게 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중동 여러 국가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고, 아랍인들의 미국에 대한 적의를 더욱 크게 만들었으니, 결코 좋은 선택은 아닐 것이다.

그렇듯 트럼프나 쿠슈너나 자신들의 직위를 개인적인 치부를 위해 사용하는 것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 리츠 팀에서 노력하고 있으니,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유진 캉만 믿어요. 요즘 장인어른을 보필하느라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거 알죠?”

“물론이죠. 선거에서 승리하고 두 분 다 백악관에서 승승장구할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참! 이번 교황 관련 기사는 잘 봤어요.”

“아, 그런가요? 교황이 도널드를 지지한다니 아주 좋은 일이네요.”

물론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교황은 트럼프를 종교인의 수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EDF(엔딩 더 페드)라는 매체에서 교황이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기사를 냈다. 이 기사는 곧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물론 교황청에서는 이 기사를 거짓이라며 비난하고 나섰지만, 웃기게도 사람들은 교황의 말보다 출처도 알 수 없는 기사를 더욱 믿었다.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기사는 이해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가장 많이 공유된 뉴스로 꼽힐 정도였으니, 당연히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심지어 이 기사는 미국이 아닌 마케도니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단순히 광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제멋대로 올린 엉터리 기사에서 비롯되었다.

힐러리를 욕하는 기사를 만들어 내서 올리면 사람들이 득달같이 모여들어 클릭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동유럽의 10대들은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사를 양산해 퍼트렸고,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 가짜 뉴스는 SNS를 통해 무려 100만 건에 달하는 공유와 댓글을 기록했고, 아마도 트럼프의 당선에 적든, 크든 일정 부분의 기여를 했으리라 여겨진다.

교황의 트럼프 지지뿐 아니라 수많은 엉터리 뉴스들이 이 젊은이들을 통해 만들어졌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퍼져 나갔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이 동유럽 시골 어린이들의 돈벌이에 놀아나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아 주게 된다는 사실은 아주 지독한 농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주 좋아요. 교황까지 도널드를 지지한다니, 이보다 좋을 수야 없죠. 하하.”

힐러리가 IS를 지원하고,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가짜 뉴스가 지난달 트럼프가 전쟁 영웅 부모를 비아냥거렸다는 뉴스를 덮어 버렸다.

당연히 트럼프 캠프로서는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도널드가 유진에게 고맙다고 전해 달라더군요.”

쿠슈너도 유진이 이 가짜 뉴스와 연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도널드에게 좋은 일이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요.”

그리고 유진은 굳이 그런 그들의 오해를 풀어 줄 생각은 없었다.

“유진은 자기도 기사에서 처음 보았다고 하던데, 그가 벌인 일이 틀림없습니다. 너무 공교롭지 않아요? 하필 장인에게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세상이 그 뉴스로 도배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유진과의 전화를 끊고 나서 쿠슈너가 옆에 있던 트럼프에게 말했다.

“똑똑한 사람이에요. 이기기 위해 뭐가 중요한지 잘 알아요.”

이방카가 남편의 말에 동의했다.

유진에게서 앞으로 받을 것이 많은 쿠슈너와 이방카는 무엇이 되었던 유진의 편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주 훌륭한 젊은이야. 앞으로도 기대가 많아.”

지금까지 받은 것도, 그리고 받을 것도 많은 트럼프 또한 유진의 선물이 고맙기만 했다.

그런 트럼프 가족의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참모들은 감히 그 어떤 반대 의견을 꺼낼 생각도 못 했다.

트럼프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슬쩍 언급한 것만으로, 유진은 트럼프 일가는 물론이고 그의 선거 캠프에서도 존재감을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 * *

“그래서, 지금까지 손해가 90억 달러에 달한다는 말이냐?”

대양 그룹 류 회장은 화도 나지 않는다는 듯 평이한 목소리로 물었다.

드러누워 정신을 차리지 못한 지 일주일 만에 가까스로 기력을 회복한 그는 아직 침대에서 일어날 정도는 되지 않아, 두 아들만 침실로 불러 상황을 묻고 있었다.

“네. 지금 상황에서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거기에 증거금으로 물려 있는 자금이 50억 달러고?”

“네. 지금 미국 쪽에서 최대한 자금을 인출하고 있지만, 사실 살릴 수 있는 게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남아 있는 자금은 거의 없다는 말이지?”

“아마 30억 달러는 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0년 동안 모은 자금을 전부 날려 버렸다는 거로구나.”

대양 그룹은 국내 사업보다 해외에 진출한 사업이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대양 일가는 그럴 때마다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비자금을 마련해 왔다.

아마도 국내 재벌 그룹이 해외에 가지고 있는 비자금 가운데에서도 수위에 꼽힐 것이다.

하지만 이번 한 번의 실수로 너무나 큰돈을 날렸다. 벌써 대양중공업 사태는 해외에까지 보도되어, 사상 초유의 공매도 실패 사례로 거론되고 있었다.

너무나도 큰 손실이기에, 공매도를 주력으로 삼는 헤지펀드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이다.

“네, 아버님. 지분이나 부동산으로 가지고 있는 것 말고는 대부분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 류근일이 대답했다.

물론 그것도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 회장 일가는 미국 등지의 자산관리사 등을 통해 대양 그룹의 지분을 적지 않게 갖고 있고, 또 그룹 계열사의 해외 지사와 거래하는 업체 중 알짜배기는 거의 이쪽에서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0조 원이 훌쩍 넘어서는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허…… 허허…… 허허허.”

류 회장은 한동안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대책은 있느냐?”

한참 만에 웃음을 거둔 류 회장이 물었다.

“이번 일에 관여한 펀드 중 자산을 빼돌릴 수 있는 곳은 최대한 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건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 알았다.”

회장은 더 묻지 않았다. 아들들은 부친의 그런 모습을 난생처음 보았다. 그리고 이제 그의 기력이 정말로 다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류 회장은 그 뒤로 다시는 입을 열지 않고 드러누웠다. 형제는 이제 부친의 시대가 저물어 버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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