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양념치킨
“넷플릭스의 현재 시가총액은 600억 달러이고, 확보한 지분은 27% 수준입니다.”
요안나가 바로 보고했다. 숫자에 강한 그녀는 중요한 투자처에 대한 것은 어지간하면 머릿속에 넣고 있었다.
주가가 40달러 후반대이던 지난해 초부터 꾸준하게 모아 와서 지금은 120달러까지 올라가 거의 세 배에 달하는 수익을 보이고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도 진출해 있나?”
이번에는 투자 부분의 다른 직원을 불러 물었다. 넷플릭스 정도의 투자처는 항상 마크하고 있는 담당이 있기 마련이다.
“네. 올해 초에 진출했습니다.”
“한국에서 제작한 콘텐츠는?”
“한국의 감독 ‘봉’의 신작 영화에 제작비를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한국 관련 콘텐츠로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앞으로 몇 년 뒤의 일이다.
아직은 한 편의 영화에 투자하고, 몇 편의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정도였다.
“그쪽에 부탁할 게 있는데, 연락은 가능하지?”
“물론이죠. 전화 한 통화면 리드 헤이스팅스와도 통화가 가능합니다.”
대부분의 주식을 여러 투자기관을 통해 파생상품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어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그리 많지 않지만, 사실상 넷플릭스의 1대 주주나 마찬가지인 유진의 요청을 무시할 리는 만무했다.
“한국 요리에 관련된 프로그램 하나 정도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어차피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상, 한국 사람들 구미에 맞는 콘텐츠가 필요할 거 아니야?”
“그쪽에서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단순히 한국 요리보다는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한국계 푸드 트럭에 초점을 맞춘 프로면 좋겠어.”
한국에서 한국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내보내는 것은 미국인에게나 한국인에게나 크게 흥미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미국의 각 도시에서 영업하고 있는 푸드트럭이라면 미국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훨씬 더 흥미로운 주제일 것이다.
미국인들은 쇼에서 본 음식을 가까운 푸드트럭에서 직접 맛볼 수 있어서 좋고, 한국인들은 미국에 진출한 한국 요리로 인해 자긍심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넷플릭스로서도 한국 시장 진출을 기념하는 쇼를 만들어 한국인들의 비위를 맞춰 주는 의미가 있다.
결국 쇼를 성공시킬 수만 있다면 모두에게 좋은 기획이었다.
“얼마나 흥행할 수 있을지가 문제로군요.”
듣고 있던 모니카가 한마디 했다.
미디어 쪽은 그녀가 훨씬 더 전문도가 높다.
“가능하면 인지도 높은 배우나 가수를 기용하는 쪽이 낫겠습니다.”
“그렇겠네.”
유진도 바로 수긍했다.
“가능하다면 한국에 관심이 많은 인사면 좋겠어.”
유진이 가진 할리우드에서의 영향력은 월스트리트에서보다 오히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중에 유진의 손이 닿지 않은 영화가 드물 정도이다.
영화 제작자나 배우들 모두 유진과 눈도장을 찍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이 들어올 지경이었다.
단순히 제작 지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진의 눈에 들어온 영화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유진이 관심 있어 하는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냐고 묻는다면 누구라도 거절하지 않을 것은 틀림없다.
“탐 정도면 좋겠어.”
항상 성실하고, 인간성 좋은 미남 배우를 떠올리며 말했다. 한국에서도 수십 년 동안이나 인기를 이어온 사람이니 한국 사람들도 좋아할 것이다.
“스케줄을 알아보겠습니다.”
모니카가 바로 메모한다.
“그리고 매 회 스타 게스트 한 명씩 집어넣지. 예를 들면 첫 회에는 아리아나 정도면 좋겠군.”
어디까지나 유진의 취향대로 골라 본다.
“그 정도로 호화 캐스팅이라면 시청률은 보장되겠지요. 하지만 푸드 쇼에 그 정도의 탑스타를 쓰려고 할지 모르겠군요.”
문제는 역시 출연료일 것이다.
TV쇼의 스타라면 회당 100만 달러 수준으로 가능하겠지만, 무비스타라면 단위가 달라지리라.
“필요하다면 제작비 지원도 가능하다고 해.”
“보스가 직접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모니카가 의견을 내놓았다.
“보스가 나오면 한국에서의 시청률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유진의 인기를 잘 알고 있는 요안나도 동의했다.
“그렇다면 며칠 전 그 푸드트럭도 넣는 편이 낫겠어.”
김치볶음밥 타코는 유진이 이 사업을 생각하게 될 정도로 훌륭했었다.
만일 프로그램을 추진하면 당연히 뉴욕 편에 꼭 넣을 생각이고, 유진 자신이 그걸 먹으며 나오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군요.”
요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프로그램이 될지도 모르지만, 세계 제일 부자의 식도락을 위해 사용하는 취미 생활 비용 정도로 생각하면 그리 부담 갈 정도는 아니다.
물론 아직은 그저 아이디어 차원의 논의였다. 실제로 넷플릭스와 협상에 들어간 뒤에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유진은 실무진의 결정에 왈가왈부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유진은 TV쇼의 전문가도 아니고, 흥행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어떠한 분야이든 마찬가지이다. 경영진이 사소한 것에 전부 관여를 하면 배가 산으로 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유진은 자신의 의견을 내놓은 뒤에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쪽이 낫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내부적인 의견 교환이 오가고, 넷플릭스에 요구 사항을 보내기로 결론이 났다.
“넷플릭스 말고 방송국 중에 요리 쪽으로 가장 시청률이 높은 곳은 어디지?”
기왕 시작한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간의 많은 경험을 통해, 유진은 어떤 일이든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세몰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푸드 네트워크가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미디어 쪽으로는 모니카에게 물어보는 쪽이 낫다.
“유선방송을 보는 가구의 대부분이 푸드 네트워크를 보고 있으니, 넷플릭스보다 시청 가구가 많다고 할 수 있죠.”
“그쪽 지분은 없고…… 거기 지배 구조가 어떻게 되지?”
아쉽게도 그런 중소 규모의 방송사 지분은 가지고 있지도 않고, 가질 생각도 하지 않았다.
“푸드 네트워크는 디스커버리 채널과 넥스타 미디어 그룹의 자회사입니다. 디스커버리 채널이 66%, 그리고 넥스타가 33%를 가지고 있습니다.”
“디스커버리라…….”
앞으로 몇 년 뒤에 디스커버리가 워너브라더스와 합병을 하게 되는 일이 기억 났다.
“디스커버리 채널 쪽 지분을 늘리도록 하지.”
“한국 요리를 선전하기 위해서는 아니지요?”
요안나가 웃으며 물어본다.
“한국 요리가 얼마나 맛있는데.”
“음. 역시 게장이 참 좋았어요. 하지만 게장을 방송에 내보내면 사람들이 아주 기겁을 하겠군요.”
“산낙지나 개불까지 나오면 기절하는 사람도 나올지 몰라.”
미국인들의 상당수는 해산물에 거의 손도 대지 않는다.
간신히 새우나 게 정도는 즐기지만, 살아 있는 게나 새우를 양념에 버무린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정말 난리가 날 것이다.
“치킨도 좋았어요. 특히 다양한 종류의 양념치킨 말이지요.”
요안나는 어느새 한국에 방문했을 때 먹었던 음식들을 하나씩 꺼내 놓고 있었다.
“코리안 BBQ 치킨은 나도 좋아해요.”
모니카도 끼어들었다. 가끔 주문해서 먹고는 하는 한국식 양념치킨은 사무실 직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먹고 나면 속에서 불이 타는 것 같지만, 그래도 먹을 때는 최고라고요.”
한국 사람이 먹기에는 그냥 매운맛이 첨가된 정도라 느껴지는 양념치킨이지만, 여기 사람들한테는 지옥의 불맛으로 느껴지는 모양이다.
물론 멕시코나 그 아래 출신에게는 달콤한 요리에 불과할 뿐이겠지만.
“그러면 그쪽이 좋겠네. 한국식 양념치킨 프로그램을 하나 만드는 것도 말이지.”
여자들의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양념치킨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한국 요리인 모양이다.
아시안들이 많이 살고 있는 대도시가 아니라면 쌀을 먹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태반인 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주식인 쌀밥 요리를 소개하는 것보다는, 그들에게도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는 치킨을 먼저 공략하는 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도 아직은 아이디어 수준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우선은 푸드 네트워크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넥스타 미디어 그룹도 어느 정도 매수하고.”
“폭스 TV, 타임 워너, 뉴스코프도 관심이 있으신 거죠?”
요안나는 유진이 미디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양한 미디어 주식을 매수하려 한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만큼 현명한 여자였다.
단순히 한국 요리를 선전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투자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쪽 경영진을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약간의 사교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앞으로 3년 동안 주요 미디어들의 지분 20%씩은 보유하도록 하지.”
유진은 이 미디어 회사들의 주가는 알지 못한다. 지난 삶에서 그가 그다지 관심 깊게 여겨 온 적도 없다.
그저 그런 미디어 회사들이 인수 합병이나 분할 등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 갈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는 미디어 기업에 대한 투자를 진행해 오지 않았다. 당장은 충분한 자본을 쌓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간의 레버리지로 1조 달러에 달하는 자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지금은 입장이 다르다.
유진은 자신을 보호해 줄 거대한 보호 장치를 구상하고 있다. 정계, 관계, 그리고 미디어에서 자신을 지지해 주어야 한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니지만, 차분하게 미국 주류 미디어의 지분을 다수 확보하고, 후일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이다.
“한국 요리 프렌차이즈에 대해서는 어떻지?”
유진이 거액을 사용하고, 또 넷플릭스 경영진에게 약간의 압력을 행사하려는 것은 단순하게 취미 같은 것은 아니다.
“푸드트럭 쪽의 사업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일반 음식점들은 프렌차이즈로 만들기에는 난관이 너무 많습니다. 대부분 주먹구구식으로 경영을 하고 있고, 특별히 차별화되는 메뉴도 많지 않습니다. 서로 비슷비슷한 요리로 기존 고객들을 상대하는 것에 만족하는 형편입니다.”
아직까지는 주로 한국계 손님들을 위한 요리를 내놓고 있는 식당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그에 비해 푸드 트럭은 현지인의 입맛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훨씬 더 잠재력이 높다고 한다.
“푸드트럭 중에서 사업성이 높은 곳들을 확인하는 중입니다.”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만들 만한 곳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꼭 푸드트럭이나 코리안 레스토랑이 아니더라도, 한국계 비즈니스에 투자할 만한 게 있다면 전부 찾아봐.”
유진은 바로 한국 관련 비즈니스 부서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미국에는 무려 200만에 달하는 재미동포들이 있다. 그중 150만 명은 시민권자이고, 나머지는 한국 국적을 지닌 재미 한국인들이다.
상당한 숫자이지만, 미국 국민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유진으로서는 상당히 아쉬운 상황이다. 다시 한국에 돌아가 지역 비즈니스를 할 생각은 없으니, 앞으로도 대부분의 사업은 미국 위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미국 내에서 유진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줄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당장 교포의 숫자를 늘릴 방법은 없으니, 차선책으로 그들 중 미국에서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과 사람들의 숫자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