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푸드트럭
“덕분에 공연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레이첼 차브킨 감독이 유진의 투자와 관심에 대해 사의를 표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흥행에 성공하면 몇 년이고 계속 공연을 이어가지만, 오프브로드웨이에서는 흥행에 성공하건 실패하건 일정 기간 이후에는 새로운 뮤지컬에 극장을 넘겨 준다.
실패하면 극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성공이라면 더 큰 무대로 진출하기 위해 오프브로드웨이를 떠나는 것이다.
“멋진 공연이었어요. 최근 1년 사이에 나온 뮤지컬 중에 가장 평이 좋더군요. 평론가들이나 관객들이나 다들 만족한 것 같습니다.”
하데스타운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유진도 에밀리 때문에 몇 번이나 감상을 하면서도 그다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참신한 뮤지컬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유진 덕분에 흥행도 잘 됐고, 앞으로 더 큰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었어요.”
앞서 말한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의 두 갈래 중 하데스타운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한다.
좌석이 얼마 되지 않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계속하는 것은 사실 실익은 거의 없다.
“반응이 꽤 좋아서 규모를 키워 보기로 했습니다.”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를 구분 짓는 가장 큰 특징은 좌석 규모이다.
브로드웨이의 극장들이 적으면 1,000석에서 크면 2,000석에 가까운 규모인 데 비해 오프브로드웨이는 500석 이하의 좌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하데스타운이 공연된 뉴욕 시어터 워크샵의 메인 무대는 겨우 198석에 불과한 좌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당연히 무대의 규모도 작아서 여느 브로드웨이 뮤지컬 같은 화려하고 압도적인 공연을 펼치기에는 무리가 있다.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려면 공연의 규모를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비가 필요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요청해요.”
하데스타운이 브로드웨이에서 꽤 큰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을 알고 있으니, 유진으로서는 인색할 이유가 없었다.
“지난번에 투자해 주신 걸로 아직은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레이첼 차브킨 감독이 다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럼 다음 공연 계획은 아직 없겠군요.”
“우선은 제대로 된 공연을 만드는 게 먼저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은 모양이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유진은 몇 번이고 하데스타운 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들의 감사를 받았다.
뮤지컬이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고 흥행에 성공한 덕분에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의 마감을 즐길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주변에서 일행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쭈뼛거리며 다가와 인사를 한다.
“저…… 강유진 회장님 되시죠?”
그리 고급스럽지 않아 보이는 정장을 어색하게 차려입은 남자는 거의 허리를 숙이다시피 하며 입을 열었다.
“네. 맞습니다. 강유진입니다.”
회장이라는 칭호가 너무 어색했지만, 구태여 고쳐 불러 달라 요청하기 적절한 타이밍은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회장님의 팬입니다. 아까 식사하시는 걸 보고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혹 방해가 될까 싶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남자는 일행인 백인 여성과 함께 꽤 오래전에 식사를 마치고 대화를 나누며 몇 번이나 유진을 훔쳐보았던 것이 생각났다.
“신경써 주셔서 고맙군요.”
사실 식사를 하며 긴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느닷없이 끼어들어 인사를 해 오면 흐름이 깨지는 것은 사실이다. 유진은 사내가 제법 사려 깊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라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인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남자는 어렵게 거의 30분이나 기다렸던 요청을 해 왔다.
“물론이죠. 제 사인이 그렇게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진이 흔쾌히 사내가 내민 종이에 사인을 해 주었다.
“사인만 할 게 아니라, 사진 한 장 찍어도 괜찮습니다.”
사내가 손에 휴대폰을 들고 꼼지락거리며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을 본 유진이 먼저 물꼬를 터 주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의 소심스럽던 목소리가 잔뜩 커지는 것은 그만큼 흥분했기 때문인 모양이다.
유진은 사내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원하는 모습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게 해 주었다.
“자꾸 부탁만 드려 죄송한데…… 이 사진 혹시 인화해서 제 푸드트럭에 붙여 놓아도 될까요?”
“푸드트럭을 하신다고요?”
“네. 5번가에서 하고 있습니다. 회장님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오늘은 뭔가 영감을 받아보려 큰맘 먹고 한 번 여기 와 봤는데, 이렇게 회장님을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하하. 오늘은 진짜 운이 좋습니다.”
“그래요? 음. 그러면 그 사진을 붙이지 말고요.”
유진의 말에 사내의 얼굴이 조금 흐려진다.
“언제 한 번 들러 볼게요. 거기서 찍은 사진이 낫지 않겠어요? 기왕 푸드트럭에 붙이려면, 다른 식당에서 찍은 것보다는?”
“정말요?”
순수한 사람인 모양인지, 유진의 말 한마디에 금세 얼굴이 변한다.
“5번가 어디쯤이죠?”
“52스트리트 교차로 있는 곳입니다.”
사내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럼 조만간 한 번 보지요.”
“감사합니다. 그럼 회장님 방문하시기를 학수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사내가 허리를 거의 반쯤 구부리며 인사했다.
“저기…… 회장님이라 하지 말고, 그냥 유진이라고 해요. 그리고 그렇게 허리 숙이지도 말고요.”
“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한국물이 아직 안 빠진 모양입니다. 하하.”
“뭐.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조금씩 노력해야겠죠?”
유진이 웃으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사내는 악수를 하기 위해 한 손을 내밀어 유진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오른손 팔목을 잡으려다가 유진의 눈웃음을 보고 행동을 멈추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다 온 모양이다.
한국에서야 그런 예절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겸양은 오히려 마이너스이다.
“조금 전 그 사람은 유진을 굉장히 어려워하더군요.”
식당을 나서자 에밀리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아무래도 그런 면이 있더군요. 한국에서의 예절이 익숙하기 때문이겠죠.”
“예절이라…… 유진도 회사에 다닐 때는 저렇게 했었겠네요.”
에밀리가 웃으며 물었다.
“물론이죠.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유진은 자신의 기억 속으론 벌써 수십 년 전에 겪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지금이라면 다시는 그런 숨 막히는 일들을 못 할 것 같지만, 당시에는 그저 당연하게 해 왔었다. 아니, 사실 꽤 잘하는 편이었다.
“사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예요. 허리를 숙이지 않는다뿐이지, 어디서건 지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는 비슷할 거예요.”
영국에서 건너와 배우로 자리 잡기 위해 이런저런 일들 겪어 본 에밀리도 비슷한 경우를 많이 경험한 모양이다.
형식의 문제일 뿐이지, 상하 관계라는 것은 어느 문화에서도 찾을 수 있고, 꼰대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미국이라고 꼰대 상사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뉴욕의 회사에서 꽤 긴 시간 일해 본 유진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유진이 그 사람 상사도 아닌데, 마치 자기 보스를 대하는 것 같더군요. 그 남자뿐 아니라 식당 주인이나, 다른 손님들도 비슷했어요. 한국 사람들은 유진을 보스처럼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보스라…… 그럴 수도 있겠군요.”
유진은 만일 자신이 미국에서 정치인으로 데뷔한다면 한인 교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의 반대를 얻겠지만 말이다.
하데스타운의 작곡가와 감독과 헤어진 뒤로, 유진은 한참 동안 에밀리와 함께 밤거리를 걸으며 데이트를 즐겼다.
그녀와 시간을 보내는 일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에밀리는 유진이 엄청난 부자라는 사실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저 평범한 사내로 대해 주었다.
지난 삶에서 그녀와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때는 지금과 반대로 피폐해 있던 유진이었다.
에밀리는 그런 유진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었다.
어쩌면 다시 과거로 돌아온 유진이 그저 복수에만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그때의 에밀리 덕분인지도 모른다.
다음날, 유진은 약속했던 한인 푸드트럭을 찾았다.
“김치볶음밥이 들어간 타코에, 갈비가 아주 잘 어울리는군요.”
푸드트럭의 사장이 내놓은 메뉴는 생각 외로 훌륭했다.
“미국에 와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었더니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이거 생각보다 여기 사람들에게도 잘 먹히겠다 싶었죠.”
전날 쭈뼛거리던 태도와 달리 자긍심이 가득한 얼굴로 사내가 자신이 만든 요리의 유례를 설명했다.
“그러네요. 사람들이 꽤 길게 줄을 서 있더군요.”
유진도 10분가량 줄을 서서 기다렸다.
“더군다나 대부분 한국인이 아니었어요. 멋진 요리네요. 성공하겠어요.”
사실 유진의 기억에 이 푸드트럭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어쩌면 생각만큼 대성공을 거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적어도 유진의 입에는 맞았다.
“프렌차이즈는 고려해 보셨나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제대로 된 메뉴를 완성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면서도 한국의 맛을 살리고 싶은데, 쉬운 일은 아니더군요.”
한 끼에 수백 달러나 하는 한식 파인 다이닝을 찾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 모양이다.
“제대로 사업을 펼치겠다는 자신이 들면 연락을 줘요. 필요한 만큼 투자를 하도록 하죠.”
“정말입니까? 아니, 그런데 회자…… 유진 씨 같은 분은 세계적인 기업에만 투자하는 거 아니셨어요? 어쩐지 푸드트럭하고 유진 씨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요.”
푸드트럭 사장은 여전히 유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어색했다.
“아뇨. 미래의 성공 가능성이 있다면 푸드트럭이라고 안 될 것도 없지요.”
오히려 유진은 이걸 나쁘지 않은 기회라 생각했다.
이참에 한국의 음식 문화를 세계에 퍼트리는 사람들에 대한 투자를 시작할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딱히 수익 때문은 아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뉴욕의 맨해튼에서 한식이 파인 다이닝으로 서서히 하이클래스 뉴요커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동안, 미국 전역에서는 푸드트럭을 통한 패스트푸드로서의 한국 요리가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하고 있었다.
커다란 종이 용기에 밥을 담고, 불고기나 갈비 같은 한식 고기 요리를 듬뿍 얹어 주는 컵밥을 서빙하거나 멕시코 요리인 타코에 김치나 불고기 등을 속으로 채우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리스식 요리에 한국 요리를 접합하기도 했다.
기존의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요리에 한국의 풍미를 곁들이는 방식이기에 대중들이 접근하기도 쉬웠고, 또 꽤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당연히 한국의 음식 문화가 미국 사회에 퍼져 나가는 것은 유진에게도 좋은 일이다.
미국인들에게 한국은 아직 여전히 낯설기만 한 이국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제 몇 년 뒤에는 한국식 대중음악이나 드라마, 영화 따위가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될 것이다.
미국인들이 한국에 익숙해지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미국 제일의 부자가 된 유진에게 나쁠 것 하나 없는 일이다.
“미국에서 한국 요리로 비즈니스를 하는 업체들의 명단을 뽑아서, 각 업체들의 경쟁력과 약점을 확인하고, 그 비즈니스를 활성화할 방법을 찾아보도록 해.”
김치볶음밥이 들어간 타코를 맛있게 먹은 덕분으로, 유진은 그렇게 새로운 투자 분야를 확정지었다.
대부분의 비즈니스가 소규모이니 그렇게 대단한 투자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투자가 힘들 수도 있었다. 구멍가게 수준의 식당을 제대로 된 비즈니스로 만드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확보하고 있는 넷플릭스의 지분이 얼마나 되지?”
그렇다면 구멍가게 수준의 비즈니스에 조금은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