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모바일 페이
“X디벨로프먼트를 구글에서 독립시키자는 말이로군요.”
세르게이가 물었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요? 두 분은 X디벨로프먼트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준비하고 싶어 하지만, 주주들은 사실 딱히 관심이 없지요. 양쪽을 만족시키려면 X디벨로프먼트가 구글과 분리되고, 따로 예산을 충당할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겁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평가 자산은 각각 400억 달러가 조금 안 되는 정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산은 대부분 구글의 주식으로 묶여 있다.
매년 X디벨로프먼트에 수십억 달러의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엄청난 부호들인 두 사람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앞으로 5년이나 10년쯤 뒤에 X디벨로프먼트의 연구 결과가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또 두 사람은 X디벨로프먼트에서 당장의 수익을 위한 연구를 하기를 원치도 않는다.
예산에 구애받지 않고 먼 훗날을 위한 연구를 지속하는 것이 그들의 희망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든든한 자금줄을 지닌 구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X디벨로프먼트의 독립에 유진이 투자를 하겠다는 말이지요? 매년 30억 달러의 예산을 혼자 감수하면서 말이지요?”
“30억 달러로 모자라다면 50억이나 100억 달러를 지원할 생각도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우주 엘리베이터 따위를 위해 매년 100억 달러를 지불할 수 있는 개인이나 회사는 없을 것이다.
사실 국가로서도 매년 100억 달러의 예산을 연구에 투입할 수 있는 곳은 오직 미국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유진은 그 정도의 부담을 감당할 능력을 지니고 있는 유일한 개인이다.
“우선 150억 달러를 투자해 독립적인 기업으로 만들도록 하지요. 그중 지금까지 구글에서 투자한 비용을 고려해서 100억 달러를 구글에 지급하는 것으로 하죠. 그럼 구글도 당장 내년에 추가로 100억 달러의 수입이 생기게 되니 주주들이 반길 겁니다.”
엄청난 액수의 이야기가 너무도 쉽게 흘러나온다.
“그리고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은 첫해에는 30억 달러에서 시작해 매년 10억 달러씩 추가하겠습니다. 7년 뒤에는 매년 예산이 100억 달러가 되는 거지요.”
유진이 아니라면 그 어떤 기업도, 심지어 국가 차원에서도 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대신 원하는 것이 있겠지요?”
“물론이지요. 100%의 일반주 전부를 받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의결권 10배짜리 11%를 드리지요.”
유진의 말에 세르게이와 래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가 투자하겠다는 비용을 고려한다면 100%의 일반주는 결코 과도한 요구도 아니다. 한편으로 11%의 10배짜리 특별의결권 주식이라면 두 사람이 X디벨로프먼트를 지배하는 데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도대체 X디벨로프먼트를 원하는 이유가 무언가요?”
유진의 제안이 끝나고 나서야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왔다.
“X디벨로프먼트가 인류을 위협하는 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감하기 때문입니다.”
“기후 문제 같은 것 말이지요?”
“그렇죠. 기후 문제 같은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척 많은 투자가 필요할 겁니다. 그리고 X디벨로프먼트는 똑똑하고 야심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죠.”
“하지만 유진은 트럼프와 친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트럼프는 기후 문제를 사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요?”
몇 번인가 다른 상황에서도 나온 지적에, 유진은 단호하게 받아쳤다.
“트럼프가 기후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건, 나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기후 문제는 명백하게 현존하는 가장 커다란 위협입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아주 유망한 사업에 투자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군요. 만일 그렇다면 오히려 힐러리를 지지해야 하지 않나요?”
실리콘밸리의 거인들은 대부분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 아주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구글의 창업주들이야 조용한 편이지만 애플은 명백하게 트럼프에 적대적이었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에 대한 공격을 잠시도 늦추지 않았으며, 저커버그도 비슷한 성향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니 트럼프와 친밀한 관계라 알려진 유진에 대해서도 그런 의혹을 보내는 것은 당연했다.
“힐러리가 기후 문제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군요. 아직 미국인들은 기후 문제가 불러올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있어요. 영화 몇 편이나, 급진적인 지도자 한 명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유진은 정치적 쟁점을 피해, 사실적인 문제만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가 하지 않은 말도 있다. 때로는 잘못된 지도자로 인해 구성원들이 잘못을 깨닫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기후 문제가 제기된 50년 동안 인류의 대부분은 기후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는 공감하고 있었지만, 사실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기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오히려 트럼프가 당선되고 난 4년 동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널드 트럼프의 좌충우돌식 정책과 기후 문제에 대한 무시가 일반인들로 하여금 오히려 기후 문제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기후 문제에 대해서 진심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세르게이도 논쟁을 이어갈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비즈니스와 정치적 지향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유진이 어떤 의도에서 X디벨로프먼트를 독립시키고자 하는지는 솔직히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당신의 투자 감각이 우리의 프로젝트 중에 쓸만한 것이 있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기후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경제적인 이유에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교적인 성격의 세르게이 브린에 비해 래리 페이지가 내성적이고 사교성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유진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하는 것을 필터 없이 내뱉는 것도 아마도 그 때문인 모양이다.
“당연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지요.”
그리고 유진 역시도 될 수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다.
“경제적인 동인이 없다면 그 어떤 시도도 무의미할 겁니다. 솔직하게 대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래리는 유진의 대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답변을 드리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문제로군요.”
“좋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유진도 당장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고민해 볼 만한 제안이라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만일 두 사람이 유진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구글의 일반주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유진이 이사회를 통해 X디벨로프먼트의 축소를 압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와 싸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유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편이 유리하다는 사실은 벌써 계산이 끝났을 것이다.
“내년에 100억 달러의 추가 자금과 X디벨로프먼트에 들어갈 30억 달러의 예산을 합하면 엄청난 여유 자금이 생길 겁니다. 구글의 주주로서 난 구글 페이에 조금 더 신경을 써 주기를 바랍니다.”
유진에게는 한 가지 용건이 더 있었다.
“구글 페이에도 미래가 있다고 보시는군요.”
다시 두 사람이 흥미를 보여 왔다.
글로벌 IT기업들은 늘 금융 관련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고, 또 다양한 방법을 통해 금융 분야에 진출하려 노력했다.
신용카드가 그러했듯 소비자 결제 관련 업종의 수익이 큰 때문도 있지만, 이미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사이즈의 회원들을 아우르는 글로벌 금융 플랫폼을 만들어 내어 회원들을 자신들의 플랫폼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도록 유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대형 포탈들은 금융 분야에 직접적으로 진출해 은행을 만들고, 접근성 높고 사용이 간편한 결제 시스템에 자사 회원들이 가입하도록 다양한 리워드를 뿌렸다.
애플은 이미 2014년에, 그리고 구글은 그 이듬해에 자사의 이름을 붙인 페이 서비스를 출시했다.
새로운 캐시카우를 만들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은 당연한 것이다.
구글은 매우 다양한 분야에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수익 구조는 의외로 단순하다.
구글의 주 수익원인 광고에서 60% 정도를, 유튜브에서 10%, 구글플레이나 하드웨어 판매 등에서 10%, 그리고 네트워크 서비스로 다시 10% 정도를 벌어들인다.
실질적으로 광고 서비스가 대부분이라는 의미이다.
그 외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구글에서는 Other Bets라 부르는데, 여기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구글에서는 매년 이러한 Other Bets에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사용하고 있는데, 구글 내부에서도 새로운 수입원을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X디벨로프먼트를 통해 원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것이다.
지난해에 출시한 구글 페이 또한 그러한 시도의 일환이다.
“물론이죠. 애플에게 밀린 것은 아쉽지만, 지금부터라도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구글 페이의 활성 유저를 확보해야 할 겁니다.”
아쉽게도 구글 페이는 미국 시장에서는 거의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내고 만다.
앞으로 5년쯤 지나면 애플 페이는 미국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게 되지만, 구글 페이는 겨우 3%라는 미미한 수준의 점유율만을 차지할 뿐이다.
미국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이 약간의 차이만을 보인다는 것을 생각하면, 구글의 영업 실패라고밖에는 볼 수 없는 일이다.
유진은 구글의 대주주이며, 한편으로는 애플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양쪽 어디에서건 시장을 차지하면 유진으로서야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구글과 애플 모두가 시장에서 성공하는 쪽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미국 시장도 중요하지만 역시 안드로이드가 우위에 있는 제삼세계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늘려가는 것이 좋을 거로 보이더군요. 당장 간편 결제 정도만 넣어도 시장을 늘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한편으로는 따로 독립 앱을 만들어 아이폰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쪽도 고려해 볼 만하고요.”
인도나 동남아시아 남미처럼 기존 은행에의 접근성이 낮은 곳에서는 모바일 결제에 대한 수요가 크다. 물론 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유진은 자신이 투자하겠다고 하는 100억 달러를 그저 유보금 정도로 남기게 할 생각은 없다.
“우리쪽 계산으로는 대략 5년 안에 매년 20억 달러 이상의 추가 수입이 가능할 겁니다.”
“흠…… 사실 우리도 결제 서비스를 확장하는 것에는 고민이 많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안드로이드의 시장 확대를 위한 것이라 그 정도의 투자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페이 쪽이 안드로이드를 통해 얻는 수익보다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을 겁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페이 서비스를 기본적으로 탑재하게 된다면 제삼세계 모바일 금융 시장을 석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각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기능을 지닌 다양한 모바일 뱅킹 서비스가 시장을 점유하고 있을 것이다.
“이건 확실히 고려해 볼 문제로군요.”
“유진의 말이라면 당연히 생각해 봐야지요.”
래리와 세르게이 모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만일 두 사람이 유진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구글 페이의 공격적인 시장 확충을 위해서라도 X디벨로프먼트의 독립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은 매우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동안 두 사람과 여러 가지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작별을 나누었다.
여러모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자리였다.