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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121화 (121/363)

121화 페이팔 마피아

“그리고 앤트 그룹 쪽 비즈니스를 좀 더 연구하고, 관련 스타트업이 있으면 최대한 투자하는 쪽으로 나가 봐.”

유진은 김환이 이끄는 한국 쪽 투자에 대해서도 큰 그림을 그려 주고, 실무적인 부분에서는 점점 더 높은 재량권을 주려 했다.

그가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한 지식은 아마 시간이 흐를수록 의미가 퇴색하게 될 것이다.

유진 자신이 세계에 관여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비 효과를 일으켜 많은 것이 변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유진은 자신의 기억을 절대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으려 했다.

그보다는 아직 미래 지식으로 인한 영향력이 남아 있을 때, 스스로의 판단으로 투자를 성공시킬 유능한 사람들을 기르는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뉴욕의 금융 투자 분야에서는 요안나와 윌리엄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고, 세계 각지의 벤처 투자 사무소의 헤드들이 그랬다.

모두들 유진의 지난 삶에서 각자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던 사람들이니, 유진의 서포트가 있으면 더욱 대단한 결실을 보여 줄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런 역할을 김환과 유진의 옛 동료들에게 바라고 있었다.

“앤트파이낸셜이면 역시 핀테크 쪽으로 중점을 두라는 말씀이시죠?”

“어. 10년을 바라보면 역시 파이낸셜과 모바일의 결합이 가장 중요할 거야.”

“사실 지금까지 한국의 핀테크가 경제 규모에 비해서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는 거 같기는 하더군요.”

아쉽게도 김환의 분석은 상당히 정확하다.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핀테크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지역은 미국도 유럽도 아닌 아시아다.

가장 큰 원인은 지금까지 아시아 여러 나라의 금융 분야가 미국이나 유럽보다 발전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모바일을 통한 금융 서비스가 높은 접근성을 바탕으로 손쉽게 새로운 시장 규모를 늘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 은행을 가 본 사람이라면, 단순하게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고 송금을 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심이 요구되는지 잘 알 것이다.

은행의 창구에서는 한 명을 처리하는 데 30분이 걸리기 일쑤이고, 그나마 그런 처리를 위한 창구마저 한두 개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앞에 네댓 명만 기다리고 있어도 반나절이 지나 버리고 마는 은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학을 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바일을 이용한 서비스는 그저 몇 번의 손동작만으로 아주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당연히 사람들의 수요가 핀테크 산업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핀테크 기업의 선두는 이런 아시아의 스타트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핀테크 기업 역시 중국의 앤트파이낸셜(Ant Financial)이다.

설립된 지 이제 2년밖에 되지 않는 앤트파이낸셜은 알리바바 그룹의 계열사로, 중국의 온라인 결제 시장의 60%에 달하는 점유율을 갖고 있다.

앤트파이낸셜에서 서비스 중인 알리페이는 편리한 결제와 무료 송금을 무기로 12억 인구 중 5억 명에 달하는 실제 사용자를 갖고 있으며,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더욱 큰 회사이다.

사실 유진도 알리페이의 성장 가능성을 잘 알고 있기에, 앤트파이낸셜의 창업 초기부터 투자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미 중국의 테크 산업계에 커다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알리바바 그룹의 자본과 인터넷, 모바일 결제 시장의 확대를 예상한 중국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어 유진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겨우 10억 달러를 넣고, 10%도 되지 않는 지분을 받아 낸 것이 전부이다.

꽤 아쉬움이 남지만, 어차피 유진이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그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더 큰 액수를 넣었다면 중국의 공산당과 경쟁을 하거나 혹은 협력이 필요한데, 그 어느 것도 유진이 원하는 바는 아니다.

중국 투자에 있어 가장 큰 난점은 바로 불확실성이고, 그 불확실성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 정부와 공산당이 언제라도 국가 경제를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앤트파이낸셜 또한 급성장의 와중에 중국 정부의 지도를 받고 한 번 휘청거리는 상황에 닥치게 될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그쪽에 대해서는 그냥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 낫다.

“앤트파이낸셜 외에 스트라이프 쪽도 신경을 쓰도록 해.”

“스트라이프면 미국이군요.”

“알고 있었네?”

유진이 웃으며 물었다.

“물론이죠. Y Combinator에서 초기부터 관리하던 곳 아닙니까? 그런데 성장 가능성이 꽤 큰 모양이군요.”

“물론이지. 아이디어들이 좋아. 그러니까 그쪽의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스타트업이 있으면 우선 접촉해 봐.”

미국의 핀테크 분야는 페이팔과 스퀘어가 가장 선도적으로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 두 기업은 이미 상장한 회사이고, 어느 정도는 궤도에 올라 있는 기업이기에 초기 투자는 불가능하다.

유진이 대안으로 선택한 곳은 스트라이프로, 이미 시리즈 D로 투자했다.

기업 가치를 50억 달러로 인정하고, 10억 달러를 넣어 20%의 지분을 확보했다.

스트라이프는 단순한 간편 결제를 넘어 스타트업 금융지원 서비스, 간편 대출 같이 소비자들의 니즈가 있으면서도, 아직 충분한 시장이 만들어지지 않은 새로운 분야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앞으로 몇 년 뒤에는 적어도 수십 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디어로 한국이나 다른 지역에서 창업하는 회사라면 그쪽에도 역시 투자를 진행할 생각이다.

“아마 있을 겁니다. 쓸 만한 사람들을 찾아 보지요.”

“그래. 사람이 항상 제일 중요하니까.”

유진과 김환이 말하는 사람이란, 긍정적인 의미에서 인화를 중요시하고 인품이 좋은 사람 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인물을 찾고 있다.

독선적이고, 욕심 많고, 이기적이며,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스타트업의 성공에 필요한 사람들이다.

세간에서의 생각과 달리 스타트업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자신의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창업에 도전한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극소수의 성공적인 기업의 초기를 보면, 시장에는 늘 그들만큼이나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지닌 경쟁자가 있었다.

때로는 성공한 기업이 두 번째나 세 번째, 혹은 아주 후발 주자인 경우도 있다.

미래에 성공하게 될 만한 구상이라면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다수일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아이디어라면, 아마도 크게 의미 없는 상상에 불과할 가능성이 컸다.

더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구상이다.

아이디어는 어디까지나 디딤돌에 불과하고, 그걸 성공시키는 것은 직접 그 일을 실행하는 사람의 의지와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욕망이다.

결과적인 이야기이지만, 가장 성공적인 사업가는 주변에 무자비하고, 자신의 구상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독선적인 인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같은 현대의 정복자들뿐 아니라, 20세기 초 미국의 발전을 이끌어 낸 강도 귀족(Robber baron)들이 그러했다.

심지어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서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어떤 의미에서는 성공에 더욱 가까운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은 경쟁과 투쟁에 있고, 그 가혹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은 싸울 의지가 충만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기업가들이 충분한 성공을 이룬 뒤에는 사회를 위해 그때까지 이루어 놓은 부를 환원하는 경우가 미국에서는 드물지 않다.

록펠러가 그랬고, 카네기나 밴더빌트 또한 상당한 액수를 사회에 환원했다.

현대에도 빌 게이츠처럼 은퇴 후 자신이 일군 부를 사회를 위한 공헌에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아쉽게도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우는 꽤 다르지만, 앞으로는 변해 갈 것이다.

김환도 유진도 사람을 고르는 안목은 비슷했기에, 유진은 마음 놓고 한국에서의 사업을 맡길 수 있었다.

김환과의 긴 대화를 마치고 나니 모니카가 바로 새로운 일을 보고했다.

“피터 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언제 한번 만나고 싶다는군요.”

“그래? 피터 틸이라면 팔란티어 테크놀리지였지?”

유진은 미국의 빅데이터 분석 회사에 많은 투자를 했고, 그중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에 가장 많은 액수가 들어갔다.

팔란티어 테크놀로지를 창업한 피터 틸이 아직도 가장 많은 지분을 지니고 있고, 유진이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네. 오늘 약속은 아마도 투자 유치에 관한 것인 듯합니다.”

“피터 틸에게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 텐데?”

피터 틸은 현대 미국의 테크 산업계의 산증인과 같은 인물로, 창업과 투자로 엄청난 성공을 이어 온 사람이다.

가장 처음 성공한 것은 역시 페이팔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말 몇몇 지인들과 함께 설립한 간편 결제 서비스인 페이팔은 후일 테슬라를 창업해 다시 한번 엄청난 성공을 거두는 일론 머스크가 인수해 IT 버블의 붕괴를 넘긴 뒤, 당시로서는 꽤 높은 가격으로 이베이에 팔아 버렸다.

이때 페이팔의 창업과 성장에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돈방석에 앉았고, 그 자금으로 새롭게 창업을 하거나 다른 기업에 투자해 다시 성공을 이어 가며 실리콘밸리의 창업 신화를 새롭게 그려 나갔다.

피터 틸은 얼마 후 페이스북에 50만 달러를 투자해 10%의 지분을 확보했고, 스티브 첸과 채드 헐리는 유튜브를 만들었으며, 레이드 호프먼은 링크드인이라는 비즈니스 중심의 네트워크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는 얼마 후 테슬라를 인수했다.

페이팔 출신으로 성공을 거둔 이들은 이 외에도 더 있다. 그리고 이들을 세간에서는 ‘페이팔 마피아’라 부른다.

피터 틸은 페이스북 투자로 엄청난 거액을 벌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빅데이터 분석 회사인 팔란티어 테크놀로지로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그의 지분 가치만으로 수십억 달러는 우스울 정도이다.

그러니 피터 틸이 자금이 부족해서 유진을 보자고 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페이팔 마피아들은 여전히 유대를 공고히 하며 서로 사업 아이디어를 공유하거나, 말 몇 마디만으로 투자를 결정하기도 한다.

비록 아직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그렇게까지 성공적이라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의 이름값만으로도 어디서건 투자를 받아 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유진이 알고 있기로는 지금 피터 틸이나 다른 페이팔 마피아들이 거액의 자금을 필요할 만큼 새로운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는 것도 없다.

“재미있겠네. 편한 시간에 보자고 해.”

자신이 모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벌써 호기심이 생긴다.

“시간만 되시면 바로 뉴욕으로 오겠다고 하더군요.”

어쩐지 피터 틸은 유진을 무척 만나고 싶은 모양이다.

“유성의 기업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막상 만난 피터 틸은 유진이 전혀 생각지 못한 제안을 해 왔다.

“투자를 하고 싶으시다고요?”

지금까지 유진은 적지 않은 투자를 해 왔지만, 반대로 유진에게 투자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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