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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10화 (110/363)

110화 일장춘몽(一場春夢)

- 80만 원 무너지는데 어쩌지?

- 아! 위험하다. 누가 물량을 던진 거야?

- 팔아야 하나?

- 근데 쉽게 내려가지 않을 거 같은데? 아직 공매도 수량 보면 한참 남았어.

- 그렇기는 하지.

- 난 버틴다. 100만 가야지.

- 난 어제 팔았음. 56만에 사서 83만에 팔았으니 이 정도면 만족.

- 나도 팔아야 하나?

주식 커뮤니티에서도 장이 열리자마자 벌어진 대량 매도 사태로 상당히 긴장된 의견들이 오갔다. 하지만 아직 공매도 물량이 충분하다는 것 때문에 확신은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 80만 뚫리면 위험한데.

- 아냐. 원래 이때쯤 조정이 있는 게 정상이야.

- 어? 뚫렸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80만이 뚫리고 79만 원 대로 내려앉았다. 순간 대기 매물이 적지 않게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주가가 80만 원 아래로 내려가자, 이제는 완전히 대세가 기울었다 생각한 류근호 사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비서진을 칭찬했다.

주가는 곧 79만 원 아래로 떨어졌고, 모인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기꺼워하고 있었다.

“어? 갑자기 왜 저래?”

하지만 77만 원을 돌파하려는 순간, 갑자기 어디선가 매수 물량이 쏟아져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대체!”

“77만 100원에 대량의 매수 주문이 나와 있습니다. 무려 57만 주입니다. 이대로라면 금세 말라 버립니다.”

도대체 언제 나타났는지 알 수 없는 매수 물량이 쏟아져 내리던 매도 물량을 전부 받아먹고 있었다.

“어떻게 할 거야?”

다시 고함이 난무한다. 상황을 반전시킬 절호의 기회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멈춰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기껏 모은 물량을 날리게 생겼습니다.”

이쪽이 가진 것은 겨우 100만 주다. 시가로는 1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그보다 더 있어도 모자랐다.

“어쩔 거야! 여기서 멈추면 다시 80만 원을 넘어가잖아?”

“방법이 없습니다.”

잠깐 사이에 상황이 반전되고, 사장실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잠시 주가는 78만 원에서 치열하게 경합을 벌인다. 하지만 매수 세력의 물량이 더 많았다.

곧 미국 측에서 어쩔 수 없이 매도를 멈추자 다시 반등을 시작한다.

곧 79만 원을 넘어서나 싶더니, 그 많던 매도 물량이 사라지며 주가는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 * *

“목표가는 91만 원까지 잡겠습니다.”

요안나가 보고했다. 무섭게 떨어지던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당연히 요안나의 팀이었다.

이미 대양 그룹 측에서 어떤 수를 쓰리라 예측하고 대비하고 있었기에, 상대가 주식을 던지자 바로 반응할 수 있었다.

그나마 70만 원 대까지 떨어지게 허용한 것은 시장에 시그널을 주기 위해서였다. 어지간히 떨어져도 도로 오르니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이다.

효과가 있었던지, 78만 원까지 내려갔던 주가가 다시 80만 원을 돌파하자마자 매도 물량이 재빠르게 자취를 감춘다. 대양 그룹 측에서도 물량 싸움으로는 방법이 없다 생각하고 후퇴한 모양이다.

그렇게 매도 세력이 사라지자 주가는 거침없이 오르기 시작한다. 이제는 전날 종가를 넘어서서 마구 올라간다. 그러자 수익 실현을 위해 내놓은 수량도 재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겁이 많군요. 체결량이 겨우 120만 주에서 그쳤습니다. 그중 대양 쪽 주식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많아야 40만 주로 끝난 모양입니다. 조금 더 기다려 줄 걸 그랬습니다.”

“뭐. 그 정도면 충분해. 어차피 그쪽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기는 하죠. 이제 리콜 들어가겠습니다.”

요안나는 지체하지 않고 다음 계획을 진행시켰다.

* * *

“리콜? 리콜이라고? 지금?”

“무슨 소리야? 왜 갑자기 리콜이라는 말이야?”

주가가 떨어지기 전보다 오히려 올라가 버리니, 분노를 이기지 못한 두 형제의 한바탕의 소동이 끝나고 조용해 있던 사장실에 다시 폭탄이 터졌다.

기존 리콜 요청이 끝나고 잠시 잠잠해졌다 싶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리콜 요청이 다시 물밀 듯이 들어온 것이다.

더군다나 지난번처럼 순차적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고, 남은 물량 상당 부분에 대해 리콜 요청이 들어왔다.

“전부 외국 측 펀드들입니다.”

“인제 와서 어쩌라고! 지금 그걸 어떻게 돌려줘!”

“국민연금 측에서도 약간이나마 돌려줄 수 있는지 물어 왔다고 합니다.”

“미친 거 아냐? 거긴 또 왜 그래?”

“주가가 너무 높으니 소량이라도 처분해 수익을 보려는 거죠.”

“그걸 누가 몰라? 왜 하필 지금 이 시점이냐고!”

“그래서, 해결할 물량이 얼마나 돼?”

그나마 류근일이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고 물었다.

“지금까지 424만 주입니다. 아마 더 들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돌겠네…….”

“어쩔 수 없습니다. 더 이상은 추가로 매수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럼 어쩌자고?”

“증거금을 포기하고 나머지는 전부 디폴트 선언을 해서 이쯤에서 끝내야 합니다.”

“디폴트 선언으로 끝날 일이 아니잖아? 대양증권이 보증을 선 건?”

“대양증권도 어쩔 수 없습니다. 피해가 다른 계열사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게 최선입니다.”

대양전자 비서실장이 냉정하게 현실을 규정했다.

“허…… 허허…….”

류근호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기만 흘렸다.

“그나마 요 며칠 동안 미국 쪽에 정리 작업을 지시해 놓았으니, 얼마라도 건질 수 있을 겁니다.”

“하, 미치겠네…….”

두 형제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바라보며 비서실장은 다른 비서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 * *

[미국의 사모펀드인 SPGR이 오늘 공매도 차입에 대한 리콜 요청에 상환을 포기하고 파산했습니다. 이로써 대양중공업 공매도 사태로 파산한 금융기관은 모두 7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달 4만 원대에서 공매도를 시작한 외국금융기관들은 대양중공업 주가가 최근 20배까지 뛰어오르며 자금 부족에 시달려 오다가, 결국 리콜 요청을 받고 파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공매도로 빌린 주식에 대한 보증을 선 대양증권이 남은 물량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대양증권 또한 자금 부족으로 금융당국에 협조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며칠 동안 외국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등 공매도 세력이 한국 시장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파산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다.

그동안 요안나는 공매도 리콜을 상환하기 위해 들어오는 매수 물량에 맞춰 가지고 있던 대양중공업 주식을 팔아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쏟아지는 매수 물량을 보고 다른 주식 보유자들도 각자의 판단에 따라 적절히 수익을 올리고 팔아치우거나, 혹은 오히려 기회라 싶어 추격 매수를 하기도 하는 등 한동안 혼란스러운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유진은 전혀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허대웅이 어제 뉴욕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경제 관련 정보 수집 기관인 ABC를 책임진 존 브레넌으로부터의 보고였다.

“교통사고라고요?”

대양 그룹 회장의 셋째 사위이며 대양상사 아메리카 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허대웅은 한편으로는 데이비드를 통해 유진에게 협력하기로 한 사람이다. 그의 교통사고 소식은 유진에게도 놀랄 만한 일이었다.

“사고가 확실합니까?”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어본다.

“네. 자택 근처에서 황급하게 달려가다가 버스에 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상태는 어떤가요?”

“병원에 실려 갔는데, 아마 가망이 없는 모양입니다. 뇌사상태라고 하더군요.”

“그만한 사람이 교통사고라……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NYPD측에서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한데 허대웅이 자택에서 나올 때, 뭔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하튼 NYPD에서 뭔가 알아내는 대로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자세히 좀 알아봐 주십시오.”

유진으로서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허대웅의 협조에 대단한 기대를 하고 있던 것은 아니지만, 그와 데이비드 사이에 오고 간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는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겁에 질려 허겁지겁 어디론가 달려가야 할 이유가 무언지는 알았으면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경찰에게서 대단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뉴욕은 아직 한국처럼 블랙박스를 달고 있는 차량도 많지 않아 증거 수집에 고충이 있다고 했다.

경찰에서도 어쩌지 못하는 일을 존이 해결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CIA 국장 출신인 그가 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따로 보고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의미가 없거나, 혹은 달리 알아봐도 큰 수확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허대웅에 대한 일은 지나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데이비드가 아주 특별한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예. 데이비드입니다. 네? 누구시라고요?”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던 데이비드는 상대가 이름을 밝히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올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예. 맞습니다. 뉴욕으로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시면 찾아뵙도록 하지요.”

전화를 끊고 데이비드는 바로 보스에게 연락했다.

“그 여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대양 그룹 회장 부인이요.”

“무슨 일로? 아니. 왜 데이비드한테 전화를 한 거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내일 뉴욕행 비행기에 오를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플라자 호텔에 묵을 생각이니 한 번 방문해 달라고 하더군요.”

“혹시 그 사람 때문인 건가?”

유진은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는 대양 그룹 회장 사위를 떠올렸다. 사실 그것 말고는 그녀에게 연락이 올 이유가 없었다.

“아마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데이비드도 비슷한 생각인 모양이다.

“알았어. 그러면 한번 만나 보도록 해.”

정확한 목적이 무엇인지는 그녀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데이비드입니다.”

대양 그룹 회장 부인은 이번에도 플라자 호텔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빌렸다. 그리고 데이비드가 알려준 대로 수행원 없이 바로 아래층에 있는 다른 스위트룸으로 찾아왔다.

“반갑다는 소리는 하지 않겠어요.”

여자는 조금 차가운 얼굴로 데이비드에게 살짝 고개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앉으시지요.”

“그쪽이 데이비드. 강유진 씨의 대리인이라고 했죠?”

여자는 데이비드가 권한 소파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대리인이라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직원입니다. 아! 물론 일반 직원보다는 조금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요.”

데이비드도 그 여자의 건너편에 앉으며 말했다.

“됐어요. 당신 말고 강유진 그 사람과 말할 생각이에요. 불러 줘요.”

그녀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요구를 해 왔다.

“그건 곤란하겠습니다. 보스가 많이 바쁘시거든요.”

“괜찮아요. 시간은 많으니까.”

“아무리 기다리셔도 안 될 겁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저한테 하시지요.”

그녀의 요구대로 보스에게 물어보는 거야 어려울 것은 없지만, 지금은 기선을 장악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 데이비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끌려갈 수는 없었다.

한동안 여자와 데이비드 사이에 눈싸움이 오고 갔다.

“이틀 전에 허 사장이 사망했어요.”

한참 만에 여자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허 사장님이라면 대양상사 아메리카 사장님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하지 말아요.”

여자가 사나운 눈으로 데이비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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