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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09화 (109/363)

109화 기사회생?

“뭐야? 그 자식이 주방 아줌마를 써서 우리가 대화하는 내용을 녹음했다고?”

오랜만에 조금 일찍 잠을 청했던 대양전자 류근일 사장은 비서실장이 찾아와 이날 있었던 일을 보고하자 크게 분노하며 자초지종을 물었다.

“얼마 전에 허 사장님이 그 여자에게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 여자는 무섭다고 거절을 하려 했는데, 마침 상황이 좋지가 않았더군요. 남편이 사고를 쳐서 급히 돈이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그년 사정이야 알 바 없고. 그 자식이 왜 그런 거야?”

“그건 저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라서…….”

“그래서. 얼마나 녹음을 한 거야?”

“일주일 째라고 합니다. 이유는 직접 물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허 사장님이 그 여자에게 접근한 시기로 보면 아마 공매도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허 사장님은 빌어먹을! 아니. 가족들 대화를 몰래 녹음하라 시키는 게 무슨 님이야!”

류근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그 자식 데려와! 데려와서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꾸몄는지 알아내!”

“허 사장이 미 동부 계열사들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어서, 당장 무슨 방법을 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자동차 쪽 사람들을 보내거나 여기서 사람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형이 지금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했지?”

“예. 지금 대치동 호텔에 계신 걸로 압니다.”

비서실장이 장남인 대양자동차 류근호 사장을 두고 차남에게 온 이유는 류근호가 이날도 해가 넘어가기 무섭게 술을 퍼마시고 호텔에서 잠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알았어.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아무래도 저희 쪽에서 사람을 보내는 편이 가장 확실할 것 같습니다. 그냥 들어오라 하면 허 사장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사람을 보내서 함께 들어오는 쪽이 낫겠습니다. 그때까지는 알리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그리고 그 녹음했다는 것들은 어찌 되었어?”

“여자가 갖고 있던 것은 녹음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여자 말로는 녹음 파일을 메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건 허 사장과 직접 말을 나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류근일은 잔뜩 얼굴을 구기며 노기를 토해 냈다.

“하! 미치겠네. 하필 이럴 때 그 자식까지 속을 썩이고 지랄이야. 그걸로 뭔 짓을 하려고? 설마 우릴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저도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협박이라니 가당치도 않지요. 사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일에 허 사장 자신이 관련된 게 한둘이 아닌데요.”

“그러니까 말이야. 참! 그 여자가 그런 걸 알아낸 게 신입 직원이라고 했지?”

“네. 작년에 비서실에 배정되어 올해부터 이태원에 상근하는 직원입니다.”

“빠르네? 똘똘한 모양이야?”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습니다. 집안 형편은 그리 좋지 못한데, 영리하고 야망이 있는 편이지요.”

류근일이 잠시 생각하다가 지시를 내린다.

“야망이 있다라…… 걔 전자로 보내.”

“전자로요? 하지만…….”

“하지만 뭐?”

“회장님께서 픽업하신 친구라서…….”

“그래? 노인네가 웬일로? 알았어. 그럼 우선 내가 찍어 놓을 테니, 좀 있다 보내라고.”

좀 있다라는 말이 노인의 사후라는 것은 물어볼 필요도 없다.

* * *

그 시각, 문제의 여자를 태운 자동차가 여인의 집 앞에 도착하고 있었다.

차의 문이 열리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벌게진 여자가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조심해서 들어가요. 며칠 쉬다가 다시 출근하도록 하고요.”

윤 차장이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네, 네에. 감사합니다.”

여자는 안도감과 두려움 사이의 복잡한 표정으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집을 향해 돌아갔다.

“가자. 이제.”

윤 차장이 유리창을 올리고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그냥 저렇게 돌려보내도 괜찮을까요?”

운전대를 잡고 있던 사람은 아까 그녀를 잡아 낸 그 젊은 신입이다.

“안 괜찮으면? 어디 묻어 버리기라도 해? 우리가 무슨 조폭이라도 되는 줄 알아?”

윤 차장이 되물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혹시 경찰에 가서 납치당했다고 신고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 여자가? 행여라도 그럴 여자로 보이던?”

“세상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자기가 한 일이 있는데? 도청, 그거 생각보다 훨씬 큰 죄야. 저 겁많은 여자가 자기가 감옥 갈 걸 감수하고 고발을 한다고?”

윤 차장이 코웃음을 치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 여자가 대양 그룹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거 같아? 한 번 잘못 보이면 자기는 물론이고 가족들 모두 평생 벌벌 떨며 살아야 하는데? 아까 10년 이하 징역이라고 하니까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거 기억 안 나?”

“뭐, 그렇기는 하죠. 그래도 뭐든 깨끗하게 마무리 짓는 편이 낫잖아요.”

“이 자식이? 너. 진짜 우리가 무슨 범죄 조직이라도 되는지 알아? 큰일 날 소리 하지 마.”

“뭐, 영화 같은 거 보면 그런 거 나오잖아요. 회장님 비서면 아주 은밀하고 위험한 행동도 하고.”

“하아…… 넌 영화 같은 걸 너무 많이 봤나 보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짓을 할 재벌이 어디에 있…… 아니다, 또 모르지. 다른 재벌들이라면.”

잠시 윤 차장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여하튼 우리는 그런 위험한 일은 안 한다. 그런 것도 다 사람들이 하는 건데, 잘못될 경우의 실이 훨씬 커.”

“하기야 위험하기는 하죠. 사람이 개입되면 어디서건 말이 샐 수 있으니까.”

류 비서는 차를 출발시키고 입을 다물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윤 차장은 젊은 비서가 무척이나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알 수 없었다.

* * *

“대량의 매도 물량이 나왔습니다.”

한국 장이 시작될 시간, 요안나가 급하게 보고를 했다.

“가격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80만 원 밑으로 내려가는 것도 금방일 것 같습니다.”

“나도 보고 있어.”

조금 전까지 84만 원 선을 지키던 주가가 장이 열리자마자 죽죽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는 유진은 그다지 놀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아마 저쪽에서 드디어 시작한 모양입니다.”

유진 쪽에서도 대양 그룹이 마냥 손을 놓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유진 측에서 올린 수익만 7조 원을 넘는다. 다른 주주들도 나름 수익을 실현했을 터이니 대양 측은 그 이상의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지금까지 매집 물량은 80만 주에서 140만 주 사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정도를 쏟아부으면 어디까지 끌어내릴 수 있을까?”

“제대로만 하면 시장에 패닉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요.”

요안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떨어진다!”

그 시각, 지구 건너편 대양전자 사장실에는 아주 중요한 사람들 몇몇이 모여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대양자동차와 대양전자 사장인 류근호, 류근일 형제. 그리고 각기 자동차와 전자에서 임원직을 맡고 있는 그 아들들도 함께했다.

가장인 노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어 이태원 회장 자택 대신 이곳으로 모였다.

모여 있는 누구도 노인의 상태가 위중함을 신경 쓰는 눈치는 없었다. 오히려 무섭기만 하던 회장의 부재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죽죽 떨어지는구나! 시원하네. 흐흐흐.”

지난밤 술을 잔뜩 마시고 잠이 들어 아직 술이 덜 깬 류근호는 오랜만에 밝은 얼굴로 모니터를 지켜보며 호쾌하게 소리쳤다.

“좋네. 좋아. 아주 속이 뻥 뚫리네. 하하.”

류근일도 유쾌한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패닉셀이 일어나겠군요.”

대양전자 상무를 역임하고 있는 류근일의 장남이 한마디 했다.

“잘만 하면 이걸로 전부 털어 버릴 수 있겠어요.”

류근일의 둘째가 동의를 표했다.

“이제 곧 80만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래. 좋다! 좋아!”

“더 떨어져!”

모두가 떠들썩하게 주가의 하락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쪽에서 던진 물량 이상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류근일의 비서실장이 미국 쪽 연락을 받고 보고했다.

“패닉이네.”

아직까지 패닉셀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급격한 주가 하락에 이 기회를 놓치면 수익 창출에 실패할 것 같은 예감을 느낀 소수의 일반 주주들도 재빠르게 들고 있던 주식을 던지기 시작한다.

대량으로 투척된 매도 물량이 80만 원 위쪽에 걸려 있던 매수 물량을 집어삼키며 무섭게 떨어진다.

“어! 조금 주춤하네?”

“매수 물량이 늘어나는데?”

힘차게 내리꽂던 주가가 일순 보합을 이룬다.

갑자기 늘어난 매수세가 하락을 막아서고 있는 형국이다.

“무슨 일이야!”

“이러면 안 되는데!”

일가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누가 여기서 들어온 거야?”

“어쩌죠?”

“지금 얼마나 풀었어? 더 풀라고 해!”

류근일이 두서없이 지시를 던졌다.

“그래. 있는 물량 다 풀어!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돼!”

류근호도 다급히 외치듯 지시를 내렸다.

아쉽게도 이 두 사람은 주식 전문가는 아니다. 사실 주식 투자에 그다지 신경을 써 오지도 않았다. 아래에 전문가들이 잔뜩 있는데,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공매도로 천문학적인 손해를 보며, 전문가들에 대한 신뢰도 잃어버렸다.

사실 그걸 지시한 것은 그들이지만, 실패의 책임은 실무자의 몫이라고만 여겼다.

공매도의 실패가 끔찍한 재앙으로 드러나면서부터 형제의 간섭은 더욱 커졌고, 실패를 만회할 기회마저 놓쳐 버렸다.

“아직은 시나리오에서 상정한 안쪽입니다. 이 정도에서 반대 매수가 들어오는 것은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의 지시를 미국으로 전달하려는 대양전자 비서를 막아서며 오경덕 비서실장이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다. 이번마저 놓치면 더는 방법이 없다.

“그래? 진짜야?”

류근호가 매서운 눈으로 대양전자 비서실장을 노려보았다.

“네. 아직까지는 상정 이내입니다.”

“알았어. 이번에 실패하면 알지?”

“네? 네…….”

시장의 흐름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면 100만 주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이미 내부적으로는 확실한 성공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몇 배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만한 물량이 나오지도 않거니와, 두 사장의 인내심도 바닥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보합세는 금세 매도 세력의 승리로 끝났다.

차트는 다시 파랗게 물들어 버렸다.

“히야! 진짜 내려가네.”

“다행이네. 가슴이 철렁했단 말이야.”

사주 일가가 환호성을 지른다.

겨우 1분도 안 되는 사이의 일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거의 사색이 되다시피 했었다.

하지만 금세 내리꽂는 주가를 보자 모두들 얼굴을 펴고 환호했다.

“됐다!”

“고비를 넘겼으니 이제 뻥 뚫렸다고.”

현실을 정확히 보고 있다기보다는 그들의 소망을 비는 주문과 같은 외침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염원은 이루어지는 모양세였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하면 다들 못 견디고 마구 던질 겁니다.”

“80만을 뚫으면 70도 금방이지.”

“오늘 어디가 하한가지?”

“59만 천 원입니다.”

대양전자 비서실장이 즉시 대답했다.

“그래. 내일은?”

“41만 원입니다.”

“제길. 하한가는 왜 있어 가지고. 그럼 10만 밑으로 떨어지려면 얼마나 걸리지?”

“일주일은 필요합니다.”

“끄응…… 거기까지 갈 수 있겠어?”

자동차 사장이 비서실장을 보며 물었다.

“예. 시나리오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어차피 지금 주가가 정상이 아니니, 50만 밑으로만 내려가면 다들 처분하지 못해서 난리가 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4만 밑으로 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실 적정가는 2만 원대인데 말이야.”

“2만 원도 아깝지요.”

두 형제는 그룹 계열사의 가치를 형편없이 후려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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