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총공세
“독일과 미국, 네덜란드, 그리고 중국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습니다. 특허 분석을 해 본 결과 승소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유진이 가장 먼저 인수한 회사인 퓌클러 짐머만은 프랑크프루트에 위치한 정밀기계 회사로, 그동안 꾸준한 투자를 통해 정상화시킨 끝에 이제 조금씩 수익이 발생하고 있는 곳이다.
유진의 부친이 경영하는 성진정밀과의 기술 교류를 통해 양쪽 회사에 기술력이 높아졌고, 다산자동차에 신규 부품 납품을 성사시키며 수익성도 개선되었다.
하지만 유진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퓌클러 짐머만의 특허가 대양중공업에 의해 무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삶에서 유진은 중국의 한 업체가 퓌클러 짐머만 정밀기계를 인수한 뒤, 대양중공업이 그 회사 특허의 유사 특허를 출원한 사실을 알고 법정 분쟁을 벌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퓌클러 짐머만이 중국 업체에 인수되기 전에 먼저 그 회사를 인수해 버린 것이었다.
“특허를 좀 더 많은 나라들에 내놓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쉽게도 퓌클러 짐머만은 대기업이 아니라 자국인 독일과 인접국인 네덜란드, 미국 그리고 중국에만 특허를 출원해 놓았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꽤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유진이 인수했을 때에는 다른 나라들에 특허를 출원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늦어 버린 뒤라 실익이 없었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독일과 네덜란드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허 분쟁에서 승소하게 되면, 해당 특허를 사용해 건조된 선박은 승소한 국가에 정박할 수 없다.
지난 삶에서 퓌클러 짐머만을 인수한 중국 기업은 독일과 중국에서만 소송을 진행했고, 대양은 밝혀지지 않은 적지 않은 액수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해당 특허를 구매한다.
물론 유진은 이 특허를 대양에 팔 생각 따위는 없다.
오히려 반대이다. 그렇지 않아도 절박한 상황에 빠진 대양 그룹을 궁지로 몰아넣기 위해 사용할 생각이다.
공매도 사태가 끝난 뒤 대양중공업의 주가는 다시 예전의 바닥 이하인 14,000원 아래로 떨어졌다.
한 달 전만 해도 시가총액이 1백조나 나가던 기업이 이제는 1조 원을 가까스로 넘고 있을 뿐이다.
유진은 SS파트너스와 미국의 여러 투자기관을 통해 대양중공업을 당장이라도 인수할 정도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유진이 원하는 것은 대양중공업 인수 따위가 아니다.
이렇게 엉망이 된 상황에서도 대양 그룹 사주 일가는 결코 대양중공업을 손에서 놓지 못할 것이다.
대양중공업이 가지고 있는 계열사의 지분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업이 부실화되며 내부적으로 숨기고 있는 분식회계가 노출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진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숨기고, 대양중공업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어떠십니까? 자택은 마음에 드시나요?”
보고가 끝나고 유진은 잠시 시간을 내어 에릭 홀더의 근황을 물었다.
“마음에 들다 뿐입니까? 집사람이 무척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워싱턴에서 줄곧 머무르다 뉴욕으로 올라왔는데, 이런 멋진 저택을 제공 받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사실 유진과 함께하기로 한 것은 샤론이 뉴욕 생활을 원했기 때문이기도 해요. 워싱턴에서 45년을 살았으니까요. 샤론과 결혼한 것부터 생각하면 벌써 26년이고요.”
쉬지 않고 만족함을 표시하는 것을 보니 진심인 모양이다.
하기는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대형 콘도에, 1,000만 달러의 연봉, 그리고 추가로 직원 전용의 펀드 가입이라는 조건들을 생각하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워싱턴의 전설적인 변호사이며, 법무차관으로서 클린턴과 그리고 법무장관으로서 오바마와 합을 맞춰 온 에릭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유진으로서도 과한 비용을 지불한 것은 아니다.
“닥터 샤론이 병원을 옮겨야 해서 불편해할 거라 생각했는데요.”
워싱턴의 저명한 산부인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던 에릭의 아내인 샤론은 뉴욕에 와서 새로 개업을 한 모양이다. 어쨌든 그녀가 만족한다니, 유진으로서도 잘된 일이다.
“언제 한 번 찾아 주세요. 샤론이 유진을 다시 한번 보기를 원해요.”
“그렇게 하죠. 샤론에게 쿠키는 잘 받았다고 말씀 전해 주세요.”
작은 선물이라며 아내가 만든 쿠키를 가져온 에릭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럭저럭 전 법무부 장관 내외와의 관계는 좋은 인연이 될 것 같았다.
사실 유진에게는 이번에 영입한 전 법무부 장관 에릭 홀더와 전 CIA 국장인 존 오웬 브레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이다.
두 거물급 인사를 필두로 앞으로도 정부 요직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을 대거 영입할 계획이니,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했다.
* * *
대양중공업이 독일계 기업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은 처음엔 미디어에서 그리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러한 종류의 특허 분쟁이 대단한 이슈가 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인 데다, 그렇다고 유진이 이 뉴스를 굳이 띄울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그냥 가벼운 선제공격에 불과하다. 본 게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 특허가 어떤 의미인지 모를 것이다.
대양 그룹에 대한 공격은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되었다.
[다산전자는 오늘 미국의 반도체 업체인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는 지난해 초 대양전자에서 인수에 나섰다가 말레이시아에서 벌어진 테러사태로 인수가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대양전자는 약 300억 달러에 달하는 인수 금액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 협상에서는 당시의 1/3에 불과한 112억 달러라는 가격에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다산전자가 프리스케일을 인수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세간의 이목은 다시 대양 그룹으로 향했다.
[대양그룹이 프리스케일을 인수할 당시 그렇게 높은 가격을 써넣은 것은 미국의 사모펀드를 통해 비자금을 형성하려 했다는 의혹이 있었는데요, 이번 다산전자의 인수 금액이 알려지며 다시 한번 당시 대양전자가 계약했던 인수 가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대양 그룹 측에서는 억측에 불과하다며 부인할 뿐, 더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 물어볼 것도 없지. 200억 달러를 떼어먹을 생각이었나 봄.
- 200억 달러면 20조 원이 넘어. 지독한 놈들이네.
- 역시 대기업은 화끈하네. 20조 원을 슈킹할 생각을 다 하고.
중간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당시 프리스케일의 정상가가 100억 달러가 아니지만, 일반 대중들이 그런 모든 사실을 알 도리도, 또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같은 회사를 대양은 300억 달러에 사려 했고, 다산은 110억 달러에 샀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사실 대양 그룹 사주 측에서 노리는 액수는 그에 비하면 훨씬 적은 액수였지만, 그렇다고 사실은 5조 원만 해 먹을 생각이었다고 항변할 수도 없다.
- IMF 때도 엄청나게 분식회계를 해 놓고 정부 지원을 수십조 원이나 받았잖아?
- 그러니까 말이야. 프리스케일을 인수했다면 또 부실이라고 정부에서 얼마나 지원을 받았으려나?
- 20조 원이 아닐 거야. 정부 지원금까지 하면 30조 원을 꿀꺽했을 수도 있음.
뉴스에 달린 댓글이며, 커뮤니티에는 온통 대양 그룹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양중공업 사태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던 대양전자는 다시 한번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다시 며칠 뒤, 미디어포커스는 대양 그룹과 관련된 새로운 보도를 내놓았다.
[지난 6월 대양자동차는 맥스웰 그리피스라는 미국의 전기자동차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인수대금으로는 약 3억 달러가 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본지 기자는 이번 거래에 대해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다름이 아니라 맥스웰 그리피스라는 회사의 초기 투자자인 캘리포니아의 NT소머셋과 필라델피아의 TBD라는 두 곳의 벤처캐피탈이 대양 그룹과 관련이 있다는 의혹이다.]
또다시 터져 나온 의혹에 사람들의 관심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벤처캐피탈은 유망한 초기 기업에 자본을 투자하고, 일정한 지분을 받아 향후 기업의 성장을 나누어 갖는 형태의 투자기관이다. 한데 NT소머셋은 유나이티드 엑셀런트라는 사모펀드의 자회사이고, 필라델피아의 TBD는 DL캐피탈라는 사모펀드의 자회사이다.]
[지난해에 미디어포커스는 대양전자가 미국 반도체 회사인 프리스케일 세미컨덕터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DL캐피탈이라는 회사가 사실은 대양 그룹의 미국 비자금을 관리하는 회사라는 의혹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 또다시 DL캐피탈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어째서 대양 그룹의 해외 인수에는 매번 DL캐피탈이라는 사모펀드가 끼어 있는 것일까?]
다분히 공격적인 논조의 보도는 그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또한 미디어포커스는 유나이티드 엑셀런트라는 회사에 대해 취재를 하는 도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년 전에 설립된 유나이티드 엑셀런트의 초기 창업 멤버 중 대양상사의 미국지사 출신이 두 명이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것 역시 우연일까? 본지는 보도에 앞서 유나이티드 엑셀런트에 대한 심층적인 취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대양자동차 너도냐?
- 정말 해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해 먹는구나? 중공업, 전자, 자동차. 또 어디서 얼마나 해 먹은 거야?
- 이쯤 되면 대양 그룹을 해체하는 편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거 아닌가?
- 맞아. 대양 그룹 같은 구시대적인 재벌 기업이 국가 경제를 말아먹고 있는 거야.
- 정부는 뭐 한대? 인터넷 신문사가 취재할 수 있는 정도면, 검찰은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 검찰은 뭐하냐? 또 대양 그룹 봐주기냐?
- 그런데 대양중공업에 관련된 특허 소송은 뭐지?
- 대양중공업이 특허 분쟁에서 패배하면 대양중공업에서 만든 배들은 미국하고 독일, 네덜란드, 중국에서 압류당함.
- 진짜? 압류를 당해? 배를 통째로?
- 선박 특허가 그만큼 위험한 일이래. 수많은 부속 중에 하나만 특허로 걸려도 소송 걸린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라서 특허 관리가 중요하다네.
- 그럼 대양중공업 망했네.
- 벌써 망한 지가 언제인데. 이미 골로 가 버렸어.
그런 와중에 유진에 대해 원망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 X바! 대양중! 22만 원에 샀는데 지금은 만 원이다.
- 강유진이 인수한다며?
- 별생각이 없나 본데?
- 대양중공업에 이번에 특허 소송한 회사가 강유진 거래더라.
- 뭐? 그럼 어떻게 되는데?
- 주가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때 인수한다고 하겠지. 지난번에도 주가가 너무 올라가니까 바로 손 뗐잖아.
- 강유진은 책임져라! 난 70만 원에 물렸다!
- 그러니까 위험하다고 사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잖아.
- 여하튼 강유진이가 인수한다고 해서 오른 거잖아!
- 그니까 너무 많이 올라 위험하다고 했잖아! 강유진이가!
물론 자신의 욕심 때문에 꼭대기에 올라탄 사람들을 지지하는 경우는 거의 보기 힘들었다.
“반응이 굉장합니다. 대양 그룹의 이미지는 나락이라 할 정도를 넘어섰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대양이라는 말만 들어도 환멸스럽다는 정도입니다.”
김환이 신이 나서 보고를 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