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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13화 (113/363)

113화 빅 팬

“이건 할리우드 데일리인가?”

유진은 연인인 사라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다는 기사보다, 기사가 올라 간 매체에 더 관심을 두었다.

“미국 제일의 남자를 손에 넣은 사라 델비안의 이중적인 사생활이라……. 제목이 매콤한데.”

제목뿐 아니라 기사도 자극적인 내용뿐이다.

사라 델비안은 남자건 여자건 가리지 않는데 유독 동양인을 좋아한다거나, 동양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인에 대한 패티시가 있다거나 하는 내용들이다.

도대체 누구인지 모를 지인의 말을 빌려, 델비안이 뉴욕에 있는 동안 유진 몰래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 적도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일화까지 만들어 써 놓았다.

“그런 자극적인 내용을 주로 내놓는 잡지이니까요. 벌써 이 사진 구매 비용은 충분히 뽑았겠어요. 이 정도면 아마 적어도 50만 달러는 주었을 거예요. 어쩌면 그 두 배쯤일 수도 있고요.”

“누구인지 모르지만, 사진 하나로 큰 재산을 벌었겠군.”

친구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몰래 찍어 100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고민해 볼 만하다.

그렇게 유진이 모니카와 남 이야기인 듯 수다를 떨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기사의 당사자인 사라였다.

- 기사 봤어요?

잔뜩 지친 목소리로 사라가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거 보고 있었는데, 대체 뉴욕에 있는 동안 사귄 여자가 누구야?”

유진이 웃으며 물었다.

- 묻지 말아요. 그렇지 않아도 그거 때문에 지나한테 엄청나게 시달렸으니까.

유진이야 웃을 일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냉전 중이야?”

- 지나는 금세 풀어졌어요. 지나도 이런 찌라시 기사에 사실 따위 거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요.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지나 부모님?”

- 네. 난리가 났어요. 지나 부모님이 지나를 호적에서 빼 버리겠다고 엄청나게 화를 내시는 모양이에요. 근데 호적이 뭔가요? 지나도 잘 모르더라고요. 그냥 아빠가 엄청 화를 내고 계신다는 거밖에는.

“음……. family register? 영국식으로 하면 pedigree?”

적당한 표현이 없어 그렇게 설명했다.

- 아! 그렇다면 문제가 되기는 하겠네요.

영국의 귀족 가문 출신인 사라는 금세 납득했다. 그쪽은 한국보다도 혈통에 대한 자부심이 커서 가계도에서 빼 버린다는 말이 확 와닿은 모양이다.

“정말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군.”

-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누군지 잡히기만 하면 가만 안 둘 거예요.

“누가 그랬는지 알 거 같아?”

- 대충 알 거 같아요. 그날 왔던 사람 중에 그럴 만한 인간은 타니아뿐이에요.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사라는 머릿속이 무척 복잡한 듯했다.

- 어떻게 하죠? 결과적으로 유진에게 피해를 주게 되었네요.

“어쩔 거야 있나. 이렇게 된 거 계획을 조금 앞당겨야지. 사라야말로 괜찮은 건가? 아서 경이 무척 상심했겠는데.”

- 아, 뭐……. 어쩔 수 없지요. 어차피 언제고 터질 문제였는데요. 차라리 잘되었어요. 언제까지 묻어 둘 수도 없는 일이고.

사라는 오히려 후련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나의 부모님께 한번 얘기를 해 볼까?”

- 잠깐만요. 지나가 좀 바꿔 달라고 하네요.

그러더니 곧 목소리가 바뀌었다.

- 어떻게 하지? 지금 엄마 아빠가 난리야. 은인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그렇게나 당당하던 지나가 거의 울먹이며 하소연했다.

지나의 부모는 유진의 열렬한 팬이다. 단순한 팬을 넘어서 거의 한 종교의 신도나 다름없는 정도였다.

사실 그들만이 아니라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교포들 대부분이 유진의 팬이며 신도에 가까웠다.

유진이 미국에서 벌이는 일들이, 그로 인한 인기가 그들의 자긍심을 잔뜩 높여 주었기 때문이리라.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한번 이야기해 볼 테니. 그래도 내가 하는 말이라면 들으시잖아.”

그렇게 지나를 다독거리고 지나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이고! 유진 씨! 정말 죄송합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제가 딸을 잘못 키워, 유진 씨한테 큰 실례를 저질렀네요.”

지나의 부친은 유진이 눈앞에 있었다면 큰절이라도 했을 기세로 굽신거리듯 말했다.

“아뇨. 사과는 오히려 제가 드려야겠네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사라가 사귀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지나였습니다. 저와 사라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좋은 친구의 관계일뿐입니다.”

- 네에?

“뭐. 지금은 지나와도 좋은 친구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지나와 관련되어서는 제가 두 분께 거짓말을 한 셈이 되는군요. 죄송합니다.”

- 아니…… 지금…… 그러면…… 진짜로 지나랑 사라 양이?

지나의 부모님은 딸이 여자인 사라와 정말로 연인 관계라는 사실을 여태껏 믿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저 한때의 장난으로 시작된 스캔들 정도로 알고 있었던 듯했다.

“네. 전 친구로서 지나와 사라의 관계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두 분께 언젠가는 말씀드리려 했었는데, 느닷없이 사고가 터져 버려 놀라게 해 드렸네요.”

- 그, 그랬군요.

“두 분께서야 충격이 크시겠지만, 절 봐서라도 조금은 지나를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지나와 사라는 서로 깊이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저로서는 두 사람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 뭐……. 유진 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어차피 여기는 미국이고…… 조금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벌어진 일이야 어쩔 수 없고…… 그런 일이 하필 우리 애한테…….

지나의 부친은 무척 혼란스러운 모양인지, 마지막에 가서는 조금 울먹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지나를 위해서 너무 압박은 하지 않겠다는 말로 통화를 끝맺었다.

“미디어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는데 어쩔까요?”

옆에서 전화 통화를 듣고 있던 모니카가 여전히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대충 사라와는 늘 좋은 친구였고, 그녀의 결정을 항상 지지한다는 정도로 얼버무리지.”

유진도 사라와의 관계를 부정한 적이 없으니, 사실상 그 또한 대중을 상대로 사기를 친 셈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사라와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국회 의원이 보스와 면담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라 쪽 문제를 해결하는 사이 또 다른 요청이 들어온 모양이다.

“국회 의원?”

“네. 존에게 확인해 보니 여당의 4선 국회 의원으로 여당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이름을 들어 보니 유진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상당한 영향력이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거물급 인사였다.

“그래. 그러면 며칠 뒤에 적당한 날로 약속을 잡도록 하지.”

언제고 이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어쩌면 오히려 늦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도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진 만큼, 이런 일을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스스로 나서서 억지로 연줄을 만들 마음은 없었다.

유진은 자신의 사업에 정치권의 권력을 동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차피 그런 수단을 쓰지 않고도 부의 독점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정관계 인사와 관계를 맺는 것은 어디까지나 불필요한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으려는 목적에서였다.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딱히 자신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면, 정치권의 힘을 빌릴 이유도 없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사흘 뒤쯤 일정을 잡겠습니다.”

물론 유진이 그렇게까지 바쁜 사람은 아니다.

바쁜 것은 어디까지나 직원들일 뿐, 그는 시간을 내려면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낼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만나자고 해서 바로 발 벗고 나설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꽤 중요한 약속이 있기도 했다.

아직 저녁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었지만, 급하게 다른 약속을 끼워 둘 생각은 없었다.

‘뭐, 며칠 동안 뉴욕 관광이라도 하겠지.’

유진은 그쪽에 대해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저녁 시간, 유진은 경호원들만 대동하고 로우 맨해튼의 한 식당을 찾았다.

식당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나이스 미첼과 레이첼 차브킨 두 사람과 함께 에밀리가 도착했다.

“한국 요리는 처음이에요. 굉장히 기대하고 왔어요.”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음악 감독을 맡은 아나이스 미첼이 젓가락을 어설프게 쥐어 보며 말했다.

“굳이 젓가락으로 먹을 필요는 없어요. 나도 몇 번 해 봤는데, 역시 포크가 편하더라고요.”

유진과 함께 한국 식당을 몇 번쯤 드나들었던 에밀리가 말했다.

에밀리를 포함한 세 여자는 요리가 하나씩 나오는 한국식 코스 요리를 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즐겼다.

그들은 요리가 나올 때마다, 그 독특한 재료의 쓰임에 놀라며 맛을 음미했다.

이때까지 아직 뉴욕의 한식당들은 소위 ‘회관’ 형태의 BBQ 레스토랑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불고기와 갈비 따위를 내놓는 방식이었다.

서구의 파인 다이닝은 이렇게 한꺼번에 모든 요리를 잔뜩 차려 놓는 경우가 드물다.

그렇다 보니 아직 한국 요리는 뉴욕의 상류층에게 그저 독특한 이국 요리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한식 재료와 요리 방법을 응용해 제대로 된 코스를 내오는 한식 레스토랑이 뉴욕에 생겨나며, 한국 요리는 뉴요커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이 식당 덕분에 한국의 요리는 아주 짧은 기간 사이에 뉴욕에서 가장 핫한 음식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코스 요리는 사실 한국에는 없는 문화예요.”

“그런가요?”

트러플이 잔뜩 얹혀 있는 비빔밥을 포크로 떠서 입으로 가져가며 아나이스 미첼이 되물었다.

“캐비어나 트러플 따위의 재료도 한국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거고요. 하지만 한국 요리가 아니냐고 묻는다면, 한국 요리가 맞다고 할 수밖에 없죠. 요리를 관통하는 정신은 틀림없이 한국의 것이 맞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진하게 낸 사골 국물이나 다양한 재료를 한데 섞어 먹는 비빔밥은 너무나도 명백하게 한국 음식의 진수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한국의 요리 문화가 여기 뉴욕에서 서구의 요리 문화와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거죠.”

요리가 나올 때마다 유진은 하나하나 설명을 해 준다.

뉴욕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줄곧 이런 한국식 파인 다이닝에 예약을 잡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이 새로운 유행을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유진이 말해 주는 설명을 즐겼다.

특별히 한국 문화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진은 때마침 찾아온 코리안 파인 다이닝의 태동기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지난 삶에서 수십 년의 시간을 뉴욕에서 보냈지만, 여전히 그가 가장 잘 아는 것은 한국의 문화였고, 한국 음식이다.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낯설어하면서도 한국 요리를 즐겼다.

요리가 굉장히 고혹적이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게 코스 형태를 갖추어 나오는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유진이 직접 한국 요리에 관해 설명해 주는 것이 하이라이트이다.

유진이 데려오는 손님들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면 이런 식당들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유진은 자신의 뿌리를 부정할 생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그의 가장 큰 자산은 물론 지금도 시시각각으로 불어나고 있는 거대한 자본이지만, 그를 지지해 주는 사람을 늘려 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충성스러운 팬들은 역시 한국 사람들이다.

유진이 한국 사람들의 자부심이 되어 주는 한,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한국인들도 그를 지지해 줄 것이다.

유진은 그런 큰 자산을 거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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