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16화 (116/363)

116화 만찬

“스파이더맨이 이번 달에 뉴욕에서 촬영이 있다고 합니다.”

모니카가 좋은 소식을 알아 왔다.

“그럼 부탁 좀 해 봐도 될까?”

유진은 다음 해에 개봉할 새로운 스파이더맨 프랜차이즈가 상당한 호평을 받을 것을 잘 알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의 다른 히어로 영화에 비해 훨씬 어린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이니, 홍보 효과도 높을 것이다.

“어려울 거야 없죠.”

모니카는 바로 마블 스튜디오에 연락을 취했다.

“바로 오케이네요.”

뉴욕의 길거리 푸드 트럭 앞에서 스파이더맨이 잠시 내려서서, 한국식 타코를 주문해 날아가는 장면을 추가하기로 했단다.

물론 여기 나오는 타코 트럭은 맨해튼에서 정말로 영업을 하고 있는 푸트 트럭이고, 유진의 투자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짜로 해 주겠다네요.”

블록버스터 영화의 PPL 비용은 수백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천만 달러까지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화 상영 내내 같은 브랜드의 상품이 노출되면 5,000만 달러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유진의 요구를 무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앞으로도 유진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자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하는 영화에 적지 않은 투자를 했으니, 그 정도 서비스는 해 줄 만한 모양이다.

“그리고 연말에는 블랙 팬서가 부산에서 촬영을 할 예정이라는군요.”

“부산 촬영이라면 굳이 뭔가 넣을 필요는 없겠네.”

유진이 원하는 것은 미국 시장에서 먹힐 만한 것들이다.

“그러면 이건 어때요? 미션 임파서블이 내년 초에 촬영을 시작해요. 그리고 빅뱅 이론도 괜찮고요.”

사실 PPL을 하려면 집어넣을 매체는 잔뜩 있다. 문제는 광고 효과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유진은 광고 효과에 상관없이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는 재력이 있었다.

“모니카가 적당한 곳들을 섭외해서 새 팀과 협의 후 진행해.”

한국 관련 비즈니스 부서에 그렇게 새로운 일이 할당되었다.

1년에 적어도 1억 달러 이상으로 꾸준하게 진행을 하면 언제고 반응이 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에서 진행하는 한국 관련 사업에도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아부다비와 두바이에서 추가 투자를 요청해 왔어요.”

요안나가 주요한 고객들의 요청을 보고해 왔다.

“FO 펀드에 추가 투자가 불가능하면, 자산 운용사 쪽 규모라도 늘려달라는군요.”

일반적인 투자회사들이라면 고객을 모집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지만, 유진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투자 요청이 들어오고, 이미 투자를 해 놓은 곳에서도 규모를 늘려달라 사정한다.

“슬슬 규모를 키울 때가 되기는 했지. 어떤가요? 윌리엄?”

요안나가 운영 중인 투자 오피스에서 받아들이는 각국 정상을 위한 펀드 FO에는 이미 할당량이 차 있으니, 윌리엄의 자산운용사 쪽 비율을 늘려야 하기에 윌리엄을 불러 그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윌리엄이 맡은 자산운용사는 유진이 맡긴 50억 달러와 아부다비 투자청, 두바이 투자공사, 노르웨이 국부펀드(Norway SWF) 세 국부펀드로부터 각기 50억 달러씩을 받아 200억 달러의 규모로 시작했다.

그 뒤로 아주 다양한 기관과 개인으로부터 계속해서 투자 유치를 요청받아 왔고, 그중 소수의 몇 곳만 받아들여 400억 달러 규모로 유지하고 있었다.

“어때요? 좀 더 받아들여도 괜찮을 거 같은가요?”

윌리엄은 신중한 사람이다. 많은 자산을 운용하는 것보다, 최대한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사실 유진이 윌리엄에게 독립적인 자산운용을 맡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유진은 여전히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 가고 있었고, 미래의 일들을 알고 있다 해도 위험을 완전히 피해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기에, 보험으로서 윌리엄에게 일부를 맡긴 것이다.

더군다나 외부 투자금을 굴리는 것에서 오는 이점도 적지 않다.

투자 수익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챙길 수 있고, 유치한 투자금으로 주식을 매수해서 기업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유진이 선행 투자한 종목을 후행으로 따라오며 자산 가치를 높이고, 안정적인 엑시트를 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여러모로 윌리엄의 자산 운용사는 유진에게 도움이 된다.

“이제는 좀 더 늘려도 괜찮을 듯합니다.”

윌리엄도 자신을 가진 모양이다. 그가 이끄는 자산운용사는 블랙록이나 뱅가드그룹 같은 수위권 자산운용사 출신의 능력 있는 딜러들을 다수 영입해 유진이 건네주는 약간의 정보로 여느 자산운용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익을 올리고 있다.

“어느 정도까지 올릴까요?”

“음…… 제한을 두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잘됐군요.”

유진도 윌리엄의 자신감이 기꺼웠다. 여러 이유에서 윌리엄이 운용하는 자산은 많을수록 좋다.

“그렇다면 우선 아부다비와 두바이 쪽 자금을 받아들이도록 하죠. 그 외에도 추가로 들어오는 투자 요청은 어지간하면 받아들이도록 하지요.”

“그렇다면 미니멈은 개인은 1억 달러, 기관은 30억 달러로 하겠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투자은행인 브라운 브라더스 해리먼은 적어도 3,000만 달러 이상의 자산을 지닌 고객만을 유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윌리엄의 자산운용사는 투자자의 자산 규모가 아니라 투자 액수로 엄청난 크기의 허들을 놓았으니, 어지간한 대형 기관이 아니라면 감히 투자 문의조차 어려운 셈이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말이다.

사실 한 자산운용사에 1억 달러를 맡길 수 있는 개인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하지만 그런 제한에도 불구하고, 유진에게 돈을 맡기려는 사람은 넘쳐나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유진이 이룩한 투자 실적에 함께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윌리엄이 문호를 개방한 뒤로, 각국의 기관투자자들로부터 투자 요청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역시 오일머니의 위력이 대단하더군요.”

며칠 뒤에 다시 만난 윌리엄이 웃으며 말했다.

“아부다비투자청과 두바이 국부펀드에서 각각 50억 달러씩, 새롭게 쿠웨이트 투자청과 사우디아라비아 PIF에서 100억 달러씩 투자 요청을 해 왔습니다. 카타르투자청(QIA)에서도 3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중동의 거부들이 각기 개인 자금을 내놓은 것이 100억 달러 가까이 된다고 했다.

이것으로 중동의 자금만 500억 달러가 넘어선다. 그런데 윌리엄의 말을 들어 보면 이제 겨우 시작인 모양이다.

“그리고 노르웨이 정부연기금에서도 다시 8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했습니다. 미니멈을 정하기를 잘했습니다. 소액까지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충분한 직원이 없습니다.”

물론 윌리엄이 말하는 소액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꽤 다를 것이다.

“당분간은 이 상태를 유지하다가, 직원이 확충되면 차츰 문을 넓히도록 하지요. 목표는 내년까지 5,000억 달러,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두 배 정도로 잡겠습니다.”

자산운용사를 맡은 뒤로 윌리엄의 자신감이 넘쳐나 보였다.

“좋아요. 그리고 운용 자산 중 일정 부분은 미디어 그룹에 투자하도록 하죠.”

유진이 윌리엄에게 세부적인 지시를 내리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한 번 그가 말한다면, 틀림없이 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뉴스 미디어는 물론이고, 폭스와 소니, 그리고 디즈니 쪽에도 신경을 쓰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큰 수익을 낼 수 없는 기업에 대한 투자도 이렇게 자산운용사를 통해서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큰 수익이 아니라곤 해도 일반적인 자산운용사 기준에서라면 충분한 수준의 수익이 날 것이고, 매수한 지분으로 유진이 원하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 * *

그러던 어느 날, 유진은 한국에서 날아온 손님을 맞이했다.

“반갑소이다. 김충식이오.”

60대의 노 정치인이 당당하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청해 왔다.

대한민국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인 김충식이 면담을 요청한 지 닷새 만에야 간신히 유진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요 몇 년 사이에 강 회장의 성취가 아주 놀랍습니다. 특히 이렇게 세계 경제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그러한 성취를 올렸다는 것이 나뿐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를 뿌듯하게 만들어 주고 있네요.”

첫 만남의 자리에서는 늘 그렇듯 김충식도 평범하게 찬사부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당에서도 강 회장에게 관심이 아주 많아요. 얼마 전에 중진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모두들 강 회장과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난리들이었어요. 한데 강 회장이 좀처럼 한국에 들어오질 않으니 어디 얼굴을 볼 수 있어야지요.”

“이쪽에서 벌여놓은 일들이 많으니 시간이 나질 않더군요.”

유진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좋은 일이에요. 사실 강 회장이 한국에서도 일을 크게 벌이고 있기는 하지만, 뉴욕에서 하는 거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정도이죠?”

“사소하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뭐, 비중이 작은 것은 맞습니다.”

“그러니까요. 강 회장이 보고 싶다고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 할 수도 없는 게고. 그래서 내가 직접 날아왔어요. 마침 뉴욕에서 회의가 하나 열린다기에 핑계 삼아 말이지요.”

공치사 속에 자신이 억지로 시간을 만들어 여기까지 행차했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저도 의원님에 대한 말씀은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김 의원님이야말로 다음 세대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실 리더이시라 알고 있습니다.”

유진도 적당히 공치사를 해 준다.

“아이구! 그렇게까지야. 하하. 여하튼 세계에서 이름난 강 회장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참 기쁘네요.”

흡족한 미소를 지은 김 의원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참 멋진 곳이네요. 뉴욕에 몇 번 와 보기는 했지만, 센트럴파크를 이렇게 내려다본 적은 없어요.”

김 의원은 유진의 자택 테라스에 마련된 식탁에 앉아 난간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공원의 모습에 감탄하며 말했다.

“이번에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맨해튼에서 가장 핫한 레스토랑은 강 회장의 저택 테라스라고. 정말로 빈말이 아니었네요.”

뉴욕 플라자 호텔을 매수한 뒤로 유진은 호텔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콘도 중 매물로 나온 저택 세 개를 사들여 하나의 거대한 저택으로 만들고, 이제는 트럼프 타워 대신 이곳에서 주말 사교 파티를 열어 오고 있었다.

전보다 면적이 세 배 가까이 되니 더 많은 사람을 부를 수 있었고, 또 센트럴파크 바로 앞이라 뷰도 훨씬 좋다.

파티를 위해 준비하는 음식들은 바로 아래 플라자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올라오니, 요리 또한 나무랄 데 없다.

김 의원의 말처럼 뉴욕 최고의 뷰를 자랑하는 식당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멋진 자리를 나 혼자 독차지하고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군요.”

이날은 파티가 아니라, 김 의원 한 사람만을 초대한 만찬의 자리를 마련했다.

음식으로 가득한 식탁에는 유진과 김 의원 두 사람만이 앉아 있고, 주변에는 대여섯이나 되는 서버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식은 음식을 치우고, 새로운 음식을 준비해 준다.

단 두 사람을 위한 자리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화려한 자리이다.

“샤토 슈발 블랑 입니다.”

잔이 빌 때마다 소믈리에가 새로운 와인을 따서 따라주었다. 벌써 나와 있는 와인의 종류만 대여섯 가지나 된다.

“이런 호사는 처음이에요.”

김 의원의 얼굴이 연신 씰룩거린다. 뉴욕에 와서 며칠 만에야 겨우 만나게 되어 조금 마음이 상했다가, 거침없는 환대에 마음이 풀어진 모양이다.

“마음에 드시니 다행이로군요.”

“참! 그런데 얼마 전에 한국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있지 않았습니까?”

슬슬 본론이 나오는 모양이다.

“네. 저도 영사관에서 투표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면서도, 유진은 짐짓 모르는 척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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