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페이스북 크레딧
“서부에 한 번 다녀와야겠어. 비행기를 준비해 줘. 마크 저커버그와 시간을 잡아 보고.”
피터 틸이 돌아간 후, 유진은 모니카와 측근들에게 미 서부로의 여행을 알렸다.
이미 페이스북 지분을 10%도 넘게 갖고 있는 대주주인 유진의 요청을 상대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페이지와 브린에게도 연락하고. 아! 기왕 가는 길에 제프도 만나고 오지.”
구글이나 아마존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약속이 잡혔고, 유진은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샌프란시스코의 남쪽 팔로 알토에는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모여 있었고, 그중에는 구글과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기업도 포함된다.
유진은 우선 페이스북의 선장인 마크 저커버그를 만났다.
“드디어 만나게 되는군요.”
세계에서 가장 젊은 부호 마크 저커버그는 마침 유진과 비슷한 나이였고, 어린 나이에 거대한 단체를 이끌고 있다는 점 때문인지 유진에게 호의를 보여 왔다.
“반갑습니다. 마크 덕분에 요즘 너무 즐겁습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제게 고맙다고요?”
저커버그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재작년부터 페이스북에 투자해서 지금까지 400억 달러를 벌어들였으니 고맙지 않으면 안 되지요.”
“하하,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감사 인사 기꺼이 받겠습니다.”
“언제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뭐, 이런 걸로 만족하실지 모르겠지만 받아 주면 고맙겠군요.”
유진은 지갑을 꺼내 1억 달러짜리 수표를 저커버그에게 건넸다.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에 기부하는 겁니다. 챈이 좋아했으면 좋겠군요.”
“물론이지요. 챈이 무척 기뻐할 겁니다.”
저커버그가 활짝 웃으며 1억 달러짜리 수표를 챙겼다.
물론 1억 달러라는 액수는 굉장히 큰 금액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냥 선물이 아니라 저커버그와 부인인 프리실라 챈이 설립한 공익 재단에 강유진이라는 거물이 참여했다는 상징성이다.
지난해 저커버그는 부인인 챈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으면서 전 재산의 99%를 기부해 사회에 공헌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설립된 기관이 바로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공익 재단이 비영리재단인 것에 비해, 저커버그 부부의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는 일반적인 개인 기업인 LLC의 형태로 만들어져서 논란이 되고 있었다.
비영리재단의 경우라면 미국의 법률에 의거해 매년 기부금의 5% 이상을 자선 목적으로 사용해야 하지만, LLC의 형태가 되면 얼마나 돈을 모으고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제한이 없다.
말하자면 이름만 공익 재단이고 실재로는 평범한 기업으로서 영리 활동도 하고 소유주의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저커버그는 줄곧 이 재단의 설립 목적에 대해 의심을 받아 왔고,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소유 재산의 99%를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에 기부하고 그 재단을 자식에게 물려 주면 상속세를 내지 않고 대대손손 페이스북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저커버그는 자선에도 효율과 경영이 필요하기에 비영리기관보다 개인 기업이 훨씬 낫다며 반박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마크 부부의 선의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유진이 마크의 재단에 1억 달러를 쾌척한 사실이 알려지면, 마크에게도 유진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유진은 마크의 진심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유진과 마크의 나이가 비슷해서인지 유진의 지난 삶에서도 마크는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의 사후에 어찌 되었는지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 만남의 선물로는 너무나 과분하군요. 하지만 거부할 수 없겠네요.”
“마크 덕분에 본 수익을 생각하면 가벼운 선물 정도로 받아들여 주면 고맙겠군요.”
“하하. 이거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겠네요. 유진에게 수익을 올려 주면 또 보너스를 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물론이죠. 전 보너스에 인색하지 않답니다.”
1억 달러짜리 선물 덕분에 두 사람은 한참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설마 챈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에 기부를 하러 오신 것은 아닐 테고요?”
그리고 마크가 본론을 물어 본다.
“사실 욕심 같아서는 마크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도 사고 싶은데 말이에요. 페이스북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가진 돈을 전부 써서 사놓고 싶단 말이지요.”
유진이 다시 농담을 이어 갔다. 아주 좋지 못한 농담이다.
많은 성공한 기업가들이 그러하듯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회사에 대해 엄청나게 집착하고 있다.
특히 그가 지니고 있는 B클래스 주식에 대해서라면 더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미국의 IT 기업들은 보통 주식에 비해 10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지닌 차등의결권 주를 통해 창업주들에게 특별한 권한을 부여해 자금 수혈을 위한 지분 희석 이후에도 자신이 창업한 기업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16%의 지분으로 50%가 넘는 의결권을 행사하고, 구글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차등의결권 주의 발행이 불가능하지만, 미국의 신생 기업들에게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한국의 경우는 주식의 가격에 비해 배당금이 적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주식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의결권이다.
더군다나 기업의 창출하는 수익을 자회사를 통해 빼돌리는 등의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지배주주만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신뢰가 상실된 상태라 볼 수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는 그렇게 자회사를 만들어 수익을 빼돌리는 행위가 불가능하고, 주주들에 대해 충분한 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 때문에 주주들은 창업자의 의결권을 보장해 주고, 그들이 충분한 실적을 올려 줄 것을 믿기 때문에 차등의결권 주 발행도 가능한 것이었다.
마크가 페이스북을 지배할 수 있는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이 특별의결권 주식을 요구하는 것은 마치 전쟁을 치르자는 말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해 들은 최고의 농담이로군요. 하하…….”
마크의 눈이 조금 동그래졌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세간에서 그의 기부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가 아닌 듯했다.
“마크를 즐겁게 했으면 방문한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듯하네요. 하하.”
“맞아요. 태어나서 오늘처럼 당황한 것은 세 번째로군요. 살짝 식은땀이 났어요.”
사실은 정말로 마크의 이마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세계 제일의 현금 동원 능력을 지닌 유진의 말이 그냥 농담처럼만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은 페이스북 크레딧 때문에 마크를 만나고 싶었어요.”
세계에서 가장 젊은 부호를 조금 놀라게 해 준 다음에 드디어 본론에 들어간다.
“페이스북 크레딧은 이미 폐기한 지 3년이나 되었는데요.”
유진의 목적이 페이스북의 경영권 따위가 아니라는 것에 마크는 살짝 안도의 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페이스북 크레딧 마크 2 정도 되겠군요.”
유진은 과거의 페이스북 크레딧이 아닌 미래의 것에 대한 논의라는 사실을 명백히했다.
“흐음…….”
지금까지와 달리 저커버그는 신중한 얼굴이 되어 유진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유진이 암호화폐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던 저커버그가 입을 열었다.
“암호화폐 시장에 꽤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면서요?”
“네. 암호화폐의 미래에 대해서는 마크도 동의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크 저커버그는 이미 지난 2009년 페이스북 생태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페이스북 크레딧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여러 나라에 진출해 있는 페이스북 유저들이 페이스북 내부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사용할 수 있는 가상 화폐인 페이스북 크레딧을 각국의 통화를 대신해 페이스북 내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게임이나 콘텐츠를 이용하는 데 사용하고, 콘텐츠 개발자들은 소비자들에게 받은 페이스북 화폐를 각국의 통화로 환전할 수 있게 하려는 시도였다.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크레딧을 단순하게 페이스북 내부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가상 화폐로 멈추지 않고, 점차 활용도를 높여 실물 경제 시장에서 원활하게 유통되게 만들어 온라인 결제 시장에서 선두 자리에 서려는 계획이 있었다.
수십억 명에 달하는 유저를 보유한 거대한 온라인 제국 페이스북으로서는 그러한 유저들이 국가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화폐를 만들어 화폐의 유통에 따른 수익과 그에 따르는 파워를 얻으려 했던 것이다.
페이스북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은 물론 제삼세계까지 광범위한 유저들을 보유하고 있고, 그런 다양한 나라들의 사람들이 페이스북 생태계 내에서 지불을 보장하는 페이스북 크레딧을 화폐 대신 사용한다면 어지간한 국가 이상의 경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여러 가지 이유에서 페이스북 크레딧은 실패로 끝났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가상 화폐에 대한 각국 정부의 견제 때문이다.
“마크 2라…… 멋진 말이로군요.”
저커버그가 웃으며 말했다.
페이스북 크레딧이 종료되고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마크 저커버그는 여전히 페이스북이 지배하는 화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내게 제안하는 이유는 역시 암호화폐 시장의 활성화 때문이시겠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마크도 그걸 원할 것으로 생각하고요.”
“하지만 난 기존의 암호화폐를 페이스북에 끼워 넣을 생각은 없습니다.”
마크 저커버그뿐 아니라 야망을 지닌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대안 화폐를 원하는 이유는 단순히 화폐의 보유나 거래에서 생기는 수익 때문이 아니다.
바로 화폐를 주조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힘 그 자체이다.
미국이 가진 힘의 절반 정도는 세계를 상대로 싸워도 이길 만한 군사력이지만, 나머지 절반 정도는 달러를 마음대로 찍어 낼 수 있는 권한이다.
중국이나 일본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대신해 자국 화폐가 세계 경제에서 그만한 힘을 지니게 하려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시장 경제에서 화폐의 발행 권한만큼 강한 권력은 없다. 군사력조차 그러한 화폐 발행 권한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수십억에 달하는 회원을 보유한 페이스북의 황제 또한 그러한 힘을 원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따위는 아마도 당분간 페이스북에서 취급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커버그는 유진의 제안을 조금도 서슴지 않고 거절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페이스북 크레딧 마크 2라고 말한 것 같은데요.”
유진은 이미 그의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페이스북에서 발행하고, 유통시키는 화폐를 말하는 겁니다. 단지 마크 1과 다르게 훨씬 더 정교하고, 확실하게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겠지요.”
“흠…….”
마크 저커버그의 고민이 깊어졌다. 사실 그 또한 다음 세대의 페이스북 크레딧에 대해서는 늘 고민해 오고 있었다.
특히 암호화폐의 시장 규모가 점점 커지고, 다양한 종류의 암호화폐가 속속히 등장하면서, 조급한 생각마저 들고 있던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