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20화 (120/363)

120화 핀테크

“홍 의원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이 시점에서 증권을 털면 어쩌라는 말이야?”

대양자동차 류근호 사장이 분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금융감독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대양증권의 자료를 실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오경덕 비서실장을 불러 대책을 물어보고 있었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다.

“홍 의원 쪽에서도 방법이 없다는 모양입니다. 정치권이 전부 우리와 거리를 두려 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답니다.”

“우리한테 돈을 받은 게 홍 의원 하나가 아니잖아? 다들 배때기에 처넣어 줄 때는 그렇게 받아 챙기고 지금 와서 모른 체를 한다고?”

“당장의 파고가 너무 높습니다. 최근 그룹의 이미지가 너무 좋지 않아, 얽혔다가는 정치적으로 손해가 심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얽히기 싫다고 내빼면 그만이야? 지난 40년 동안 우리가 퍼 준 액수가 얼마인데! 우리가 넘어지면, 지들은 괜찮을 줄 알아?”

대양 그룹이 수십 년 동안 정관계에 쌓아 올린 인맥의 중심에는 엄청난 액수의 금전 관계가 얽혀 있다.

그리고 거대 재벌 그룹이라면 으레 그래 왔던 만큼, 당연히 무수한 물증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대양 그룹 또한 그동안 정치권 인사들에게 가져다 바친 돈에 대한 장부를 숨겨 놓았다.

“그걸 터트리면 어떻게 되는지 다들 알고 있을 텐데?”

류근호가 비웃듯이 말했다.

“그건 최후의 수단…… 아니, 사용해서는 안 될 수단입니다. 그쪽도 그걸 알고 있고,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대로 우리만 죽어 버리라는 말이야?”

“아뇨. 최악의 순간만큼은 피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대양 그룹의 이미지가 최악이기에 정치권에서도 섣불리 손을 들어줄 수는 없지만, 대양 그룹의 침몰만은 막아 줄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슬슬 퇴로를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퇴로라고?”

“증권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공업도요. 정리할 건 정리하고, 내실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경덕 비서실장은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중공업과 증권이면 되겠어?”

대양자동차의 사장인 류근호로선 중공업에 대한 미련은 크게 없다.

단지 순환출자의 한 축이기 때문에 그걸 빼앗기면 바로 자동차에도 영향이 오는 게 문제일 뿐이다.

“최대한 시간을 벌어 보겠습니다. 대양중공업이 가지고 있는 계열사 지분을 빼내고, 중공업을 시장에 내놓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증권도 마찬가지이고요. 어차피 부실 때문에 유지하는 게 더 손해입니다. 지분만 정리하고 문을 닫는 편이 낫습니다.”

“음…….”

“홍 의원도 그건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적당히 지금 사태를 봉합하려 할 겁니다. 아무리 이미지가 좋지 않아도 그룹이 통째로 침몰하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요.”

“좋아. 그렇다면 그쪽으로 밀고 가 보지.”

“그리고 자동차와 전자 쪽에서도 책임질 사람을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중공업도 문제이지만, 프리스케일과 맥스웰 그리피스 인수 때문에 그룹의 이미지가 나빠졌으니 누군가가 들어가야 합니다.”

대양전자가 프리스케일 인수로 수십조의 이익을 챙기려 했다는 사실과, 대양자동차가 맥스웰 그리피스 인수에서 마찬가지로 큰돈을 챙기려 했다는 것 때문에 이미 국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 우리 쪽은 함 부사장으로 하지.”

류근호는 고민도 하지 않고 그를 대신해 감옥에 갈 사람을 선택했다.

“전자 쪽도 적당한 사람으로 알아서 할 거야.”

“양사에서 무게감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특히 전자 쪽이 심각합니다. 액수가 다릅니다. 사람들은 20조 원을 삼키려 했다 믿고 있습니다.”

“20조 원이 말이 돼?”

“사실 여부는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어정쩡한 인사를 내놓았다가는 화살이 위로 향할 수도 있습니다.”

“위라…… 근일이 말인가?”

류근호는 자신의 동생을 거론했다.

“최악의 경우라면 그리될 수도 있습니다.”

“흠…….”

류근호의 고민이 길어졌다.

“확실히 액수가 크기는 하지?”

그러다가 씩 웃으며 물었다.

“20조 원이라면 지금까지 국내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보다 큽니다.”

“그래. 근일이란 말이지…… 자네 생각에는 어떤가? 근일이가 책임을 지면 적당히 끝나겠어?”

“사장님께서 납득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납득할 리 없지. 그 자식이 욕심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까…… 그냥 놔둬.”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류근호는 웃고 있었다.

* * *

“금융감독원에서 대양증권에 대한 정밀 감사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곧 검찰의 고발 조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환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알려 왔다.

“대양증권은 이제 무너질 일만 남았습니다. 대양중공업도 부실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습니다.”

“SS파트너스가 확보한 지분이 얼마나 되지?”

“대양중공업은 14%, 대양증권은 11%입니다.”

한국에서도 유진이 해외 투자기관을 통해 보유한 대양 그룹 지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정도면 그룹 계열사 지분을 맘대로 처분하지 못하게 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그래. 다른 것보다 그걸 신경 써. 이 기회에 그룹 지분을 헐값에 넘기고 순환 구조를 조절하려 할 테니까.”

유진은 언제라도 대양중공업을 빼앗을 수 있을 만큼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그걸 알리지 않고 있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상대가 방심하도록 만들 생각이다.

“그리고 대양자동차 사장과 대양전자 사장 사이에 미묘한 알력 싸움의 기류가 보인다고 하더군.”

“미묘하다면? 집안싸움인가요?”

“그렇지. 회장이 쓰러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양이야. 그러니 형제들끼리 그룹을 누가 손에 넣을지로 다툼이 생기는 게 당연하지.”

“확실히 그 영감이 쓰러지니 엉망이 되는군요. 이런 상황에 내분이라니.”

“이런 상황이니 더하지. 그나마 외국에 감춰 두었던 비자금도 다 날려 먹었으니, 그룹의 가치가 더 커져 버린 거야. 더군다나 셋째도 떨어져 나갔고. 당분간 둘이 정신없을 거야. 회사도 지켜 내고, 형제도 견제해야 하고 말이지.”

국가의 위기 상황이나 집안의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내부 분열이 일어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차라리 잘 되고 있을 때라면 나누어 먹어도 큰 몫을 챙길 수 있지만, 위기에 닥치고 보면 남은 것을 알뜰하게 챙겨야 한다는 욕심이 머리를 들기 마련이다.

“대양 그룹 내부의 지분 관계에 신경을 써야겠군요. 수장들이 그러면, 내부적으로도 다들 눈치 보기 바쁘겠습니다.”

“그러겠지. 그건 그렇고, 그쪽에서 일들을 잘하고 있네. 벌써 쉰 곳이 넘어섰어.”

유진은 SS파트너스와 SS벤처의 투자 현황을 살펴보며 노고를 치하했다.

“비바 쪽이 성과가 좋아.”

“그렇죠? 간편 송금 서비스가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어차피 은행 어플이 있는데, 굳이 추가로 어플을 내려받고, 다시 은행을 연결하고, 번거롭잖아요. 그런데 이게 웬걸!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네요.”

“그동안 은행 어플이 너무 불편했으니까.”

“맞아요. 다들 앱을 만들 때 고객의 편의성이 아니라, 회사 사정을 가장 우선했었지요. 앱에서 송금 한 번 하려고 해도 보안카드를 꺼내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은행들은 항상 사고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해서 고객들에게 불편함을 강요하는 일이 생겨도 그걸 고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래놓고 막상 고객 계좌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기 바빴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계좌에서 전 재산이 사라져 버려도 고객 탓을 하기 일쑤였다.

금융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수화되고, 책임지는 것을 싫어한 결과이다.

유진이 투자한 바비리퍼블릭의 앱은 그런 고객들의 가려움을 긁어 주었다.

공인인증서 따위 없이 가볍게 버튼 한 번으로 송금을 해 주고, 과도한 책임을 지우지도 않는다.

호응이 좋은 것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유진의 두둑한 투자 덕분에 원하는 기능을 하나씩 하나씩 추가하고, 마케팅에 조금도 어려움이 없다.

“송금뿐 아니라, 다양한 금융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이 잔뜩 생겨나고 있어.”

소위 말하는 핀테크 분야의 성장은 지금이 시작이다. 그리고 유진은 그런 핀테크를 한국이든 미국이든 상관없이 선점할 생각이다.

“고생들 많아.”

물론 경영을 잘한 것은 사업을 진행 중인 벤처기업 쪽이지만, 그걸 뒷받침해 주기 위해 노력한 것도 치하할 만하다.

“솔직히 어려울 게 있나요. 저희가 올려보내는 기업들을 컨펌해서 내려보내 주시면, 그대로 하는 게 전부인데요.”

“그대로 하는 게 제일 어렵지. 안 그래?”

미래에 대한 지식을 잔뜩 갖고 있어도, 그걸 제대로 돈으로 만들려면 지시를 제대로 이행해 줄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미국에서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능력 있는 인재들을 확보하는 것에 가장 큰 힘을 쏟고 있었다.

비록 한국 스타트업 시장이 세계적 규모로 보았을 때는 그다지 주목할 만한 크기는 아니지만, 유진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역시 미국과 더불어 한국의 사정이다.

그러니 한국의 산업에 대한 투자가 미국에서의 투자 다음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김환을 비롯한 과거의 유능한 동료들을 처음부터 끌어온 것이 정답이었다.

이미 서로 합을 맞추고 있던 사람들이라 새로이 만들어진 조직이어도 큰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었고, 유진의 지시를 빠르게 수행할 수 있었다.

덕분에 미국에서 투자한 기업보다 한국에서 투자한 기업의 숫자가 더 많을 정도이다.

“하하. 하긴 그렇네요. 다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모두들 명성에 있을 때보다 두 배씩은 한다고요.”

“너무 열심히는 하지 마. 길게 봐야지.”

대한민국의 대기업이나 월 스트리트의 투자 회사, 혹은 IT 기업 등지에서 근무하는 엘리트 직원들의 업무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도 위에서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하나 같이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일에 몰두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발적으로 몰두할 생각이 없는 직원이라면 일찌감치 떨어져 나가기 마련이다.

그들의 업무를 보고 있자면, 여느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들에 비해 세 배, 네 배의 연봉이 이해될 정도이다.

사실 유진 또한 그렇게 수십 년이나 일해 보았다.

그 때문에 유진은 그런 사람들은 그저 타고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에 미쳐 있고, 자신이 낸 업무 성과 자체에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사람들만이 그런 일에 두각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그래도 다들 건강에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체력을 위해 투자하고 있기 마련이다.

“건강이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 말이야. 아주 오랫동안 시킬 일이 많으니까.”

유진이 알고 있는 미래의 정보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수십 년쯤은 남보다 선점할 사업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런 사업들을 유진 자신이 직접 경영할 생각 따윈 조금도 없다.

사업을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투자를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법이니까.

때문에 유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성공한 기업들의 경영진을 바꾼다거나, 경영진의 사업 방향에 대해 간섭할 생각도 없다.

그저 묵직한 돈을 투자하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에 도움을 주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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