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암호화폐의 미래
이미 유진에게는 암호화폐 시장을 부양하고, 거래소 시장을 독점할 자본과 능력이 충분하다.
일반적으로 신생 기업에 투자할 땐 단순하게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목적이 있다.
바로 이미 다른 업계에서 성공을 거둔 선배들의 조언과 다양한 네트워크의 제공이다.
유망한 신생 기업에는 미래를 바라보고 거액을 투자하겠다는 다양한 자금원이 달라붙기 마련이고, 기업 측에서는 성장을 위해 단순한 자금 지원보다 더 많은 것을 제시하는 투자자와 손을 잡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유진에게는 그 어떤 종류의 추가 자원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들의 전적인 지지. 그리고 풍부한 인적 자원을 보장하겠습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테지요?”
“좋습니다.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세요. 가능하다면 우리가 가진 자원을 전부 동원하겠습니다.”
피터 틸과 페이팔 마피아들은 유진과의 협력을 무척 중요시하는 모양이다.
“늘 파운더스 펀드는 탐이 났었지요.”
유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핵심을 요구하시는군요.”
피터 틸이 살짝 난감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파운더스 펀드야말로 페이팔 마피아의 가장 중심적인 기업이다.
피터 틸을 위시한 페이팔 마피아들이 함께 모여 각자가 생각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기업을 시작할 때면 파운더스 펀드가 자금과 네트워크를 제공해 성공으로 이끌어 왔다.
또 페이팔 마피아들이 세운 신생 기업뿐 아니라 에어비앤비, 페이스북, 스트라이프, 스포티파이, 위시같이 이미 놀라운 성공을 이루어 낸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투자를 성공시켰고, 스페이스 X같이 미래가 유망한 다수의 기업에 대해서도 투자를 해 오고 있다.
파운더스 펀드는 Y컴비네이터와 함께 21세기에 설립된 벤처캐피탈 중 가장 성공적인 기업이라 해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경영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문호를 개방해 주면 좋겠군요.”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가요?”
“각 기업에 대해 적어도 제2 주주의 위치는 차지하고 싶습니다. 물론 최대한의 투자를 약속하지요.”
유진은 주식 시장이나 투자로 받아 낼 수 있는 지분 이상의 것을 요구했다.
“우리는 협력을 원하는 거지, 백기 투항을 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닙니다.”
피터 틸이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유진의 말은 페이팔 마피아들의 모든 기반을 자신의 밑으로 흡수하겠다는 의미와 다름없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내 제안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유진으로서는 그들이 들어주든 아니든 조금도 상관없다.
“물론 암호화폐의 미래가 무척 밝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의 모든 기반과 바꿀 정도는 아닐 겁니다.”
피터 틸로서는 투자를 제안하려 왔다가, 오히려 자신들이 이룩한 연합 제국을 통째로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받았으니 당연히 불쾌할 수밖에 없다.
“당신들의 기반을 빼앗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난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난 아주 다양한 기업들에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단 한 번도 그 기업을 완전히 차지하거나, 창업자를 쫓아낸 적도 없어요.”
“으음…….”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들과의 전면적인 협력 관계입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건 최대한의 지원을 해 드리겠다는 것이죠. 암호화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지만, 암호화폐 거래를 통해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엄청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피터 틸의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져 갔고, 유진은 그런 피터 틸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암호화폐 거래소를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다양한 부가적인 사업 분야를 함께 개척해 나는 것 또한 그만큼 중요한 일이지요. 만일 나와 함께하겠다면, 그 시장은 여러분들에게만 활짝 열릴 겁니다.”
솔직히 피터 틸의 제안을 받았을 때, 유진은 상당히 기꺼웠다.
그들의 투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페이팔 마피아들이 구축한 네트워크와 그들 각자의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선견지명만은 어떻게 찬사를 보내도 모자랄 지경이다.
유진은 아마도 이들이야말로 현시점에서 가장 뚜렷하게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라 여기고 있었고, 이들을 손에 넣는다면 훨씬 더 효율적인 구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피터 틸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한 그의 관심은 진심이었다.
지금은 피터 틸뿐 아니라 적지 않은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지고 성패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는 시점이다.
암호화폐의 개념이 세상에 알려지고 벌써 7년이 지났다.
초기에는 0.1센트에도 지나지 않던 비트코인이 지금은 수백 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일반인은 몰라도 늘 세상을 앞서가는 실리콘밸리의 유력가들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암호화폐 시장의 규모는 그런 거인들이 뛰어들기에는 작기만 한 시장에 불과했다.
암호화폐의 시장 규모를 전부 더해 보아도 겨우 수백억 달러 수준이니, 일개 개인의 부로도 충분히 시장 전부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러니 그 작은 시장에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뛰어드는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는다.
피터 틸 역시 유진이라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앞으로 벌어질 코인 사태 이후에나 적극적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이 암호화폐 거래 시장의 지분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지금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늦을 것으로 생각했다.
1조 달러가 넘는 자금을 운용하는 거대 자본가가 꽉 잡고 있는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차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니치마켓, 즉 틈새시장 공략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페이팔 마피아들에게 있어서 이는 결코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그들은 시장을 만들어 내고 선점하는 것에 익숙하지, 남의 뒤를 쫓는 것에 능숙한 위인들은 아니었다.
그러니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들어 명백한 성과를 보이려면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한 유진과 손을 잡는 쪽이 불가피했다.
“지금까지 유진은 벤처 투자를 하면서 경영에 간섭한 적은 거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피터 틸이 입을 열었다.
“물론이죠. 그 회사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창업자와 실무진들이지요. 외부에서 간섭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내부의 불화와 단기적인 실적 정도가 전부일 겁니다.”
“확실히 그런 면이 다른 월 스트리트의 금융가들과 차별되는 점이지요.”
외부에서 바라보는 유진의 자산은 틀림없이 월스트리트에 기반을 둔 투자자본이다.
그리고 월가의 투자자본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보다는 단기적인 실적을 훨씬 더 중요시한다.
월스트리트에서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보다 이미 충분한 성장을 이룩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중시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딱히 월스트리트가 근시안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월가의 금융계에 투자를 하고 있는 개인들이 짧은 시간 동안의 성과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명백하게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투자 펀드와 다를 수밖에 없는 기반을 지닌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진은 다른 월가의 투자자들과 확연하게 다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의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간섭은커녕 경영진과 만남의 자리 한번 가진 적이 없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특별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우리 쪽과도 그런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그랬다. 유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의 지식으로 충분한 이득을 챙길 수 있는데, 굳이 관여해서 미래를 비틀 생각은 없다.
하지만 페이팔 마피아들과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된다면 조금 바뀔 수도 있다.
그건 명백하게 처음부터 유진이 알고 있는 미래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엔 관여하겠다는 말을 할 필요야 없다.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올린 이미지를 굳이 무너트릴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들은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아주 다양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개인정보의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암호화폐라든지, 암호화폐 기반의 투자 프로그램이나, 대출 같은 것 말이지요?”
일반적이라면 유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를 쉽게 발설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꺼내 놓을 수 있다.
“하하. 물론 그런 것도 포함되지요.”
피터 틸이 다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완벽하게 새로운 종류의 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뛰어들 분야가 널려있다고 볼 수 있지요. 인도에서 새롭게 창업하는 스타트업에 루피화가 아닌 비트코인을 기반으로 자금을 대출하거나, 화폐 경제가 무너진 나라에 그 나라 화폐를 대신해서 암호화폐 기반의 경제 체계를 지원한다든지 말이에요. 한 나라의 화폐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그렇게 많은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이에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암호화폐가 기존의 화폐를 대신할 만큼 충분히 규모가 커야 하고, 또 화폐로 통용될 만큼 안정적이어야 하지만, 그걸 논의할 상황은 아니다.
“벌써 많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양이군요.”
“우리 쪽에도 똑똑한 사람들은 많이 있으니까요.”
유진의 배경은 수없이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미래에 이룩해 놓은 지식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지성으로 유추하고 예견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힘이다.
“유진과 함께하려면 우리도 열심히 연구해야겠군요.”
유진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틀림없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거로 생각됩니다.”
“동료들과 진지하게 논의를 해 봐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소식을 기다리겠습니다.”
유진은 그들이 결국은 자신과 손을 잡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들은 돈이 되는 사업을 보는 눈이 누구보다 탁월한 사람들이고, 또한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에 그렇게 부정적인 사람들도 아니다.
지금의 그들의 기반이 되어준 페이팔조차 일론 머스크의 제안을 받고는 단숨에 합병에 찬성했고, 얼마 뒤에는 이베이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뒤로도 그들은 자신들이 창업한 기업들을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업체에 넘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다른 창업자들처럼 자신이 만들어 낸 기업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려 하지 않고, 충분한 대가를 받아낼 수 있다면 넘겨 버리고 이익을 취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사실 그런 면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수익을 놓치기도 했다. 처음 창업한 페이팔은 지금 페이팔 마피아들이 나중에 창업한 기업들을 전부 합친 정도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피터 틸은 자신이 투자한 페이스북의 지분 10%를 몇 년에 걸쳐 10억 달러 정도에 팔아 버렸다. 그걸 계속 보유하고 있었다면 적어도 열 배 이상의 가치를 받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이란 없는 법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